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여기서부터는 사자의 영역입니다."

메스 끝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번졌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백강현의 시선은 정면에 서 있는 사법경찰들과 명성대학병원 법률대리인단을 꿰뚫고 있었다.

은백색의 형광등 불빛이 먼지 섞인 공기를 가르며 차갑게 쏟아져 내렸다. 부검실 안으로 밀려든 사람들의 구두 굽이 시멘트 바닥에 쓸리는 소리는 마치 거친 철조망을 바닥에 끄는 것처럼 둔탁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가장 앞에 선 사법경찰들의 어깨 너머로, 잘 재단된 안동포 코트를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명성대학병원 기획조정실 법률대리인단의 수석이자, 이사장 차민혁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임재열 변호사였다. 그의 뒤를 지키는 서너 명의 수행원들은 각각 두꺼운 서류철과 압수 목록이 인쇄된 태블릿을 가슴팍에 고정하듯 안아 쥔 채였다.

임재열은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부검실 내부의 고요를 깨뜨렸다. 그의 시선은 강현의 오른손에 쥐어진 메스의 서슬 퍼런 날을 잠시 스쳤으나, 이내 철제 부검대 위에 놓인 이현아의 시신으로 향했다. 살얼음판 같은 피부 위로 아직 봉합되지 않은 절개선이 붉은 선으로 남아 있었고, 그 옆에는 부검 대장의 이능을 통해 겨우 축출해 낸 극미량의 담황색 체액 सैंपल이 투명한 바이알 병 속에서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작은 액체 방울이 명성대학병원의 심장부를 단숨에 꿰뚫을 수 있는 가공할 폭약이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백강현 법의관님."

임재열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냉랭한 어조로 가라앉은 목소리를 뱉었다. 가죽 장갑을 낀 그의 손끝이 부검실 입구의 차가운 철제 문틀을 탁, 탁 치며 일정한 박자를 만들어냈다.

"의사 면허를 잃고 이곳 지하 간이 부검실에서 죽은 자들의 살이나 저미고 계시더니, 결국 선을 넘으시는군요. 명성대학병원의 정당한 소유이자 유족들이 정식으로 반환을 요청한 사체를 이토록 무단으로 훼손하시는 것은 명백한 법적 월권이자 시체손괴죄에 해당합니다."

강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자신의 흉강 내부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통증을 억누르는 데 고도로 집중되어 있었다.

망자의 부검 대장. 불과 십여 분 전, 숨진 이현아가 죽음 직전 이송 과정에서 겪었던 극심한 호흡 마비와 근육의 경련 증상이 강현의 사지에 그대로 동기화되어 고스란히 밀려들고 있었다. 허파허리뼈 근처의 호흡근들이 젖은 밧줄로 단단히 조여드는 것처럼 뻐근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기관지가 가래로 막힌 듯 쌕쌕거리는 천명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으나, 강현은 어금니를 사려 물며 그 수치스러운 신음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얼음장 같은 오한에 손가락 끝바디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메스를 쥔 검지와 중지만큼은 강철로 만든 고정틀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망자는 이미 목소리를 잃었다. 만약 여기서 메스를 내리고 뒤로 물러선다면, 이 가여운 영혼의 마지막 울음소리는 저 오만 무도한 자들의 서류 더미 속에 기저질환이라는 네 글자로 박제된 채 영원히 무덤으로 기어들어 가고 말 터였다.

그것만큼은, 과거 칼잡이 의사로 살았던 백강현의 해부학적 양심이 허용하지 않았다.

"백 법의관, 법원의 정식 집행 영장입니다."

임재열이 붉은색 관인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 한 장을 허공에 치켜들었다. 종이가 파르르 떨리며 건조한 마찰음을 냈다.

"우리는 정당한 사법 절차에 따라 사체와 부검 과정에서 획득한 모든 생체 시료, 그리고 진료기록부 사본을 즉시 압수합니다. 불필요한 마찰을 원치 않으신다면 실력 행사를 자제해 주십시오."

임재열의 눈동자 한구석에 미세한 초조함이 서려 있는 것을 강현은 놓치지 않았다. 그 역시 본래는 정의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을 테지만, 차민혁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밥통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려면 사냥개처럼 사납게 짖고 물어뜯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기련의 처지일 터였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단 하나의 샘플도 밖으로 유출해선 안 된다'는 절대적인 독촉이었으리라. 실패하는 순간, 대리인단 수석이라는 화려한 명패는 하루아침에 폐기처분 될 것이다.

강현의 뒤편에서 오덕팔이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낡은 군화 앞코가 차가운 바닥 서랍 모퉁이를 슬쩍 밀어내며 마찰음을 최소화했다. 덕팔은 가슴팍에 이현아의 심장 부속물과 미량의 잔류 액상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단단히 품어 안았다. 그의 우직한 이마 위로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경찰 중 한 명인 민 순경의 가죽 벨트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민 순경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며 덕팔의 둥근 어깨와 품에 안긴 상자로 가 닿는 찰나였다.

스윽.

강현이 오른발을 반 보 옆으로 밀어내며 부검대의 두꺼운 바퀴를 축으로 몸을 틀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메스의 칼날이 형광등 불빛을 완벽한 정각(正角)으로 반사하여 민 순경의 시야 속으로 날카로운 섬광을 쏘아 보냈다.

"앗."

순간적으로 강렬한 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민 순경이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메스로 만들어낸 1초의 시각적 교란. 그 틈을 타 오덕팔은 상자를 완전히 보이지 않는 설비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는 데 성공했다.

"경찰관님들, 이 방에 들어오시려면 방진 장화와 방제복을 착용하셔야 합니다."

강현의 낮고 여과되지 않은 침착한 목소리가 부검실의 찬 공기를 뚫고 지나갔다.

