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의사 면허 박탈 처분 통지서."

강현은 주머니 속에서 거칠게 구겨진 종이봉투를 꺼내 들었다. 백색 봉투의 모퉁이에는 보건복지부의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부검대 옆에 놓인 철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철그렁하는 거친 소리가 사방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제3부검실의 벽을 타고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 기관이라 불리는 명성대학병원. 그곳의 흉부외과에서 '신이 내린 손'이라 불리던 에이스, 백강현의 손에는 이제 환자의 심장을 살리는 수술용 메스 대신, 이미 숨이 끊어진 자의 살을 가르는 법의학용 메스가 쥐여 있었다.

내부고발의 대가는 참혹했다. 차기 원장 자리를 노리던 라이벌 한지태의 대리 수술과 그로 인한 의료 사고 은폐 음모를 세상에 알리려 했던 대가로, 강현은 오히려 살인마라는 누명을 쓰고 의사 가운을 벗어야 했다. 의료계 전체가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밀어냈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이곳,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지하의 음습한 제3부검실이었다.

부검실 내부의 공기는 차갑다 못해 비릿했다. 사방에서 타오르는 온열기들의 붉은 열선이 공기를 데우려 애쓰고 있었지만, 시신이 뿜어내는 특유의 냉기와 부패를 가리기 위한 소독약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강현의 눈앞에 누워 있는 시신은 서른두 살의 젊은 여성, 이현아였다.

그녀는 불과 사흘 전, 명성대학병원에서 단순 위 절제 수술을 받은 후 회복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병원 측이 유족들에게 제시한 사인은 '기저질환에 의한 급성 심근경색'. 유족들은 멀쩡하던 사람이 왜 수술 직후 죽느냐며 병원 로비에서 오열했으나, 명성병원의 막강한 법률대리인단과 사법부 로비 앞에 그들의 목소리는 힘없이 짓밟혔다. 결국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는 이 차가운 부검대 위로 넘어왔다.

강현은 천천히 다가가 시신의 이마를 짚었다. 사후강직이 이미 턱과 목을 지나 상지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피부가 손가락 끝을 타고 시린 감각을 전해왔다. 아직 서른둘밖에 되지 않은 창창한 나이. 그녀의 손톱 끝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분홍색 매니큐어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작은 흔적이, 그녀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살아있는 인간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강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병원은 진실을 묻으려 했고, 세상은 그들의 권력에 굴복했다. 하지만 이 차가운 육체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터였다. 단지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잃었을 뿐이다. 그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이 이제 강현의 유일한 사명이었다.

강현은 오른손에 쥔 메스를 고쳐 잡았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는 칼날이 시신의 흉골 아래, 검상돌기 부근의 피부에 닿았다.

서걱.

날카로운 칼날이 피부를 가르고 들어가는 순간, 강현의 대뇌 피질을 강타하는 기이한 파동이 일었다.

삐이이이이—!

귓가를 찢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때렸다. 눈앞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암전되는가 싶더니, 이내 푸르스름한 홀로그램 빛줄기들이 부검실의 허공을 메우기 시작했다. 강현의 동공이 강하게 수축했다.

'망자의 부검 대장(Anatomy Ledger)'이 깨어난 것이다.

제3부검실의 습한 공기와 곰팡이 냄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방이 투명한 유리벽과 수억 원을 호가하는 최첨단 모니터들로 둘러싸인 멸균 수술실. 명성대학병원 제5수술실의 풍경이 강현의 뇌 속에 100% 정밀한 실시간 가상 홀로그램으로 투사되었다.

수술대 위에는 산소마스크를 쓴 채 거칠게 가슴을 들썩이는 이현아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술복을 입은 사내들이 서 있었다. 집도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오만한 입술. 강현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장본인이자, 명성병원의 차기 원장 후보인 한지태였다.

"지혈해! 거기 석션 안 해? 뭐 하고 있어, 이 병신들아!"

한지태의 다급한 비명이 홀로그램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의 손에 쥔 모스키토 겸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위벽의 절개 부위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혈액이 시야를 가리자, 그의 눈동자에 극심한 초조함이 서렸다.

"교수님, 혈압이 계속 떨어집니다! 하트 레이트가 140을 넘었습니다!" "시끄러! 마취 깊이를 조절해! 환자가 꼼지락거리잖아!" "하지만 이미 프로포폴 투여량이 한계치입니다. 여기서 더 쓰면 호흡 억제가..." "내가 책임진다고 했지! 독점 수입한 거 그거 가져와! 아네스케토-M 쓰라고!"

