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수전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손가락 사이로 사납게 흩어졌다.
백강혁은 젖어 내린 앞머리 사이로 수석 전공의 강태수를 쏘아보았다. 강태수가 내민 하얀 봉투 위에는 가온대학병원 기획조정실의 붉은 직인이 선명한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무단 향정신성 의약품 절도 및 투약, 그리고 집도 권한이 없는 인턴의 수술 전횡. 봉투 겉면에 인쇄된 글자들이 마치 족쇄처럼 강혁의 눈을 파고들었다.
비열하게 뒤틀린 강태수의 입술 사이로 날 선 조소가 흘러나왔.
“이봐, 백강혁 인턴. 귀가 먹었나? 옷 벗을 준비나 하라고 했을 텐데.”
강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 그의 왼쪽 팔꿈치 아래쪽에서부터 시작된 기괴한 박동이 손가락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생명 구원 장부의 ‘이중 가동’이 남긴 가혹한 대가였다. 척수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안쪽으로 꺾여 들어가며 딱딱하게 굳어졌다. 척골신경 마비(Ulnar nerve palsy)로 인한 전형적인 갈퀴손(Claw hand) 변형이었다.
강혁은 떨리는 왼손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주먹을 쥐려 했으나 손가락은 제멋대로 비틀거리며 말을 듣지 않았다. 전신을 조여오는 급성 부정맥의 잔향이 심장을 무겁게 압박했다.
그는 오른손을 천천히 뻗었다. 젖은 손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강태수가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적셨다.
슥.
강혁은 봉투를 낚아챘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서류를 반으로 찢어발겼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조실의 붉은 직인이 두 동강 났다. 강혁은 찢어진 종이 조각들을 뭉쳐 세척실 구석에 놓인 의료폐기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붉은 피가 묻은 거즈들 위로 하얀 종이 뭉치가 툭 떨어졌다.
“너…… 미쳤어?”
강태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뒤에 서 있던 보안요원들이 움찔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가져가려면 제대로 된 걸 가져와.”
강혁의 목소리는 물속에서 건져 올린 돌처럼 차고 단단했다.
“이따위 종이 쪼가리로 날 협박할 시간에, 네가 방금 살려 놓은 환자 바이탈이나 한 번 더 체크해라. 어설프게 꼬리 밟으려다 역풍 맞지 말고.”
“이 새끼가 진짜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데, 이건 정식 징계위 소집장이다! 내일 오전 10시가 지나면 넌 더 이상 의사 가운을 입지 못해!”
강태수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기세등등한 외침을 깨부순 것은 세척실 자동문 너머에서 들려온 차가운 구두굽 소리였다.
또각, 또각.
수술실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흉부외과(CS) 펠로우 윤설아였다. 그녀는 칼로 자른 듯 단정한 단발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강태수와 보안요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 그녀의 손에는 방금 출력한 것이 분명한 환자의 수술 후 동향 보고서와 3D CT 판독 결과지가 들려 있었다.
“거기까지 하시죠, 강태수 선생.”
윤설아의 목소리에는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윤 펠로우? 이건 외과 내부의 징계 건입니다. 흉부외과에서 관여할 문제가…….”
“관여할 문제입니다.”
윤설아가 강태수의 말을 칼같이 자르며 판독 결과지를 강태수의 가슴팍에 들이밀었다.
“방금 백강혁 인턴이 집도한 철근 관통 환자, 우측 폐엽 절제술(Right lobectomy)과 횡격막 재건술(Diaphragmatic reconstruction)이 끝난 상태입니다. 수술 후 시행한 혈관조영술(Angiography)에서 미세 출혈(Micro-bleeding) 제로, 문합부 누출(Anastomotic leak) 제로입니다. 흉부외과 전문의인 내가 봐도 완벽한 집도였습니다.”
