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붙이가 쓸리는 불쾌한 마찰음이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이쳤다.
로비의 흰색 LED 조명 아래 늘어선 다섯 명의 사내. 가죽 마스크 너머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들이 좁은 카(Car)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들이쉬는 숨결마다 비린내와 기분 나쁜 소독약 냄새가 섞여 들었다. 준우의 심박수가 빠르게 요동쳤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생존자가 지침을 어기고 살아남았군."
가장 앞에 선 덩치 큰 사내가 검은색 진압봉으로 손바닥을 툭, 툭 쳤다. 마른 가죽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통로를 타고 울렸다.
"청소 시간이다."
그들이 일제히 무기를 고쳐 쥐며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강철 군화가 대리석 바닥을 쾅 딛는 순간, 준우는 본능적으로 뒤로 가볍게 물러섰다. 등 뒤에 닿는 차가운 엘리베이터 거울. 그 거울 내부에는 방금 전까지 손각시가 비명을 지르며 갇혀 있던 미세한 번개 모양의 균열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파트 대표회의 여편네가 심어둔 살수들이었다. 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보안업체의 로고 대신, 그들의 가슴팍에는 핏빛으로 물든 입주자대표회의 표식이 기괴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방이 가로막힌 금속 상자 안에서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준우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기이한 호선을 그렸다. 극도의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독특한 방어기제였다.
"야간 수당은 제대로 받고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요즘 사설 경비 업계 단가가 많이 내려갔다고 하던데, 목숨 값치고는 너무 헐값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이 새끼가 곱게 뒤지기 싫은 모양이군."
사내가 진압봉을 치켜들었다.
그 팽팽한 대치 속에서, 준우의 손가락이 주머니 속 구겨진 종이 조각을 움켜쥐었다. 1화에서 주웠던 엘리베이터 비공식 행동 수칙지. 그리고 그 맨 하단에 조잡하게 휘갈겨져 있던, 낙서 같던 '붉은 볼펜 자국'의 왜곡된 흔적들.
단순한 낙서나 훼손이 아니었다.
준우의 머릿속에서 거울 표면의 번개 모양 균열 규격과 종이 밑바닥의 붉은 볼펜 자국이 완벽하게 맞물려 들어갔다. 그것은 입대위가 귀신들의 행동 방식을 조작하기 위해 고안해 낸 변칙적인 주술 공식이자, 동시에 귀신들이 인간에게 가하는 초자연적 위해를 일종의 '다중 채무' 형태로 강제 이행시키는 계약서의 틈새였다.
귀신이 규칙을 내세워 사냥을 한다면, 귀신 역시 그 규칙이라는 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붉은 펜 자국은... 손각시가 가진 음기를 강제로 영수할 수 있는 일종의 우회 세무조사 공식이다.'
준우는 속으로 뇌까렸다. 귀신이 인간에게서 온기를 빼앗아 가려 했다면, 역으로 인간이 귀신의 음기를 영토의 관리비 체납분으로 압류할 수도 있는 법이었다.
"거기 묵묵히 칼 들고 서 있는 형씨들."
준우가 품속에서 낡고 묵직한 가죽 장부, [계율 대장]을 꺼내 들며 차갑게 읊조렸다.
"체납된 관리비가 제법 쌓였는데, 일시불로 납부할 생각은 없나 보군. 그럼 강제 집행에 들어가는 수밖에."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사내가 정글도를 비스듬히 눕히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도약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치이이이익!
갑자기 인터폰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하울링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내들의 발걸음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오빠, 들려? 거기 깡패 아저씨들 얼굴이 아주 가관이네.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꼭 도살장 돼지들 같아. 10점 만점에 1점짜리 비주얼들이야!"
소희의 목소리였다. 지하 관리실 주변의 배선반을 장악한 그녀가 스마트 홈 IoT 제어권을 완전히 역이용한 것이 분명했다.
"소희야, 타이밍이 아주 예술이구나."
"오빠 드립은 여전히 끔찍하니까 빨리 일이나 끝내! 지금 소방 연기 감지기 센서에 고전압 전파 신호 쏜다. 3, 2, 1!"
-삐이이이이이이-! "화재 발생! 화재 발생! 즉시 대피하십시오!"
동시에 복도 천장에 설치된 적색 경보등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고음의 사이렌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로비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복도 저편에서 정식 야간 근무를 서던 진짜 경비 대원들의 다급한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화재 경보가 왜 울려!"
"제어실 놈들은 뭘 하는 거야!"
