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놈이 예언가라도 되느냐!”
차민혁 과장의 포효가 허공을 찢은 직후였다. 비서실 직원의 급박한 외침에 회의실 전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에 잠겼다.
이사장 친인척 김종만. 단순한 환자가 아니었다. 학교법인 가온의료재단의 실권을 쥔 이사장의 가장 가까운 혈육이자, 기획조정실장 한태오마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거물이었다. 그런 그가 뇌 대동맥 박리 및 파열 의증으로 실려 오고 있었다.
차민혁의 손에서 떨어진 플라스틱 지시봉이 뎅그렁하며 바닥을 굴렀다. 방금 전까지 백강혁을 미친놈이자 돌팔이로 몰아세우며 길길이 날뛰던 학계의 거두는, 이제 넋이 나간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대동맥 박리. 그것도 상행 대동맥을 침범한 타입 A라면 수술 사망률이 시간당 1%씩 치솟는 최악의 초응급 질환이다. 손을 대서 살리면 다행이지만, 테이블 데스(수술 중 사망)라도 나는 날에는 평생 쌓아 올린 명예와 권력이 단번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터였다.
“과, 과장님…… 어떡할까요? 본원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비울까요?”
펠로우 중 하나가 사색이 되어 물었다. 차민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눈에 띄게 파르르 떨렸다. 수술을 맡자니 실패의 리스크가 너무 크고, 피하자니 이사장의 눈 밖에 날 것이 자명했다. 비겁한 계산기가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백강혁이 그 꼴을 보며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타협 없는 천재의 시선이 차민혁의 흔들리는 동공을 꿰뚫었다.
“망설일 시간 없습니다. 환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으니까.”
강혁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곧장 흉부외과(CS) 펠로우 윤설아에게 닿았다.
“윤 선생. 바로 하이브리드 수술실로 이동합니다. 어시스트 서십시오.”
“네? 아, 하지만 과장님의 오더가 아직…….”
윤설아가 당황하여 차민혁과 강혁을 번갈아 보았다. 원칙주의자인 그녀로서는 전공의도 아닌 인턴의 지시에 움직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강혁의 눈빛에는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때, 구석에 서 있던 치프 레지던트 송민우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차민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이고, 과장님! 지금 저 머저리 같은 인턴 놈이 제멋대로 날뛰는 거 보십시오! 이사장님 친인척 수술을 감히 인턴 따위가 건드리다니요! 하지만 말입니다…….”
송민우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며 차민혁의 귀에 속삭였다.
“만약 저 녀석이 수술하다가 환자가 잘못되면, 그건 전적으로 백강혁 저놈의 독단적인 과실로 몰면 됩니다. 과장님은 지시하신 적이 없다고 책임 회피 라인 딱 짜두시면 되잖습니까? 반대로 기적적으로 살려내면, 그건 우리 외과 교실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쾌거라고 이사장님께 보고 올리면 그만이고요.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속물스럽기 그지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차민혁에게는 구원의 동아줄과 같았다. 차민혁의 눈에 비열한 생기가 돌았다.
“으, 음! 그래, 송 선생 말이 맞다. 내 허락 없이 수술방을 열다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윤설아 선생, 일단 저 무모한 놈이 환자를 죽이지 못하도록 밀착 감시해라. 알겠나?”
수술실로 향하는 명분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송민우는 강혁을 향해 보이지 않게 윙크를 던졌다. 강혁은 대꾸 없이 몸을 돌려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
가온대학병원 본관 3층, 하이브리드 수술실.
수술대 위에는 예순을 바라보는 체구의 남성이 산소마스크를 쓴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모니터의 바이탈 수치는 사정없이 요동쳤다.
혈압 80/40mmHg. 심박수 분당 140회.
환자의 가슴 부위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대동맥 벽이 찢어져 심낭 내부로 피가 차는 심장 눌림증(Cardiac tamponade)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10분 이내에 심장이 멈춘다.
강혁의 시야에 반투명한 붉은색 스크린이 떠올랐다.
[환자: 김종만 (남/58세)] [진단: Type A 상행 대동맥 박리 및 심낭 압전] [실시간 생존율: 14%] [핵심 병변: 상행 대동맥 근부(Aortic Root) 외벽의 1.2cm 찢어짐]
생명 구원 장부(Life Ledger)의 신호였다. 생존율 14%.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수치였다.