그녀는 강태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의료 규정 위반을 논하기 전에, 본원 응급실에서 거부해 죽어가던 환자를 살려낸 게 누군지 똑똑히 보세요. 기조실 한태오 실장의 지시로 O형 적혈구 팩을 제한하고 광범위 항생제 처방까지 막은 상태에서 이뤄낸 결과입니다. 이 데이터를 들고 학회에 가면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징계가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줘야 할 판국인데, 대체 무슨 명분으로 징계위를 열겠다는 겁니까?”
“윤설아!”
강태수가 이를 갈았지만, 윤설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강혁의 곁으로 다가와 서며, 마치 거대한 장벽처럼 그의 앞을 막아섰다.
“돌아가서 차민혁 과장님께 전하세요. 만약 백강혁 인턴을 징계위에 세우겠다면, 나 역시 임시외상구역의 공동 책임자로서 그 자리에 출석해 본원의 고의적인 자원 제한과 환자 방치 행위를 낱낱이 증언하겠다고.”
강태수의 얼굴이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보안요원들을 이끌고 온 기세는 이미 꺾인 지 오래였다. 그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찢어진 서류를 한 번, 그리고 차가운 눈빛의 윤설아와 백강혁을 번갈아 노려본 뒤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다.
“두고 봐. 법대로 처리할 테니까.”
자동문이 닫히고 강태수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세척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혁은 굳어버린 왼손을 주머니에서 빼내지 못한 채, 벽에 몸을 기대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강혁이 건조하게 말했다. 윤설아는 그를 돌아보며 손에 쥐고 있던 보고서를 세면대 위에 내려놓았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난 의사로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그녀의 시선이 강혁의 주머니 속에 갇힌 왼손으로 향했다. 예리한 흉부외과 의사의 눈 피할 수 없었다. 수술 중에도 미세하게 비틀리던 그의 손가락, 그리고 지금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까지 모두 그녀의 망막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 손, 언제부터 그랬죠?”
윤설아의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일시적인 신경 압박입니다.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방금 수술할 때도 왼손 홀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내가 서포트했습니다. 척골신경(Ulnar nerve)의 일시적 마비 증상인가요? 아니면 목 디스크로 인한 신경근 병증(Radiculopathy)?”
그녀는 강혁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와 그의 주머니 속 손을 억지로 빼내려 했다. 강혁은 몸을 뒤로 물리며 차갑게 경고했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윤 펠로우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닙니다.”
“아니, 신경 써야겠어요.”
윤설아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빛났다.
“당신이 가온대학병원에서 어떤 정치를 하든, 기조실장과 과장의 멱살을 잡든 난 상관 안 해요. 하지만 내 환자를 살려내는 당신의 그 손이 망가지는 건 못 봅니다. 당신이 말한 그 ‘완벽한 수술실’을 만들려면, 당신의 그 말도 안 되는 집도 실력이 필요하니까.”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USB 하나를 꺼내 강혁의 앞에 놓았다.
“내가 지난 3년간 연구해 온 미세 신경 및 혈관 재건(Micro-nerve and vessel reconstruction)에 관한 임상 데이터와 특수 신경 전도 약물 배합 비율입니다. 당신의 그 손 손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강혁은 USB를 내려다보았다.
“조건?”
“나를 당신의 독립 외상 센터 계획에 확실한 파트너로 동참시켜 줘요. 차민혁 과장이든 한태오 실장이든, 그들이 당신을 끌어내리지 못하도록 내가 방패가 되어 주겠습니다. 내 커리어를 걸고서라도.”
그것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거친 풍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천재의 칼끝에 자신의 운명을 걸겠다는, 철저하고도 뜨거운 동맹의 선언이었다.
***
같은 시각, 임시외상구역의 치프 레지던트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송민우는 담배 대신 펜을 입에 문 채, 책상 위에 낡은 가죽 수첩을 펼쳐놓고 있었다. 수첩의 빛바랜 페이지들 사이에는 정재계 고위 인사들과 보건복지부 핵심 라인의 개인 연락처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음, 이 타이밍에 이 인간을 건드리면 기조실 놈들이 어떻게 반응하려나…….”