청소부들의 이성이 흔들렸다.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살육 작업이 정식 보안 대원들과 소방서에 노출되는 것은 입대위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였다. 수사망과 포위망이 유쾌하게 뒤틀려 버리는 순간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것들이...!"
가장 덩치가 큰 청소부 리더가 이빨을 갈며 준우를 향해 정글도를 내뻗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준우는 계율 대장을 넓게 펼쳤다. 거울 속 번개 모양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고 음습한 기운이 대장의 빈 페이지로 빨려 들어가듯 흘러들었다.
준우는 붉은 볼펜 자국의 공식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장부 위에 손각시의 고대 계약 문서를 그대로 덧쓰기 시작했다. 펜 끝이 닿지 않았음에도, 그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푸른 영기가 종이 위에 정교한 한자들을 새겨 나갔.
"계율 대장 제7조, 불법 점유 및 무단 침입의 규정."
준우의 목소리가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을 묵직하게 울렸다.
"거울 속 손각시의 음기는 이 공간의 정당한 관리인에게 전량 '영수(領收)'되었음을 선언한다. 이 인과는 뒤집히지 않으며, 체납된 빚은 결계의 정화 자원으로 전액 대환 처리한다."
-領收完了(영수완료).
준우가 마지막 단어를 완창하는 순간, 거울 표면 전체가 눈이 멀 것 같은 푸른빛으로 뒤덮였다. 거울 속에 갇혀 비명을 지르던 손각시의 붉은 형태가 순식간에 잘게 부서지며 투명하고 맑은 푸른색 마법력으로 환원되었다.
"으아아악!"
정글도를 들고 들이닥치던 청소부 리더의 눈이 공포로 크게 확장되었다.
엘리베이터 입구, 문이 열려 있던 그 좁은 경계선 위로 푸른 번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수호 장막이 벼락처럼 피어올랐다. 거울에서 추출된 손각시의 압도적인 음기가 정화되어 완벽한 방어벽으로 구현된 것이다.
-콰과광!
"꺼져."
준우의 짧은 한마디와 함께, 푸른 번개의 장막이 팽창하며 살수들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자신들이 완벽하게 기선을 잡았다고 확신하던 청소부들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복도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주술적 기운이 번개에 닿아 하얗게 타들어 가며 소멸했다. 가죽 마스크가 찢겨 나가고, 손에 들려 있던 정글도와 쇠파이프가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꺼어억... 억..."
살수들은 흰자위를 드러낸 채 복도 바닥에서 사지를 부르르 떨며 기절해 버렸다. 그들의 육체에 깃들어 있던 입대위의 사악한 가호가 송두리째 날아간 결과였다.
준우는 깊은 숨을 내쉬며 계율 대장을 덮었다.
둥실 떠도는 푸른 미립자들이 엘리베이터 내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차갑고 음산했던 공기는 사라지고, 마치 깊은 산속 사찰의 새벽녘 같은 청량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엘리베이터 카 자체가 이제는 그 어떤 잡귀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준우만의 사적 안전지대이자 강력한 결계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그 안락함도 잠시, 준우의 미간이 다시 좁혀졌다.
손각시의 기운을 완벽히 영수한 대가로, 그의 감각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영안(靈眼)이 완전히 각성된 것이다.
준우의 시야에 아파트의 보이지 않는 수직 벽들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웅웅웅-.
미세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아파트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수직 통로, 엘리베이터 샤프트의 중심부였다.
그 거대한 금속 통로를 따라, 이 마천루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습하고 끈적한 탁기가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지하 깊은 곳을 향해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단순한 자연 음기가 아니었다. 주민들의 공포와 원망을 집어삼키며 인위적으로 유도되고 있는 거대한 제단의 흐름이었다.
'이 아파트의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모든 통로가 지하의 아가리를 향해 열려 있군.'
준우는 차가운 침을 삼켰다. 지하 심층부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의 실체가 온몸의 피부를 바늘로 찌르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오빠! 상황 종료야? 복도 경보음은 꺼뒀는데, 정식 경비원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어! 얼른 피해!"
인터폰 너머로 소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준우는 장부를 품속에 깊숙이 밀어 넣으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 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청소부들을 타넘으려던 바로 그 순간.
"움직이지 마라."
자욱한 연기와 경보등의 붉은 불빛을 뚫고, 묵직하고 절제된 군화 소리가 복도 모퉁이를 돌며 다가왔다.
회색 보안대장 제복을 입은 사내. 넓은 어깨와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전쟁터를 수없이 겪은 듯한 차가운 눈빛을 지닌 아파트의 유일한 정직 보안대장, 강도진이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안전장치가 풀린 검은색 가스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는 정확하게 준우의 이마 중앙을 겨누고 있었다.