한지태의 윽박지름에 마취과 레지던트가 황급히 수납장에서 푸른색 라벨이 붙은 앰플을 꺼냈다. 정맥 주입기의 다이얼이 급박하게 돌아갔고, 약물이 이현아의 혈관을 타고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그 순간, 강현의 시야에 붉은색 정량적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특수 수입 마취물질: 아네스케토-M (Anesketo-M) 투여] [투여량: 15mg (임상 허용치 3배 초과)] [부작용: 급성 호흡 억제 및 신경 마비 유발 확률 98.7%]

국내 마약류 관리법상 수입조차 금지된, 명성병원 VVIP들만을 위해 밀수입된 극비 약물이었다. 한지태는 자신의 수술 실수로 환자가 요동치자, 이를 은폐하고 수술을 강행하기 위해 미승인 강력 마취제를 과다 투여한 것이었다.

홀로그램 속 이현아의 심장 박동 그래프가 급격히 완만해지더니, 마침내 일직선을 그렸다. 삐이이이이—.

화면이 지직거리며 깨지는 찰나, 강현의 눈에 결정적인 장면이 포착되었다. 환자가 사망하기 직전, 과다 투여된 아네스케토-M의 일부 액상 성분이 위벽의 미세한 주름 틈새로 역류하여 고착되는 과정이 3D 그래픽처럼 정밀하게 확대되어 보였다. 다른 장기에서는 빠르게 대사되어 흔적을 감췄지만, 위벽 주름의 깊은 틈새에 남은 극미량의 잔류 액상은 부검을 통해서만 추출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끄흐윽...!"

갑작스럽게 홀로그램이 걷히며 강현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가슴을 대형 트럭이 밟고 지나가는 듯한 극심한 압박감이 폐를 짓눌렀다. 호흡이 불가능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피비린내가 치밀어 오르더니, 붉은 혈경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쿨럭! 컥, 헉...!"

부검대 모서리를 움켜쥔 강현의 손끝이 하얗게 바스러질 듯 떨렸다. 전신의 신경이 한꺼번에 타 들어가는 듯한 신경 마비 증상이 다리부터 타고 올라왔다. 망자가 죽기 직전 느꼈던 아네스케토-M의 치명적인 독성과 호흡 곤란의 고통이 그의 육체에 고스란히 동기화된 것이다. 눈앞이 노랗게 흐려지고,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능력을 쓸 때마다 수명을 갉아먹는 피의 계약이 그의 몸을 안에서부터 부수고 있었다.

"거 봐! 내가 뭐라 그랬냐! 이 미련한 놈아!"

부검실 구석의 철제 캐비닛 뒤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거구의 사내가 튀어나왔다. 제3부검실의 유일한 보조원이자 백강현의 조수인 오덕팔이었다. 그는 헐레벌떡 달려와 강현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끼워 넣고 그를 의자에 주저앉혔다.

"야, 백 선생! 너 진짜 이러다 내가 네 부검 먼저 하게 생겼어! 정신 차려, 임마!"

오덕팔은 거친 손길로 강현의 등을 팍팍 두드리며, 미리 준비해 둔 온열기 세 대를 강현의 코앞까지 끌고 왔다. 징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열선이 돌자, 얼어붙던 강현의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덕팔은 품 안에서 낡은 보온병을 꺼내 노란 꿀물을 컵에 가득 따라 강현의 입가에 거칠게 밀어 넣었다.

"마셔! 단것 좀 들어가야 심장이 뛰지! 얼른!"

강현은 떨리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었다. 뜨거운 열기가 손바닥을 타고 흐르자마자 허겁지겁 꿀물을 들이켰다. 달콤하고 뜨거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마비되던 호흡근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현이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의 가운 밑단은 이미 각혈한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덕팔 씨...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내 월급이나 올려달라고 국과수 원장한테 멱살이라도 잡아봐라.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맨날 피 흘리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하냐?"

오덕팔은 툴툴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강현의 메스를 집어 소독액으로 닦아냈다. 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 이번엔 뭘 봤냐? 저 시신에 무슨 장난질을 쳐놨길래 병원 놈들이 저렇게 난리법석이래?" "아네스케토-M입니다."

강현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한지태 그 인간이... 환자가 수술 도중 깨어나려 하자, 미승인 극비 마취제를 허용치의 세 배 넘게 주입했습니다. 진료기록부에는 단순 심근경색으로 조작되어 있겠지만, 진짜 사인은 약물 과다 투여로 인한 호흡 마비입니다." "아네스케토? 그게 뭔데? 처음 듣는 약인데?" "국내에는 정식 수입되지 않는 마취제입니다. 명성병원이 VVIP용으로 밀수입해 독점 사용하는 놈이죠. 일반적인 부검으로는 혈액에서 이미 대사되어 검출되지 않지만..."

