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장부가 붉은 화염 속에서 꺼져가며 단말마의 고함을 질렀다. 그 비명에 반응하듯, 저 멀리 냉장고 정육 가판대에 걸려 있던 날것의 육고기들이 스스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뼈가 맞춰지는 기괴한 서걱거림이 지하의 습한 공기를 찢었다. 붉고 진득한 살덩이들이 쩍쩍 갈라진 가죽과 엉겨 붙으며 순식간에 기하학적인 형상의 인면 사냥견들로 조립되었다. 놈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계단을 향해 폭풍처럼 질주했다. 발톱이 시멘트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질척이는 핏물이 계단 사방으로 튀었다. 마비된 왼쪽 다리는 얼어붙은 통나무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민우는 여덟 번째 계단 위에서 이를 악물고 상체만을 돌려 뒤를 보았다. 놈들의 주둥이에서 흘러내린 끈적한 타액이 계단 바닥에 닿자마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썩어 들어가는 냄새를 풍겼다. 거리는 불과 다섯 걸음. 놈들의 벌어진 목구멍 안쪽에서 인간의 잘려 나간 혀들이 뭉쳐진 기괴한 기관이 쉭쉭거리며 맥박치고 있었다.

탈출로는 막혔고 도약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민우의 연산은 멈추지 않았다. 차가운 벽면을 짚은 손끝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 배관의 감각. 머리 위쪽, 지하 대피소용으로 매립된 대용량 이산화탄소 소방 가스 수동 벨브가 시야에 들어왔다.

민우는 주머니 속에서 이미 차디차게 식어버린 박태식의 유품을 움켜쥐었다. 박태식이 호주머니 속바닥에서 조용히 만지작거리던, 검은 기름이 흘러내리는 기괴한 질감의 검은 마개 열쇠였다. 편의점 지하 깊숙한 영혼 수확 장부창을 여는 무기화 핵심 열쇠이자, 이 세계의 계율을 비트는 물리적인 매개체. 민우는 그 열쇠의 날카로운 끝부분을 벨브 안전핀 사이에 밀어 넣어 단번에 비틀어 꺾었다.

- 슈우우우우욱!

고막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짙은 회백색의 탄산가스가 계단 통로 전체로 뿜어져 나왔다. 영하 78도의 극저온 액화 탄산이 공기 중의 수분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며 짙은 안개를 형성했다. 사방이 하얗게 가려진 순간, 질주하던 인면 사냥견들의 폐부로 지독한 냉기가 강제 주입되었다.

"크으…… 윽……!"

사냥견들의 목구멍에서 나오던 기괴한 인간의 목소리가 단단히 얼어붙어 쩍쩍 갈라졌다. 세포 조직이 급속도로 동결되며 놈들의 붉은 가죽 위로 하얀 서리가 돋아났다. 수축한 근육이 얼어붙은 유리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민우는 가스 안개 속에서 숨을 참은 채, 들고 있던 검은 마개 열쇠의 모서리로 가장 선두에 서서 얼어붙은 놈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콰직!*

얼음 조각과 함께 굳어버린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들이마실 산소를 잃고 동결된 기괴한 생명체들이 차례로 균열을 일으키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무거운 고기 덩어리들이 바닥에 부딪히며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호흡을 차단당한 괴물들은 그 어떤 재생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차가운 재로 변해갔다.

그러나 안개가 걷히는 길목 끝,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냥견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등 뒤로 기괴하게 솟아오른 인간의 상체를 지니고 있었다. 민우는 그 존재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보았다. 3화의 사유 동기화 속에서 보았던, 하얀 꽃잎을 흩뿌리며 울부짖던 임산부의 원혼. 그리고 그 원형은 다름 아닌, 빚쟁이들을 피해 이 지옥에 들어왔다가 기괴하게 파멸해 간 신입 알바생 한소희의 뒤틀린 자아였다.

괴물의 왼쪽 눈가에는 칼로 도려낸 듯한 기괴한 수술 흉터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것은 괴담의 외피 아래에 갇힌 소희의 본래 잔존 인격체 파편을 증명하는 움직일 수 없는 고리였다.

"살…… 려…… 줘…… 오…… 빠……."

소희의 목소리가 뚝, 뚝 끊어지며 허공을 맴돌았다. 벌어진 상처 틈새로 검고 진득한 진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민우는 왼다리의 마비를 무시한 채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동정심 따위는 없었다. 오직 이 룰을 완벽하게 해킹하기 위한 계산적 정합성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민우는 품속에서 또 하나의 유물을 꺼냈다. 폐기 식품 보관함 하단의 이중 바닥에 숨겨져 있던, 반파된 구형 녹음기였다. 점장 공허가 알바생들을 기만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 녹음해 둔 거짓 지령의 원본이 담긴 물건.