"주민 선동 및 기물 파손, 그리고 정체불명의 사설 인원 폭행."
강도진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가웠다.
"한준우 씨.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여기서 순순히 체납된 설명부터 하셔야겠습니다."
쓰러진 청소부들의 잔해 위로, 두 사내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쳤다. 붉은 경보등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비추며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가스총의 차가운 주둥이가 정확히 미간을 조준하고 있었지만, 준우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굳은 살이 박힌 손가락이 가죽 장부의 모서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끝을 타고 미약하게 남아 있는 손각시의 냉기가 느껴졌다.
"경찰이 아니라 보안팀장님이 직접 총대까지 메고 오실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야간 특별 근무 피로도가 상당해 보이십니다, 강도진 대장님."
"농담할 여유가 있는 걸 보니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군."
도진의 총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강직한 눈동자는 준우의 얼굴을 꿰뚫듯 노려보면서도,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입대위 살수들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뼈가 굵은 사내다운 기민한 시선 처리였다.
그 순간 준우의 영안(靈眼)에 도진의 오른쪽 허리춤이 들어왔다. 가죽 벨트에 대충 걸려 있는, 도금이 군데군데 벗겨진 구형 공용 마스터키. 최신형 스마트키 시스템으로 교체되기 이전, 아파트 초창기에 사용되던 물리적 회로 규격의 열쇠였다.
'저것만 있으면 지하 제어벽의 오버로드 차단기도 강제로 내릴 수 있을 텐데.'
준우의 눈빛이 스치듯 빛났으나, 도진은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차갑게 쏘아붙였다.
"이 자들은 주민 안전을 담당하는 정식 보안 요원들이 아니다. 입대위에서 사설로 고용한 정체불명의 인력들이지. 그런데 당신은 이 자들을 단 한 장의 장부와... 기이한 불빛 하나로 무력화시켰어.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군."
"세상에는 스마트폰 앱으로 제어되지 않는 골치 아픈 계약 관계가 아주 많거든 요. 이를테면 관리비 체납 같은 거 말입니다."
"한준우 씨!"
도진이 가스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한 걸음 다가서려던 찰나였다.
치이이익-.
기절한 청소부 리더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검은색 무전기에서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단순한 주파수 노이즈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십 명의 인간이 동시에 흐느끼는 듯한, 음습하고 축축한 바람 소리에 가까웠다.
-준우야... 엄마란다.
얼어붙을 듯한 목소리가 무전기 스피커를 뚫고 흘러나왔다.
준우의 척추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고, 주먹을 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기가 가셨다. 가문을 멸문지화로 몰고 갔던 그날 밤, 불타는 저택의 문틈 너머로 들려왔던 어머니의 마지막 단명(斷命) 직전의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도진 역시 본능적인 기괴함을 감지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무전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마트 미러의 푸른 장막이 출렁였다. 조금 전 영수를 완료했던 손각시의 계율 대장 조항들이 준우의 뇌리를 강타했다.
[거울 속 손각시의 계율: 거울 속의 자신과 세 번 이상 마주하거나, 거울 너머에서 들려오는 연고자의 부름에 응해 뒤를 돌아보는 자는 즉시 목벼락을 맞이한다.]
영수 완료의 대가는 절대적이다. 이제 이 계율은 귀신뿐만 아니라 준우 본인의 육체에도 물리 법칙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저 목소리에 속아 뒤를 돌아보거나, 거울 속의 환영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계율 대장의 인과율이 준우의 목을 꺾어버릴 터였다.
모방귀신이었다.
입대위의 사악한 제단 뒤편에서 준우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틈새를 노리던 놈이, 청소부들의 무전 주파수를 매개 삼아 첫 번째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준우야, 왜 대답이 없니... 뒤를 보아라. 엄마가 손을 잡아줄 테니... 어서 뒤를 보아라...
거울 표면의 푸른빛이 급격하게 붉은 핏빛 노이즈로 오염되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서 흐릿한 형체가 준우의 등 뒤를 향해 손을 뻗는 실루엣이 비쳤다.
"정신 차려라, 한준우! 저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거지?"
도진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소리치며, 소리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의 시선이 정확히 붉게 물들어가는 엘리베이터 거울을 향하려 하고 있었다.
"보지 마!"
준우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도진의 고개는 절반 이상 거울 쪽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거울 속 붉은 실루엣의 손끝이 도진의 뒷덜미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뻗어 나가는 것이 준우의 영안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