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슥, 스으으윽.*
온몸의 수포가 터지며 흘러나오는 황색 고름이 편의점 바닥의 끈적이는 타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고열의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은 살점들이 불쾌하게 습한 수증기를 뿜어내며 기괴하게 팽창하고 있었다. 왼쪽 어깨에 완전히 닿아버린 목, 그리고 그 위에서 초점 없이 흔들리는 두 눈동자.
"민…… 우…… 씨……."
주간 매니저 박태식의 쩍 갈라진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가래처럼 끓어 넘쳤다.
"나…… 안…… 죽…… 어……."
그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속도로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팔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질척이는 바람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민우 씨! 피해요! 제발!"
카운터 구석에 처박힌 한소희가 머리를 감싸 쥔 채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온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강민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동공은 돌진하는 박태식의 어깨 각도, 무릎의 굽힘 정도, 그리고 그가 딛고 있는 바닥의 마찰 계수를 냉정하게 연산하고 있었다.
공포? 그런 군더더기 감정은 사치였다. 과거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해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그날 이후, 민우의 감정 회로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지금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운 것은 오직 하나, 불치병으로 매일 죽어가는 동생 민지의 수술비 3억 원뿐이었다. 저 괴물을 치워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스으윽, 콰직!*
박태식이 휘두른 손톱이 카운터 모서리의 아크릴 판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매캐하게 타들어 가는 에탄올 냄새와 썩은 비린내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민우는 상체를 뒤로 반쯤 젖히며 그 무지막지한 궤적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동시에 그의 손이 움직였다. 그가 집어든 것은 카운터 아래에 굴러다니던, 상품 진열대용 '유통기한 고정식 철제 슬라이드 바'였다. 양끝에 날카로운 고정용 핀이 돋아나 있고, 스프링의 장력으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묵직한 쇠막대였다.
'돌진하는 거구의 운동 에너지를 역이용한다.'
편의점 매대의 상품들이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도록 설계된 중력식 피딩 시스템(Feeding System). 민우는 그 기하학적 원리를 머릿속으로 즉시 복제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끈적이는 폐기 양념 더미를 디디고 선 박태식의 발밑으로 철제 슬라이드 바를 정확히 던져 넣었다.
*바드득!*
박태식의 무거운 군화가 슬라이드 바의 둥근 표면을 밟는 순간, 마찰력을 잃은 그의 신체가 전방으로 무섭게 쏠렸다. 미끄럼틀을 타듯 제어력을 잃고 미끄러지는 거구.
민우는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대 기둥 사이에 또 다른 슬라이드 바를 수평으로 끼워 넣었다. 인클로저 역연소로 달아오른 철제 기둥과 슬라이드 바가 이루는 좁은 틈새.
*콰아아앙!*
"끄…… 윽!"
정확했다. 돌진하던 박태식의 꺾인 목이 그 좁은 철제 틈새에 완벽하게 끼어들어 갔다. 스프링 장력이 괴물의 목덜미를 강하게 압착하며 좌우로 고정해 버렸다. 기하학적 각도로 고정된 목뼈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 번 더 비틀렸다.
*우드득!*
박태식의 거대한 몸뚱이가 단 한 번의 비틀림 끝에 대자로 뻗으며 바닥으로 허망하게 고꾸라졌다. 거구의 위협이 단 몇 초 만에 완벽하게 무력화된 순간이었다.
민우는 거친 숨조차 몰아쉬지 않은 채, 쓰러진 박태식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 박태식의 바지 호주머니로 향해 있었다.
"이…… 이봐요…… 진짜 죽은 거예요?"
소희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 없이 손을 뻗어 박태식의 축축하고 끈적이는 주머니 안을 헤집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갑고 이질적인 감촉.
*스슥.*
주머니 속에서 꺼내 올린 것은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기괴한 물건이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 광택이 흐르는 고대의 마개 열쇠. 표면에는 정체불명의 역겨운 점막이 묻어 있었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저릿하게 마비되는 듯한 이계의 기운이 느껴졌다.
[배후 적대자 박태식이 호주머니 속에 조용히 만지작거리는 검은 마개 열쇠]
드디어 손에 넣었다. 주간 매니저이자 점장의 대리인인 박태식이 그토록 소중히 감추고 있던, 편의점 지하의 영혼 수납창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를.
민우는 열쇠를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카운터 구석, 먼지가 뽀얗게 쌓인 폐기 식품 보관함으로 걸어갔다.
"민우 씨……? 지금 뭐 하는……."
소희의 불안한 눈빛이 민우의 등을 쫓았다.
