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독한 시체 썩는 냄새와 축축한 흙내음이 코끝을 마비시켰다.

손각시의 칼날 같은 손톱이 목덜미 가죽을 짓이기며 파고들었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미지근한 혈액이 옷깃을 적시는 감각이 생생하게 뇌리를 자극했다. 척추 뼈마디를 향해 파고드는 손가락뼈는 마치 얼어붙은 쇠송곳 같았다.

"오... 빠... 추워..."

귓가를 긁는 목소리는 분명 여동생 소희의 것이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음색. 그러나 준우는 이빨을 사정없이 악물었다. 어금니가 맞부딪치며 으스러지는 소리가 귓전에서 울렸다.

"내 동생은 말이지."

준우가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어내며 이를 갈았다.

"추우면 보일러를 틀어달라고 짜증을 내지, 개소리를 지껄이진 않아. 이 삼류 모조품 년이."

준우는 떨리는 양손을 뻗어 목을 조르는 녀석의 손목뼈를 움켜쥐었다. 살가죽이 없는, 오직 차가운 가죽과 뼛조각으로만 이루어진 손목이었다.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온 기의 흐름을 손끝에 모았다. 계율 대장의 푸른 불꽃이 준우의 손바닥에서 가늘게 피어올랐다.

빠드득! 뚝!

준우는 온 힘을 다해 손가락뼈를 반대 방향으로 꺾어버렸다. 인간의 힘을 초월한 완력이었지만, 계율의 인과를 얹은 손길은 귀신의 물리적 형체마저 강제로 비틀어버렸다. 녀석의 뼈마디가 기괴하게 어긋나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속해서 울렸다.

거울 너머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고주파 노이즈처럼 엘리베이터 내부를 때렸다.

준우는 그 반동으로 거울 표면에 거칠게 밀려 나갔다. 손바닥이 차가운 유리 벽면에 닿았다. 그 순간, 손끝에 기이한 감각이 걸려들었다. 매끄러워야 할 거울 안쪽에서 미세하고 균일한 굴곡이 느껴졌다.

손끝을 조심스럽게 미끄러뜨렸다.

번개 모양이었다. 아주 미세한 규격으로 정교하게 음각된 듯한 균열. 그것은 깨진 흔적이 아니었다. 마치 전류를 흘려보내기 위해 정밀하게 설계된 인쇄회로기판의 구리선처럼, 음양의 기운을 전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영적 규격 균열이었다.

'이건 자연스럽게 생긴 귀신의 통로가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울에 새겨 넣은 영적 전도 장치야.'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입주자대표회의 놈들이 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귀신을 소환하고 통제하기 위한 거대한 제단으로 개조해 놓았다는 증거였다.

그때, 천장의 스피커가 거칠게 틱, 틱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완벽하게 차단되었던 엘리베이터의 동력 계통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주위의 모든 전자기기가 먹통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비상 통화 장치 내부의 배선이 찌르르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 지지직... 오빠? 들려? 내 목소리 들리냐고!

인터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것은 의태가 아닌, 진짜 소희의 앙칼진 목소리였다.

"소희야...?"

- 아, 진짜! 살아 있으면 대답 좀 해! 지금 엘리베이터 기계실 배전반 뜯어서 수동 리셋 선이랑 비상 통화 배선 강제로 접속해 놨단 말이야. 이거 합선되면 나도 몰라!

소희는 엘리베이터 외벽의 구조 통화 버튼 배선을 고의로 교란하고 있었다. 가문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영적 기전력 제어 기술을 이 최첨단 스마트 시스템에 무식하게 대입해 버린 것이다.

- 자, 들어간다! 10점 만점에 0.5점짜리 소음 폭탄 배송 완료!

찌이이이이이익-!

귀를 찢을 듯한 초고주파의 비상 통화 중복 수칙 소음이 스피커와 벽면 인터폰 틈새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전기 노이즈가 아니었다. 계율 대장의 서식에 기록된 '비상 상황 시 통화 중복으로 인한 청각적 격리 규정'을 소희가 억지로 유도해 낸 인위적인 소리 장벽이었다.

