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강 씨. 들었어? 오늘 밤 자정은 매뉴얼 자판이 아예 꺼질 거라네."
어깨를 짓누르는 손아귀가 뱀껍질처럼 꺼칠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박태식의 숨결은 썩은 이끼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콧날 바로 옆까지 들이밀어진 그의 얼굴은 주름 골짜기마다 누런 기름기가 **진득하게** 고여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위장이 **끈적하게** 뒤틀리는 불쾌감이 솟구쳤다. 민우는 귓가에 울리는 징그러운 웃음소리를 무시하며, 턱 끝으로 흘러내리는 검은 피를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잔존 사유 동기화의 페널티는 대뇌를 불에 달군 쇠창살로 쑤셔대는 듯한 극통으로 돌아와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손 치워."
민우의 목소리는 물기 없이 메말라 있었다. 타인의 손길이 닿은 어깨 부위가 마치 오염된 타르에 절여지는 듯한 불쾌한 감각에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주머니 속에서 움켜쥔 반파된 녹음기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허허, 젊은 친구가 싹수가 없기는. 내가 걱정돼서 해주는 소리잖아. 오늘 밤은 쥐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 말이야."
박태식은 히죽거리며 손을 떼어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민우의 셔츠 깃을 스칠 때마다 **스스슥** 하는 불길한 마찰음이 들렸다.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짤랑이는 쇳소리가 났다. 검은 마개 열쇠. 4화에서 보았던, 그가 소중히 만지작거리던 그 열쇠가 분명했다. 박태식은 민우의 일그러진 안색을 즐기듯 턱을 괴고 카운터에 기대어 섰다.
"매뉴얼이 안 나오면, 넌 뭘 보고 버틸 건가? 그 잘난 머리로 손님들 비위라도 맞추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그래, 어디 잘해봐야지. 일주일만 버티면 3억인데, 벌써부터 뇌가 녹아내려선 쓰나."
박태식의 눈동자가 민우의 코 밑에 묻은 검은 혈흔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무언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한 음험한 미소가 그의 입꼬리에 매달려 있었다. 민우는 대답을 생략한 채 포스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매장 전체를 밝히고 있던 형광등이 일제히 파르르 떨렸다.
*치지직, 툭.*
기계음과 함께 편의점 내부의 모든 불빛이 암전되었다. 단순한 정전이 아니었다. 공기 자체가 얼어붙듯 차가워지며 벽면을 타고 **축축한** 한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외부의 가로등 불빛마저 차단된 유리창 너머는 칠흑 같은 심연으로 변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타일 바닥을 기어 다니는 듯한 **스스슥** 소리가 사방에서 공명했다. 이계의 시간선이 현실을 완전히 집어삼킨 것이었다.
"오호라, 예정보다 빠른데?"
박태식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멀어졌다. 그의 발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가벼웠고, 곧이어 직원 전용실의 문이 굳게 닫히는 둔탁한 철문 소리가 들렸다. 사냥터에 제물을 홀로 남겨두고 관람석으로 피신하는 사냥꾼의 앞잡이 다웠다.
민우는 어둠 속에 우뚝 선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뇌세포가 괴사하는 이염 통증 속에서도 이성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매뉴얼이 인쇄되는 포스기 본체는 전원이 완전히 나가 죽어 있었다. 이대로 물리 전력이 차단된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정에 내려올 네 번째 오더를 확인하기는커녕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괴이들에게 무방비로 찢겨 죽을 터였다.
'전원이 차단되었다면, 우회로를 만든다.'
민우는 카운터 아래쪽의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바닥은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먼지와 정체 모를 **질척한** 액체로 오염되어 있었다. 손끝에 닿는 전선 더미들이 뱀의 똬리처럼 **끈적하게** 엉켜 있었다. 그는 기억해 냈다. 이계로 변하는 편의점이라 할지라도 포스기 시스템의 하드웨어 자체는 현실의 규격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카운터 최하단 구석,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무정전 전원 장치(UPS)의 묵직한 쇠 상자가 만져졌다. 비상시를 대비해 내장된 배터리 팩이었다. 민우는 이빨로 거친 전선 피복을 벗겨냈다. 입안 가득 씁쓸한 구리 맛과 함께 쇠비린내가 퍼졌다.
"하아, 하아……."