송민우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의 핵심 과장이자, 과거 그가 대형 사고를 수습해 주며 깊은 빚을 지워놓았던 인물이었다.
“어이구, 과장님! 저 민우입니다. 예예, 잘 지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저희 가온대병원 본관에서 아주 재밌는 움직임이 있어서요. 기조실 한태오 실장 아시죠? 그 양반이 최근에 복지부 지정 외상센터 지원금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더라고요. 예, 맞습니다. 뷰티 리조트 쪽으로 투자를 돌리려는 유착 정황이 좀 보여서…….”
전화기 너머로 상대방의 급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송민우는 펜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제가 뭘 바라겠습니까. 다만 우리 가온대 임시외상구역에 들어오는 정부 지원금 라인만 확실하게 홀딩해 주십시오. 본원에서 손을 못 대게요. 예, 조만간 소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송민우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그는 수첩을 덮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태오, 차민혁. 네놈들이 돈 냄새를 맡고 움직인다면, 난 법과 규정의 목줄을 죄어주지. 감히 내 새끼들을 건드려?”
그는 한태오 기조실장과 차민혁 외과 과장이 비밀리에 진행 중인 ‘가온 메디컬 뷰티 리조트 계획안’의 이면 계약서 사본 일부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강혁이 폐기물 수거함에서 확보해 그에게 넘겼던 바로 그 결정적 폭탄이었다. 이사회 내부에서도 수익성 중심의 한태오 파와 학술적 명예를 중시하는 이사장 직속 파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송민우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판은 깔렸고, 이제 징계위라는 링 위에서 춤만 추면 되겠군.”
***
오후 2시, 본관 3층 소강당.
징계위원회 전 단계인 ‘외과 전체 임상 컨퍼런스 및 긴급 윤리 심의회’가 소집되었다. 차민혁 과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자리였다. 소강당 단상에는 차민혁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좌우로 그의 추종자들인 외과 교수들과 전공의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백강혁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방에서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인턴 주제에 제멋대로 메스를 잡고, 그것도 모자라 향정신성 의약품까지 손을 대?”
“가온대 역사상 이런 무법자는 없었어. 당장 면허를 박탈하고 쫓아내야 해!”
의도적으로 연출된 비난의 목소리들이 소강당을 가득 채웠다.
차민혁 과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준엄한 척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백강혁 인턴. 자네의 무모한 행동은 우리 가온대학병원의 의료 윤리와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네. 면허도 없는 인턴이 단독 집도를 감행한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며,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 위험천만한 도박이었어. 이에 대해 변명할 말이 있는가?”
단상 아래에 선 강혁은 묵묵히 서 있었다. 그의 왼손은 여전히 가운 주머니 속에 감춰져 있었고, 전신을 타고 흐르는 은근한 통증이 그의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했다.
그때, 소강당 중간에 앉아 있던 윤설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는 태블릿 PC와 두꺼운 의학적 검증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니까요.”
윤설아의 맑고 고아한 목소리가 소강당의 웅성거림을 단숨에 잠재웠다. 그녀는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가 태블릿 화면을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
화면 가득 방금 전 수술을 마친 환자의 실시간 바이탈 사인의 추이 그래프와 정밀 혈관 조영 영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백강혁 인턴이 집도한 전신 철근 관통 환자의 사후 데이터입니다.”
윤설아는 차민혁과 그의 심복 교수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환자는 본원 응급실에서 ‘소생 불가’ 판정을 받고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한태오 기조실장의 지시로 외상구역의 O형 혈액 팩 공급률은 평소의 30%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필수 항생제 처방마저 차단된 지독한 환경이었습니다. 사실상 병원이 환자를 죽이려 방치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소강당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교수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윤 펠로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어디서 감히 기조실과 외과 결정을 모함해!”
