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소희가 진열실 구석으로 들어간 지 수 분 뒤, 매장의 대형 거울 면들이 소희의 참혹한 귀화 형상으로 미친 듯 채워지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존재들은 하나같이 목이 꺾인 채, 피가 흘러내리는 눈으로 민우를 응시했다. 허연 뼈가 드러난 손가락들이 유리 표면을 긁어대며 *스스슥, 스스슥*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을 뱉어냈다. 가볍게 소름이 돋는 소리와 함께 거울 면에서부터 *축축하고* 비린내가 나는 진액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뒤이어 사방의 유리창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매장의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민우야…… 수술비…… 3억은…… 내…… 몸값이야……?"

유리 벽 너머에서 스며 나온 목소리는 소희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환자실의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어야 할 동생, 민지의 가냘픈 음성이었다. 뇌를 후벼 파는 듯한 그 기괴한 명조에 민우의 관자놀이가 잘게 떨렸다. 동생의 목소리가 거울 속 훼손된 환영들의 찢어진 입술 사이로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와 매장 안을 가득 메웠다.

"강 씨…… 주간 매니저로서…… 경고하는데…… 거울 속…… 손님들을…… 실망하게…… 해선…… 안 돼……."

카운터 구석, 그림자가 짙게 깔린 곳에서 박태식의 형체가 괴상하게 비틀어지며 걸어 나왔다. 그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꿀럭이는* 가래 끓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는 검은 마개 열쇠가 *스르릉* 소리를 내며 기분 나쁘게 흔들렸다. 박태식의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그림자가 천장의 흐릿한 형광등 불빛을 집어삼키며 민우의 발밑까지 뻗어왔다.

민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갑게 식어 내리는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과거의 배신이 남긴 지독한 인간혐오와 정서적 해리는 이런 순간에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는 동생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괴이들의 농간에 분노하는 대신, 이 비상식적인 현상의 인과관계를 냉정하게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심령 현상이 아니다.

민우의 시선이 포스기 하단 모니터 뒤편의 철판으로 향했다. 붉은빛을 발산하며 공명하고 있는 고대 알바생들의 시그니처 마크, 그리고 웅웅거리는 진동. 거울 속 형상들이 스크린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미세한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끼이익, 끄으으윽!*

거울 속 소희들이 일제히 손톱을 세워 유리 벽을 갈아대기 시작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예리한 소음이 매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녀들의 *끈적이는* 손가락이 기어이 유리 표면을 뚫고 나와 허공을 거칠게 더듬었다. 손끝이 공기에 닿을 때마다 *치지직*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저 거울을 깨고 나와 민우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결국 전파 교란과 같은 메커니즘이군."

민우는 주저 없이 포스기 모니터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괴이들이 내뿜는 인지 교란 파동이 편의점 내부에 흐르는 전류의 주파수와 물리적으로 공명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했다. 그 공명 주파수를 강제로 깨뜨리면 그만이었다.

민우는 포스기 시스템의 하드웨어 설정 메뉴로 진입했다. 화면 주파수와 전류 공급 전압을 강제로 역전시키는 특수 명령어를 빠르게 입력해 나갔다.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울렸다.

*타닥, 탁, 타다닥!*

"뭐…… 하는…… 거야…… 당장…… 멈춰……!"

박태식이 기겁하며 손을 뻗으려 했지만, 민우의 손가락은 이미 마지막 실행 버튼을 사정없이 연타하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포스기 모니터가 미친 듯이 점멸하며 강력한 고주파 노이즈를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편의점 전체의 형광등이 일제히 *펑* 소리를 내며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강렬한 전자기 파동이 매장 내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아아아아악!*

거울 속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유리벽을 뚫고 나오려던 *축축한* 손가락들이 주파수의 역전과 함께 맥없이 바스러지며 검은 가루로 변해 흘러내렸다. 사방을 가득 채웠던 소희의 참혹한 귀화 형상들이 마치 잉크가 물에 풀려 사라지듯 순식간에 분산되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매장 안을 가득 채웠던 이계의 눅눅한 안개가 한순간에 걷혔다.

민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포스기 화면을 확인했다. 주파수가 안정세로 접어들자, 거울은 다시 평범하고 차가운 거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박태식은 카운터 구석에서 이빨을 부딪치며 민우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의 그림자는 이미 본래의 크기로 축소되어 있었다.

"꽤나…… 영리하군…… 강 씨……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

박태식은 씹어뱉듯 중얼거리며 천천히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그의 주머니 속에 든 검은 마개 열쇠가 다시 한번 기이하게 반짝였지만, 민우는 그것을 쫓는 대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골든핑거의 부작용으로 대뇌 피질 일부가 사멸해가는 극심한 이염 통증이 측두엽을 강타했다. 콧구멍에서 흘러내린 가느다란 검은 피가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명이 또다시 단축되었다는 명확한 이정표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했다.

민우는 카운터 아래로 내려가 폐기 식품 보관함으로 향했다. 이 공간에 숨겨진 본질적인 기만을 완전히 확증해야만 했다.

