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움직이지 마."

금속성의 차가운 경고가 엘리베이터의 좁은 침묵을 찢었다.

쓰러진 청소부들의 신음 소리가 바닥에 깔리는 와중에, 보안대장 강도진의 손에 들린 가스총이 정확히 한준우의 미간을 겨냥하고 있었다. 총구를 쥔 도진의 굳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군인 출신다운 단단한 골격과 매서운 눈빛이 준우의 시선을 옭아맸지만, 도진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금 그 목소리, 그리고 이 쓰러진 놈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평범한 입주민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았지만, 이건 선을 넘었어."

도진의 다그침은 매서웠다. 그러나 준우는 그의 총구 너머, 핏빛으로 끓어오르는 스마트 미러를 응시했다.

치이이이익-!

청소부 리더의 무전기에서 시작된 붉은 소음이 이제는 엘리베이터 벽면 전체의 거울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거울의 유리 표면 내부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그 일렁임 속에서, 준우의 죽은 어머니의 형상을 한 모방귀신이 서서히 손을 뻗어 도진의 뒷덜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준우야... 어서 뒤를 보렴... 엄마가 여기 있단다...

그 목소리는 뇌수를 긁는 것처럼 집요하고 축축했다.

도진의 고개가 본능적으로 거울 쪽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거울 속의 존재와 눈이 마주치거나 뒤를 돌아보는 순간, 조금 전 영수했던 손각시의 계율이 준우와 그 주변인들을 덮쳐 목을 꺾어버릴 터였다. 계율 대장의 인과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절대적인 물리 법칙이니까.

"눈 돌리지 마, 강도진!"

준우가 낮게 포효하듯 외치며 왼손을 뻗어 도진의 가스총 총구를 가볍게 옆으로 밀쳐냈다. 동시에 오른손 손가락을 뻗어 스마트 미러의 정중앙을 강하게 짚었다.

그 끝이 닿은 곳은 단순한 유리 표면이 아니었다. 2화에서 목격했던, 거울 내부 깊숙이 고정되어 있던 번개 모양의 미세한 음양 전도 규격 균열 흔적이었다. 입대위의 청소부들이 결계 내부로 조작해 들어올 때 전력 자원을 우회시키기 위해 심어둔 기하학적 균열.

준우는 뇌리 속에서 [계율 대장]을 거칠게 기동했다.

'손각시의 음기 방어력을 균열에 주입한다. 전도율 백 퍼센트 오버로드.'

[계율 대장 경보: 영수된 손각시의 방어 자원 400포인트를 소모합니다. 음양 전도 균열을 매개로 한 역(逆)전압 역장을 전개합니다.]

파지직! 콰르릉!

순간 엘리베이터 내부의 공기가 미친 듯이 팽창했다. 거울 속 번개 모양의 균열을 따라 푸른색 전격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튀었다. 단순한 전기 스파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적인 음기를 고전압의 물리적 타격력으로 치환한 푸른 장벽이었다.

"커헉!"

도진이 가스총을 떨어뜨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등 뒤까지 뻗어 나왔던 붉은 아지랑이의 손길이 푸른 고전압 역장에 닿자마자 튀겨지듯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준우야! 준우야아아!

어머니의 목소리를 흉내 내던 기괴한 비명이 찢어지며 거울 저편으로 강제 퇴거당했다. 푸른 불꽃이 거울 표면을 빗자루질하듯 쓸고 지나가자, 붉은 노이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맑고 투명한 유리 거울만이 남았다.

엘리베이터가 크게 한 번 덜컹거리더니 정상적인 주황색 대기등이 켜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던 도진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준우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준우의 손끝에서 아직도 가볍게 일렁이는 푸른 영기(靈氣)에 머물러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방금 그 번개는 뭐고, 저 거울 안의 형체는 또 뭐냐 말이다."

준우는 찌릿거리는 손가락 끝을 털어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방어기제가 비틀린 웃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말했잖아, 보지 말라고. 공짜로 목숨 구해주니까 눈앞에서 불꽃놀이 감상한 소감이 어때? 관람료는 특별히 아파트 관리비에서 차감해 줄 테니까 걱정 마시고."

도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군인 시절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금세 상황의 본질을 짚어냈다. 방금 전 자신을 겨냥했던 초자연적인 살의,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억누른 눈앞의 청년.

