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사흘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형사부 법정.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으나, 방청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피부를 그슬릴 만큼 뜨거웠다.

"저 사람이 그 백강현이잖아. 사람 죽여 놓고 면허 취소당한 의사." "의사가 사람을 죽여? 그런 사람이 어떻게 법의관을 하고 있는 거야?"

수군거림은 이내 거친 파도처럼 법정 내부를 휩쓸었다. 수십 쌍의 눈동자가 증인석을 향해 적의를 쏟아냈다. 야유와 조소가 뒤섞인 소음 속에서, 백강현은 다 낡아빠진 법의관 가운의 깃을 가볍게 여몄다.

증인석 단상 위로 뚜벅뚜벅 한 발을 올리는 순간, 왼쪽 허벅지 안쪽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 사흘 전, 제3부검실에서 망자의 부검 대장을 가동했을 때 동기화되었던 지독한 마비 증상의 찌꺼기였다. 폐포 깊숙한 곳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호흡을 가로막았지만, 강현은 드러나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통증을 억눌렀다.

그의 시선이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명성대학병원 순환기내과 과장,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대형 로펌 '태산'의 변호사 송우석에게 머물렀다. 송우석은 잘 재단된 네이비 정장 매무새를 다듬으며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법의관 백강현."

재판장의 부름에 강현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증언대에 서기 전, 피고인 측 대리인의 이의 제기가 있었습니다. 백 법의관의 과거 이력과 자격에 관한 부분입니다. 피고인 측, 발언하십시오."

송우석 변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구두 굽이 법정 바닥을 울리는 소리는 경쾌하기까지 했다. 송우석은 방청석을 향해 한 번, 그리고 재판부를 향해 또 한 번 고개를 숙인 뒤, 증인석에 선 강현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재판장님, 본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 고(故) 김윤아 씨의 사인이 병원 측의 과실인가, 혹은 환자 개인의 기저질환에 의한 불가항력적 급사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실을 규명할 국과수 부검의의 자격에 심각한 하자가 있습니다."

송우석이 서류 한 장을 높이 들어 올렸다.

"백강현 씨는 1년 전, 명성대학병원 외과 재직 시절 치명적인 의료 사고를 유발하여 의사 면허가 취소된 인물입니다. 자신의 메스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전적이 있는 인물이, 어떻게 다른 의사의 수술 과정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부검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의 도난 경위를 조사하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방청석에서 헛웃음과 동조하는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송우석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듯 강현의 코앞까지 걸어왔다. 그의 이마에 돋아난 미세한 정맥이 그가 느끼는 묘한 흥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백강현 씨. 본인이 집도했던 그 실패한 수술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번 사건을 명성병원의 과실로 몰아가려는 사적 복수심이 작용한 것 아닙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법정 안의 모든 이들이 강현의 입을 주목했다. 분노 어린 반박이나, 구구절절한 변명이 터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강현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송우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동요 없이 차분했고, 오히려 입가에는 옅은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고요함이 강현을 감쌌다.

송우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조롱을 던졌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벽과 같으니, 오히려 던진 쪽의 손목이 저려오는 법이다.

"왜 말이 없습니까? 본인의 자격 미달을 스스로 인정하시는 겁니까?"

송우석의 목소리 톤이 반 옥타브 올라갔다. 조급함의 징후였다. 강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법정 속기사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타닥거리며 정적을 기록해 나갔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법정 내의 기류는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비난으로 가득 차던 공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 * *

같은 시각, 법원 대기실.

국과수 부검 조수 오덕팔은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었다. 법정 내부의 중계 화면을 바라보던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강현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따로 있었다.

덕팔은 의자 위에 놓인 강현의 낡은 가죽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이 양반이 진짜 몸을 어디까지 망가뜨리려고 이러는 거야……."

사흘 전 부검을 마친 뒤, 강현은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주저앉았었다. 덕팔은 강현의 가방을 챙겨주다 우연히 열린 안쪽 지퍼 틈새로 손을 뻗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두꺼운 전공 서적과 서류 봉투들 사이,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작은 철제 상자.

그 안에는 라벨이 깨끗하게 떨어져 나간 정체불명의 갈색 약병 서너 개가 들어 있었다. 병 안쪽에는 미세한 백색 결정이 묻어 있었고, 마개가 단단히 닫혀 있었음에도 특유의 비릿하고 서늘한 약취가 풍겼다.

덕팔은 조심스럽게 약병 하나를 꺼내 빛에 비춰 보았다. 병 바닥에 아주 작게 인쇄된 영문 표기.

[Beta-Blocker: Special Compound-X]

일반적인 심장 박동 조절제가 아니었다. 심장의 기능을 극도로 억제하여 통증 감각을 일시적으로 차단하지만, 장기 복용 시 심근 세포를 괴사시키고 심정지를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심장 둔화 신약의 임상 시험용 샘플이었다.

"미친 사람. 부검 대장인지 뭔지 하는 걸 쓸 때마다 오는 통증을 이 독약 같은 걸로 틀어막고 있었던 건가?"

