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부검실의 스피커가 찢어지는 듯한 하울링과 함께 울렸다.
"백 부장님! 명성병원 본관 지하에서 확보한 불법 주사제 성분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용출된 성분은 일반 마취제가 아닙니다. 한지태와 이사장의 VVIP 밀행 전임의인 송우석의 고유 처방 코드와 일치합니다!"
서은우 검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좁은 영안실의 공기를 세차게 갈랐다.
순간, 부검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초록색 수술포 위로 인화성 화학 약품을 안개처럼 뿌려대던 방진복 사내들의 손길이 공중에서 그대로 굳었다. 안 실장의 손에 들린 무선 점화기가 미세하게 떨렸다. 수술실의 실시간 화면 속에서 메스를 쥐고 있던 한지태의 눈동자 역시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모니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들었겠지."
강현이 피가 배어 나오는 아랫입술을 느리게 깨물며 안 실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비릿한 혈향을 억지로 삼키느라 목줄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송우석이 흘린 꼬리가 생각보다 길었던 모양이군."
안 실장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가 점화기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려는 찰나, 부검실의 육중한 철문이 굉음과 함께 열렸다. 서은우 검사가 이끄는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전원 움직이지 마! 국과수 훼손 및 증거인멸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은우의 서슬 퍼런 외침과 함께 사내들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무선 점화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안 실장은 끝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끌려갔다.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강현은 벽을 짚고 버텼던 몸을 겨우 곧추세웠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망자의 부검 대장을 가동한 대가로 찾아오는 심장 부근의 통증이 갈비뼈 안쪽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백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은우가 다급히 다가와 강현의 팔을 붙잡았다. 강현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밀쳐냈다.
"나는 괜찮아. 송우석은 어디 있지?"
"지금 본관 3층 특별조사실에 억류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 자, 가문이 대대로 법조계 요직을 거친 집안이라 그런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있습니다."
강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보지."
***
명성병원 본관 3층의 임시 조사실.
흰색 의사 가운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송우석은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국내 최대 로펌인 '광장'의 로고가 새겨진 서류 가방을 든 중년의 변호사가 버티고 서 있었다.
"서 검사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십니까?"
송우석이 잔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그의 말투에는 뼈를 깎는 듯한 오만함이 가득했다.
"그 환자는 단순한 기저질환, 그러니까 심근경색으로 인한 급성 심정지였습니다. 제가 처방한 약물들은 전부 가이드라인에 맞춘 표준 투약이었어요. 임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심장 마비를 두고 살인이라니, 이거 의사 면허에 대한 모욕 아닙니까?"
"표준 투약이라고 하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선 강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송우석의 눈동자가 강현의 초라한 국과수 가운을 훑고 지나가더니 이내 경멸로 채워졌다.
"아, 병원에서 쫓겨나 시체나 만지며 호구지책을 도모하시는 백강현 선생이시군. 왜, 외과 메스를 잡던 손으로 썩어가는 살점이나 가르니 심성이 비뚤어지셨습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음모론을 설계하시는 걸 보니 안쓰럽기 짝이 없네요."
옆에 선 변호사가 거들었다.
"검찰 측에서 명확한 물리적 증거 없이 우리 의뢰인을 구금하는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합니다. 헌법이 보장한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니, 더 이상의 무의미한 질의는 삼가 주시죠."
강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은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가 품에서 붉은색 직인이 찍힌 영장을 꺼내 송우석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발행, 송우석 전임의의 개인 연구실 및 원내 전산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입니다."
송우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지울 건 진작에 다 지웠으니까…… 아니, 애초에 지울 만한 불법적인 자료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으니까요."
강현은 송우석의 책상 위에 놓인 메인 모니터 앞으로 걸어갔다. 모니터 화면에는 환자들의 일반적인 전자의무기록(EMR) 화면만 띄워져 있었다. 강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일반적인 의사들은 신경 쓰지 않는 화면 구석의 시스템 로그 파일이었다. 강현은 망자의 부검 대장을 통해 보았던 그 기괴한 홀로그램의 궤적을 뇌 속에서 다시 한번 복기했다.
