"하하하! 이 미친놈아! 너희들 속지 마! 저놈이 누군지 알아?! 가문 전체가 미치광이 짓을 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전부 처참하게 몰살당한 그 저주받은 핏줄의 생존자라고! 귀신보다 더 미친놈의 피가 흐르는 괴물 새끼가 바로 저 한준우다!"
배동수의 찢어지는 비명이 넓고 높은 로비의 대리석 벽면을 사정없이 때렸다. 천장에 매달린 호화로운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그의 악다구니에 미세하게 공명하며 쟁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정신을 차린 주민들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 감돌던 안도의 빛이 순식간에 탈색되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구해준 구원자를 바라보던 눈빛들이, 순식간에 차가운 경계와 본능적인 혐오로 일그러졌다. 군중이란 본디 구원의 손길보다 눈앞의 자극적인 추문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법이었다.
"몰살당한 가문……?" "어머, 그럼 저 청년이 귀신 들린 집안 자식이라는 거야?" "어쩐지 눈빛이 아주 사납더라니. 아까 그 이상한 책을 들고 중얼거리는 것도 제정신으로는 안 보였어."
수군거림은 삽시간에 로비 전체를 메우는 음산한 파도가 되어 준우를 압박해 왔다. 공기가 단번에 무거워졌다. 심장의 고동이 가슴뼈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준우의 머릿속에서 낡은 기와집의 타들어 가는 냄새와 붉은 피로 얼룩졌던 가문의 마지막 밤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손끝이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트라우마가 이빨을 드러내며 그의 이성을 물어뜯으려는 찰나였다.
준우는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가슴속을 난도질하는 공포와 억울함이 커질수록, 그의 입에서는 더 춥고 날카로운 독설이 흘러나왔다. 그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하긴, 요즘 아파트 관리비에 귀신 퇴치 비용은 청구 안 되니까 다들 의아하겠지."
준우는 품속에서 황동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계율 대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탁, 하는 맑은 소리가 로비의 소란을 단숨에 갈랐다.
"배동수 씨. 선동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신옥주 회장에게 얼마를 받고 영혼을 팔았는지는 관심 없지만, 세무조사 대상자가 조사관의 신상을 털어서 세금을 깎아달라고 떼를 쓰는 건 법적으로 아주 무식한 짓이거든."
"이, 이 미친놈이 끝까지……!"
배동수가 바닥을 기며 침을 튀겼다. 준우는 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내리꽂았다. 준우의 눈동자가 장부의 황동빛을 받아 기이하게 빛났다.
"당신이 돌려보던 그 '엘리베이터 비공식 행동 수칙' 복사본 말입니다. 그 종이 쪼가리 하단에 아주 조잡하게 그어진 붉은 볼펜 자국이 있더군요. 다들 기억하십니까?"
준우의 질문에 웅성거리던 주민들이 흠칫하며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 비밀 수칙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바이블처럼 암암리에 복사되어 돌던 것이었다.
"그 붉은 볼펜 자국은 단순한 낙서가 아닙니다. 손각시라는 원시 귀신이 엘리베이터라는 현대적 규격 공간에 침투할 수 있도록, 당신들이 인위적으로 행동 수칙의 조항을 왜곡해 놓은 '위조 흔적'이지. '거울을 세 번 보면 목이 꺾인다'는 규칙 뒤에 미세하게 덧칠해진 붉은 선. 그것이야말로 신옥주와 당신이 주민들을 사냥터로 몰아넣기 위해 파놓은 불법 규약의 덫이었습니다."
준우는 [계율 대장]의 첫 페이지를 거칠게 넘겼다. 장부의 종이 위로 붉은 빛이 번개처럼 치솟았다.
"계율 대장 제3조 제4항. '타인의 생명을 기만하여 취득한 모든 초자연적 채권 및 규약은 원천 무효로 한다.' 배동수, 당신이 왜곡한 붉은 볼펜의 인과율을 이 장부의 이름으로 영수하여 파기한다."
스르릉!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긁히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배동수의 가슴팍에서 붉은색 실가닥들이 뿜어져 나와 준우의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그가 주민들을 속여 음기를 모으고 주술적 이익을 취했던 불법적인 인과율의 잔재였다.
"커헉! 끄어억!"
배동수는 가슴을 쥐어짜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의 몸에서 주술의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자, 얼굴은 순식간에 수십 년은 늙어버린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주민들을 향해 뿜어내던 광기 어린 선동의 기세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해졌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로 수칙이 조작되었던 거야? 우리를 죽이려고?"
