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태가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 목숨을 건드릴 거라던 최형섭의 저주 어린 속삭임이 귓가를 맴돌았다. 액정 속 붉은 피로 물든 휠체어 영상이 꺼지자마자, 강현은 주차장 바닥을 차고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지하 주차장의 서늘한 공기가 허파 깊숙이 박혔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조차 기다릴 수 없었다. 강현은 비상구 철문을 거칠게 밀치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뒤따라오는 오덕팔의 무거운 발소리가 콘크리트 벽을 타고 둔탁하게 울렸다.
"백 선생! 같이 가! 몸도 성치 않은 인간이 왜 이리 급해!"
덕팔의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국과수 제3부검실에 홀로 남겨두었던 휠체어의 주인이자 한지태의 범죄를 증명해 줄 유일한 열쇠인 유가족의 안위뿐이었다.
제3부검실의 이중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강현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구석진 간이 대기실이었다.
휠체어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낭자한 것은 사람의 피가 아니었다. 강현은 무릎을 꿇고 바닥에 고인 검붉은 액체를 손가락 끝으로 찍어 올렸다. 코끝에 가져다 대자 비릿한 철분 냄새 대신 끈적하고 달콤한 인공 향료 냄새가 풍겼다. 시럽과 식용 색소를 섞어 만든 가짜 피였다.
"이건……."
"낚인 거네."
뒤늦게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덕팔이 무릎을 짚은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 새끼들, 백 선생 성질머리 아주 잘 알고 놀린 거야. 경고랍시고 이딴 유치한 장난질을 쳐?"
"장난이 아닙니다."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가락을 닦아냈다. 그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가 여기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 시간벌기입니다. 진짜 타깃은 따로 있다는 뜻이죠."
그 직후였다. 부검실의 쇠문이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들이닥친 사람은 서은우 검사였다. 그녀의 단정한 단발머리는 사방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평소의 이성적인 눈빛은 극도의 혼란과 분노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두 명의 구급대원이 들것을 밀며 정적을 깨뜨렸다.
"백 부장님, 늦었습니다."
은우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한소연 간호사입니다. 명성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한지태 실장의 비자금과 불법 마취제 대장을 제보하겠다고 약속했던 그 사람이에요. 한 시간 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들것 위에 놓인 시트가 걷히자, 아직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피부는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입술은 산소 결핍을 증명하듯 푸르스름한 자색을 띠고 있었다.
"명성 측에서는 기저질환에 의한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주장하며 이미 시신을 인도받아 오늘 밤 안으로 화장하려 했습니다. 제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강제로 빼앗아 왔어요. 부검해야 합니다. 이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야 해요."
은우의 주먹이 하얗게 쥐어졌다.
강현은 천천히 시신 앞으로 걸어갔다. 한소연 간호사. 자신을 믿고 거대한 카르텔에 맞서려 했던 평범한 내부 고발자였다. 그녀의 억울한 죽음이 차가운 부검대 위에 누워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 선생."
덕팔이 강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너 지금 몸 상태로 부검대장 또 가동하면 진짜 죽어. 아까 최형섭 부검할 때 흘린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어."
덕팔의 시선이 강현의 양복 안주머니로 향했다. 그 안에는 강현이 극심한 통증을 억제하기 위해 복용하는 심장 조절 신약의 빈 용기들이 들어 있었다. 덕팔이 몰래 확인했던, 이미 바닥을 드러내 가고 있는 약물들이었다.
"상관없습니다."
강현의 목소리는 미동조차 없었다.
"망자는 말이 없고, 의사는 메스로 진실을 받아 적을 뿐입니다. 그게 제 일입니다."
그는 청색 부검 가운을 걸치고 라텍스 장갑을 끼었다. 메스를 손에 쥐는 순간, 손끝에서 시작된 한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스윽.
메스의 날카로운 끝이 시신의 흉부를 가르는 순간, 강현의 안구가 뒤집히며 세상이 황금빛 홀로그램의 격자무늬로 뒤덮였다.
'망자의 부검 대장(Anatomy Ledger)'이 강제로 개방되었다.
* * *
우웅-.
시간이 역류했다. 어둡고 좁은 원룸 오피스텔. 한소연 간호사가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쥔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내의 손에는 정교한 미세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읍! 으읍!"