'한지태와 송우석이 사용하던 특수 암호화 프로토콜. 그들이 수술실에서 사용하던 모니터의 IP 대역폭과 일치하는 흐름이 있을 터다.'
강현의 손가락 끝이 닿는 곳마다 푸른빛의 스크롤이 빠르게 내려갔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두통이 일어났다. 부검 대장의 힘을 무리하게 끌어다 쓸 때마다 찾아오는 신경 마비 증상이었다.
'여기다.'
강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일반적인 의료 기록 폴더가 아닌, 백업용 드라이버의 숨겨진 파티션 내부. 그곳에 정량 분석된 통계 시트가 숨겨져 있었다.
[VVIP Target-Donor Matching List]
화면에 떠오른 문서의 헤더를 확인하는 순간, 마스크를 쓰고 있던 은우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강현은 즉시 해당 디렉터리를 통째로 외장 하드로 복제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나이, 혈액형, 조직적합성항원(HLA) 교차시험 결과, 그리고 가장 우측에 적힌 '기증자 대기 상태: 인위적 뇌사 유도(Induced Brain Death)'라는 잔인한 단어가 정렬되어 있었다.
"이게…… 이게 무엇인지 설명해 보시지, 송우석 선생."
강현의 차가운 질문에 송우석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 그건 단순한 연구용 시뮬레이션 자료일 뿐입니다!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는……!"
"연구용 자료에 왜 아직 살아있는 환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장기를 적출할 타깃 VVIP들의 계좌 정보가 정량적으로 매칭되어 있지?"
은우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쐐기를 박았다.
송우석의 변호사가 다급히 송우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불법적으로 취득한 전산 정보이므로 법정에서 증거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사망 원인은 기저질환에 의한 심정지라는 부검 소견이 먼저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억지 춘향 격으로 엮지 마십시오!"
변호사의 오만한 목소리가 조사실 벽을 울렸다.
강현은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그의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조사실 안의 긴장감은 극도로 팽팽해졌다. 송우석은 초조한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고, 변호사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강현을 내려다보았다.
침묵핍공(침묵逼供).
상대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갈 때까지, 그들의 가식적인 논리가 극에 달해 방심할 때까지 강현은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들의 입에서 "의학적 근거가 없다", "단순 기저질환이다"라는 말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송우석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말이 없습니까? 역시 법의학자가 되시더니 임상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신 모양이군요. 사체에서 검출된 마약 성분이나 약물 반응은 환자가 평소에 복용하던 약물이거나, 응급 소생술 과정에서 투여된 에피네프린 등의 혼합 반응일 가능성이 99퍼센트입니다. 이걸 타살로 몰고 가려는 당신들의 수준이 참 낙후되어 있네요."
송우석의 비웃음이 극에 달한 순간, 강현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의 두 눈에 서린 이성적인 광채가 송우석의 심장을 꿰뚫을 듯이 빛났다.
"그 99퍼센트의 거짓말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1퍼센트의 진실이지."
강현이 외장 하드에서 불러온 또 다른 분석 도면을 빔프로젝터 스크린 위로 쏘아 올렸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기하학적인 나선형 분자 구조식과 붉은색으로 정밀하게 마킹된 정량 분석 그래프였다.
"이게 뭔지 알겠지, 송우석 선생?"
송우석의 눈동자가 대번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렸다.
"이건……."
"1주일 전, 우리가 부검했던 돌연사 피해자의 위벽 주름 틈새에서 채취한 잔류 액상 성분이야. 일반적인 내시경이나 간이 독극물 검사에서는 절대로 검출되지 않는 물질이지."
강현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해일 같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위벽의 미세 융모 주름 틈새에 고착되어 수일 동안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던 이 성분의 정체는 프랑스에서 극비리에 수입된 특수 마취제, '아티카인-D(Articaine-D)'의 변형 유도체다. 국내에는 처방 허가조차 나지 않은 약물이지."
뒤에 서 있던 오덕팔이 침을 꿀꺽 삼키며 강현의 낡은 가운 자락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강현의 숨소리가 다시금 밭아지고 있었다. 심장 조절 신약의 빈 용기를 만지작거리던 덕팔의 손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강현은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을 이 악물고 견디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약물은 투여 즉시 체내의 수분과 반응해 급속도로 가수분해되어 사라진다. 사후 몇 시간이 지나면 혈액이나 장기 조직에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설계되어 있지. 단순한 의료 사고로 위장해 환자의 심장을 멈추게 만들고, 장기를 손상 없이 보존한 채 적출하기 위해 당신들이 특수 제작한 '사형 집행 약물'이다."