주민들의 의혹에 가득 찬 시선이 이제는 준우가 아닌, 바닥에서 헐떡이는 배동수에게로 쏠렸다. 완벽한 법리적 파산 선언이었다. 준우는 장부를 덮으며 핏기 없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불법 탈세자의 말로는 늘 비참한 법이지."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가해진 트라우마의 상흔까지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의 수군거림이 잦아들었음에도, 준우의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문의 멸문. 그 단어가 주는 무게는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달그락, 달그락, 콰앙!
경쾌하다 못해 요란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로비 정문을 뚫고 들어왔다. 대리석 바닥을 사정없이 긁으며 돌진해 온 것은 다름 아닌 대형 마트용 철제 카트였다.
"어라라? 비켜요, 비켜!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요!"
익숙하고도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속도를 줄이지 못한 카트가 바닥에서 버둥거리던 배동수의 옆구리를 정확하고 묵직하게 들이받았다.
퍽!
"억!"
배동수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카트를 잡고 있던 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소희였다. 그녀는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린 채, 마트 카트 손잡이를 잡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카트 안에는 편의점용 탄산음료와 삼각김밥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어머나, 아저씨 미안해요. 이놈의 카트가 신축 아파트 대리석만 만나면 이렇게 미끄러지네. 10점 만점에…… 음, 몸개그 점수 2점 드릴게요. 착지가 아주 불량하셨어."
소희는 바닥에 처박힌 배동수를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주민들은 이 갑작스럽고 유쾌한 난입에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소희는 준우에게 다가와 그의 옷자락을 툭툭 털어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소희는 준우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오빠, 얼굴이 왜 그렇게 썩어 있어? 저딴 삼류 악당이 지껄이는 소리에 쫄아서 가문의 품위를 떨어뜨릴 거야? 우리 가문이 미치광이면, 저 인간들은 미치광이한테 치료받는 환자들인가?"
준우는 소희의 장난기 어린 눈빛을 마주했다. 여동생의 강철 같은 멘탈과 변함없는 신뢰가 그의 가슴속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응어리를 순식간에 녹여 내렸다. 준우는 헛기침을 하며 피식 웃었다.
"카트로 사람을 치는 건 가문의 품위와 상관이 있는 건가?"
"어머, 이건 정당방위 겸 교통사고지. 보험 처리해 드릴 테니까 누워 계시던가요, 아저씨."
소희가 배동수를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일순간 로비에 감돌던 음산한 공포와 마녀사냥의 기류가 남매의 기묘하고 유쾌한 티키타카 속에서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홀려 있었는지 깨달은 듯, 붉어진 얼굴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때, 로비 안쪽의 어둠 속에서 묵직한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단단한 체구에 정갈한 경비복을 입은 사내, 보안대장 강도진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바닥에 쓰러진 배동수와 준우 남매를 차례로 훑었다.
"소란은 여기까지 하십시오. 주민 여러분, 늦은 밤이니 각자 세대로 귀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후의 상황은 보안팀에서 정리하겠습니다."
강도진의 단호한 목소리에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로비에는 준우, 소희, 그리고 강도진 삼인방만이 남게 되었다. 물론 구석에서 신음하는 배동수도 있었지만, 이미 그의 존재감은 아파트 화단의 잡초만도 못했다.
강도진이 준우의 코앞까지 걸어와 섰다. 그는 품 안에서 낡은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준우에게 내밀었다.
"한준우 씨. 당신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당신이 이 아파트의 기괴한 현상들을 해결할 유일한 열쇠라는 점은 인정해야겠더군."
준우는 강도진이 내민 종이를 받아 들었다. 낡고 바랜 기름종이 위에 붉은 경면주사와 현대식 제도가 겹쳐진 기괴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뭡니까?"
"신옥주 회장이 지하 심층부에서 조용히 추진하고 있는 밀단 제전의 비밀 등사 지도입니다. 그녀는 이 아파트 지하 깊은 곳에 존재하는 원시 제단을 활성화해 귀신과 영구 계약을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불로장생과 무한한 부를 대가로 말입니다."
강도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노여움이 서려 있었다. 준우는 지도를 살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도의 중심부, 즉 아파트의 심장부인 지하 5층 기계실 아래쪽에 거대한 주술적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보안대장님이 이런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 혼자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군요."
"그래서 정식으로 제안하는 겁니다."