덕팔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강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감내하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이 작은 약병 몇 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법정 화면 속에서 강현은 아무런 표정 없이 서 있었지만, 그의 가운 안쪽 심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비정상적인 박동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을 터였다.

* * *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는 군요."

송우석 변호사가 비웃음을 흘리며 재판부를 돌아보았다.

"재판장님, 증인은 본인의 자격 미달과 편향성을 묵묵부답으로 자인했습니다. 따라서 이 증인의 부검 소견은 신뢰성을 상실했으며, 본 재판의 증거로 채택되어서는 안 됩니다."

피고석에 앉아 있던 명성병원 내과 과장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그들은 완벽하게 백강현을 침몰시켰다고 생각했다.

송우석은 품 안에서 준비해 온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명성대학병원 자체 사인 규명 위원회와 외부 권위자들이 공동 서명한 '사인 재분석 보고서'였다.

"이것은 국내 최고의 심장내과 권위자들이 작성한 감정서입니다. 피해자 김윤아 씨의 사인은 수술 중 발생한 과실이 아니라, 환자가 앓고 있던 미세혈관 협심증에 의한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입니다. 수술실에서의 마취 및 절개 과정은 보건복지부 가이드라인을 단 1밀리미터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송우석이 문서를 재판부와 검사석에 뽐내듯 펼쳐 보였다. 서류철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법정의 정적을 깨웠다.

"저희는 모든 의학적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할 용의가 있습니다. 명성병원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보고서가 그 명백한 증거입니다."

방청석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론은 완전히 명성병원 쪽으로 기울었다. 그들이 던진 미끼는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강현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송우석이 흔들고 있는 가짜 보고서의 특정 페이지에 멈춰 있었다.

'과용량의 마취제 투여 기록 누락. 혈압 강하제 투입 시간 14분 왜곡.'

머릿속에서 사흘 전 부검 대장을 통해 보았던 수술실의 가상 시뮬레이션이 분 단위로 복기되었다.

[오후 2시 14분: 마취의가 환자의 생체 신호 불안정을 감지하고 마취제 주입 속도를 올림.] [오후 2시 28분: 심전도 모니터의 경고음이 울렸으나, 집도의는 수술을 강행함.] [오후 2시 35분: 환자의 심장 정지. 사인은 급성 약물 중독으로 인한 심인성 쇼크.]

그들이 기세등등하게 뱉어낸 모든 거짓말이 법정 속기사의 타이핑을 통해 공판 서류에 글자 그대로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피고 측이 스스로 판 무덤의 깊이가 깊어질 때까지, 강현은 밧줄을 쥐어준 채 기다린 것이다.

마침내, 강현이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안경테를 슬쩍 밀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차가운 이성이 송우석의 안면을 꿰뚫었다.

"송우석 변호사님."

강현의 목소리가 법정의 낮게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나직하지만, 모든 소음을 일시에 잠재우는 기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 화려한 경력의 권위자들이 서명한 보고서에, 단 한 줄도 적히지 않은 사실이 있더군요."

송우석의 미소가 굳어졌다.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여기엔 모든 수치와 약물 투여 기록이……."

"1화에서 제가 부검했던 또 다른 돌연사 시신, 그리고 사흘 전 부검한 김윤아 씨의 위벽 주름."

강현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그 틈새에 고착되어 남은 성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국내에는 정식 수입되지 않는, 명성병원 VVIP실에서만 극비리에 사용하는 특수 마취제 '알티카인-D'의 잔류 액상 성분입니다. 위벽에 남은 독점 마취 성분의 반감기를 역산하면, 수술 시작 전 이미 치사량에 가까운 용량이 투여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법정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피고석의 내과 과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강현은 가운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유리 슬라이드의 감촉이 전해졌다.

"제대로 수면 위로 올라왔군요, 명성병원의 진짜 얼굴이."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 든 것은 파랗게 얼어붙은 피해자의 심장 적출 표본 분석 슬라이드였다.

"자, 이제 진짜 해부를 시작해 볼까요."

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슬라이드가 법정의 형광등 아래에서 기괴한 진실의 실루엣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푸른 빛을 뿜어내는 유리 슬라이드가 실물화상기 유리에 닿자, 법정 정면의 대형 스크린 위로 기괴하게 뒤틀린 세포 조직의 단면이 거대하게 번져 나갔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흑백의 대조가 극명한 현미경 사진이었다. 정상적인 심근 세포라면 붉고 팽팽하게 정렬되어 있어야 할 자리에, 마치 염산을 뿌린 듯 허옇게 녹아내린 구멍들이 불규칙하게 뚫려 있었다.

"이것은……."

피고석에 앉아 있던 명성병원 순환기내과 과장 최형섭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잘게 흔들렸다. 의사로서 저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설명해 주시죠, 백 법의관."

서은우 검사가 예리한 눈빛으로 송우석 변호사를 압박하며 강현에게 발언을 넘겼다.