"그,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내가 그 약을 썼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
송우석이 마침내 평정을 잃고 괴성을 질렀다.
강현은 화면을 한 번 더 터치했다. 송우석의 개인 컴퓨터 서버 내부, 지워진 줄 알았던 비공개 구매 내역과 한지태의 결재 승인 서명이 담긴 사법 데이터 도면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웠다.
"1화의 피해자 위벽에서 검출된 아티카인-D의 배치 번호(Batch Number)와, 지난달 당신의 개인 포털을 통해 독일계 제약사 우회 루트로 결제된 약물의 고유 식별 코드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강현이 송우석의 변호사를 차갑게 응시했다.
"이래도 기저질환입니까?"
송우석의 변호사는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의 손잡이를 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건 단순한 주사 에러가 아닙니다."
강현이 송우석의 코앞까지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장기 수용자인 VVIP들의 이식 일정에 맞춰, 멀쩡한 환자의 심장을 인위적으로 멈추게 한 조직적인 타살극이지. 그리고 그 살인 도구를 직접 쥐고 흔든 집도자가 바로 당신이야, 송우석."
송우석의 무릎이 꺾였다. 그가 이지러진 눈빛으로 바닥을 주저앉으며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한 부원장님이…… 한지태 원장님이 시킨 일이라고! 그분이 아니면 난 전임의 자리에서 쫓겨났을 거야!"
완벽한 붕괴였다. 가문의 백그라운드도, 최고 로펌의 변호사도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자백을 막을 수 없었다.
서은우 검사가 매서운 눈빛으로 수사관들에게 손짓했다.
"송우석 씨를 살인 및 불법 장기 적출 음모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수갑이 채워지는 쇠붙이 소리가 조사실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강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옥죄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지만, 몸 안의 생명력이 미세하게 깎여 나간 감각은 지울 수 없었다.
"해냈군요, 백 부장님."
은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강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한지태를 옭아맬 가장 확실한 고리를 쥐었습니다."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강현이 창밖의 어두운 병원 본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자가 이 정도 일로 멈출 위인이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안다."
바로 그 순간, 조사실의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비상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빨간색 경보등이 벽면을 타고 번쩍이며 부검실 전체를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쾅!
조사실의 철문이 거칠게 부서지듯 열렸다.
그 문턱을 넘어 들어온 인물들을 본 은우와 강현의 눈동자가 동시에 굳어졌다.
수십 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조사실 안으로 난입해 수사관들을 밀쳐내고 사방을 포위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한 수트 차림의 한지태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사법 연수원장 출신의 거물 변호사들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의 현직 부장검사가 수사 지휘서를 들고 서 있었다.
"거기까지 하십시오, 서은우 검사."
특별수사부 부장검사가 냉혹한 목소리로 지휘서를 내밀었다.
"송우석 전임의에 대한 체포 영장 및 명성병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금시로 집행 정지 및 취소되었습니다. 대검찰청의 직권에 의해, 이 사건은 특별수사부로 이첩되며 백강현 법의관의 제3부검실은 국가 안보 및 의료 기밀 유출 혐의로 즉시 봉쇄 조치합니다."
"뭐라고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은우가 소리쳤지만, 한지태는 그녀를 가볍게 무시하며 강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한지태의 눈동자 속에 서린 살의가 강현의 이성을 잠식하듯 다가왔다. 그가 강현의 귀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백강현. 네가 시체들과 노닥거리는 동안, 이 나라의 법은 내 장인어른의 손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잊었나 보군."
한지태가 손을 들어 부검실 문밖을 가리켰다. 무장한 사법 집행 인력들이 부검실의 입구를 철제 차단봉으로 막아서기 시작했다.
"이제 네가 설 자리는 없다. 메스를 쥔 법의관이 아니라, 감옥에 갇힌 범죄자로 박제해 주지."
강현의 눈앞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최악의 격철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