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지금 무슨 해괴망측한 짓거리들을 벌인 거냐!"
차민혁의 사자후가 임시외상구역, 레드존의 찌든 알코올 냄새를 단숨에 찢어발겼다. 그의 손에 꽉 쥐인 응급 수술 호출 기록지가 바르르 떨렸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굵은 힘줄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차민혁은 군수물자 검열관처럼 오만한 걸음걸이로 수술대 앞까지 걸어왔다. 그의 가죽 구두가 바닥에 고인 붉은 핏방울을 짓밟았다.
수술대 위 환자의 생존율은 92%. 생명 구원 장부(Life Ledger)가 띄워 올린 녹색 수치는 선명했다. 하지만 차민혁의 안중에는 환자의 바이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강혁의 피 묻은 가운과 손에 쥐인 메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백강혁. 인턴 나부랭이가 감히 집도를 해? 이 병원 규정이 우스워 보이나 보지?"
차민혁이 강혁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다가왔다. 그의 뒤에 도열한 전공의들이 숨을 죽였다.
강혁은 메스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차민혁을 응시했다.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장부의 기적을 가동한 대가였다. 환자의 급성 쇼크 스트레스가 강혁의 자율신경계를 타고 들어와 가슴을 짓눌렀다. 셔츠 속 살갗으로 식은땀이 배어 나왔지만, 강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정도 통증은 전생에서 겪었던 배신과 추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규정을 어긴 게 아닙니다, 과장님."
강혁이 대답하려는 찰나, 옆에서 가벼운 헛기침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아이고, 과장님! 이 새벽에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저희 보러 오신 겁니까? 감개무량합니다, 진짜로!"
송민우였다. 그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차민혁과 강혁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의 큰 덩치가 자연스럽게 강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송민우는 차민혁이 쥐고 있던 수술 기록지를 슬쩍 빼앗아 제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무단 집도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여기 차트 보십시오. 주치의 및 집도의 이름에 떡하니 제 이름 '송민우' 석 자가 박혀 있지 않습니까? 백 인턴은 제 지시하에 어시스트를 선 것뿐입니다. 썩션 잡고, 리트랙터 당기고. 아주 손발이 짝짝 맞았습니다."
"송민우! 네가 지금 내 눈을 속이려 들어? 인턴 놈이 메스를 쥐고 있는 걸 내가 똑똑히 봤다!"
차민혁이 삿대질을 해댔다. 그의 손가락 끝이 송민우의 콧등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송민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아이고, 과장님. 수술실 조명이 워낙 어두컴컴해서 잘못 보신 모양입니다. 여기 이 낡아 빠진 레드존 전등 아시잖습니까? 흐릿해가지고 제 손이 백 인턴 손처럼 보였나 보죠. 엄연히 제가 메스 잡고 흉벽 절개(Thoracotomy) 들어갔고, 백 인턴은 옆에서 실만 잡았습니다. 외과 4년 차 치프가 집도했는데 뭐가 문제란 말씀이십니까? 환자 살려놓았으면 칭찬을 해주셔야죠!"
송민우는 차민혁의 어깨를 친근하게 툭툭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압적인 과장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송민우만의 독특한 처세술이었다. 겉으로는 속물처럼 능청을 떨고 있지만, 그의 등 뒤로 가려진 강혁을 보호하려는 의지는 확고했다.
차민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송민우의 말이 뻔한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지만, 공식 차트에 치프 레지던트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이상 당장 징계를 밀어붙이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송민우, 네놈이 이 인턴 새끼를 감싸고도는 이유가 뭐냐? 같이 목이 날아가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감싸다니요! 제가 이 건방진 인턴 놈을 왜 감쌉니까? 그냥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과장님께서 저 못 믿으시면 가온대병원 외과 기강은 다 무너지는 겁니다, 예?"
송민우가 실실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차민혁은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그는 강혁을 매섭게 노려보며 가운을 거칠게 정리했다.
"좋다. 이번 한 번은 서류상 문제가 없으니 넘어가 주지. 하지만 백강혁, 네놈의 그 오만한 태도는 조만간 반드시 고쳐놓겠다. 오늘 오전 8시 외과 정기 컨퍼런스다.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라. 특히 너, 백강혁. 구석에 처박혀서 졸 생각 말고 똑바로 앉아 있어."
