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탁, 타닥.

작은 불꽃이 기름 젖은 헝겊을 태우며 붉은 화염으로 일어섰다. 야음을 틈타 무산 공방의 담벼락을 넘어온 검은 그림자들의 손에서 횃불이 제각기 붉은 혀를 낼름거렸다. 그들의 손에는 조선 조정의 규격에 맞지 않는 조악한 구리 호병과 불쏘시개가 들려 있었다. 철가마와 화약 정제소를 일거에 불태워 무산의 군기 개량 사업을 종식시키려는 명백한 의도였다.

수십 개의 횃불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치솟기 직전, 정적을 깨뜨린 것은 매끄러운 쇠 마찰음과 짧고 단호한 호령이었다.

"쏴라."

어둠 속에서 불꽃보다 빠른 섬광들이 사방을 갈랐다. 정제소 지붕 위와 도가니 가마터 뒤편의 음영 속에 은신해 있던 무산의 정예 사격 기병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가 퉁기는 소리와 함께, 편전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끄악!"

선두에서 횃불을 치켜들었던 살수의 어깨에 깃이 짧은 편전이 깊숙이 박혔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고꾸라지자, 그가 들고 있던 횃불이 마른 흙바닥으로 떨어져 허무하게 흩어졌다.

기습을 시도하려던 여진계 살수 무리는 돌연한 역습에 당황하여 대형을 갖추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무산의 기병들은 이미 박강우의 지시 아래 완벽한 방어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침입자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가마터와 화약고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유지하라!"

군관 박강우는 정제소 본당의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그의 오른팔은 여전히 가동 한계를 넘어선 직관안의 대가로 인해 차갑게 마비되어 고목처럼 늘어져 있었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극심한 편두통에 미간이 일그러졌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밤 서리처럼 차갑게 빛났다.

살수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체구가 건장한 사내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질렀다.

"함정이다! 퇴로를 뚫어라!"

여진계 살수들이 거친 여진어로 소리치며 말을 돌리려 했으나, 좁은 공방 마당은 이미 기병들의 말과 보병들의 창날로 가득 차 있었다. 박강우가 미리 배치해 둔 사격 기병들은 말 위에서 상체를 굳건히 고정한 채, 개량된 흑색화약을 장전한 승자총통을 겨누었다.

쿠우웅!

좁은 마당을 가득 채운 화포의 굉음과 함께 자욱한 백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철환들이 살수들의 다리와 말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때렸다. 비명과 말의 울음소리가 뒤섞이며 가마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화염을 던지려던 자들은 도리어 자신들이 가져온 화약 호병이 터지면서 불길에 휩싸였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철저히 준비된 조선 기병들의 조직적인 사격과 창술 앞에, 기습의 이점을 잃은 살수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다리에 철환을 맞고 쓰러진 우두머리 사내를 비롯해 생존자 서넛이 기병들의 창끝에 포위되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서태식이 땀과 재로 범벅이 된 얼굴로 헐떡이며 박강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주조용 부손이 꽉 쥐어져 있었다.

"나리, 무사하십니까? 이놈들이 감히 나라의 철가마를 노리고 들어오다니, 천인공노할 가문 놈들의 사냥개들이 분명합니다!"

박강우는 대답 대신 늘어진 오른팔을 왼손으로 움켜쥐며 쓰러진 살수들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뇌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으나, 그는 사소한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이 자들의 품을 수색하라."

박강우의 명령에 군사들이 신속하게 살수들의 옷가지를 찢고 소지품을 털어냈다. 그들의 품에서 나온 것은 조선의 군관들이 사용하는 규격의 군도와 몇 장의 가죽 초본이었다.

서태식이 그 가죽 초본을 받아 박강우에게 건넸다. 박강우는 왼손으로 가죽을 펼쳤다. 그곳에는 엉성하지만 무산 사성의 방어벽 위치와 병기창의 내부 구조, 그리고 신형 사형 주조법으로 만들고 있던 백동 혼합 포신의 정밀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서태식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우리 공방의 비밀 도면이 아닙니까? 게다가 무산 사성의 성곽 초소 배치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놈들, 단순한 도적 무리가 아닙니다!"

박강우의 눈이 갈수록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죽 초본의 모서리에는 붉은색 인장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비록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박강우의 눈은 그 미세한 문양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한양의 서인 거두, 한필두의 가문에서 사용하는 밀무역 낙인이었다.

