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포스기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시퍼런 고압 전압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깨진 액정의 균열 틈새마다 검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좁은 계산대 안을 가득 메웠다.

"계약 파기를 고한다. 도살 단두대를 즉시 낙하하라."

천장을 가득 메운 검은 쇠사슬들이 서로를 갉아먹는 듯한 쇳소리를 내며 풀려나갔다.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모양의 거대한 칼날들이 민우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내렸다. 칼바람이 이마를 스치며 살가죽을 엘 듯한 냉기를 뿜었다.

오른쪽 다리를 디디려 했으나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골든핑거의 페널티로 이미 왼쪽 하반신은 굳어버린 시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바닥 타일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검은 피가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려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매장 안은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하고 습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목구멍을 턱턱 막히게 했다.

민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머리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차갑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이 궤적 자체를 부수면 된다.

민우의 손가락이 포스기 하단 모니터 뒤편의 주 전력 케이블을 움켜잡았다. 철판에 조각된 역대 도살자 알바생들의 특수 시그니처 마크들 위로,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검은 피가 정교하게 채워져 있었다. 민우는 주저 없이 포스기 하단의 고압 UPS(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 라인을 뜯어내어, 그 피가 흐르는 음각 홈 위로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스슥, 스스슥!*

강렬한 스파크가 민우의 손가락뼈를 하얗게 투과하며 살을 지졌다. 단백질이 타는 비린내가 진동하고 손등의 살가죽이 순식간에 검게 그을렸다. 극심한 고열이 신경계를 타고 뇌로 역류했지만, 민우는 비명 대신 입술을 깨물어 피를 삼켰다. 전류의 흐름이 강제로 역전되며 제어 패널의 내부 회로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투콰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포스기 내부 제어판이 한 발 앞서 강제 폭파되었다. 사방으로 사정없이 흩날리는 플라스틱 파편과 구리선들이 민우의 뺨을 긁고 지나가 붉은 선을 그었다. 낙하하던 단두대의 전자기식 고정 장치가 과부하로 터져 나가며, 칼날들이 민우의 안경 코받침 바로 위 불과 수 센티미터 앞에서 뚝 멈춰 섰다. 강한 금속성 진동이 공기를 흔들며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다.

그 흐트러진 스파크 너머로,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이 기괴한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자정의 편의점이라는 이계의 차단막을 뚫고 들어오는 진동이었다. 액정 위로 붉은 피가 번진 화면에는 '도화 성심병원 ICU'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민우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화기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날카로웠고, 배경음으로는 심전도 모니터의 다급한 경고음이 섞여 들렸다.

"강민우 씨...! 민지 환자, 심장이... 갑자기 임계점에 달했어요. 앞으로 3시간... 3시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당장 병원으로 오셔야 해요!"

점장 '공허'가 걸어둔 살가죽 영수증의 담보 조건이 현실의 동생을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잔여 수명이 3시간으로 단축됨과 동시에, 동생의 생명선 역시 정확히 3시간의 모래시계 속에 갇혀버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망에 울부짖으며 주저앉았을 순간이었다. 그러나 민우의 회색빛 눈동자는 오히려 유리알처럼 맑게 가라앉았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공포를 정서적 해리 장벽 너머로 완전히 밀어내 버린 채, 오직 머릿속의 수식만을 정렬했다.

'3시간. 내 목숨과 민지의 목숨이 동기화되었다. 슬퍼할 시간은 1초도 없다. 그 전에 이 자동 도살 기계의 외곽 결계를 해체해야만 살아나간다.'

민우는 마비된 왼쪽 다리를 끌며 차가운 흙먼지가 서린 바닥을 기어갔다. 바닥 타일은 기괴한 이계의 점액질로 뒤덮여 끈적하고 기분 나쁜 촉감을 전해왔다. 매장 구석구석에서 습한 안개가 피어올라 가뜩이나 어두운 시야를 흐려놓았다.