민우는 대답 대신 보관함 하단의 이중 바닥을 강하게 걷어찼다.
*콰직!*
부서진 합판 조각 사이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작은 기계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혈흔이 말라붙어 있는, 반파된 구형 녹음기였다.
[폐기 식품 보관함 하단의 이중 바닥에 숨겨진 반파된 녹음기]
이것이 전임자들이 남긴 진짜 진실의 기록이다. 점장 공허가 사육용 매뉴얼로 알바생들을 기만하고 사냥해 왔음을 증명할 결정적 단서. 민우는 녹음기를 품속에 챙기며, 카운터 옆에 주저앉아 있는 소희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왼쪽 눈가에 미세하게 박힌 수술 흉터가 보였다.
'흰 꽃을 든 임산부 괴담.'
과거 잔존 사유 동기화를 통해 보았던 그 기괴한 괴담 속 존재의 얼굴이 소희의 얼굴 위로 겹쳐 지나갔다. 저 흉터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다. 소희의 본래 잔존 인격체 파편이 이계의 저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복선이었다.
하지만 민우는 동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살려둘 가치가 있는 '장기말'일 뿐이다.
민우는 주머니에서 녹슨 커터칼 하나를 꺼내 소희의 발밑으로 툭 던졌다.
"이게…… 뭐예요?"
소희가 겁에 질린 눈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박태식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괴이화된 육체는 곧 다시 움직이지."
민우의 목소리에는 한 줌의 온기도 없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뜨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뜯어먹으려 들 거다. 그를 확실하게 묶어두든, 아니면 완전히 숨통을 끊든…… 네가 직접 처리해."
"내가요?! 미쳤어요?! 난 못 해요! 제발 도와줘요, 민우 씨! 우리 같이 나가기로 했잖아요!"
소희가 민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울부짖었다. 끈적이는 눈물과 땀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민우는 가차 없이 그녀의 손을 털어냈다. 차가운 구두굽이 바닥을 딛는 소리가 정막을 깨뜨렸다.
"착각하지 마."
민우가 소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해리 장애 특유의,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무기질적인 눈빛이었다.
"이곳에 구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기생하는 자에게 주어질 몫은 오직 도살뿐이다. 살아남고 싶다면 네 손에 피를 묻혀."
그의 냉혹한 천명에 소희는 숨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섰다. 민우는 더 이상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품속에서 방금 갈취한 '검은 마개 열쇠'를 꺼내 들었다. 열쇠를 쥔 손바닥에서부터 검은 혈관 같은 무늬가 그의 손목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뇌 피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이염 통증이 머리를 쪼갰다.
*크윽…….*
잔여 수명이 또다시 깎여 나가는 고통. 하지만 이 통증 뒤에 도사린 진실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민우가 열쇠의 끝부분을 카운터 포스기 하단의 숨겨진 홈에 밀어 넣고 강하게 돌렸다.
*철컥.*
무거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편의점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웅웅웅웅!*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매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대형 음료 상품 냉장고 10여 개가 동시에 기괴한 소음을 내며 거꾸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던 냉장고들이 벽면 뒤쪽으로 돌아가며 가려져 있던 거대한 어둠을 토해냈다. 그곳에는 불빛 하나 닿지 않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지하 계단길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계단 아래로부터 축축하고 썩은 흙냄새가 매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지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눅눅하고 썩은 비린내를 사방에 흩뿌렸다. 계단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은 이끼들은 손을 대지 않아도 피부에 고스란히 전해질 만큼 질척거리는 촉감을 품고 있었다. 민우는 어둠이 넘실거리는 통로 입구에 서서 주머니 속 검은 마개 열쇠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차갑고 딱딱한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 신경을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찌르르하게 마비시켰다.
"끄…… 우…… 욱……."
그때, 등 뒤에서 뼈가 어긋나며 가죽이 찢어지는 축축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철제 슬라이드 바에 목이 고정되어 있던 박태식의 몸뚱이가 기괴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기둥 사이에 끼인 그의 목가죽이 한계까지 늘어나며 끈적한 황색 진물을 뿜어냈다. 찢어진 피부 틈새로 돋아난 붉은 살점들은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단단한 쇠막대를 밀쳐내기 시작했다.
"민…… 우…… 씨…… 나…… 아…… 파……."
턱뼈가 완전히 탈골되어 아래로 길게 늘어진 박태식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젖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뱉었다.
"꺄아아악! 움직여요! 저거 움직인다고요!"
소희가 바닥을 기며 민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젖은 손가락 끝이 민우의 구두 앞코에 닿기 직전, 민우는 차갑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무감각한 얼굴에는 그 어떤 동요도 일지 않았다. 박태식의 변이 속도와 신체 팽창률을 계산한 결과, 그가 완전히 구속을 풀고 일어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45초에 불과했다.
