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이 서늘한 청색광을 뿜어냈다.
문자 메시지의 자구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10분. 본관 5층 대회의실. 불출석 시 면허 박탈 건의안 가결.
송민우가 강혁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훔쳐보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허, 참. 이 영감탱이들이 진짜 양아치 수준으로 노는구먼. 인턴 하나 잡으려고 기습 작전을 펼치시겠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흰 가운 주머니로 들어갔다. 손가락 끝이 주머니 속에 넣어둔 낡은 가죽 수첩의 모서리를 쓸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정재계 인사들의 은밀한 연락처가 가득 찬, 그의 가장 강력한 방패막이였다.
윤설아의 얼굴 역시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는 지난 수술 과정에서 팁이 미세하게 손상된, 그녀가 가장 아끼던 일제 맞춤형 마이크로 메스가 들어 있었다.
“가요, 백인턴.”
윤설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흉부외과 펠로우로서 저도 배석하겠습니다. 당시 수술실 상황의 합법성과 불가피성을 증명할 증인은 저니까요.”
강혁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왼손 끝에서부터 찌릿한 전류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윽.’
신경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강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최근 장부의 능력을 더블 액티베이션으로 과도하게 가동한 대가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왼손 손가락이 안쪽으로 굽어들며 기괴한 형태로 비틀렸다.
[시스템 경고: 심박수 124회/min 돌파. 잔여 동조율 42%. 급성 부정맥 및 정중신경 경련 주의.]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명멸했다. 강혁은 오른손으로 왼손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끝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압박하자, 날뛰던 신경 세포들이 가까스로 진정세를 보였다. 윤설아의 마이크로 신경 재건 데이터 덕분에 완전한 마비는 면했지만, 여전히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괜찮아?”
송민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혁의 왼손을 흘낏거렸다. 강혁은 주먹을 꽉 쥐어 떨림을 숨기며 나직하게 뱉었다.
“문제없습니다. 가시죠.”
세 사람의 발걸음이 임시외상구역의 콘크리트 복도를 지나 본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구관의 퀴퀴한 소독약 냄새와 달리, 본관 5층은 바닥의 대리석부터 은은한 아로마 향까지 완벽하게 자본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정적 속에 오직 세 사람의 구두 굽 소리만이 카펫이 깔린 복도에 무겁게 흩어졌다.
대회의실의 육중한 마호가니 문 앞에는 기획조정실 소속의 보안요원 둘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이 강혁의 앞을 가로막으려 하자, 송민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비켜라. 치프 레지던트다. 기조실장님이 친히 부르신 귀빈을 모시고 왔는데, 문 앞에서 개처럼 짖을 가치는 없겠지?”
특유의 능청스러우면서도 뼛속까지 시린 목소리였다. 보안요원들이 멈칫하는 사이, 강혁이 거침없이 문을 밀어젖혔다.
스르륵.
문이 열리자 거대한 반원형 회의 탁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기획조정실장 한태오가 태블릿 PC를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고, 그 우측에는 외과 과장 차민혁이 승리를 확신하는 뱀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강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주변을 둘러싼 열두 명의 징계위원들은 싸늘한 침묵으로 강혁을 압박했다.
“정확히 9시 59분이군.”
한태오가 시계를 보지도 않은 채 차가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흐트러짐 없는 기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백강혁 인턴. 그리고 송민우 전공의와 윤설아 펠로우까지. 여긴 자네들의 친목 도모 장소가 아니야. 배석 권한이 없는 자들은 당장 나가라.”
“의료법 및 병원 징계 규정 제14조 2항에 의거, 피심의인은 소명에 도움이 되는 관련 전문의 혹은 동료 의료인을 배석시킬 권리가 있습니다.”
윤설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대회의실의 높은 천장을 때리며 맑게 울렸다.
“제가 당시 철근 관통 환자의 수술에 참여한 흉부외과 책임자입니다. 제 배석을 거부하신다면, 이 징계위원회 자체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건복지부에 정식으로 제기하겠습니다.”
한태오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차민혁을 향해 가볍게 턱짓을 했다. 사냥개를 풀라는 신호였다.
차민혁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수술 기록지와 차트 뭉치가 들려 있었다.
“좋다! 윤 펠로우가 증인을 자처하니 더 잘 되었군. 백강혁!”
차민혁이 차트 뭉치를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퍽!
“네놈이 임시외상구역에서 저지른 만행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 여기 기록을 봐라. 환자 김만석의 수술 당시, 네놈은 병원 약제부의 공식 승인을 거치지 않은 정체불명의 약물을 임의로 동원해 투약했다. 맞지?”
강혁은 묵묵히 차민혁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 ‘정체불명의 약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장부의 ‘신체 기능 일시 안정화 버프’가 발동하면서 환자의 바이탈이 기적적으로 돌아온 것을, 병원 측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원인 불명의 일시적 약물 효과로 오인한 결과였다.
“공식 경로로 반입되지 않은 미승인 약물 투약.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자, 임상 시험 절차를 무시한 불법 인체 실험이다!”
차민혁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가늘게 떨렸다.
