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성문 하단에서 울려 퍼지는 둔탁한 타격음이 흙먼지 섞인 성벽의 석축을 타고 올라왔다. 쿵, 쿵, 하고 일정하게 반복되는 진동은 성벽 디딤돌 위에 선 군사들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왜군 선봉대가 우겨넣은 개량형 철갑 조립 차벽은 성벽 아래 급경사 지대의 어둠 속에 정밀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포신의 각도를 아무리 아래로 꺾어도 두꺼운 여장 석축에 가로막혀 포탄을 보낼 방법이 없었다.

"포신을 더 내려라! 성문이 뚫리기 전에 적의 대가리를 부숴야 한단 말이다!"

무산 부사의 명을 받은 군관 하나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포수 셋이 매달려 지자총통의 포미를 들어 올리려 버둥거렸으나, 청동보다 가벼운 백동이라 한들 수백 근에 달하는 포신을 절벽 아래로 수직에 가깝게 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포가를 받치던 참나무 고임목이 비명을 지르며 쪼개졌고, 포구는 여전히 공허하게 허공만을 겨누었다.

박강우는 오른팔을 쓸 수 없었다. 어깨부터 손가락 끝마디까지 시린 얼음 송곳이 박힌 듯 굳어버린 감각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그럼에도 그의 왼쪽 눈은 어둠을 뚫고 성벽 아래의 물리적 공간을 해부하듯 훑어내렸다.

직관안이 망막 위로 시퍼런 궤적을 그리며 구동했다. 성벽 아래 밀착된 왜군의 철갑 차벽은 조선의 전통적인 화차나 신기전의 화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경사각을 35도로 깎아 만든 특수 가림막이었다. 불순물이 섞인 무쇠 조각들을 조밀하게 덧댄 판재의 분자 밀도가 강우의 시야에 붉은 격자무늬로 투과되었다.

왜군 장수 쿠로다 나가마사의 세력이 한양의 밀정들을 통해 북방의 화력 개량 징후를 조기에 입수하고, 그에 맞춘 변칙 방패를 전선에 보급한 결과물이었다. 인과의 역풍은 가혹하도록 정교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포를 내리지 마라."

강우가 마비된 오른팔을 왼손으로 움켜잡으며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건조하게 흩어졌다.

"포를 무리하게 꺾다간 백동 포신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포가와 함께 성문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리되면 수성전은 이 자리에서 끝이다."

"그럼 저 아래서 성문을 부수고 있는 놈들을 그냥 구경만 하란 말이냐! 군관 놈이 목숨이 아까워 사리는구나!"

부사의 심복 군관이 칼자루를 쥐며 고함을 질렀다. 강우는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사대부의 하수인들에게 전술을 설명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그는 성벽 뒤편에서 가마솥을 지키고 서 있던 사형 주조 장인 서태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서 장인, 즉시 점토와 황토를 가져와라. 가마 옆에 쌓아둔 정제 염분 유황 도가니의 찌꺼기도 전부 긁어모아야 한다."

서태식은 군관들의 말싸움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강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군말 없이 어둠 속으로 뛰어갔다. 장인들은 이미 지자총통의 주조 과정에서 강우의 안목을 신처럼 우러러보고 있었다.

강우는 왼손으로 성벽 위에 굴러다니던 조악한 주철제 조총 탄환들과 파손된 가마솥의 쇠붙이 조각들을 자루에 쓸어 담았다.

"점토에 쇳조각과 정제 유황 가루를 한데 섞어라. 반죽은 손아귀로 쥘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뭉치고, 내부에 빈 공간을 만들어 미세 정제 초석 화약을 밀어 넣는다."

속전속결이었다. 강우의 뇌리 속에서 최적의 연소 팽창 공식이 빠르게 계산되어 출력되었다. 황토 점토의 가소성과 점성이 내압을 일시적으로 가두어 두었다가, 열원이 내부 화약에 닿는 순간 외벽의 쇳조각들을 사방으로 비산시키는 간이 수류탄, 즉 '비산 점토 살상 탄'의 분자 구조식이 그의 왼쪽 눈앞에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물이 부족합니다!"

흙을 이기던 장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수온이 낮아 점토가 제대로 뭉쳐지지 않고 갈라지는 상태였다. 점토 벽에 균열이 생기면 폭발 압력이 한 곳으로 누출되어 단순한 불꽃놀이로 끝나버릴 터였다.

"오줌이라도 누어라! 어떻게든 끈기를 확보해야 한다!"

강우의 거친 지시에 장인들과 군졸들이 주저 없이 바지를 내리고 흙더미 위로 배설을 시작했다.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와 유황 향이 온 성벽 위를 뒤덮었다. 끈덕진 오줌물과 황토가 뒤섞이자, 차진 점토 반죽이 단단한 구형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강우는 정밀하게 배합된 흑색화약을 심지와 함께 그 중심부에 밀어 넣고 점토로 입구를 단단히 봉했다.

"도화선의 길이는 반 장(약 1.5미터). 성벽 위에서 불을 붙여 아래로 떨어뜨렸을 때, 적들의 머리 위 삼 척 높이에서 터져야 한다. 서 장인, 불을 붙여라."

서태식이 달구어진 화승을 가져와 동그란 점토 덩어리 돌출된 도화선에 갖다 댔다. 치이익 하며 성마른 불꽃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던져라!"

강우의 외침과 함께, 두 명의 장정이 점토 탄을 성벽 아래의 사각지대를 향해 투척했다. 어둠 속으로 붉은 불씨가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성벽 바로 아래, 조립식 철갑 차벽 뒤에 숨어 성문을 파괴하기 위해 거대한 통나무 충차를 들이받던 왜군 지휘조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진흙 덩어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선군이 돌이 떨어지자 흙덩이라도 던지는 줄 알았으리라. 그들이 방패의 틈새를 좁히며 비웃음을 흘리려던 찰나였다.