"네가... 저것들을 막고 있었던 건가?"

"막는 게 아니라 규칙을 집행하는 거지."

준우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대답했다.

도진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단순한 경악을 넘어선, 깊은 절망과 분노가 그의 눈동자에 서려 있었다.

"신옥주... 그 미친 여자가 결국 일을 저지르는군."

"신옥주?"

준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자, 아파트의 미소 뒤에 숨은 사악한 지배자.

도진은 엘리베이터 벽면에 기대어 서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옥주의 극비 정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주먹을 쥔 그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 여자는 이 아파트를 단순한 명품 주거지로 보지 않아. 지하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원시 제단을 깨워서, 자신의 영생과 가문의 부를 영구화하려는 주술 집단과 손을 잡았지. 실종된 주민들? 사고사로 위장된 자들? 전부 그 제단에 바쳐진 영적 제물들이었어."

"생각보다 더 악질이군. 부동산 사기꾼인 줄 알았더니 인간 도살업자였나."

"더 심각한 건 오늘 밤이야."

도진이 준우의 어깨를 잡으며 절박하게 말했다.

"신옥주가 방금 청소부들에게 지시를 내렸어. 엘리베이터 수직 통로를 통해 지하 제단의 음기를 방류하라고. 밤새도록 아파트 단지 전체를 영의 소굴로 만들어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모조리 제단의 제물로 끌고 가려는 수작이다. 내 부하들도 이미 그 여자에게 매수당하거나 협박받고 있어. 난 저항하려 했지만..."

우우우웅-.

도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샤프트 깊은 곳에서부터 고막을 압박하는 기분 나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수직 통로의 벽면을 타고 차가운 습기가 흘러내렸다. 공기 중의 수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탑승객들의 입에서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지하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원시적인 악령들이 통로를 타고 지상으로 밀려 올라오는 전조였다.

"온다."

준우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1화에서 아파트 게시판 구석에서 수거했던 '엘리베이터 비공식 행동 수칙' 인쇄물이었다.

도진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준우의 시선은 인쇄물 하단에 그어진 의문의 '붉은 볼펜 자국'에 고정되어 있었다. 단순한 낙서처럼 얽혀 있던 그 붉은 선들이, 영안(靈眼)을 통해 다시 보니 기하학적인 인과율 왜곡 공식으로 변해 빛나고 있었다.

이 볼펜 자국은 가문의 선조들이나 혹은 이전의 생존자가 남겨둔 비밀스러운 쐐기였다. 손각시나 모방귀신 같은 현대적 변종 귀신들의 행동을 규약상 '무단 침입 및 불법 채권 행사'로 판단하여, 계율 대장의 권능으로 강제 영수할 수 있게 만드는 규칙 왜곡의 열쇠.

"불법 침입자들에게는 가차 없는 세무조사가 답이지."

준우가 붉은 볼펜 자국 위에 손가락을 얹고 계율 대장의 서약을 활성화했다.

"계율 대장 제4조 기동. 아파트 공용 구역 내 허가받지 않은 영적 존재들의 이동을 '무단 점유'로 규정한다. 점유물의 가치를 정량적 자원으로 즉시 역압수하여 환원한다."

[계율 대장 승인: 행동 수칙 하단의 왜곡 공식을 해석했습니다. 무단 침입 사령들에 대한 강제 세수(稅收) 몰수 조항을 적용합니다.]

쾅! 쾅! 쾅!

엘리베이터 천장을 들이받는 무수한 손길들이 느껴졌다. 검은 연기와 함께 썩은 냄새를 풍기는 야간 습격 귀신 떼들이 엘리베이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려 했다. 수십, 수백 마리의 원시 사령들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울부짖었다.

도진이 본능적으로 가스총을 다시 쥐었지만, 준우는 그저 차갑게 웃으며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퉁겼다.

"징수 시간이다, 이 잡것들아."

그 순간, 엘리베이터 수직 통로 전체에 거대한 푸른색 격자망이 형성되었다. 계율 대장의 인과율이 빛의 그물이 되어 쏟아져 들어오던 귀신 떼를 옭아맸다.

츠츠츠츠츳!