강도진이 준우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를 따르던 대원들이 신옥주의 이간질과 귀신의 농간으로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실종되었습니다. 난 내 사람들을 지켜야 합니다. 당신의 그 '세무조사'인지 뭔지 하는 법리적 퇴마술이 필요합니다. 지하는 내가 안내하지."
준우는 강도진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타인과의 깊은 연대를 거부하며 독설로 밀어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여동생 소희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신옥주의 배후를 완전히 뿌리 뽑아야 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제 수수료는 꽤 비쌉니다, 대장님."
준우가 강도진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내의 손아귀에 단단한 힘이 들어갔다. 소희는 옆에서 탄산음료를 들이켜며 "오, 계약 성립? 동업자분들, 파이팅 하세요"라며 가볍게 손뼉을 쳤다.
준우는 강도진이 예전에 건네주었던 고장 난 구형 마스터 스마트키를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렸다. 미세한 영적 전류가 키를 통해 느껴졌다. 이 열쇠가 지하의 격리 제어벽을 열어줄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나저나, 이 지도를 보니 재미있는 규칙이 보이는군요."
준우가 지도의 특정 부분을 가리켰다. 동 미러(구리 거울) 내부의 번개 모양 균열 흔적이 그려진 도면이었다.
"이건 입대위의 청소부들이 결계 내부로 침입할 때 전력 주파수를 조작하는 경로입니다. 이 번개 모양의 미세한 음양 전도 규격 균열…… 2화에서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발견했던 그 균열과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그 균열이 왜요?"
강도진이 묻자, 준우는 [계율 대장]을 다시 펼쳐 들었다. 그의 손끝이 장부의 황동빛 페이지 위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이 균열은 그들이 결계를 뚫기 위해 만든 통로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외부의 영적 에너지를 정량적으로 역압수할 수 있는 완벽한 '송전선'이기도 합니다. 계율 대장의 봉인을 이 균열의 전도율에 연결한다면……."
준우는 장부의 공백에 새로운 수식을 정교하게 써 내려갔다.
손각시를 영수하며 얻은 음기와 아파트 결계의 전력이 장부 안에서 기묘하게 융합되기 시작했다. 장부의 표면이 황동빛을 넘어 푸른빛이 감도는 고압의 전류처럼 지직거리며 요동쳤다.
스파크가 준우의 손가락 끝에서 튀었다.
"조율 완료."
준우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장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무리들이 그의 손가락 끝으로 응축되더니, 이내 단단하고 날카로운 빛의 칼날을 형성했다. 단거리 고압 방사형 검강 퇴마 광선. 손각시의 괴력과 아파트의 음양 전도 균열을 역이용해 자원을 완벽하게 변용하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 푸른 빛의 칼날은 허공을 가르며 미세한 고주파 소음을 내뿜었다. 그 파괴적인 위력에 강도진마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당신이 말하던 법리적 압류의 실체인가?"
"법 집행에는 언제나 물리적인 강제력이 수반되는 법이니까요."
준우가 차갑게 웃으며 검강을 거두었다. 빛이 사라지자 로비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바로 그때였다.
팅.
아주 미세하고 불길한 금속성 음이 로비 전체를 감쌌다.
준우의 목덜미에 돋은 솜털이 일제히 꼿꼿이 일어섰다. 심장의 고동이 가빠지고, 로비의 온도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지는 듯한 극심한 한기가 뼈마디를 파고들었다.
위이이이잉—!
로비 천장의 샹들리에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불빛이 주황색에서 핏빛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동시에 스마트 홈 시스템의 스피커에서 기괴한 기계음과 함께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경고. 아파트 전력 통합 송전 기둥에 정체불명의 과부하 발생. 시스템 오작동. 전 세대 정전 경고.]
"오빠, 저거 봐!"
소희가 다급하게 로비 통창 너머를 가리켰다.
아파트 단지 중앙을 관통하는 거대한 수직 샤프트와 전력 통합 송전 기둥의 벽면을 따라, 무언가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현대적인 콘크리트 벽면 위로 돋아난, 징그러울 정도로 거대하고 축축한 '고대의 원시 뱀 비늘' 형상이었다.
서스스스스—!
수만 마리의 뱀이 쓸려가는 듯한 기괴한 마찰음이 아파트 전체를 울렸다. 모방귀신의 사령이 마침내 아파트의 전력망 전체를 집어삼키며 침윤해 들어오고 있었다.
동시에 로비의 모든 불빛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완벽한 암흑이 남매와 강도진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