"끄아아아아악!"

거울 안쪽에서 손각시가 머리를 감싸 쥐며 단말마를 내질렀다.

귀신들은 현대적인 시스템의 규격과 규칙을 타고 움직인다. 소희가 발생시킨 인위적인 통신 장애와 중복 소음은 청각적 단서에 극도로 의존해 연고지를 사냥하던 손각시의 인지 능력을 완벽하게 진흙탕으로 밀어 넣었다.

"나이스 샷, 소희야."

준우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푸른빛으로 번뜩였다.

이제 반격할 시간이었다.

귀신은 자신들이 설정한 설계의 구멍을 찔렸을 때 가장 크게 흔들린다. 준우는 거울 속에서 허우적대는 손각시의 붉은 형상을 똑바로 응시했다. 목덜미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맑았다.

"손각시. 너의 사냥 계율은 '탑승객이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전제로 성립된다. 맞지?"

거울 속의 형체가 기괴하게 흔들리며 준우를 저주하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민간에 유포된 비공식 행동 수칙의 왜곡된 버전일 뿐이야. 진짜 계율은 그렇지 않지."

준우는 주머니에서 손때 묻은 계율 대장을 꺼내 들었다. 대장의 첫 페이지 하단에는 과거 선조가 남겨놓은 의문의 '붉은 볼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볼펜 자국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귀신의 억지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는 법적 맹점을 지적한 인과율 공식의 힌트였다.

'관측되지 않는 것은 존재를 주장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자는 공간의 점유권을 요구할 수 없다.'

"내가 지금부터 눈을 감는다면."

준우가 나직하게 선언했다.

"너는 나를 관측할 수 있어도, 나는 너를 관측하지 않는다. 이는 쌍방 합의에 의한 계약 성립 요건의 결여다. 즉, 이 엘리베이터라는 공적 공간 내에서 네가 주장하는 모든 임대차 및 점유 권한은 원천 무효가 된다."

손각시의 찢어진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녀석은 준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영적인 인과율이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발악했다. 다시 한번 거울 밖으로 붉은 손들을 뻗어내려 했다.

"어디서 무단 점거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려 들어?"

준우는 단호하게 눈을 감아버렸다. 시야가 완벽한 암흑으로 뒤덮였다.

오직 청각과 영적 감각만이 극대화되었다. 준우는 계율 대장을 허공에 펼쳐 쥐고, 그 위에 자신의 피가 묻은 손가락을 얹었다.

"민법 제741조 부당이득 반환 법리, 그리고 계율 대장 제3조 영수 규정에 의거하여 선언한다."

그의 목소리가 좁은 엘리베이터 내부를 엄숙하게 울렸다. 마치 법정에서 판결문을 낭독하는 판사처럼, 혹은 불법 체류자를 압송하는 단호한 관청의 서기관처럼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피신청인 손각시. 귀하가 주장하는 '거울 매개형 신체 점유 및 영혼 수거 계약'은 불법적인 조항 왜곡과 강박에 의한 기망 행위로 판정되었다. 이에 본 대장의 소유주 한준우는 해당 계약의 즉각적인 해지와 파산을 선언한다."

"아아아아아악-!"

거울 안쪽에서 쇠가 긁히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었다.

"또한, 네가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던 이 엘리베이터의 영적 에너지를 정량적 자원으로 압수하여 대장에 기록한다. 이의 제기는 받지 않는다. 영수(領收)한다."

준우가 눈을 번쩍 떴다.

스스로의 시각적 관측을 차단했다가 다시 여는 순간, 인과율의 족쇄가 손각시의 목을 완벽하게 올가맸다. 거울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안개와 오염된 물들이 급격하게 거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싱크홀이 거울 한가운데에 뚫린 것처럼, 손각시의 형체가 왜곡되며 사정없이 뒤틀렸다. 녀석의 억센 손가락뼈들이 마지막으로 거울 유리를 긁어대며 기괴한 소음을 냈다.