차민혁은 훽 돌아서서 레드존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전공의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철제 이중문이 거칠게 닫히고 나서야 처치실 안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강혁은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자마자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쿵, 쿵, 쿵.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장부의 동조 통증이 본격적으로 신경계를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눈가로 스며들어 따끔거렸다.
"어이, 백 인턴. 괜찮냐?"
송민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혁의 어깨를 짚었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간데없고, 진지한 의사의 얼굴이 그 자리에 있었다.
"괜찮습니다."
강혁은 송민우의 손을 차갑게 뿌리쳤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무리 송민우가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한들, 이 병원 안의 누구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실력뿐이었다.
송민우는 거절당한 손을 무안한 듯 비벼대며 혀를 찼다.
"독한 새끼.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안 하네. 가 봐라, 쉬어 둬. 이따 컨퍼런스 때 차민혁이 칼 갈고 나올 테니까."
강혁은 대꾸 없이 처치실 구석의 수술 후 정리대로 향했다.
***
같은 시각, 레드존 옆 간이 판독실.
흉부외과(CS) 펠로우 윤설아는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방금 강혁이 수술을 끝마친 환자의 응급 CT 복원 영상과 혈관 조영술(Angiography) 결과가 띄워져 있었다.
"이게…… 가능한 수치인가?"
윤설아의 얇은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모니터로 바짝 다가앉았다.
환자는 심각한 다발성 장기 손상과 함께 복부 대동맥 분지 부위가 파열 직전까지 갔던 상태였다.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 시행된 야간 응급 수술이었다. 그런데 사후 CT 영상에 나타난 혈관 봉합 상태는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였다.
"오차율이…… 0.1밀리미터도 안 돼. 어떻게 기계로 꿰맨 것처럼 이렇게 정교할 수가 있지?"
윤설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흉부외과 전공의 시절부터 수많은 천재 의사들의 수술을 보아왔지만, 이 정도의 정밀함은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노후한 장비와 부족한 인력만 가득한 이 쓰레기장 같은 레드존에서, 일개 인턴의 손으로 이루어진 수술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술실에서 보았던 강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침없이 메스를 긋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출혈점을 찾아내 움켜쥐던 그 차가운 눈빛. 마치 환자의 몸속을 투시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기괴할 정도의 확신에 찬 손놀림이었다.
"백강혁…… 대체 정체가 뭐야?"
윤설아의 가슴속에서 낯선 전율이 일었다. 원칙주의자인 그녀에게 강혁의 존재는 하나의 거대한 모순이자 경이였다. 그녀는 마이크로 메스를 만지작거리며 굳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차율 0%의 무결점 수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남자의 실체를 반드시 제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
오전 8시, 가온대학병원 본관 5층 세미나실.
외과 정기 컨퍼런스를 앞두고 회의실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병원의 컨퍼런스는 단순한 학술 토론의 장이 아니었다. 교수들의 권력 서열이 확인되고, 전공의들의 목줄이 죄어지는 잔혹한 검투장이었다.
회의실 중앙 상석에는 기획조정실장 한태오가 태블릿 PC를 든 채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외과 과장 차민혁이 거만한 자세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강혁은 회의실 맨 뒷자리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시야에 붉은색 반투명창이 어른거렸다.
[생명 구원 장부 활성화 상태] [현재 누적 포인트: 1,200 LP] [주의: 과부하로 인한 심박수 불안정 (98 bpm)]
수술의 여파로 왼쪽 가슴이 가끔 찌릿했지만, 강혁은 내색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뒤편으로 윤설아가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시선이 강혁의 뒤통수에 따갑게 꽂혔다.
"자, 소화기외과 및 이식외과 통합 컨퍼런스를 시작하지."
차민혁이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스크린 위로 새로운 환자의 케이스가 띄워졌다.
"이번 케이스는 매우 중요한 건이다. 가온의료재단 이사장님의 친인척이자, 향후 우리 병원 VIP 리조트 유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실 분이지. 환자는 62세 남성으로, 간헐적인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해 내원했다."
화면에 뇌 MRI 영상이 나타났다. 뇌하수체(Pituitary gland) 부근에 작은 음영이 관찰되었다.