“환자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핑계로 네놈의 개인적인 영웅주의를 채우기 위해, 살아 있는 인간을 실험 도구로 삼은 거야!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네놈은 의사 면허 박탈은 물론이고, 실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주변에 앉은 징계위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인턴이 미승인 약물을?” “이건 병원 전체의 신뢰도가 걸린 문제야.” “당장 수사 기관에 의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독설과 비난이 비수처럼 강혁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강혁의 표정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시선은 차민혁과 한태오의 머리 위 허공을 향해 있었다.
스윽.
강혁의 가상 안구 위로 생명 구원 장부의 정보창들이 겹쳐졌다.
[대상: 한태오] [탐욕 수치: 98%] [이면 계약 이행률: 92% (가온 메디컬 뷰티 리조트 설립 건)] [심리적 불안도: 45%]
[대상: 차민혁] [학문적 허영도: 95%] [사유화 유착 기여도: 88%] [심리적 불안도: 75%]
‘결국 이거였군.’
강혁은 가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폐기물 수거함에서 확보했던, 한태오와 차민혁의 이름이 선명히 적힌 ‘가온 메디컬 뷰티 리조트 계획안’의 찢어진 조각들이었다. 그들이 외상구역을 없애고 세우려 하는 거대한 돈벌이 음모의 결정적 증거.
그것은 적들의 목을 단숨에 내리칠 수 있는 단두대의 밧줄과 같았다. 하지만 강혁은 지금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가장 완벽한 반격은, 적들이 승리를 확신하며 스스로 가장 깊은 구렁텅이로 걸어 들어갔을 때 행해져야 하는 법이었다.
“백인턴. 왜 아무 말이 없지?”
한태오가 차가운 눈빛으로 강혁을 압박했다.
“차 과장의 지적에 대해 소명할 말이 없는가? 미승인 약물의 성분은 무엇이며,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밝혀라. 침묵은 곧 혐의의 인정이다.”
강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한태오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
대회의실 내부를 가득 채운 백색소음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기묘한 적막이 흘렀다.
강혁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입가에 띤 채, 한태오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치 격정적인 무대 위의 배우를 구경하는 관객처럼, 지극히 오만하고도 차분한 태도였다.
10초. 20초. 30초.
시간이 흐를수록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질문을 던진 수뇌부였다. 보통의 인턴이라면 이 정도 권위와 압박 속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며 횡설수설 해명하거나 눈물을 흘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강혁의 눈빛은 너무나 맑고, 깊었으며,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송민우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강혁의 이 기괴할 정도의 대담함이 판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무례한 놈이!”
차민혁이 먼저 참지 못하고 책상을 쾅 쳤다.
“감히 징계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그따위 오만한 태도를 유지해? 당장 무릎 꿇고 네 죄를 자백해도 모자랄 판에!”
강혁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의 시선은 차민혁의 떨리는 손가락 끝에서, 다시 한태오의 미간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침묵 대항력. 그것은 상대의 권위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가장 고단수의 심리 타격이었다. 위원들 사이에서 당혹스러운 수군거림이 다시 일어났다.
“왜 저렇게 당당한 거지?” “혹시 우리가 모르는 다른 패가 있는 건가?” “소문에는 이사장 라인이라는 말도 있던데...”
회의실 내부의 공기가 미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한태오가 설계한 완벽한 단두대의 각본이, 강혁의 단 한 마디도 없는 침묵 때문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빡-!
결국 한태오의 이성이 먼저 한계를 드러냈다. 그가 들고 있던 값비싼 만년필을 탁자 위에 거칠게 집어던졌다. 만년필이 구르며 잉크 몇 방울이 하얀 대리석 바닥으로 튀었다.
“백강혁 인턴!”
한태오가 단상을 양손으로 짚으며 몸을 앞으로 굽혔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 내 인내심을 시험하자는 건가? 당장 그 말도 안 되는 조롱조의 미소를 지우고 소명해라! 지금 해명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즉시 의사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리고 보건복지부와 검찰에 불법 약물 투약 혐의로 정식 수사 의뢰를 집행하겠다!”
그의 윽박지르는 고함이 대회의실 벽면을 거칠게 때렸다.
완벽하게 평정을 잃은 사냥꾼의 발악이었다.
강혁은 그 모습을 보며 주머니 속 찢어진 계약서 조각을 조용히 움켜쥐었다. 그의 왼손 끝이 다시 한번 찌릿하게 떨려왔지만, 강혁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왼손 끝에서 시작된 마비감이 팔꿈치를 타고 올라와 쇄골 부근을 강하게 압박했다.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며 흉골 안쪽을 짓눌렀다. 장부의 과부하가 초래한 동조 통증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독소처럼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강혁은 턱근육을 단단히 악물었다. 신체적 고통이 극에 달할수록, 그의 이성은 차갑게 제련된 메스처럼 날카로워졌다.
“수사 의뢰라.”
강혁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분노로 씩씩거리는 한태오의 고함 소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기이할 정도로 차분하고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강혁은 고개를 돌려 단상 한편에 앉아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속기사를 바라보았다.
“속기사님.”
“예, 예?”
