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쇠 냄새가 섞인 비린 안개가 폐공장 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 발목을 감쌌다.

턱밑을 파고드는 차가운 총구의 금속성 감촉. 한서윤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그녀가 내뱉는 가쁜 숨결이 시우의 뺨을 서늘하게 적셨다.

"말해, 소시오패스 새끼야. 네가 죽인 거지?"

그녀의 눈동자는 분노와 공포로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준만큼은 정확했다. 시우의 심장과 이마를 가르는 정중앙의 선. 한서윤의 손끝에 들어간 힘은 당장이라도 공이를 때릴 기세였다.

시우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안구 표면이 건조하게 마르는 감각조차 무디게 다가왔다. 그의 뇌리는 차분하다 못해 괴괴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타인의 공포와 분노는 그의 신경계에 어떤 파동도 일으키지 못했다.

다만, 방금 전 조형식이 추락하며 남긴 붉은 궤적. 그리고 그가 흘린 사념의 잔재가 시우의 척수를 타고 올라와 뇌하수체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독한 도파민의 분출이었다. 살의와 파멸의 냄새만이 그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시우가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죽였다면."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마치 미리 녹음된 기계음을 재생하는 듯한 건조함이 허공을 갈랐다.

"당신도 날 쏠 건가? 한 형사."

"입 닥쳐! 조 경사님이 왜 갑자기 그런 미친 짓을 해? 네가 무슨 짓을 속삭인 거잖아! 김명훈의 시체도, 저 잘려 나간 팔도…… 전부 다 네가!"

한서윤이 멱살을 잡은 손에 억센 힘을 주었다. 옷깃이 뜯어질 듯한 비명이 정적을 깨웠다. 그러나 시우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을 지나, 그녀의 어깨너머 어둠 속을 무심히 응시할 뿐이었다.

"한 형사."

시우가 낮게 읊조렸다.

"당신은 법을 믿나."

"뭐?"

"법이 이 도시의 밤안개를 걷어내 줄 거라고 믿느냐고 물었어."

"헛소리하지 마! 궤변으로 빠져나갈 생각……."

"당신의 전 파트너, 강 형사."

그 이름이 나오자, 한서윤의 신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총구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시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의 가장 약하고 무른 심장의 틈새를 정밀하게 파고드는 것. 그것이 그가 인간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시우는 품속으로 천천히 손을 가져갔다. 한서윤이 경계하며 총구로 그의 턱을 더 강하게 밀어 올렸지만, 시우는 개의치 않고 손가락 끝으로 가죽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조형식이 추락하기 직전 떨어뜨린 감식반 가방 내부에서 찾아낸, 붉은색 비밀 직인이 찍힌 경찰 내부 보고서였다.

시우가 그것을 한서윤의 시야 앞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이걸 봐."

"이게…… 뭐지?"

"당신이 그렇게 존경하던 선배, 조형식이 죽기 직전까지 필사적으로 숨기려던 거야. 강 형사의 진짜 사망 보고서 원본."

한서윤의 시선이 서류의 첫 페이지로 향했다. 안개의 희미한 빛 사이로, 검붉은 글씨들이 그녀의 눈동자에 박혔다.

'단순 실족사'로 종결되었던 사건. 하지만 원본에 기록된 실상은 참혹했다. '신체 훼손 및 장기 유실로 인한 과다출혈사'.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수사를 즉각 종결하라는 서장의 친필 서명과 함께, 배후에서 이 사건의 합의를 종용한 대형 로펌 '율정'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강 형사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야."

시우의 목소리가 한서윤의 귓가를 차갑게 긁었다.

"사냥당한 거지. 이 안개 속에서 유희를 즐기는 그 괴물들에게. 그리고 당신이 믿는 경찰 조직은 그 괴물들의 똥을 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자처했고. 조형식과 김명훈은 그저 충실한 사냥개에 불과했어."

한서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눈동자에 고인 눈물이 분노로 타올랐다.

"그럴 리가…… 조 경사님이, 그럴 리가 없어……."

"믿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구역질이 나는 법이야."

시우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턱밑의 총구가 그의 목덜미를 긁었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서윤의 얼굴값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이제 선택해, 한 형사."