그가 기어간 곳은 폐기 식품 보관함이었다. 민우는 떨리는 손끝으로 보관함 하단의 이중 바닥 틈새를 거칠게 뜯어냈다. 나무판이 부서지며 손톱 밑이 찢어져 피가 배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안쪽 깊숙한 곳에서 마침내 반파된 녹음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2화에서 그가 숨겨두었던, 전임 근무자들의 죽음이 기록된 유품이었다.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지직거리는 소음 사이로 점장 공허의 왜곡된 가짜 수칙 보이스가 흘러나왔다.

"알바생들은... 12시 30분이 되면... 폐기 도시락을... 먹어라... 그것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사육용 덫에 불과했던 가짜 지령의 주파수. 민우는 그 기만적인 목소리의 특정 헤르츠가 매장 출입구를 가로막은 외곽 콘크리트 원형 결계막의 공명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연산해 냈다.

이어서 민우는 자신의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금속 덩어리를 꺼냈다. 그것은 소멸한 매니저 박태식의 품에서 회수했던 '검은 마개 열쇠'였다. 차갑고 끈적한 검은 기름 같은 것이 묻어 있는 열쇠의 표면에는,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영혼 수확 장부창의 인장이 음각되어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연결 고리다."

그때, 매장 한구석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번졌다. *스슥, 스스슥.* 흰 꽃을 든 임산부 괴담의 형상이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이며 서서히 실체화되었다. 민우는 골든핑거의 동기화 능력을 극대화하여 그녀의 존재적 윤곽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이염 통증이 정수리를 찌르고 들어와 각혈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선명해지는 그녀의 얼굴. 왼쪽 눈가에 길게 찢어진 수술 흉터가 보였다. 그것은 이 편의점에 들어왔다가 영혼이 찢겨 나간 한소희의 본래 인격체 파편이었다. 괴담에 종속된 줄 알았던 존재가, 실은 잔인하게 도살당해 껍데기로 쓰이고 있던 동료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임산부의 형상이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한소희의 목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비명으로 매장을 울렸다.

"나...는... 소...희... 살...려... 오...빠... 뜨...거...워... 여...기...서..."

민우는 그녀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동정심이나 슬픔 따위는 그의 뇌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한소희의 영혼 파편이 내뿜는 파동과 녹음기에서 나오는 공허의 가짜 목소리, 그리고 검은 마개 열쇠의 인장을 조합해 결계를 해제할 최적의 연산식을 도출해 낼 뿐이었다.

"고맙다, 한소희. 좋은 장기말이었어."

민우는 검은 마개 열쇠를 포스기 하단 모니터 뒤편의 음각 시그니처 마크 정중앙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녹음기에서 나오는 주파수의 최고조 타이밍에 맞춰 열쇠를 힘껏 돌렸다.

*콰르릉!*

포스기 하단에서부터 시작된 왜곡된 연산이 매장 전체의 인과율을 뒤흔들었다. 편의점 출입구를 굳건히 막아서고 있던 거대한 외곽 콘크리트 원형 결계막이 일격에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계의 주인 역시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편의점의 전면 유리벽 전체가 기괴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투명하던 유리가 순식간에 시커먼 암흑으로 물들더니, 그 너머로 점장 '공허' 본래의 심연 무덤 안개가 끝없이 부상했다.

그리고 유리창 전체를 가로지르며, 생명을 수확하기 위한 거대한 검은 낫날이 그 서늘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유리문 너머의 안개가 기분 나쁘게 소용돌이치며 민우의 마지막 3시간을 집어삼키려 다가오고 있었다.

*철커덕, 콰르릉!*

유리창 전체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우그러들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은 외부로 튕겨 나가는 대신, 마치 살아 움직이는 이빨처럼 공중에서 *스슥, 스스슥* 소리를 내며 날카롭게 맴돌았다. 깨진 틈새로 밀려드는 공기는 무덤 속의 흙처럼 *축축하고* 소름 끼치도록 차가워 민우의 노출된 목덜미를 사정없이 핥았다. 공허의 거대한 낫날이 편의점 내부를 단숨에 양분할 기세로 검은 궤적을 그리며 짓쳐 들어왔다.