강현은 천천히 스크린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왼쪽 발목부터 시작된 차가운 마비 감각이 척수를 타고 올라왔다. 사흘 전 김윤아의 시신을 해부하며 뇌리에 각인되었던, 기도가 막혀 가며 느끼던 지독한 질식감이 가슴뼈 안쪽을 무겁게 짓눌렀다.

식은땀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강현은 턱 끝에 힘을 주어 표정을 지워냈다.

"일반적인 심근경색 환자의 심장 근육은 관상동맥이 막히면서 점진적인 괴사가 일어납니다. 세포가 산소 부족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흔적이 남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십시오."

강현이 지시봉으로 화면 중앙의 하얗게 변성된 부분을 가리켰다.

"세포막이 완전히 파괴되어 공포(vacuole)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산소 부족이 아니라, 특정 화학 물질이 심근 세포의 나트륨 채널을 강제로 차단해 단 몇 분 만에 세포를 마비시켰을 때 발생하는 특이적 변성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 물질이 바로 이겁니다."

강현이 스크린의 화면을 전환했다.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 분석기(LC-MS)의 정밀 분석 그래프가 나타났다. 특정 구간에서 뾰족하게 솟구친 피크 수치가 붉은색 선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알티카인-D. 국내 미승인 약물이자, 명성병원 VVIP 전용 병동에서만 극비리에 심장 수술용 국소 마취 보조제로 사용하는 성분입니다. 일반적인 부검의라면 심장 마비로 결론짓고 넘어갔을 위벽의 미세 주름 틈새에서, 저는 고농도로 잔류한 이 성분의 물리적 결정을 검출해 냈습니다."

"그, 그것이 김윤아 씨의 사인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최형섭 과장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김윤아 씨는 심근경색으로……!"

"상관이 아주 큽니다, 최 과장님."

강현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법정을 얼려버렸다.

"알티카인-D는 체내 반감기가 극도로 짧아 수술 후 두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위벽에서 이 정도 농도의 잔류 결정이 발견되었다는 건,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사망하기 직전, 혹은 이미 심장이 멈춘 직후에 이 약물이 대량으로 주입되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마취 심도를 조절하려던 게 아니라, 환자의 심장 박동을 강제로 멈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투여한 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궤변입니다!"

송우석 변호사가 다급히 판사의 주의를 끌기 위해 법대를 두드렸다.

"재판장님! 증인은 지금 본인의 뇌피셜에 기반한 자의적 해석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국과수의 정식 감정서에도 없는 내용을 사적으로 제출한 슬라이드 하나로 입증하려 들다니요! 이는 명백한 증거 오염이자 절차 위반입니다!"

"절차 위반이라뇨?"

서은우 검사가 지지 않고 맞섰다.

"이 슬라이드는 국과수 제3부검실에서 정식 절차를 거쳐 보존된 부검 보조 자료입니다. 피고 측이 제출한 대학병원 자체 보고서야말로 이해관계자들이 작성한 사적 문서 아닙니까?"

법정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방청석의 기자들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폭우처럼 쏟아졌고, 유가족들의 흐느낌과 변호인단의 고성이 뒤섞였다.

그 혼란의 중심에서, 강현은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윽…….'

허파 꽈리가 하나씩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관통했다. 부검 대장의 대가로 동기화된 망자의 고통이 심장의 박동을 강제로 늦추고 있었다. 눈앞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흐려지며 법정의 불빛들이 길게 번져 보였다.

강현은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정도의 통증을 자극해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대기실에 있을 오덕팔의 가방 속, 심장 박동을 강제로 끌어올려 줄 그 갈색 약병이 절실하게 떠올랐지만 지금은 물러설 수 없었다.

그가 쓰러지기 전에 이 가짜들의 목을 완전히 꺾어 놓아야 했다.

강현은 흔들리는 몸을 법대 모서리에 기대어 지탱하며,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송 변호사님. 그리고 최 과장님."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소란스러운 법정을 다시 한번 침묵으로 내리눌렀다.

"이 알티카인-D의 일련번호를 추적하면 어느 병동, 어느 의사의 처방전으로 반출되었는지 단 10분 만에 확인이 가능합니다. 명성병원의 VVIP 약물 관리 대장은 보건복지부의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전송되니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로그 기록의 법원 제출을 명령해 주시겠습니까, 재판장님?"

최형섭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며 스르륵 의자에 주저앉았다. 송우석 역시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완벽한 메디컬 팩트가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은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법정의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사내 한 명이 급히 들어와 송우석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사내의 손에는 붉은색 도장이 찍힌 대법원 송달 봉투가 들려 있었다.

송우석의 굳어 있던 얼굴에 순식간에 기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들고 재판장을 향해 높이 치켜세웠다.

"재판장님! 방금 수령한 대검찰청 특별수사부의 행정 명령서입니다. 백강현 법의관이 제시한 모든 증거물에 대한 압수 수색 및, 백강현 본인에 대한 '의료법 위반 및 사체손괴 혐의'의 긴급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법정 안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강현의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는 가운데, 서은우 검사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법정 문 너머로, 차가운 수갑을 든 수사관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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