보관함 문을 열자 상해버린 삼각김밥과 도시락에서 나는 *시큼하고*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민우는 보관함 바닥의 모서리 부분을 거칠게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꺼칠한* 먼지와 이물질이 만져졌다. 가늘게 쪼개진 틈새 사이로 손톱을 밀어 넣어 힘껏 들어 올렸다.

*우두둑.*

보관함 하단의 이중 바닥이 뜯겨 나가며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먼지와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뒤덮인, 반쯤 파손된 구형 녹음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2화에서 수집했던 정보가 가리키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민우는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기계 표면은 *끈적끈적한* 불명의 액체로 오염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메모리 칩과 전원 단자는 온전해 보였다. 그는 녹음기를 포스기의 USB 포트에 연결했다. 오디오 드라이버가 인식되는 짧은 소음 뒤, 스피커를 통해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살려줘…… 이거…… 수칙이…… 아니야……."

첫 목소리는 공포에 질린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뒤이어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파쇄음이 울려 퍼졌다.

- "점장이…… 우리를…… 사육하고 있어……. 매뉴얼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가이드가 아니야……. 닭장에…… 모이를 뿌려주듯…… 우리 영혼을…… 가장 맛있게…… 숙성시키기 위해…… 던져주는…… 사료일 뿐이야……."

녹음기 너머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규칙을…… 완벽하게 지킬수록…… 우리는…… 이 공간에…… 완전히…… 귀속된다……. 탈출구는…… 지하에……."

*치지지직-*

녹음은 거친 잡음과 함께 끊겼다.

민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가설이 완벽한 확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시급 10만 원과 3억 원이라는 거액의 수술비는 달콤한 미끼에 불과했다. 이 CU 도화점이라는 공간은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대피소가 아니라, 인간의 절망과 공포를 극대화하여 영혼을 수확하는 거대한 '자동 도살 기계'였다. 제공되는 매뉴얼 역시 생존을 위한 밧줄이 아니라, 도살되기 직전까지 얌전히 가두어 두기 위한 사육 지침서였다.

"오빠…… 나 너무 무서워……."

진열실 후면 통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소희가 기어 나왔다. 그녀의 바지는 흙 먼지와 오물로 더러워져 있었고, 왼쪽 눈가에 새겨진 하얀 수술 흉터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3화에서 동기화 도중 보았던, 흰 꽃을 든 임산부 괴담의 얼굴에 새겨져 있던 바로 그 흉터와 동일한 모양이었다. 한소희 역시 이 편의점의 도살 메커니즘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는 영혼의 파편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소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나…… 그냥…… 죽을래…… 어차피…… 못 나가…… 오빠도…… 봤잖아…… 거울 속의…… 나를……."

그녀는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공포에 질려 이성이 마비된 인간은 도살 기계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될 터였다.

민우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소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얇고 *축축한* 손목을 가차 없이 꽉 그러쥐었다. 뼈가 조여드는 강한 악력에 소희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민우를 올려다보았다. 민우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정심이나 온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철저하게 계산된 냉혹함만이 서려 있었다.

"죽고 싶으면 매장 밖으로 걸어 나가서 죽어. 여기서는 내 허락 없이 못 죽어."

"놓으라고……! 아파……!"

"아프면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입 다물어."

민우는 소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너는 아직 쓸모가 있어. 이 통로 안쪽의 배선을 끝내야만 진짜 수칙의 이면 계약을 발동시킬 수 있으니까. 내 말대로만 움직이면 빚이든 뭐든 청산하고 살아서 나갈 수 있게 해주지. 하지만 한 번만 더 자포자기한 개소리를 지껄이면, 그때는 그 주둥이부터 찢어 발겨서 괴이들의 먹이로 던져줄 줄 알아."

민우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는 거울 속 괴이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서늘했다. 소희는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억눌려 입술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민우는 구원자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도구로 부려 먹기 위해 억지로 숨을 붙여놓는, 또 다른 형태의 괴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댈 곳은 이 냉혹한 괴물뿐이었다.

민우는 소희를 일으켜 세우고 포스기 하단 철판의 음각 마크를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거친 감각과 함께, 머릿속에서 잔존 사유의 고리가 느슨하게 반응했다.

이제 구조는 파악했다. 남은 것은 이 도살 기계를 역으로 해킹하여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카운터 내부, 민우의 발밑에 깔린 타일 틈바구니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꿀럭, 꿀럭…….*

마치 하수구가 역류하는 듯한 둔탁하고 불쾌한 소리였다. 이내 틈새 사이로 시커먼 심연의 구정물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썩은 피와 오물이 뒤섞여 끈적이는,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액체였다.

구정물은 순식간에 카운터 바닥을 채우더니, 매장 하단 전체를 향해 피웅덩이를 그리며 서서히 침윤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액체가 민우의 구두 굽을 적시는 순간, 매장 깊은 곳에서 거대한 이빨이 맞물리는 듯한 무거운 철제 구동음이 울려 퍼졌다.

도살 기계의 진짜 '식도'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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