귀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벽면을 따라 **스슥**거리며 다가오는 어둠의 윤곽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것들이 민우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동기화를 거듭할수록 이계의 존재들에게 자신의 물리적 형상이 뚜렷해진다는 페널티가 살죽을 파고드는 공포로 다가왔다.
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포스기 전원선과 UPS의 출력 단자를 직접 연결했다. 구리선끼리 맞닿는 순간, 파란 불꽃이 튀며 그의 손가락 끝을 따갑게 지졌다.
*찌르르릉!*
날카로운 기계 비명과 함께 포스기 본체의 붉은색 비상 표시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강제로 직렬 구동된 전압이 메인 보드로 흘러 들어가는 소리였다. 포스기 모니터가 희미한 푸른 빛을 뿜으며 어둠 속에 민우의 실루엣을 비추었다.
"성공이다."
민우는 거칠게 가쁜 숨을 내쉬며 포스기 화면을 매만졌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화면에는 붉은색 경고 문구만이 가득 차 올랐다.
[시스템 오류: 메인 서버와의 연결이 두절되었습니다. 수칙 데이터 출력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박태식의 말대로 오늘 밤의 매뉴얼은 출력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규칙이 없는 밤. 그것은 도살 기계의 톱니바퀴가 폭주하여 안의 내용물을 통째로 갈아버리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민우는 좌절하는 대신, 포스기 모니터를 옆으로 강하게 밀쳐냈다. 희미한 푸른 광원 아래, 포스기 뒤편의 철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무수한 손톱자국과 칼날로 긁어 만든 듯한 기괴한 형상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전 근무자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남긴 시그니처 마크들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그 표식들을 쓸어내리자, 차가운 철판 사이에서 **축축하고** **끈적한** 감촉이 묻어났다. 오래된 피가 굳어 생긴 기이한 결정체들이었다.
"이건…… 단순한 낙서가 아니야."
마크들의 배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민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편의점 내부의 전력 계통도이자, 이계의 흐름을 방해하는 간이 '접지 회로'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과거 무덤으로 변해버린 이 편의점에서 죽어간 영혼들이, 자신들의 피와 원한을 담아 새겨놓은 해킹 프로토콜이었다.
그때, 민우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이계로 격리된 공간에서는 외부와의 통신이 불가능할 터였다. 액정 화면에 뜬 발신인은 '동생 민지'였다. 민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민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급하게 짓이겨지는 기계음과 낯선 남자의 쉰 목소리였다.
- 강민우 씨 되십니까? 여기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입니다! 동생 강민지 환자가 방금 전 심정지가 와서 긴급 심폐 소생술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당장 오셔야 합니다! 환자 상태가 매우……!
"……."
- 여보세요? 여보세요! 들리십니까? 지금 당장 보호자 동의가……!
뚝, 하며 신호음이 끊겼다.
민우의 심장이 갈비뼈를 찢고 나올 것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는 느낌이었다. 하나뿐인 동생, 자신이 이 지옥 같은 편의점의 도살 규칙 속에서 영혼을 갉아먹으며 버티는 유일한 이유인 민지가 죽어가고 있었다. 3억 원이라는 이식 수술비가 코앞에 있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안 돼."
민우는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입술이 터져 비린 피가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빛은 슬픔이나 절망 대신, 생존을 향한독기와 잔혹한 집념으로 차갑게 타올랐다. 여기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귀환하기 위해선 오늘 밤을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했다.
*스스스슥.*
매장 정문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유리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끼리릭** 비명을 질렀고, 틈새로 기어들어 오는 한기가 발목을 **질척하게** 감싸 안았다. 사냥꾼들이 마침내 민우의 선명해진 윤곽을 감지하고 사냥을 시작한 것이었다.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진입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아니, 방법은 있어.'
민우는 포스기 측벽 음각 진열대 안쪽의 시그니처 마크들을 노려보았다. 역대 근무자들이 남긴 피의 회로. 그리고 자신이 직렬로 연결해 둔 고압의 UPS 배터리 선.
그는 주저 없이 주머니에서 반파된 녹음기를 꺼내 그 금속 안테나를 포스기 뒤편의 철판 마크 중심부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배터리에서 끌어온 고압 전선을 마크의 궤적 시작점에 강제로 마찰시켰다.
"모두 태워버려."
*콰과과광!*
강렬한 스파크와 함께 매장 전체에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포스기 내부에서 역류한 전기 에너지가 역대 알바생들의 피조각 마크를 타고 흐르며, 편의점 내부의 이계 기류와 격렬하게 충돌했다. 푸른 전기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어둠을 찢어발겼다.