동시에 박강우의 머릿속에서 일련의 단서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1화에서 무산의 비밀 창고를 조사할 때, 무산 지방 무역 상인들이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던 불량 유황 부대들이 있었다. 그 부대들의 표면에 찍혀 있던 낙인과 이 가죽 초본의 문양은 완벽히 일치했다. 한필두 일파는 불량 유황을 조선 군부에 고가로 방납하여 폭리를 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유황의 일부를 변방의 여진계 약탈 병단에 밀무역으로 넘겨주며 이권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습격은 단순히 기술을 시기한 파괴 공작이 아니었다. 무산 사성을 습격할 여진 약탈 병단에게 길을 열어주고, 조선의 신형 화포 기술이 완성되기 전에 그 싹을 자르려는 한필두 일파와 변방 오랑캐의 더러운 야합이었다.

"나리, 이놈들이 들고 있던 화살촉을 보십시오."

한 기병 병장이 땅에 떨어진 살수들의 화살을 수거해 오며 말했다. 화살촉 끝에는 끈적하고 검푸른 액체가 발려 있었다.

박강우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감각이 마비된 오른손의 통증이 극대화되는 것을 느끼며, 그는 억지로 '직관안(Eye of Chemical Formula)'을 가동했다.

시야가 푸른빛의 격자무늬로 뒤덮이며 화살촉에 묻은 액체의 분자 구조가 시각화되었다.

[As (Arsenic) : 74.92 / 비소 함량 18.4%] [S (Sulfur) : 32.06 / 유황 불순물 정제 잔해 검출]

박강우의 눈앞에 나타난 화학식은 단순한 독물의 정보를 넘어, 그 출처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이 화살촉에 발린 독은 천연 비소가 아니라, 석황과 불량 유황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온 동독(銅毒)과 비소 화합물이었다. 그리고 그 불순물의 구성 비율은 낮에 한필두 상단의 비밀 창고에서 압수한 불량 유황 부대의 성분과 소수점 단위까지 일치했다.

"과연……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

박강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턱끝을 적셨다. 직관안을 무리하게 가동한 대가로 마비 기운이 어깨를 넘어 목덜미까지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으나, 그는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이 자들을 결박하여 즉시 무산 관아로 압송한다. 서태식."

"예, 나리!"

"공방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사형 거푸집과 쇳물이 든 도가니를 즉시 점검하라. 이 혼란 속에서도 우리의 주조 공정은 단 한 순간도 멈춰서는 안 된다."

"걱정 마십시오!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가마를 지켰습니다. 거푸집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서태식의 말대로, 마당 한편에서는 몇몇 기병 병장들이 화재를 막기 위해 몸을 던져 횃불을 끄느라 가벼운 화상을 입은 채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그을음으로 검게 변해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조선의 새로운 화포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박강우는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역사적 참화를 피하기 위해 화학 지식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빛은 그를 한낱 방관자로 머물게 두지 않았다. 살상 무기를 만들고, 그 무기로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현대인으로서의 도덕적 원초적 혐오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요동쳤다. 하지만 동시에, 이 흙먼지 날리는 변방의 장인들과 병사들이야말로 자신이 지켜내야 할 조선의 진짜 백성들이라는 자각이 그의 뼈에 사무쳤다.

박강우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이 역사의 거대한 전란 속 한가운데에 한 기둥으로 우뚝 서 있음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 * *

사경(오전 1시~3시)의 무산 관아는 한밤중의 급보로 인해 등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다.

임시로 관아의 집무를 맡고 있던 무산 내관(內官) 김판석은 갑작스러운 군관들의 난입에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대청마루로 불려 나왔다. 그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무엄한 짓이냐! 감히 하급 군관 놈이 야밤에 관아를 침범하고 조정을 모독하려 드는가!"

김판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관아 마당에 내동댕이쳐진 여진계 살수들의 시신과 포박당한 우두머리를 보며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박강우는 마비된 오른팔을 소매 안으로 숨긴 채, 왼손으로 압수한 불량 유황 부대의 장부와 살수들의 품에서 나온 가죽 초본을 김판석의 발밑에 던졌다.

"경국대전 형전(刑典) 제십오조, 외경(外境)의 도적과 내통하여 병기와 군수를 유출한 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하며, 그 가산은 몰수한다."

박강우의 목소리는 건조했으나, 법전의 구절을 읊는 기세는 대청마루의 기둥을 울릴 만큼 묵직했다.

"군관 박강우! 네놈이 지금 누구를 겁박하는 것이냐! 저들이 외경의 도적인지 사사로운 무법자인지 어찌 안단 말이냐! 게다가 저 장부와 가죽 초본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더냐!"

김판석이 악을 쓰며 발뺌하려 했다.

박강우는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품 안에서 사발 하나를 꺼내 놓았다. 사발 안에는 살수들의 화살촉에서 긁어낸 검푸른 독물과, 관아 창고에서 보관 중이던 유황 가루가 담겨 있었다.