쾅-!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성벽 밑바닥에서 터져 나왔다.

단순한 화약 폭발이 아니었다. 점토 내부에 갇혀 있던 질소 가스의 급격한 팽창 압력이 황토 벽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사방으로 가두어져 있던 수백 개의 미세한 무쇠 파편들이 탄성 에너지와 함께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아악!"

"눈이, 내 눈이!"

사격 가림막의 좁은 틈새를 통해 왜군의 안면과 목덜미로 쇳조각들이 무자비하게 박혀 들어갔다. 철갑으로 전면은 방어할 수 있었으나, 머리 위 허공에서 사방으로 흩날리는 비산 사편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밀폐된 틈새 사이로 뿜어져 나온 고온의 질식성 유황 가스가 왜군들의 호흡기를 태워버렸다.

방패를 지탱하던 왜군들이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지자, 일사불란하던 차벽의 전열이 흐트러지며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밀폐되었던 철갑 방패 진형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이다! 지자총통, 조준 각도를 우측 십 오 도로 틀어라! 저 틈새를 향해 발포하라!"

강우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포수들이 일제히 매달려 백동포의 방향을 전환했다. 미세하게 드러난 적의 본진 틈새를 향해 포구가 정렬되었다.

그러나 적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혼란 속에서도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왜군 조총병들이 즉각적으로 대응 사격을 개시했다. 성벽 위를 향해 수십 발의 탄환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탕! 타앙!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성벽의 여장 석축이 깎여 나가며 돌가루가 강우의 뺨을 스쳤다.

"군관님, 위험합니다!"

무산의 늙은 마병 하나가 강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몸을 던졌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가죽 갑옷을 뚫고 들어간 탄환이 노병의 어깨를 관통했다. 붉은 피가 강우의 얼굴에 튀었다. 성벽 위에서 흙을 나르던 조선의 민초 한 명이 가슴에 구멍이 난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강우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실제 전쟁터의 비참함, 살을 찢는 화약 무기를 직접 만들고 동시대인들을 사지로 밀어 넣고 있다는 현대인으로서의 원초적인 도덕적 혐오감이 그의 목구멍을 턱 막히게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흘러내리는 조선 군사들과 백성들의 붉은 피는 그 혐오감을 압도하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변모했다. 이들을 살려야 했다. 자신이 여기서 무너지면, 무산성 안의 수천 명의 목숨이 왜군의 칼날 아래 도륙당할 터였다.

강우는 가죽 장갑을 낀 왼손으로 직접 포가의 조임쇠를 비틀어 쥐었다. 오른팔의 감각은 여전히 죽어 있었으나, 그의 온몸은 타오르는 듯한 투지로 가득 차 있었다.

"피하지 마라! 포신을 내 고정점에 고정하라!"

적들의 후방 어둠 속, 횃불 불빛 너머로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깃발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검은 바탕에 노란색의 대나무 마디가 그려진 등깃치와 일자 전술용 장막들이었다. 쿠로다 가문의 선봉 상인 무리와 왜군 정예 부대가 어둠 속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전열을 유지하며 다음 돌입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단순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전쟁 기계들이었다. 강우는 장기적인 전란의 서곡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저 기계적인 군대를 부수기 위해서는 평범한 화력으로는 부족했다.

"다음 탄환은 정제 염분 유황 탄이다. 포구에 밀어 넣어라!"

강우의 지시에 포수들이 나무 주걱으로 화약을 다져 넣고, 겉면에 미세 정제 유황과 소금을 섞어 굳힌 특수 탄환을 포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 탄환은 폭발 시 막대한 양의 염화수소 가스와 아황산가스를 방출하여, 밀폐된 방패 안의 적들을 기화 질식시키는 화학적 살상 무기였다. 현대인의 도덕적 거부감이 뇌리를 스쳤으나, 강우는 거칠게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점화!"

화승이 백동 지자총통의 도화선에 닿았다.

치이이익- 쾅!

포신이 울부짖으며 전방을 향해 불꽃을 토해냈다.

성벽 바로 아래, 무너진 철갑 차벽의 틈새로 염분 유황 탄이 정확히 떨어져 폭발했다.

눈을 멀게 하는 백색 화염과 함께, 사방으로 황색의 자욱한 연기가 폭풍처럼 번져나갔다. 가스가 사격 가림막 내부로 스며들자, 무쇠 방패 뒤에 숨어 있던 왜군들이 일제히 목을 움켜쥐며 성벽 아래 흙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각, 쿨럭! 가, 가스가……!"

피부와 눈, 그리고 허파를 직접 자극하는 염화 가스의 가공할 독성에 왜군 선봉대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질식해 갔다. 기형적인 철갑 방패를 믿고 기세등등하게 성문 코앞까지 기어오르던 침투조 수십 명이 단숨에 기화 질식 구역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완벽한 진압이자, 적들의 오만한 개량 전술을 힘으로 짓눌러버린 통쾌한 일격이었다.

"성문 앞의 적들이 쓰러진다! 왜놈들이 물러간다!"

성벽 위에서 조선 군사들의 광적인 함성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

그러나 강우는 기뻐할 수 없었다.

승세의 기쁨이 성벽을 채우던 바로 그 순간, 그의 왼쪽 눈에 비친 백동 지자총통의 포신 중앙부가 기이한 형상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연속된 고온 고압의 사격으로 인해 혼합 백동의 분자 결합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포신의 가운데 부분이 벌겋게 그슬리며 팽창하더니, 미세한 균열 틈새로 백색의 아주 가느다란 열기 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열 경보였다. 포신이 터지기 직전에 나타나는 죽음의 징조가 강우의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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