그의 목소리는 매혹적이면서도 잔인한 덫과 같았다.

"날 체포하고 이 서류를 서장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당신도 강 형사처럼 조용히 안개 속에서 실종될 건가? 아니면……."

시우의 손가락끝이 한서윤이 쥔 권총의 총신을 부드럽게 아래로 내렸다.

"나와 공조할 건가. 저 목줄을 쥔 자들의 목을 완전히 꺾어버릴 때까지."

한서윤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그녀는 총을 쥔 손의 힘을 스르륵 풀었다. 법이라는 단단한 성벽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는, 오직 피에 젖은 복수심만이 덩굴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는 총을 천천히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그녀의 패배이자, 시우의 완벽한 승리였다. 시우는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뇌 속에서 짜릿하게 터져 나오는 소리 없는 희열을 느꼈다.

인간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것만큼 지독한 유희는 없었다.

*

폐공장을 빠져나온 시우의 걸음걸이는 무거웠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공장지대의 밤바람은 유독 차가웠다. 하지만 그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외부의 바람이 아니었다.

쿵.

심장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지독한 서리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잔혹의 장부'가 요구하는 대가. 권능을 소모한 육체가 치러야 할 형벌이었다.

시우는 가로등 아래에 멈춰 섰다.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입안 가득 얼음 조각을 씹은 듯한 한기가 몰려왔다. 손끝을 바라보았다. 손톱 밑이 검푸르게 죽어 있었고,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기 힘들었다. 괴화 1단계의 전조 증상이 육체를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머릿속의 변화였다.

뇌의 한 구석이 텅 비어 버린 느낌. 무언가 소중한 기억의 파편이 강제로 도려내 진 자리에 차가운 안개만이 고여 있었다.

시우는 필사적으로 기억의 도서관을 뒤적였다.

'설아.'

동생의 얼굴은 기억났다. 그녀의 슬픈 눈망울도, 자신을 향해 부르던 목소리도 기억났다. 하지만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빠져 있었다.

그것은 맛이었다.

설아가 죽기 전날 밤, 정성스레 끓여주었던 된장찌개와 따뜻한 밥 한 공기. 오빠의 정서적 결함을 고쳐주겠다며 매일같이 식탁을 차려주던 그녀의 손길. 시우는 그 식탁에서 설아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 음식이 어떤 맛이었는지 전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짠맛이었나? 매운맛이었나? 아니면 그저 따뜻했었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혀끝에는 오직 쇠 맛과 얼음 같은 무감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인간적인 온기와 교감의 기억이, 장부의 자산을 채우기 위한 제물로 바쳐져 소멸한 것이다.

가슴 한구석이 시려왔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인지할 수는 없었지만, 영혼의 일부가 뜯겨 나간 듯한 잔인한 공허함이 그를 덮쳤다.

시우는 떨리는 검푸른 손가락으로 주머니 속을 뒤적였다. 손끝의 감각이 무뎌 물건을 쥐는 것조차 버거웠다. 간신히 꺼내 올린 것은 설아가 남긴 유일한 유품, 은빛 펜던트였다.

가로등의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펜던트가 가냘프게 빛났다.

시우는 펜던트를 가만히 응시했다.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펜던트의 이음새를 더듬었다. 일반적인 장식품이라면 있을 리 없는 미세한 틈새가 손끝에 걸렸다.

손톱 끝으로 그 틈을 강하게 누르자, 틱 하는 가벼운 기계음과 함께 펜던트의 전면부가 양옆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내부에는 사진이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 극도로 정밀하게 각인된 의문의 숫자 나열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37.4981, 126.9275 - 0904`

시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다. 무진시의 특정 구역을 가리키는 지리적 좌표, 그리고 그 뒤에 붙은 네 자리의 암호. 설아는 죽기 전, 신선회의 위협을 직감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거대한 음모의 단서를 이 작은 펜던트 속에 박제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설아…… 너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거지?"

시우의 중얼거림은 안개 속으로 쓸쓸히 흩어졌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살의의 도파민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적들이 숨기려 하는 진실의 냄새가, 그의 망가진 신경계를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

터덜터덜 걷는 시우의 뒤편, 어둠이 짙게 고인 좁은 골목길 초입에서 낯익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이, 백 형사님. 몰골이 아주 볼만하네? 빙하기라도 맞은 것처럼 퍼렇게 질려가지고 말이야."