"끄아아아악!"
유리창 너머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괴생명체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강렬한 물리 전력과 이계의 거부 반응이 합선되면서 발생한 파동이 사냥꾼들의 접근을 완벽하게 격퇴한 것이었다. 매장을 가득 채웠던 **축축하고** **끈적한** 어둠의 기운이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져 갔다.
민우는 숨을 헐떡이며 카운터 바닥에 주저앉았다. 터져 나온 스파크로 인해 손등의 살갗이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승리감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기어코 생로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은 채 몇 초도 가지 못했다.
격퇴의 불빛이 완전히 사그라들고 사방이 고요한 정적에 휩싸인 순간.
카운터 아래 깊은 곳, 폐기 식품 보관함 하단의 이중 바닥 틈새에서 잠자고 있던 또 다른 무언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지지직.*
과거에 보관해 두었던 반파된 녹음기의 스피커에서, 민우가 작동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소음 주파수가 저절로 전송되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쇠붙이를 긁어대는 듯한, 그리고 무언가가 젖은 진흙 속에서 울부짖는 듯한 소름 끼치는 주파수였다.
그 지독한 소음 속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음성이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지독한 소음 속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음성이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야간…… 근, 무자…… 수칙…… 제…… 4조……."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건조하고 평탄했다. 하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마다 침이 고인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질척한** 마찰음이 섞여 들었다. 민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녹음기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전임자의 피가 녹음기 틈새로 스며들어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녹음기 속 목소리는 이계의 지배자이자 편의점 점장인 '공허'의 것이 분명했다.
"정전…… 발생…… 시…… 즉시…… 금고…… 안의…… 열쇠를…… 삼, 킬…… 것……."
뚝, 뚝 끊어지는 목소리가 매장의 차가운 공기를 타고 흘렀다. 민우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열쇠를 삼키라니. 그것은 인간의 신체를 찢고 들어가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기만 수칙이었다. 녹음기 속 목소리는 이어서 기괴하게 일그러진 웃음소리를 내뿜었다. 그것은 마치 수십 마리의 쥐가 어둠 속에서 **스스슥**거리며 살점을 갉아먹는 듯한 불쾌한 파열음이었다.
"그…… 러면…… 너희…… 는…… 가장…… 안전한…… 고기…… 가…… 된다……."
도살 기계의 숨겨진 지령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민우는 어금니를 사정없이 맞물렸다. 격렬한 분노와 배신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그의 이성은 차갑게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매뉴얼은 생존 지침서가 아니었다. 닭들에게 모이를 주며 도축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사육 가이드라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 민우의 등 뒤에서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연속된 동기화의 대가였다. 뇌세포가 사멸하는 이염 통증이 척추를 타고 내려와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가운데, 민우의 몸 구석구석에서 희미한 푸른 윤곽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계의 존재들에게 그의 물리적 위치가 완전히 각인되었다는 증거였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자신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감각에 목덜미의 솜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스슥, 스스스슥.*
천장 환풍구 틈새에서 **축축한** 점액질이 뚝뚝 떨어지며 타일 바닥을 적셨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그것들의 형체는 인간의 인지를 초월해 있었다. 빛이 사라진 편의점 내부에서, 민우의 빛나는 윤곽은 어둠 속의 이정표와도 같았다.
"이대로 물러설 것 같나."
민우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납처럼 무거웠고, 시야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그는 포스기 뒤편에 새겨진 피의 시그니처 마크들을 다시 한번 강하게 짓눌렀다.
하지만 그 순간, 카운터 뒤편의 직원 전용실 문이 **끼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내며 느리게 열렸다.
문틈 사이로 뻗어 나온 것은 박태식의 꺼칠한 손이었다. 그러나 그 손가락은 기이할 정도로 길게 늘어나 있었고, 손톱 끝에는 검붉은 살점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그의 주머니 속에서 짤랑이던 검은 마개 열쇠가 어둠 속에서 기괴한 보랏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 씨…… 결국…… 알아챘구나……?"
박태식의 목소리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망자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여 웅얼거리는 듯한 **질척한** 울림이 매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의 깨진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눈동자는 굶주린 야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매뉴얼이 꺼진 지옥의 한복판에서, 진짜 사냥꾼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