여자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사내는 그녀의 두피 깊숙한 곳,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부위를 정확히 겨냥해 바늘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강현의 가슴에 칼로 난도질하는 듯한 극통이 찾아왔다.
끄아악!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동기화된 가해 약물의 효과가 강현의 심장과 폐를 그대로 짓눌렀다. 허파꽈리가 하나씩 터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기도가 부어오르고 혈관 속에서 피가 끓어넘치는 감각이 지옥처럼 밀려들었다.
"백 선생! 백강현!"
덕팔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강현의 상체를 붙잡았다.
강현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부검대 모서리를 잡은 그의 손가락 끝이 허옇게 질려 가다 못해 마비 증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홀로그램의 궤적이 흐려졌다.
"눈 감지 마! 이 바보 같은 놈아! 똑바로 봐!"
덕팔이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어투를 완전히 지워버린 채, 강현의 얼굴을 붙잡아 고정했다. 그의 거친 손길이 강현의 눈꺼풀이 감기지 않도록 지탱했다. 덕팔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네가 여기서 쓰러지면 저 불쌍한 처자는 그냥 심장마비로 묻히는 거야! 네가 말했잖아! 진실을 밝히겠다고!"
덕팔의 외침이 강현의 뇌리를 때렸다.
진실.
강현은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부검 대장의 시뮬레이션 속에서, 주사기로부터 흘러나온 약물의 분자 구조가 녹색의 빛을 발하며 여자의 뇌척수액과 혈관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성분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일 년 전, 그리고 1화에서 마주했던 첫 번째 돌연사 시신의 정보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건…… 아티카인-D(Articaine-D).'
일반적인 치과용 국소마취제가 아니었다. 유럽의 암시장에서나 극비리에 거래되는, 심장 전도계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마비 시켜 흔적을 남기지 않는 특수 수입 마취제였다.
1화의 시신을 부검했을 때, 위벽 주름 틈새에 고착되어 남아 있던 미세한 잔류 액상 성분. 당시에는 단순한 기저질환용 약물 혼입으로 조작되어 넘어갈 뻔했으나, 강현이 끝까지 추적해 그 독특한 분자 고리를 식별해 두었던 바로 그 물질이었다.
"위벽…… 위벽의 주름을 봐야 해."
강현이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내며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이 약물은 정맥 주사로 투여되더라도, 급격한 혈류 장애를 일으켜 위 점막의 미세 혈관에 독특한 울혈과 함께 잔류 성분을 고착시킨다. 일반적인 독극물 검사로는 검출되지 않아."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독용 핀셋을 집어 들었다. 시신의 위를 절개하고, 점막 주름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그곳이었다.
빛바랜 위벽의 주름 틈새에 점상 출혈과 함께 미세하게 남아 있는 투명한 액상의 결정이 보였다. 특수 조명을 비추자, 자외선 반응에 의해 푸르스름한 형광 빛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찾았어……."
강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것이 한소연 간호사를 죽인 진짜 사인입니다. 단순 심근경색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된 아티카인-D에 의한 유도성 부정맥 및 심정지."
그는 핀셋으로 잔류 물질을 채취해 보존 용기에 담았다.
몸을 짓누르던 동기화의 통증이 서서히 걷히며 강현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온몸이 땀과 피로 젖어 축 늘어졌다. 덕팔이 신속하게 그를 부축해 온열기 옆으로 옮겼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피독 현상을 막기 위함이었다.
"너 진짜 미친놈이다."
덕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꿀물을 타서 강현의 입술에 대주었다.
"하지만…… 기어이 찾아냈네. 대단한 새끼."
강현은 꿀물을 삼키며 타들어 가는 식도를 진정시켰다. 그의 눈빛은 이미 다음 단계를 향하고 있었다.
"서 검사님."
은우가 다가와 강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눈에는 강현에 대한 깊은 경외감과 걱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 약물은 국내에서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는 백색 마약류이자 특수 마취제입니다. 명성병원의 VVIP 전용 약고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물건이죠. 한지태의 직인이 찍힌 수입 대장이 분명 존재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명성병원의 약고와 한지태의 개인 금고를 압수수색하기 위한 추가 영장을 발부받겠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게요."
은우가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검실 벽면에 설치된 전속 무선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기분 나쁜 기계음이 울렸다. 검찰과 국과수 사이의 보안 통신망이었다.