귀신들의 비명 소리가 엘리베이터 샤프트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 비명은 길지 않았다. 그들의 검은 형체가 격자망에 닿는 순간, 거대한 세탁기에 들어간 것처럼 정량화된 푸른색 숫자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자원 영수 중: +10, +15, +30...] [영수 완료: 침투 음기 자원 총 1,200포인트 강제 압수.] [결계 정화율 상승: 15% -> 35%]

시검고 음습하던 연기들이 맑은 영기로 정화되어 계율 대장의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국가 세무공무원이 악덕 체납자의 금고를 털어 국고로 환수하는 듯한 완벽하고 가차 없는 자원 환원이었다.

단 몇 초 만에 엘리베이터 통로를 가득 메웠던 귀신 떼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기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맑고 상쾌해졌으며, 가벼운 피톤치드 향마저 감돌았다.

도진은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괴물들을 총이나 칼로 베어 넘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보이지 않는 법적 장부 같은 것으로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준우의 퇴마 방식은 그의 상식을 완전히 초월해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자산 압류일 뿐이야. 아, 물론 저 귀신들한테 불복 소송을 제기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지."

준우가 장부를 덮듯 손을 거두며 말했다.

한 시간 뒤.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고 안전지대로 개조된 준우의 집 거실.

주황색 전등 불빛 아래에서, 여동생 한소희가 준우의 셔츠를 걷어 올린 채 그의 가슴팍에 하얀 붕대를 사정없이 감아대고 있었다. 아까 고전압 역장을 펼칠 때 발생한 반동으로 가슴팍에 가벼운 영적 찰과상을 입은 탓이었다.

"아! 살살 좀 감아라, 소희야. 오빠 갈비뼈 부러지겠다."

준우가 비명을 지르며 엄살을 부렸다.

소희는 콧방귀를 뀌며 붕대를 한 바퀴 더 세게 돌려 묶었다. 동정심이나 눈물 젖은 신파 따위는 그녀의 사전에 없었다.

"엄살 피우지 마, 오빠. 퇴마사라면서 맨날 이렇게 몸뚱이로 때우고 오니까 내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잖아. 붕대 감는 솜씨가 이 정도면 나중에 정형외과 어시스턴트로 취직해도 되겠어."

"취직은 무슨. 이 정도 상처는 가문의 영광이다."

"영광은 개뿔. 붕대를 이렇게 미이라처럼 감아놓으면 숨은 어떻게 쉬려고 그래? 컨셉 확실하고 좋네. 오늘의 퇴마 점수는 10점 만점에 딱 2점 드립니다. 몸으로 때운 벌점 감점이야."

소희의 쌀쌀맞은 독설에 준우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가문을 몰살시켰던 그 끔찍한 저주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주눅 들지 않으려 했다. 장난스러운 티키타카야말로 이 잔인한 세상에서 서로의 정신적 붕괴를 막아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도진 씨는 어쩌고?"

소희가 붕대 끝을 가위로 싹둑 자르며 물었다.

"경비실로 돌아갔어. 신옥주의 눈을 피해서 내부 동조자들을 포섭하겠다고 하더군. 우리한테 아주 든든한 아군이 생긴 셈이지."

준우가 거울을 보며 붕대가 감긴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슴속에 깃든 계율 대장의 힘이 한층 더 두터워진 것이 느껴졌다.

"약속할게, 소희야. 그 신옥주라는 여자와 그 뒤의 괴물들이 뭐라고 지랄을 하든, 내가 반드시 다 쓸어버리고 우리 일상을 돌려놓을 거야."

"알았으니까 셔츠나 입어. 오빠 몸매 안 좋아서 눈 버려."

소희가 혀를 내밀며 식탁 위에 놓아둔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지이이이이잉-.

스마트폰 진동이 거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준우와 소희의 시선이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 전체의 통신망이 마비되어 외부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는 수신 불능 상태였다. 당연히 액정 화면에는 '서비스 없음'이 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은 붉은 노이즈로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치치치직-... 치직...

기분 나쁜 기계 마찰음 속에서, 스피커를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산한 바람 소리와 누군가의 젖은 호흡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붉게 물든 액정 화면 위로, 마치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피를 묻혀 쓰는 것처럼 기괴한 붉은색 기호들이 발현되며 스스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고대의 제단에서나 쓰일 법한 원시적인 저주의 주술 기호였다.

"오빠... 이거..."

소희의 강철 같던 눈동자가 처음으로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준우의 눈빛 역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거실의 주황색 전등이 기분 나쁘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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