강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에 서늘한 서광이 서렸다.

"위벽 주름 틈새에 잔류 액상이 고착되어 있습니다. 그걸 추출해 내면 게임은 끝납니다."

강현은 다시 메스를 잡았다. 그의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오직 진실을 밝히겠다는 서늘한 집념만이 그의 메스 끝에 어려 있었다.

그는 시신의 상복부를 정교하게 Y자 모양으로 절개해 들어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가위질과 메스질이었다. 위장을 노출시킨 뒤, 위벽의 가장 깊은 점막 주름 부위를 조심스럽게 가르고 들어갔다.

일반적인 법의관이라면 단순한 사후 변성이나 염증으로 취급하고 넘어갔을 미세한 굴곡진 틈새. 그 깊은 주름 사이에,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미세한 점액질의 잔류 액상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찾았습니다."

강현은 특수 주사기를 이용해 위벽 틈새의 액상을 정밀하게 흡입했다. 투명한 튜브 안으로 푸른빛이 도는 액체가 채워지는 순간, 부검실 안에는 기묘한 전율이 감돌았다.

벼랑 끝에 몰려 의사 면허까지 빼앗기고 법의관으로 좌천되었던 천재 외과의가, 오직 메스 한 자루와 자신의 생명을 깎아 얻은 이능으로 거대 메디컬 카르텔의 완벽한 범죄 시나리오를 박살 내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진짜로 있네."

오덕팔이 입을 쩍 벌린 채 감탄했다. 그는 황급히 특수 보존 튜브를 건네받아 아이스박스에 조심스럽게 격리 보관했다.

"이걸로 그 오만한 한지태 자식이랑 명성병원 놈들 멱살을 잡을 수 있겠어!"

바로 그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부검실 벽면에 설치된 내선 전화기가 찢어질 듯한 소리로 울려 퍼졌다. 동시에 강현의 개인 휴대폰도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서은우 검사였다. 국과수와 공조하여 명성병원의 의료 사고를 내사하던 몇 안 되는 정의로운 검사였다.

강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서은우의 다급하다 못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 법의관님! 지금 당장 부검 멈춰요! 지금 당장요!" "증거는 이미 확보했습니다, 서 검사님."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명성대학병원 법률대리인단이 법원으로부터 부검 집행 정지 및 시신 인도 명령서를 받아냈어요! 소송 절차상 하자가 있다면서 법원을 흔든 모양이에요. 지금 압수수색 영장까지 들고 국과수 로비로 들이닥쳤어요!"

서은우의 숨소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놈들 목적은 시신 탈환이 아니에요. 백 법의관님이 확보한 부검 장부랑 샘플을 통째로 압수해서 폐기하려는 겁니다!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는데, 사법경찰까지 대동해서 법적으로 밀고 들어오니까 방법이..."

쾅! 쾅! 쾅!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충격음이 제3부검실의 두꺼운 철문을 흔들었다.

"국과수 제3부검실! 명성대학병원 법률대리인단입니다! 법원의 즉각적인 시신 인도 명령 및 관련 자료 압수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즉시 문을 열고 부검을 중단하십시오! 불응 시 공무집행방해 및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변호단 측의 오만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부검실 내부를 가득 채웠다. 문고리가 요란하게 덜컥거리며 철문이 휘청였다.

"이것들이 미쳤나! 어디라고 들이닥쳐!"

오덕팔이 이빨을 갈며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는 열쇠공이 도어락을 강제로 해체하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철문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강현은 아이스박스를 오덕팔의 품에 단단히 안겨주었다.

"덕팔 씨, 이건 뒷문 간이 승강기로 빼돌리세요. 서 검사님 차량으로 바로 이송해야 합니다." "너는 어쩌려고, 백 선생!" "저는 여기서 진실을 지키겠습니다."

강현은 피 묻은 메스를 오른손에 꽉 쥐었다. 날카로운 칼날 끝에 이현아의 붉은 피가 방울져 맺혀 있었다.

덜컥!

마침내 부검실의 두꺼운 철문이 강제로 개방되었다. 차가운 복도의 백색광이 부검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그 선두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명성병원의 변호단과 사법경찰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으며 부검실 내부로 뛰어 들어오려던 서은우 검사가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강현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피 묻은 메스를 든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변호단과 사법경찰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메스 끝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차가운 바닥에 뚝, 하고 떨어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비장하리만치 차분했고, 동시에 심연보다 깊은 분노를 담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사자의 영역입니다."

강현이 메스로 선을 긋듯 허공을 가르며, 난입하려는 무리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진실을 밝히기 전에는, 그 누구도 이 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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