한 교수가 소리를 질렀지만, 윤설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모함이 아닙니다. 팩트입니다. 이런 극한의 자원 고사 상태에서, 백강혁 인턴은 단 45분 만에 대동맥 활(Aortic arch) 하부의 미세 파열을 봉합하고 횡격막을 완벽히 재건해 냈습니다. 여기 계신 외과 교수님들 중, 단 30%의 자원과 마비 증상이 올 정도의 극심한 신체적 한계를 안고 이 수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분이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그녀는 차민혁 과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눈먼 장님들이 천재의 정교한 칼끝을 의심하는 것 자체가 이 병원의 가장 큰 해악이자 수치입니다. 백강혁 인턴의 집도는 ‘전횡’이 아니라, 가온대학병원이 저지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방조를 수습한 ‘구원’이었습니다. 학문적 양심이 있다면, 이 수술 결과를 두고 징계를 논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하고도 고아한 논리. 거침없는 그녀의 일갈에 소강당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차민혁의 얼굴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누구보다 원칙을 중시하던 흉부외과의 엘리트 펠로우가, 인턴 한 명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던지며 완벽한 칼날 변호에 나선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적들은 완벽히 압도당했다.
***
심의회가 정회되고, 임시외상구역의 처치실로 돌아온 강혁은 비로소 주머니에서 왼손을 꺼내어 놓았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비정상적인 각도로 비틀려 있었다.
강혁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생명 구원 장부(Life Ledger).’
스르륵.
그의 시야 위로 붉은 빛의 빛바랜 고서가 펼쳐졌다.
[보유 생명 포인트: 1,500 SP] [최근 집도 성공 보상 반영 완료]
[경고: 무리한 이중 가동(Double Activation)의 부작용으로 좌측 척골신경 및 정중신경의 일시적 전도 차단(Neuropraxia) 발생. 잔여 동조율 45%]
강혁은 윤설아가 건네준 USB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녀가 수년간 집요하게 연구해 온 미세 신경 재건 데이터와 특수 약물의 배합 비율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장부의 가상 공간이 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웅-.
[시스템 알림: 외부 의학 데이터(윤설아의 신경 전도 배합 비율) 감지.] [장부 권능과 융합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소모 포인트: 500 SP]
‘승인한다.’
강혁의 선택과 동시에, 그의 뇌리로 정교한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장부의 기적적인 힘과 윤설아의 현실적인 의학 솔루션이 결합하자, 정체되어 있던 포인트 정산과 신경 복구 가상 경로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화면 속 가상 신경망 위로 푸른빛의 시뮬레이션 라인이 흐르며, 그의 마비된 왼손 신경 세포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지리릿!
강력한 전류가 왼손 팔꿈치를 관통하는 듯한 감각과 함께, 굳어 있던 갈퀴손가락이 서서히 펴졌다. 완벽한 복구는 아니었지만, 다음 집도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의 일시적 신경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그의 등 뒤로 윤설아와 송민우가 다가왔다.
“어때, 손은 좀 움직여?”
송민우가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혁은 부드럽게 쥐어지는 왼손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미소를 지었다.
“움직입니다. 윤 펠로우의 데이터 덕분입니다.”
윤설아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우리 세 사람, 확실한 원 팀(One Team)인 거죠?”
송민우가 가죽 수첩을 툭툭 치며 호기롭게 웃었다.
“당연하지! 가온대병원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미친 외상팀의 탄생이다, 이 말이지!”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전의를 다지며 미소를 나누던 바로 그 평화로운 찰나였다.
징-.
강혁의 가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화면을 켠 강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한태오 기조실장의 이름으로 발송된 긴급 독촉 문자 메시지였다.
[기획조정실 통보: 백강혁 인턴 특별 징계위원회 최종 소집. 본관 5층 대회의실. 현 시각으로부터 10분 내로 불출석할 시, 본인 부재 상태로 ‘의사면허 취소 및 영구 박탈 건의안’ 가결 예정.]
시계 바늘은 이미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칼날을 쥔 적들의 마지막 단두대가 그들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