정적은 아주 찰나였으나, 부검실 안의 밀도를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리인단의 수석 임재열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이마 위로 식은땀 한 줄기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뇌리에서는 차민혁 이사장의 엄포가 환청처럼 울리고 있었다. 만약 이번 부검을 막지 못해 샘플이 유출된다면, 자신이 수십 년간 기어 올라온 명성대학병원의 권력 사다리는 단번에 부러질 터였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거대 카르텔의 생리가 그의 숨통을 조여 왔다. 임재열은 가슴을 짓누르는 생존의 공포를 감추려 가죽 서류가방의 손잡이를 터질 듯 움켜쥐었다.

그의 뒤에 선 사법경찰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현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가느다란 메스. 비록 무기라고 하기엔 턱없이 가늘고 작았으나, 인체의 해부학적 약점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전직 외과의의 손에 들린 칼날은 그 자체로 기괴한 중압감을 뿜어냈다. 사법경찰의 손가락이 허리춤의 가죽 벨트 위를 불안하게 서성였다. 법의학자의 고유 권한이 보장된 국과수 지하 부검실이라는 공간적 제약과 절차적 하자가 그들의 발바닥을 무겁게 묶어두고 있었다.

서은우 검사는 바싹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시며 어깨를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그녀의 시선은 부검대 위의 싸늘한 영구 시트와 그 아래 어스름한 조명 속에 숨겨진 마취제 약병의 윤곽을 차례로 훑었다. 수뇌부의 묵인 하에 시작된 강제 진입의 배후에 도사린 거대 병원의 음모를, 그녀의 수사관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은우는 강현의 굳건한 등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타인과의 감정적 연대를 거부한 채 스스로를 차디찬 영안실에 고립시킨 남자였지만, 지금 메스를 쥔 그의 곧은 척추에서는 사자의 마지막 진실을 지키겠다는 지독한 존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은우는 천천히 발을 옆으로 옮겨 강현의 바로 뒤편에 그림자처럼 섰다.

부검실 벽면에 기계음 없이 점멸하는 디지털시계가 01초에서 02초로 넘어갔다. 부검대 아래로 뚝 떨어진 붉은 핏방울이 타일 틈새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서서히 어두운 갈색으로 굳어갔다.

강현은 오른손목의 미세한 근육들을 아주 미세하게 이완시켰다. 차가운 금속 자루를 쥔 그의 손끝은 수술대 위에서 실을 매듭짓던 시절처럼 1밀리미터의 떨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전신을 조여오는 신경 마비의 피독과 흉부를 압박하는 저주의 고통 속에서도 그의 이성은 기묘할 정도로 정제되어 갔다. 그는 침입자들의 젖은 가죽 구두와 진흙 묻은 전투화 끝자락이 부검실의 경계선인 문턱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모습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그는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다시 열어, 찬 공기 속으로 날카로운 숨결을 흘려보냈다.

"포르말린과 페놀 가스가 상시 부유하는 구역입니다. 보호 장구 없이 장시간 노출 시 점막 괴사 및 만성 기관지염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공무상 재해 요건으로 인정받기 극히 어렵습니다. 또한 소속 청의 안전 보건 규정 제14조 위반에 해당합니다만, 그래도 진입하시겠습니까?"

사법경찰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칫했다. 법률 규정과 의학적 전문 용어가 정확한 조항과 함께 흘러나오자, 법을 집행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의 기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임재열이 이를 갈며 부하 검사관에게 턱짓을 보냈다.

"백강현, 쓸데없는 지연 작전은 통하지 않습니다. 저 칼 치우고 당장 비켜서세요!"

긴장감이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이었다. 금방이라도 경찰들의 두꺼운 손이 강현의 어깨를 낚아채고, 그의 가느다란 손목에 차가운 강철 수갑을 채울 듯한 험악한 분위기가 부검실 내부를 가득 메웠다. 강현의 심장이 부검 대장의 페널티로 인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듯 쿵쾅거렸다. 폐포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끈적한 피비린내가 목구멍을 타고 느껴져, 그는 입 안쪽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켜내야 했다. 허벅지 근육의 마비 증상이 점차 심해져, 무릎이 꺾이지 않도록 부검대 귀퉁이를 한 손으로 힘겹게 짚어가며 몸의 균형을 유지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하 3층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 저편에서부터 아주 빠르고 불규칙한 주파수의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따닥, 따닥, 따다닥.

대리석 바닥을 세차게 딛는 메탈 굽의 구두 소리였다. 그 소리는 무척이나 급박했고, 동시에 분노로 가득 찬 에너지를 가득 담고 있었다. 부검실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경비원들과 보좌관들이 웅성거리며 길을 터주는 기척이 느껴졌다.

공기의 흐름이 단번에 바뀌었다. 수십 미터 밖에서부터 다가오던 발소리는 이윽고 두꺼운 철문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부검실 안의 모든 시선이 출입문 쪽으로 쏠린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온 이의 존재감은 제3부검실의 가라앉은 습기를 일시에 날려버릴 만큼 강렬했다. 검은 코트 자림의 서은우 검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와 변호단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등 너머로 차가운 복도 공기가 밀려왔다.

"백 법의관님, 일단 메스 내려놓으세요. 이 사람들은 정식 영장을……."

"영장이라니요, 서 검사님."

강현은 서은우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얼음송곳처럼 예리하게 임재열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검은 코트 차림의 서은우 검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와 변호단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등 너머로 차가운 복도 공기가 밀려왔다.

"백 법의관님, 일단 메스 내려놓으세요. 이 사람들은 정식 영장을……."

"영장이라니요, 서 검사님."

강현은 서은우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의 목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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