갑작스러운 부름에 속기사가 깜짝 놀라 자판 위에서 손을 멈추었다.
“지금 기조실장님이 하신 협박성 발언, 그리고 앞으로 제가 할 답변까지 단 한 글자도 빠짐없이 공식 기록에 남겨 주십시오. 나중에 법정이나 보건복지부 청문회에서 요긴하게 쓰일 증거물이 될 테니까요.”
“이, 이 건방진 놈이 끝까지...!”
차민혁이 참지 못하고 다시 고함을 지르려 하자, 강혁이 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쏘아 보냈다. 그 눈빛에 담긴 압도적인 살기에 차민혁의 목소리가 턱 막혔다.
강혁은 천천히 한태오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기조실장님. 원인 불명의 약물 투약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본질을 흐리시는데, 그렇다면 제가 역으로 묻겠습니다.”
“...무슨 소릴 하려는 거지?”
한태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생명 구원 장부의 불안도 수치가 45%에서 55%로 치솟는 것이 강혁의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지난 3월 16일, 임시외상구역으로 배정된 O형 적혈구 팩의 수량을 평소의 3분의 1로 제한하라고 행정 명령을 내린 주체가 누구입니까?”
침묵이 내려앉았다. 징계위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태오에게로 쏠렸다.
“또한, 광범위 항생제 처방 총액을 갑작스럽게 70% 감축하도록 전산 시스템을 조작한 배후는 누구입니까?”
“그건 병원의 합리적인 예산 절감 가이드라인에 따른...”
“합리적인 예산 절감?”
강혁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 자원 고사 작전 때문에, 이틀 전 본원 응급실에서 수술을 거부당해 레드존으로 밀려온 전신 철근 관통 환자는 사경을 헤맸습니다. 수혈할 피가 부족하고, 쓸 수 있는 항생제가 제한된 아수라장에서 제가 환자를 살려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강혁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대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기조실장님과 외과 과장님은 기다렸다는 듯 ‘거봐라, 외상구역은 살릴 가능성 없는 환자에게 아까운 예산만 낭비하는 무능한 곳이다’라며 즉시 폐쇄안을 집행하셨겠지요.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벌인 더러운 정치질의 결과물 아닙니까?”
“백강혁 인턴! 징계 심의 자리에서 허무맹랑한 선동을 계속한다면 즉시 퇴장 조치하겠다!”
차민혁이 삿대질을 하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식은땀이 그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한태오의 기색을 샅샅이 해부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송민우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능청스럽게 거들었다.
“아이고, 과장님. 목청 터지시겠습니다. 혈압 조절 좀 하셔야겠어요. 백인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잖습니까? 본원에서 안 받겠다고 밀어낸 골칫거리 환자, 저희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피가 없으면 식염수로 버텨 가며 살려놓았더니 이제는 미승인 약물이네 뭐네 꼬투리를 잡으시니 서운해서 살겠습니까?”
송민우의 손이 주머니 속 가죽 수첩을 툭툭 쳤다. 언제든 정재계 인맥을 동원해 언론에 이 폭로전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윤설아 역시 단호한 눈빛으로 한태오를 직시했다.
“당시 집도의였던 백강혁 인턴의 판단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만약 이를 문제 삼아 징계하려 하신다면, 저 역시 흉부외과 학회와 의사협회 고문 변호사단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겠습니다. 병원 수뇌부의 고의적인 자원 누출과 환자 방치 혐의에 대해서도요.”
세 사람의 완벽한 공조가 한태오를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갔다.
한태오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판세가 묘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백강혁이라는 인턴 하나를 제물 삼아 외상구역을 단숨에 숨통을 끊으려 했던 계획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덜미를 겨누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이 애송이 놈들이 감히 내 판을 흔들려 해?’
한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태블릿 PC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비수 같은 눈빛을 보냈다.
“증거도 없는 음해성 발언은 거기까지 해 두지. 자원 배분은 병원 경영진의 고유 권한이다. 그걸 징계의 면죄부로 삼을 수는 없어. 백강혁, 네가 아무리 말을 돌려도 미승인 약물 사용에 대한 명확한 성분 분석표나 소명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네 면허는 오늘부로...”
“증거요?”
강혁이 그의 말을 자르며 나직하게 되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운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혁의 손끝이 주머니 속에 깊이 감춰두었던 종이 뭉치를 끄집어냈다.
불에 그슬리고 찢어진,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문구와 두 사람의 친필 서명만큼은 선명하게 살아남은 이면 계약서의 파편들이었다.
[가온 메디컬 뷰티 리조트 설립 및 부지 확보 계획안] [...외상구역 폐쇄 후 해당 부지 무상 양도 및 지분 배분율: 기획조정실장 한태오 15%, 외과과장 차민혁 10%...]
강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찢어진 종이 조각들을 대회의실 광택 도는 마호가니 탁자 한가운데에 툭 던져놓았다.
종이 조각들이 가볍게 미끄러지며 한태오의 태블릿 PC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이 계획안과 이면 계약서 조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기조실장님.”
회의실 안의 모든 공기가 그 순간 완전히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