가로등 뒤편의 그늘 속에서 붉은 담뱃불이 깜빡였다.

느슨하게 풀어헤친 가죽 재킷,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린 껄렁한 미소. 무진시의 음지에서 정보와 시체를 거래하는 블랙마켓 브로커, 우진철이었다. 그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시우를 흥미롭다는 듯이 관찰하고 있었다.

우진철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다가왔다. 그의 발소리는 밤안개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가관이네. 체온이 그렇게 떨어져서야 어디 사람 구실 하겠어? 손가락 끝은 벌써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시커멓고."

우진철의 시선이 시우의 손에 들린 은빛 펜던트, 그리고 그의 품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향했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결국 그 '장부'를 제멋대로 열어젖혔군. 냄새가 아주 지독해. 피와 원한이 사슬처럼 엉겨 붙어서 네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시우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우진철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원하는 게 뭐지? 내 시체라도 수거하러 왔나."

"에이, 섭섭하게 왜 그래? 우린 비즈니스 파트너잖아. 돈이 되는 정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지만, 가끔은 오랜 고객의 목숨을 걱정해 주기도 한다고."

우진철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져 구두굽으로 짓밟아 껐다. 불씨가 찌그러지며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율정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우진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장난기 어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음지의 생존자 특유의 잔인한 긴장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너, 방금 폐공장에서 조형식이랑 김명훈 건드렸지? 그놈들 신선회의 꼬리였어. 율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연희가 벌써 사냥개들을 풀었단 소리야. 그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잖아? 법과 언론을 손가락 하나로 주무르는 놈들이야. 네가 아무리 날고 기는 프로파일러라도, 내일 아침이면 넌 여동생을 죽이고 미쳐버린 존속살인마로 뉴스 데스크 메인을 장식하게 될걸."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율정이라는 이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뇌리는 차분하게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특히 그 강태헌 검사 말이야."

우진철이 신음하듯 말을 이었다.

"그 인간은 진짜 괴물이야. 법의 가면을 쓰고 합법적으로 인간을 도살하는 자들의 정점에 서 있지. 네가 가진 그 장부의 힘으로도 감당하기 힘들 거야. 그러니까 당장 무진시를 떠나. 내가 위조여권이랑 탈출 루트는 싸게 알아봐 줄 테니까."

시우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실소가 머물렀다.

"떠나지 않아."

"뭐? 미쳤어?"

"내가 도망치면, 그들이 숨겨둔 진실은 누가 파헤치지? 설아를 죽인 그놈들의 목을 누가 자르나."

시우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집착과 살의의 광기에, 우진철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타인의 감정에는 아파티 상태이면서도, 오직 살인마들의 사념에만 반응해 뇌가 터질 듯이 흥분하는 소시오패스. 우진철은 시우의 괴화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치닫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 지독한 새끼. 내가 미친놈을 고객으로 뒀군."

우진철이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우진철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셔 나갔다.

"어……?"

그의 목소리에 짙은 경악이 서려 있었다.

시우 역시 우진철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저 멀리, 밤안개 너머로 무진시의 중심에 오만하게 우뚝 솟아 있는 초고층 빌딩이 보였다. 도시의 밤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의 상징, '율정 타워'.

평소라면 불야성을 이루며 하늘을 찌를 듯 빛나야 할 그 거대한 탑의 꼭대기 층 불빛들이, 순간적으로 일제히 꺼져 내렸다.

어둠이 타워의 머리 부분을 집어삼키는 것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스스스스…….

바람을 타고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려왔다.

율정 타워의 꼭대기, 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부터 붉은빛을 띤 피의 밤안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는 무서운 속도로 지상을 향해 하강하며, 무진시 전체를 붉은 심연 속으로 침몰시키고 있었다.

우진철이 마른침을 삼키며 시우의 곁으로 바짝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야연(夜宴)이 시작되려나 보네……."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지배층 놈들의 사냥 시간이 시작된 거야. 오늘 밤은, 이 도시의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피비린내가 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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