- 치지직…… 서 검사님! 서 검사님, 들리십니까!
수사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부검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예, 서은우 검사입니다. 무슨 일이죠?"
은우가 벽면의 송수신기를 잡고 외쳤다. 스피커 너머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 그리고 무언가 깨지는 소음이 섞여 들려왔다.
- 방금 한지태 실장의 밀행 전임의가 숨겨둔 오피스텔을 급습했습니다! 현장에서 도주하려던 전임의를 체포했는데, 그놈의 개인 가방에서 대량의 미등록 수입 약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강현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그 약물의 성분이 무엇입니까?"
은우가 침을 삼키며 물었다. 수사관의 숨 가쁜 목소리가 이어졌다.
- 아티카인-D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전임의가 소지하고 있던 기밀 장부에서 한지태 실장과 차민혁 이사장이 매주 VVIP들에게 불법 장기 이식을 집도해 온 수술 명단과 함께, 오늘 밤 '처리'해야 할 대상들의 리스트가 나왔습니다!
부검실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 그 리스트의 첫 번째 줄에…… 지금 부검실에 계신 백강현 부장님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체불명의 차량 세 대가 국과수 정문을 통과해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했다는 경비실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쾅!
스피커 너머로 통신이 뚝 끊기며, 제3부검실 바깥 복도에서 무거운 철문이 거칠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꺼운 강철문이 외부의 강한 충격에 비틀리며 기괴한 쇳소리를 토해냈다.
"덕팔 형님, 이중 잠금장치 걸어 잠그세요! 서 검사님은 비상 연락망으로 인근 경찰서에 타격대 지원 요청하시고요!"
강현은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부검대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허파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숨을 쉴 때마다 밀려왔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차갑게 식어 내렸다.
덕팔이 육중한 몸을 던져 제3부검실 바깥문과 연결된 유압식 임시 빗장을 걸어 잠갔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쇠막대가 문틀에 고정되는 순간, 문 건너편에서 둔탁한 타격음이 두 번 연속으로 울렸다.
쿵! 쿵!
"젠장, 저놈들 손에 쇠지렛대나 유압 장비가 들려 있는 것 같아! 이 문 길어야 3분도 못 버텨!"
덕팔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은우는 이미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연신 다이얼을 누르고 있었지만, 이내 절망적인 표정으로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신호가 안 잡혀요. 전파 차단기(Jammer)를 가동한 것 같습니다. 외부 통신이 완전히 먹통이에요."
"명성대학병원이 부리는 해결사들입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서전(Surgeon)들의 방식이죠. 애초에 합법적인 공조나 구조를 기다릴 여유를 주지 않을 겁니다."
강현의 시선이 차가운 부검대 위에 누워 있는 한소연 간호사의 시신, 그리고 방금 채취한 아티카인-D 성분이 담긴 보존 용기로 향했다. 이것이 한지태의 숨통을 끊을 유일한 물리적 증거였다.
강현은 떨리는 손으로 용기를 품 안 깊숙히 밀어 넣었다.
"덕팔 형님, 시신 보관용 대형 냉동고 뒤쪽에 지하 환기구로 연결되는 해치 고리가 있습니다. 일반인은 모르는 국과수 설계 도면상의 통로입니다. 은우 씨를 데리고 그리로 피하십시오."
"미쳤어? 그럼 너는 어쩌고!"
덕팔이 강현의 멱살을 잡듯 가운 깃을 움켜쥐었다.
"네 몸 상태를 봐! 지금 제대로 걷지도 못하잖아! 저놈들이 들이닥치면 넌 꼼짝없이 당해!"
"제 목숨보다 이 증거가 먼저입니다."
강현은 덕팔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의 안구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이성이 깃들어 있었다.
"한소연 간호사는 저를 믿고 진실을 말하려다 죽었습니다. 저 차가운 부검대 위에서 억울하게 눈을 감은 망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제가 메스를 든 유일한 이유입니다. 두 분이 살아서 이 증거를 법정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 순간,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 측 벽면의 강화유리창 너머로 어두운 그림자들이 일제히 비쳤다.
그들은 일반적인 조직폭력배가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방진복과 특수 가스마스크를 착용한, 마치 전염병 방역반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행색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산업용 화학 물질이 가득 담긴 가압식 분무기와 고열 금속 절단기였다.
"증거 인멸 세력……."