"이 화살촉에 발린 독은 일반적인 초목의 독이 아닙니다. 구리와 유황을 제련할 때 발생하는 비소 화합물이지요. 그리고 이 유황 가루는 대감께서 한필두 대감의 상단으로부터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적으로 인도받아 무산 창고에 비축해 둔 불량 유황입니다."

"그, 그것이 어쨌단 말이냐!"

"조선 전국에서 생산되는 유황 중, 이토록 불순물 비소의 함량이 정확히 18.4%에 달하는 조악한 물건은 오직 한필두 상단이 무산의 사가(私家) 광산에서 불법으로 채굴한 유황뿐입니다. 현장에서 포획된 살수들의 화살촉 독물과, 대감께서 서명하신 인수 장부의 유황 성분이 완벽히 일치합니다. 이는 대감께서 군기고의 유황을 방출하여 이들 외경의 살수들에게 무기와 독물을 제공했다는 명백한 물증입니다."

"이, 이 무슨 해괴한 소리냐! 눈으로 유황의 불순물 비율을 안단 말이냐! 네놈이 요술을 부려 나를 모함하는 것이다!"

김판석이 안색이 하얗게 질려 손사래를 쳤다. 현대의 분자 구조 분석 원리를 알 리 없는 조선의 관료에게 박강우의 지식은 요술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산 관아의 형방 서리들과 배석한 참모들은 이미 박강우가 제시한 장부의 서명과 살수들의 소지품에서 나온 단서들을 대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물증은 너무나도 명백했고, 경국대전의 율법은 추호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감."

박강우가 한 걸음 다가서며 김판석을 압박했다.

"의금부로 압송되어 고신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자리에서 자백하고 한필두 대감의 밀무역 경로를 상세히 밝혀 목숨만은 건지시겠습니까? 법도대로라면 대감의 삼족이 멸할 죄이나, 한양의 배후를 명백히 밝힌다면 참형만은 면할 수 있도록 상소를 올려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김판석은 박강우의 형형한 눈빛에 압도되어 바닥으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한필두의 권세가 아무리 대단한들, 당장 자신의 목이 달아나게 생긴 판국이었다.

"내…… 내가 한 것이 아니네. 한양의 본가에서 지시가 내려왔을 뿐이야. 무산의 초석과 유황을 모아 북방의 여진 무리와 거래하여 자금을 마련하라고…… 신형 화포의 제작을 방해하라는 것도 모두 그들의 지시였네!"

김판석의 비굴한 자백이 관아 대청에 울려 퍼졌다. 형방 서리들이 붓을 놀려 그의 자백을 일자일획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로써 한필두 일파가 무산에 쳐놓았던 부패와 탄압의 그물망은 그들의 하수인인 내관의 자백과 함께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박강우는 음전한 권모술수와 철저한 율법의 이용을 통해, 무엄한 하급자의 신분으로 합법적인 조정 관료의 목줄을 죄어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밤새 정제소를 지키며 주조 공정을 진두지휘한 박강우는 공방의 집무실에서 겨우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마비되었던 오른팔의 온기가 서서히 돌아오며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그때, 공방 마당에서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가득 풍겼다.

"급보요! 신립 대감의 직속 전령이 도달하셨소!"

서태식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전령이 군례를 올리며 붉은 칠을 한 통첩장을 박강우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박 군관, 신립 대감의 직속 명령이오. 즉시 확인하시오."

박강우는 침묵 속에 통첩장을 펼쳤다.

붉은 낙인이 찍힌 서장 안에는, 북방 기병 전술의 신봉자이자 함경도 군권을 쥔 신립의 서슬 퍼런 필체가 쓰여 있었다. 그 내용은 박강우의 숨통을 조여오는 가혹한 독촉장이었다.

[왜적의 침략 징후가 남방에서 날로 긴박해지고 있으며, 조정의 군비 증강 요구가 극에 달했다. 무산 공방의 박강우는 들으라. 사흘 내로 화력과 사거리를 비약적으로 개량한 지자총통(地字銃筒) 50문을 개량 주조하여 본영으로 압송하라. 만약 기한 내에 단 한 문이라도 부족하거나, 포신이 파열되는 불량이 발생할 시, 군율을 어기고 군기를 기만한 죄를 물어 신립의 이름으로 박강우, 네놈의 등가죽을 벗겨 무산 성벽에 걸 것이다.]

사흘 내로 신형 지자총통 50문.

이것은 구리와 주석이 극도로 부족한 현재의 무산 공방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신의 영역이었다. 한필두의 그물을 찢어내자마자, 더 거대하고 가혹한 군부의 압박이 박강우의 목을 겨누고 들어온 것이다.

박강우는 통첩장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무겁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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