‘포인트를 전부 쏟아붓는다.’
강혁은 망설임 없이 마음속으로 장부의 권능을 발동했다.
[‘초정밀 가상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소모 포인트: 2,500 SP] [경고: 고난도 수술 시뮬레이션 가동으로 인한 ‘동조 통증 및 심장정지 리스크’가 극대화됩니다. 동조율 45%]
순간, 뇌리를 강타하는 극심한 오한에 강혁의 척추가 굳어졌다.
“흡……!”
강혁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체온이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가슴 중심부를 장대바늘로 사정없이 쑤셔 파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몰려왔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식은땀이 수술모 아래로 흘러내려 눈가를 적셨다.
왼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제멋대로 뒤틀리는 경련. 회귀 이후 장부를 쓸 때마다 심해지던 그 치명적인 패널티가 다시금 그의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백강혁 선생? 괜찮아요? 얼굴색이 완전히 종잇장인데.”
어시스트로 합류한 윤설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메스 주십시오.”
강혁은 떨리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강하게 움켜잡아 억누른 뒤, 차갑게 다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통증을 집어삼킨 초인적인 집중력이 서려 있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강혁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흉골이 정중앙으로 절개되었다. 가슴이 열리자, 검붉은 피가 가득 찬 심낭이 정체를 드러냈다.
동시에 수술실 유리창 너머 참관실에 차민혁 과장과 한태오 기조실장, 그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사장의 자녀이자 가온그룹 상무 김진우가 모습을 나타냈다.
“저 인턴 놈이 정말 미쳤군! 저런 초응급 환자의 가슴을 열다니!”
차민혁이 참관실 마이크를 켜고 수술실을 향해 소리쳤다.
“백강혁! 지금이라도 당장 멈추고 흉부외과 스태프가 올 때까지 대기해! 환자 잘못되면 네 목숨줄은 끝이야!”
“시끄러우니까 마이크 꺼.”
강혁은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나지막이 뱉었다. 그 서슬 퍼런 어조에 수술실 내의 순환기 테크니션이 움찔하며 마이크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참관실의 차민혁이 씩씩대며 주먹을 쥐었지만, 강혁의 손끝은 이미 멈추지 않았다.
“체외순환기(CPB) 가동합니다. 캐뉼라 삽입 완료. 대동맥 클램프 잡습니다.”
강혁의 손놀림은 기괴할 정도로 빨랐다. 보통의 외과의라면 손상을 우려해 수십 번 확인했을 박리 부위를, 그는 마치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찾아냈다. 장부의 가상 시뮬레이션이 붉은 선으로 정확한 절개 타깃을 뇌 속에 투사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환자의 대동맥 벽이 찢어질 때마다 강혁의 가슴에도 칼로 긋는 듯한 동조 통증이 실시간으로 전이되었다.
‘아직이다. 버텨야 한다.’
강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잇새로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그때였다.
수술실 문이 벌컥 열리며, 차민혁의 심복인 전공의 박 대위가 급히 들어왔다. 차민혁의 지시를 받고 수술을 방해하거나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기 위해 난입한 것이 분명했다.
“비켜봐! 내가 어시스트 교대하겠어!”
박 대위가 거칠게 들어서며 윤설아의 어깨를 밀쳤다. 급격하게 조작 기구를 넘겨받으려던 윤설아의 발이 박 대위의 발에 걸렸다. 고의성이 다분한 걸림돌이었다.
“앗!”
윤설아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수술 도구 상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깡그랑! 챙강!
쇠붙이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윤설아가 목숨처럼 아끼던 수술용 마이크로 메스가 수술실 바닥 타일 틈새에 끼이며 한쪽 팁이 보기 흉하게 구부러져 버렸다. 일본의 장인에게 개인적으로 의뢰해 특수 제작한,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그녀의 분신과 같은 도구였다.
“내…… 메스가…….”
윤설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망과 분노가 순간 그녀의 얼굴을 지배했다.
“뭐 하는 짓입니까!”
윤설아가 박 대위를 향해 쏘아붙였으나, 박 대위는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미안합니다, 윤 선생. 급하게 돕다 보니 그렇게 됐네. 뭐, 수술 도구 하나 부러진 거 가지고 그래?”