은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 부검실 내부의 모든 유기물, 즉 한소연 간호사의 시신과 강현이 확보한 미세 약물 증거를 화학적 화재로 완전히 녹여 없애기 위해 찾아온 '청소부'들이었다.
치이이익!
유압식 절단기가 이중 잠금장치의 쇠막대를 파고들며 불꽃을 사방으로 튀겼다. 시뻘건 불똥이 강화유리창 너머로 흩날릴 때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시간이 없습니다. 가십시오!"
강현이 덕팔과 은우를 환기구 쪽으로 거칠게 밀쳤다.
덕팔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은우의 손목을 잡고 해치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백 선생, 반드시 살아남아라. 내가 이거 꼭 법정에 집어던질 테니까, 너 죽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덕팔의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철제 해치가 둔탁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제3부검실의 견고했던 강철문이 처참하게 뜯겨 나가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쾅!
자욱한 먼지와 함께 방진복을 입은 세 명의 사내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그들의 중심에서 가스마스크를 벗어 던지는 한 남자가 있었다.
명성대학병원 기획조정실장 한지태의 최측근이자, VVIP 전담 은폐조의 수장인 안형준 실장이었다. 그는 차가운 살의가 서린 눈빛으로 부검실 구석의 온열기 앞에 주저앉아 있는 강현을 내려다보았다.
"백강현 선생. 오랜만이군요. 여전히 쥐새끼처럼 음습한 곳에서 시체나 뒤지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안 실장이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소형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강현은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를 응시했다. 심장의 부정맥이 극도에 달해 시야가 명멸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지태가 보낸 사냥개치고는 행색이 요란하군. 불법 마취제로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국과수까지 습격하다니. 네놈들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안 실장은 비웃음을 흘리며 태블릿 화면을 강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우리의 종말이라니요. 착각이 심하시군요. 진짜 종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똑똑히 보여드리지요."
화면 속에는 녹화된 영상이 아닌, 어느 수술실의 실시간 CCTV 송출 화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초록색 수술포가 덮인 수술대 위에 왜소한 체구의 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이의 얼굴 위로 산소마스크가 씌어 있었고, 모니터의 심박 센서가 규칙적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 수술대 옆에서 메스를 쥔 채 차가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남자, 한지태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들어왔다.
"이건……."
강현의 호흡이 거칠게 멎었다. 화면 속의 아이는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그리고 조금 전 지하 주차장에서 사라졌던 유가족의 어린 딸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명성병원 제12수술실에서는 아주 특별한 불법 장기 적출 및 이식 수술이 시작됩니다."
안 실장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휘어졌다.
"백 선생, 당신이 이 부검실에서 타들어 가는 화학 불꽃과 함께 잿가루가 되는 바로 그 시간에, 저 아이의 심장은 우리 VVIP의 가슴 속으로 들어갈 겁니다. 물론 사인은 불의의 사고에 의한 뇌사 및 자발적 장기 기증으로 완벽하게 조작해 두었죠."
강현의 손가락 끝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뇌 주행을 멈추려 하는 심장의 고통보다, 인간의 생명을 도구로만 여기는 거악의 추악함에 가슴이 찢어발겨 지는 것 같았다.
안 실장이 손을 들어 올리자, 뒤에 서 있던 방진복의 사내들이 가압식 분무기의 노즐을 강현과 한소연 간호사의 시신을 향해 겨누었다. 투명한 인화성 화학 약품이 안개처럼 허공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당신의 법의학 놀이도 끝입니다. 백강현."
안 실장이 주머니에서 무선 점화기를 꺼내 들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바로 그 찰나, 강현의 품속에 숨겨둔 무선 인이어에서 은우의 다급하지만 서늘한 목소리가 세차게 흘러나왔다. 사전에 강현이 켜둔 국과수 내부 로컬 전용 주파수를 타고 흐르는 통신이었다.
- 백 부장님! 들리십니까! 지금 명성병원 본관의 비상 발전기실을 검찰 수사관들이 확보했습니다! 한지태가 수술을 시작하려는 순간, 병원 전체의 전력을 완전히 차단하고 특수 수사대를 투입할 겁니다!
안 실장의 손가락이 점화기 버튼 위에서 굳어졌다.
강현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안 실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두 눈에 서린 황금빛 광채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수술실의 불이 꺼지는 순간, 사냥개가 사냥꾼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