민우는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지직거리는 불쾌한 고주파 소음과 함께, 점장의 비열한 목소리가 계단실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왼쪽 눈을 보지 마십시오. 그것은 함정입니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임산부 괴물의 형상을 한 소희의 영혼 조각이 발작하듯 비명을 질렀다. 거짓 규칙의 파동이 녹음기를 통해 역방향으로 흐르며 괴물의 형태를 유지하던 이계의 마법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아윽! 머…… 리가…… 깨…… 질 것…… 같아……."

민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비된 다리를 억지로 끌어당겨 괴물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오른손을 뻗어, 놈의 왼쪽 눈가에 새겨진 그 기괴한 수술 흉터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잔존 사유 동기화(Residual Memory)."

그 순간, 민우의 척수를 타고 수천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듯한 극통이 휘몰아쳤다. 대뇌 피질이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는 느낌과 함께 코골이 뼈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검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수명이 또다시 1시간 단축되는 파멸적인 대가. 시야의 가장자리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고, 편의점 천장의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뻗어 나오는 거대한 어둠의 촉수들이 민우의 물리적 윤곽을 한층 더 선명하게 움켜쥐는 감각이 전신을 엄습했다.

하지만 민우는 손을 떼지 않았다.

- "민지야, 오빠가…… 돈 꼭 벌어 갈게……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텨……." - "이 수술만 끝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동기화된 오감의 심연 속에서, 소희가 지니고 있던 절망의 기억과 민우 자신의 갈망이 한데 엉켜 격렬하게 충돌했다. 소희의 유실된 진정한 인격의 조각이, 민우의 뇌세포 속으로 역추출되어 들어오는 경로가 개척되었다.

*쩌저적!*

괴물의 왼쪽 눈가 흉터가 황금빛 실선처럼 갈라지며, 그 안에서 순수한 백색의 영혼 조각이 뽑혀 나왔다. 그것은 괴담의 저주받은 껍데기를 탈피해 민우의 정신세계 속으로 정합되었다. 껍데기만 남은 사냥견의 육체는 썩은 가죽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민우의 머릿속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 파편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소희의 영혼 조각이 품고 있던, 이 편의점의 진짜 실체와 도살 메커니즘의 핵심 연산 회로였다.

'점장 공허의 살해 연산 회로…….'

매 정각마다 인쇄되던 매뉴얼의 논리적 모순점을 생성하는 근원적인 알고리즘이 민우의 뇌리에 완벽한 수식의 형태로 각인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규칙의 우회가 아니었다. 공허가 인간의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설계한 '자동 도살 기계'의 설계도 자체를 완전히 장악하는 고단수 역해킹의 열쇠였다.

머릿속에 수장된 연산 회로들이 정렬되며, 민우는 비로소 이 지옥을 지배하는 규칙의 틈새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쥐게 되었다. 지독한 두통 속에서도 민우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단지 장기말로 쓰다 버릴 줄 알았던 존재의 잔해에서, 이 사냥터를 부술 가장 강력한 무기를 연산해 낸 것이다.

민우는 주머니에 검은 마개 열쇠와 반파된 녹음기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왼쪽 다리의 마비가 조금씩 풀리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소희의 영혼을 정합한 대가로 이계의 구속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된 덕분이었다.

계단을 딛고 올라와 편의점 1층 매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방의 형광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파지직! 콰쾅!*

포스기 모니터가 격렬하게 불꽃을 튕겨내며 검은 연기를 뿜었다. 영혼 수확 장부가 불타고 연산 회로가 해킹당한 것에 대한 포식자의 분노였다. 매장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진열대의 유리창들이 일제히 금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스기 스피커의 찢어진 틈새 너머로, 쇠를 긁는 듯한 점장 '공허'의 심연의 음성이 편의점 전체를 압살하듯 울려 퍼졌다.

[……근무자 강민우. 무단 침입 및 자산 훼손을 감지했다. 계약 파기를 고한다.]

*쿠구구구구!*

천장 텍스판들이 뜯겨 나가며, 거대한 강철 칼날 모양의 도살 단두대들이 민우의 머리 위에서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콰르릉!*

머리 위를 가득 메운 천장 석고판들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거대한 무쇠의 비명이 지하 매장을 뒤흔들었다. 허공을 가르는 단두대의 서슬 퍼런 칼날들이 *스슥* 소리를 내며 무자비하게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바닥 타일이 박살 나며 분출된 *습하고* 비린 연기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로막았다.