“당신 지금……!”
“조용히 해.”
강혁의 차가운 음성이 수술실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웠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환자의 심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윤 선생, 징징댈 시간 있으면 당장 일어나서 새 메스 잡고 시야 확보하십시오. 환자 대동맥 벽이 완전히 찢어지기 직전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지시였다. 윤설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강혁의 독선적인 태도에 서운함이 치밀었지만, 지금은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팁이 망가진 메스를 바닥에 둔 채, 일반 메스를 집어 들고 다시 강혁의 옆에 섰다.
강혁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집념뿐이었다.
찢어진 대동맥 부위를 잘라내고 인공 혈관을 이어 붙이는 ‘대동맥 인공 혈관 치환술(Aorta graft replacement)’. 0.1mm의 오차만 있어도 문합 부위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즉사하는 극악의 난이도였다.
수술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참관실의 교수들마저 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인턴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와 정밀함이었다.
서실(Suture)을 쥔 강혁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프롤린 실이 대동맥 벽과 인공 혈관을 번개 같은 속도로 엮어 나갔다.
한 바늘, 두 바늘.
바느질의 간격은 자로 잰 듯 정확히 1mm 일정했다. 바늘이 혈관을 통과하는 타이밍은 기계처럼 일정했고, 매듭을 짓는 손끝의 힘 조절은 예술의 경지에 가까웠다.
“저게…… 가능한 속도인가?”
참관실에서 나지막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차민혁의 얼굴은 갈수록 흙빛으로 변해갔다. 저 실력은 단순한 천재성을 넘어선, 수천 번의 수술을 거친 베테랑 대가의 그것이었다.
“클램프 오프(Clamp off).”
강혁이 나지막이 명령했다.
체외순환기를 끄고, 차단했던 대동맥의 혈류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문합 부위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면 수술은 실패였다.
1초, 2초, 3초…….
인공 혈관은 새로 흐르는 뜨거운 혈액의 압력을 완벽하게 견뎌냈다. 단 한 방울의 피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붉게 물들었던 모니터의 생존율 수치가 순식간에 요동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실시간 생존율: 89%]
“……심박 정상 동방결절 리듬(Sinus Rhythm) 회복했습니다. 혈압 120/80 정상입니다.”
마취과 의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성공이었다. 완벽한 기적의 집도였다.
참관실 유리창 너머로 이사장의 자녀이자 가온그룹 상무인 김진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수술실 마이크를 켜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우리 아버님을 살려주셨군요!”
대기업 상무이자 이사장의 핏줄이 일개 인턴을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순간이었다. 참관실의 모든 스태프와 교수들이 침묵 속에서 강혁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민혁은 부들부들 떨며 참관실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수술실 내에서 송민우가 쾌재를 부르며 강혁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백강혁! 너 진짜 물건이다, 물건! 아주 청와대 가도 되겠어!”
하지만 강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윤 선생, 마무리 봉합하십시오.”
강혁은 메스를 내려놓고 수술대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모든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고 있었다. 장부의 권능이 꺼짐과 동시에, 억눌려 있던 혹독한 동조 패널티가 쓰나미처럼 그의 온몸을 덮쳐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분당 180회에 달하는 부정맥이 가슴을 사정없이 쥐어짰다. 폐부의 산소가 순식간에 증발한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안 돼…… 여기서 쓰러지면…….’
강혁은 이를 악물고 수술실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바닥이 뒤집히는 듯한 극심한 현기증이 일었다. 온몸의 수분이 전부 말라버린 것 같은 타는 듯한 갈증과 함께, 흉골 안쪽에서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요동쳤다.
스르륵.
자동문이 열리고, 차가운 복도의 공기가 강혁의 얼굴을 때렸다.
그리고 단 한 걸음.
수술실을 완전히 벗어나 어두운 복도로 나선 순간, 강혁의 다리에서 힘이 완전히 풀렸다.
“컥……!”
강혁은 가슴을 움켜쥔 채 찬 시멘트 바닥 위로 묵직하게 고꾸라졌다. 시야가 암전되기 직전, 그의 귓가에 수술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누군가의 경악한 비명이 아스라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