끼이이이이익-!

그러나 법적으로 파산 선고를 받은 귀신에게 남은 권한은 없었다. 거울 속 깊은 어둠 너머로 녀석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엘리베이터 내부를 짓누르던 그 무겁고 음습한 한기가 순식간에 걷혔다.

화아아악.

계율 대장의 종이 위로 붉은 글씨가 새롭게 새겨졌다.

[손각시의 임시 점유권 영수 완료. 아파트 3동 엘리베이터 구역의 영적 전도 차단율 35% 확보.]

준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목덜미의 고통이 뒤늦게 밀려왔지만, 가슴속을 채우는 계율 대장의 힘이 상처 부위의 출혈을 서서히 멎게 만들고 있었다. 대가로 치러야 할 규칙이 몸을 죄어오는 가벼운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하아... 진짜 세무조사 한 번 살벌하게 끝냈네."

준우가 핏자국이 묻은 셔츠 깃을 털며 툭 던졌다.

- 오빠? 야! 조용해졌는데 살아 있어? 죽었으면 사후세계 방명록에 내 이름 좀 적어줘. 로또 번호랑 같이.

인터폰 너머로 소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준우는 픽 웃으며 인터폰 수화기를 향해 외쳤다.

"안 죽었다, 이 웬수야. 10점 만점에 몇 점짜리 퇴마였냐?"

- 음... 중간에 비명이 좀 추접스러웠으니까 10점 만점에 4점. 청소비는 별도로 청구할 줄 알아.

소희의 퉁명스럽지만 안도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준우는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제 동생다웠다. 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오빠의 블랙 유머를 태연하게 받아치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 가문의 피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준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방금 전 손끝으로 감지했던 거울 표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어둠이 걷히고 희미한 비상등 불빛이 돌아오자, 거울 표면에 각인된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방금 전 손각시가 억지로 끌려 들어가며 남긴 듯한, 혹은 원래부터 거울 내부의 전도체로 존재했던 미세한 번개 모양의 문양.

"이건..."

준우는 손가락으로 그 문양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단순한 유리 균열이 아니었다. 거울 내부의 음양 전도 규격을 완벽하게 조율해 놓은 고도의 주술적 회로였다.

'입주자대표회의... 신옥주 그 여편네가 아파트 전체를 괴담의 사냥터로 만들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건가.'

이 아파트는 안전한 주거 공간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 거대한 주술적 이득을 취하려는 거대한 덫이었다. 준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문을 멸문지화로 몰고 간 놈들의 꼬리가 드디어 이 마천루의 철골 콘크리트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웅웅웅-

그때, 멈춰 섰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력이 완전히 복구된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판에 불이 들어왔다.

[1]

지하 1층이 아닌 로비 층이었다. 엘리베이터 카가 천천히 하강하더니, 이내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멈춰 섰다.

띵- 동-.

"오빠, 문 열린다! 빨리 나와!"

인터폰 너머로 소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준우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문이 열리는 방향을 응시했다. 무쇠로 된 엘리베이터 비상 문이 스르륵 양옆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마침내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와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준우의 발걸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문 너머에 서 있는 것은 구조하러 온 소방대원이 아니었다.

로비의 밝은 LED 조명 아래, 검은색 방검복을 입고 얼굴을 가죽 마스크로 가린 장정 대여섯 명이 오와 열을 맞춘 채 서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날이 서 있는 정글도와 두꺼운 철제 쇠파이프, 그리고 시체를 담을 때 쓰는 커다란 방수 캔버스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아파트 보안업체의 로고가 아닌, 입주자대표회의 직속 '청소부'를 상징하는 붉은색 문양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덩치 큰 사내가 차가운 눈빛으로 준우를 내려다보며, 들고 있던 철제 진압봉을 손바닥에 툭, 툭 쳤다.

"생존자가 지침을 어기고 살아남았군."

사내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건조하고 살기등등했다.

"청소 시간이다."

그들이 무기를 고쳐 쥐며 일제히 엘리베이터 안쪽을 향해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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