민우는 본능적인 공포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들이닥치는 강철의 궤적과 바닥의 격자무늬 타일을 교차하며 기하학적인 연산 속도를 가속했다. 이 이계의 도살 기계는 무작위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물리적 타격은 포스기 시스템의 좌표 신호에 따라 일정한 사각지대를 남기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쩍!*

단두대 칼날 하나가 민우의 뺨을 스치며 바로 뒤편의 담배 진열대를 수직으로 양분했다. 박살 난 담뱃갑들 사이로 *끈적한* 타르 냄새와 검은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귓가를 때리는 *스르릉* 하는 쇠사슬의 마찰음 속에서, 민우는 마비가 덜 풀린 왼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몸을 회전시켰다. 그는 가판대 뒤편의 좁디좁은 틈새, 즉 시스템이 '안전 재고 구역'으로 인식하는 오차 범위의 절점(節點) 속으로 자신을 가차 없이 던졌다.

가까스로 무쇠 칼날의 수직 낙하 궤적을 비껴갔지만, 여파로 발생한 충격파가 그의 몸을 카운터 안쪽으로 강하게 내팽개쳤다. 바닥을 구르는 민우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깨 가죽이 찢겨 나가며 *축축한* 검은 피가 옷자락을 적셨으나, 그의 시선은 이미 카운터 아래의 포스기 본체로 향해 있었다.

"이곳이…… 종착지다."

민우는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켰다. 포스기 모니터 뒤편, 굳게 닫힌 철판 부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 끝으로 철판의 서늘한 표면을 더듬자, 거칠게 음각 조각된 기괴한 무늬들이 만져졌다. 그것은 이 지옥을 거쳐 간 역대 도살자 알바생들이 죽기 직전 손톱과 칼끝으로 새겨 넣은 피의 흔적, 즉 고대 해제 프로토콜 암호였다.

모니터 배선에서 튄 불꽃이 민우의 손등을 지지며 *치익* 소리를 냈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검은 피를 그 음각 마크들의 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스슥, 스스슥.*

피가 정교하게 조각된 홈을 따라 흐르며 기괴한 보랏빛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뇌세포가 다시 한번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정수리를 관통했다. 전임자들의 잔존 사유가 민우의 뇌 속에서 소희의 영혼 조각과 격렬하게 융합되며, 매장의 공간 좌표를 왜곡하는 역연산 수식이 완성되었다.

허공에 멈춰 선 단두대의 칼날들이 마치 투명한 손아귀에 붙들린 것처럼 부르르 떨며 낙하를 멈췄다.

성공했다고 확신한 찰나, 포스기의 깨진 액정 위로 붉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점장 '공허'가 구축해 놓은 이계의 감옥은 생쥐 한 마리의 영악한 저항에 순순히 무너질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그르륵, 그륵.*

포스기 하단의 영수증 배출구에서 끈득한 액체에 젖은 종이가 천천히 밀려 나왔다. 그것은 종이가 아니었다. 인간의 가죽을 얇게 펴서 말린 듯, *끈적하고* 기괴할 정도로 *축축한* 촉감의 살덩이 표표였다.

민우의 시선이 그 살가죽 영수증에 적힌 붉은 글씨들로 향했다. 그곳에는 역대 사망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지불한 영혼의 가치가 소름 끼치도록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줄,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핏물로 적혀 내려가는 이름이 있었다.

[ 추가 담보 대상자 : 강민지 (계약자의 잔여 수명 3시간 도달 시 자동 수확 집행) ]

"민지……?"

언제나 차갑게 굳어 있던 민우의 안면 근육이 처음으로 사정없이 뒤틀렸다.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통증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치밀었다. 놈은 민우의 유일한 약점이자 그가 생명줄처럼 붙들고 있던 동생의 목숨을 이미 시스템의 담보물로 묶어둔 상태였다.

그 순간, 멈춰 서 있던 단두대의 쇠사슬들이 일제히 풀리는 이빨 빠진 소리가 매장 가득 울려 퍼졌다. 칼날들이 붉은 안개를 가르며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민우의 머리 위를 향해 동시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리는 이계의 차원 틈새 너머로, 수십 개의 거대한 검은 손아귀들이 그의 사지를 찢기 위해 어둠 속에서 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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