민우는 도망치는 대신 바닥에 가득한 전임자들의 흘러내린 피 위로 주저앉았다. 마비된 왼쪽 다리가 바닥의 *질척이는* 점액질에 쓸리며 기분 나쁜 마찰음을 냈고, 이마에서는 *끈적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눈가를 적셨다. 피할 곳은 없었다. 낫의 기동 속도는 인간의 물리적인 반사 신경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기에, 오직 이계 법칙의 맹점을 찾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생로였다. 그는 떨리는 주먹을 쥐고 바닥에 고여 있는 검붉은 혈흔에 제 손바닥을 거칠게 문질렀다.

"동기화(Residual Memory)... 실행."

뇌하수체가 마치 뜨거운 송곳으로 쑤셔지는 듯한 *지리릭* 하는 극통이 두개골을 관통했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코끝으로 *비릿하고* 텁텁한 피비린내가 역류했고, 피부에는 얼음장 같은 *서늘한* 음기가 닿았다. 잔여 수명이 또다시 1시간 단축되어 이제 남은 시간은 단 2시간뿐이었다. 수명이 깎여 나감과 동시에 그의 존재적 윤곽이 이계의 존재들에게 더욱 선명하게 노출되었고, 공기 중의 어둠이 그를 향해 더욱 날카롭게 뻗어왔다. 그러나 민우의 대뇌에는 방금 사망한 전임 근무자의 마지막 1분이 강제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재현된 기억 속에서, 한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다 저 거대한 낫에 허리가 잘려 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파삭!* 하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내장이 바닥으로 쏟아지는 *축축한* 촉감이 민우의 신경계에 고스란히 동기화되었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민우는 냉정하게 낫의 메커니즘을 연산했다. 저 사냥꾼의 무기는 생명체의 온기와 호흡을 추적해 궤적을 수정하는 성질을 띠고 있었다. 호흡을 멈추고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리지 않는 한, 매장 안의 활자는 반드시 찢어발겨질 운명이었다.

기억에서 이탈한 민우는 즉시 몸을 움직였다. 그는 깨진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냉매 배관을 향해 손을 뻗어, 뿜어져 나오는 액체 질소 가스를 자신의 온몸에 뒤집어썼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살갗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동상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가뜩이나 *축축하게* 젖어 있던 옷자락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갔고, 입에서 나오는 숨결마저 얼어붙어 *서걱거리는* 성에로 변했다. 그는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를 가둔 채 호흡을 완전히 차단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검은 낫날이 민우의 머리 위를 간발의 차로 쓸고 지나갔다. 금속이 벽을 긁는 듯한 *끼이이익* 하는 파괴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고, 폭풍에 날린 진열대 파편들이 그의 몸 위로 *질척하게*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타겟의 온기와 호흡을 완전히 잃어버린 낫날은 갈 길을 잃은 채 그대로 편의점 전면의 유리 방벽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점장이 쳐둔 가장 견고한 물리적 차단막이 스스로의 무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며 박살 났다. 매장 밖으로 통하는 탈출구가 드디어 완전히 열린 것이다.

입에 가득 찬 검은 피를 뱉어내며 민우는 무너지기 시작하는 출입구를 향해 몸을 기어갔다. 손바닥 아래로 *서걱거리는* 유리 잔해와 *끈적이는* 점액이 뒤섞여 상처를 사정없이 파고들었지만, 그의 눈은 오직 하나만을 향해 있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야 할 바깥 도로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잠겨 있었다. 그 순간, 바닥에서 웅웅거리던 스마트폰의 액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지지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액정의 플라스틱이 녹아내리며 마치 생명체의 피부처럼 *물말랑하고* 기분 나쁜 촉감으로 변해갔다.

"오...빠..."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것은 의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도화 성심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야 할 동생, 민지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매장 깊숙한 곳, 심계의 식도로 이어진다고 알려진 폐기 창고의 무거운 철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스스로 열렸다. 그 어두운 틈새 너머에서부터, 지독하게 *습하고 비린* 냉기와 함께 민지가 평소에 쓰던 낡은 분홍색 머리끈이 피에 젖어 *질척하게* 바닥으로 굴러 나왔다. 병원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애초에 현실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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