"이…… 이기적인…… 인간들…… 전부…… 죽…… 어……."
소희는 절망 어린 눈으로 민우를 노려보며, 바닥에 떨어진 커터칼을 쥐기 위해 끈적이는 피웅덩이 위로 손을 뻗었다. 살기 위한 처절한 히스테리가 그녀의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발악을 뒤로한 채, 민우는 지하 계단 입구의 어두운 석조 벽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벽면에는 누군가 거칠게 긁어놓은 듯한 붉은 혈흔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 굳어버린 핏자국 위로 검은 곰팡이가 스슥거리며 번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정보가 필요했다. 이 밑은 편의점이라는 거대한 도살 기계의 가장 깊숙한 식도였기에, 아무런 대책 없이 내려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민우는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 벽면의 축축하고 서늘한 혈흔에 손가락을 밀착시켰다.
*콰아아아아아!*
뇌하수체를 직접 타격하는 듯한 고압의 충격이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두 눈에서 붉은 실핏줄이 일시에 터지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귓가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이명과 함께 끈적한 검은 피가 코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대뇌 피질 일부가 급격히 사멸하며 잔여 수명이 또다시 1시간 단축되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단 9시간뿐이었다.
동시에 이계의 어둠 속에서 민우의 존재적 윤곽이 한층 더 뚜렷하고 선명하게 차올랐다. 저 멀리 깊은 곳에서 그를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들이 물리적인 압박감으로 변해 그의 목덜미를 눅눅하게 조여왔다.
*스스슥…… 툭, 투둑.*
눈앞의 공간이 왜곡되며 전임 야간 근무자의 마지막 1분이 그의 뇌리로 강제 다운로드되었다.
'내려가면 안 돼. 절대 평범하게 걸어 내려가면 안 돼…….'
숨을 헐떡이는 남자의 시야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사방은 온통 축축한 점막으로 뒤덮인 계단이었다. 남자는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이…… 세고 있어. 발걸음 소리를 세고 있어…….'
*콰직!*
남자가 열세 번째 계단을 딛는 순간, 계단 바닥에서 이빨이 돋아난 거대한 구멍이 솟구쳐 올라 그의 하반신을 통째로 씹어 삼켰다. 질퍽한 살점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뇌리를 가득 채웠다.
'홀수…… 홀수는 죽음이야. 반드시 짝수 개의 계단만 밟아야…….'
기억은 거기서 거칠게 끊겼다.
"허억!"
민우가 벽에서 손을 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눈앞에 고인 핏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뇌를 찌르는 이염 통증 속에서도 그의 이성은 광적으로 회로를 돌렸다.
'계단은 총 스물네 칸. 홀수 번째 계단을 밟으면 즉사한다.'
간단하지만 치명적인 모순의 덫이었다. 인간은 극한의 공포 속에서 본능적으로 보폭을 조절하지 못한다. 허겁지겁 도망치다 보면 반드시 홀수 번째 계단을 밟고 찢겨 죽게 설계된 기계식 함정이었다.
*스르륵, 쾅!*
그 순간, 등 뒤에서 슬라이드 바가 완전히 구부러지며 부러지는 날카로운 쇠소리가 매장을 울렸다. 목가죽이 기괴하게 늘어난 박태식이 마침내 구속을 풀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의 온몸에서 흘러내린 황색 진물이 바닥의 먼지와 엉겨 붙어 눅눅한 악취를 풍겼다.
"민…… 우…… 씨…… 같이…… 가…… 야…… 지……."
박태식이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처럼 척척한 바닥을 박차고 민우를 향해 쇄도했다. 그의 뒤편에서는 커터칼을 쥔 채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는 소희의 그림자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민우는 망설임 없이 어두운 지하 계단을 향해 몸을 던졌다.
첫 번째 계단을 건너뛰고, 정확히 두 번째 계단 위에 발을 디뎠다.
*쿵.*
차가운 돌계단의 촉감이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계단 저 깊은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젖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번뜩이며 민우를 향해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존재적 윤곽이 선명해진 민우의 몸에서 풍기는 인간의 향취를 맡은 괴물들이,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스스슥 소리를 내며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등 뒤에서는 목이 꺾인 박태식이 계단의 규칙 따위는 무시한 채 어둠 속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앞에서는 굶주린 이계의 포식자들이, 뒤에서는 변이된 추격자가 벽을 좁혀오는 절체절명의 수수께끼 속에서, 민우의 세 번째 발걸음이 공중에서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