차민혁이 지시봉으로 그 음영을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크기 1.2센티미터 내외의 전형적인 뇌하수체 선종(Pituitary adenoma)이다. 조직학적으로 무해한 양성 종양일 확률이 99%에 수렴하지. 현재 환자의 연령과 심혈관계 상태를 고려했을 때, 무리한 개두술이나 내시경 수술보다는 약물 치료를 병행한 장기 요양 및 추적 관찰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기조실장님과 논의하여 가온 요양 리조트 특별 병동으로 전원시킬 예정이다."
한태오 실장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VIP 환자를 자신들이 추진하는 리조트로 보내 장기 유치하겠다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결정이었다.
회의실 안의 교수들과 펠로우들은 차민혁의 권위에 눌려 침묵을 지켰다. 아무도 그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때, 맨 뒷좌석에서 나직하지만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진단은 오진입니다."
순간, 회의실 안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쪽으로 쏠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백강혁이었다. 그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차가운 눈빛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민우가 깜짝 놀라 강혁의 가운 자락을 잡아당겼다.
"야, 미쳤어? 미쳤냐고! 조용히 있어!"
하지만 강혁은 송민우의 손을 가볍게 털어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민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백강혁! 네놈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입을 놀리느냐! 인턴 주제에 감히 내 진단에 토를 달아?"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강혁은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단상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눈앞에는 이미 장부가 제공하는 [초정밀 가상 시뮬레이션]이 가동되고 있었다. 스크린 속 3D 뇌 영상 위로 붉은색 경고등이 격렬하게 깜빡였다.
[환자명: 김종만 (62세)] [생존율: 45%] [핵심 병변: 뇌하수체 선종으로 위장된 전교통동맥(A-com) 미세 동맥류 박리 전조] [위험도: 극상 (24시간 내 파열 가능성 89%)]
강혁은 단상 위에 놓인 프리젠터 컨트롤러를 가로챘다. 차민혁이 빼앗으려 손을 뻗었지만, 강혁은 가볍게 몸을 피해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 우측 하단의 혈관 조영(Angiography) 단면을 보십시오. 과장님께서는 이것을 단순한 뇌하수체 종양의 음영으로 보셨겠지만, 혈류 역학(Hemodynamics) 관점에서 분석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강혁이 화면을 확대했다. 미세한 혈관의 흐름이 3D 그래픽처럼 정교하게 재구성되어 스크린에 표시되었다. 강혁은 장부의 어시스트를 빌려, 실제 병원 시스템에 숨겨져 있던 미세 혈류 데이터 수치를 기판에 직접 띄웠다.
"여기 전교통동맥(Anterior communicating artery)에서 뇌하수체 후엽으로 이어지는 미세 혈관의 분지점을 보십시오. 혈류 속도가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난 초당 120센티미터에 달합니다. 이것은 종양이 아니라, 혈벽이 얇아져 부풀어 오른 미세 동맥류(Aneurysm)가 뇌하수체를 압박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회의실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동맥류라고? 저 위치에?"
"혈류 데이터 수치가 왜 저렇지? 정말 동맥류 전조 증상 같은데?"
교수들이 안경을 고쳐 쓰며 모니터로 몸을 기울였다. 윤설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의 수치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분석했다. 그녀의 눈에 경탄의 빛이 스쳤다. 강혁이 제시한 수치와 해부학적 근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했다.
강혁이 차민혁을 똑바로 응시하며 차갑게 쐐기를 박았다.
"이 환자를 과장님 말씀대로 요양원으로 보내 장기 방치하는 순간, 24시간 이내에 동맥류가 파열할 겁니다. 지주막하 출혈(Subarachnoid hemorrhage)로 이어져 수술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테이블 데스(Table Death)입니다. 과장님의 진단은 단순한 오진을 넘어, 환자를 사지로 모는 돌팔이 짓입니다."
"돌…… 돌팔이?!"
차민혁의 입에서 신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평생을 학계의 거두로 대접받아 온 그였다. 그런데 감히 대학병원 인턴 새끼에게, 그것도 수십 명의 후배들과 기조실장이 보는 앞에서 '돌팔이'라는 치욕적인 낙인을 찍힌 것이다.
"이 빌어먹을 인턴 놈이 감히!"
차민혁이 단상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쳤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필기구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네놈이 예언가라도 되느냐! 단지 혈류 수치 몇 개를 가지고 내 정밀 진단을 부정해? 당장 이놈을 여기서 끌어내! 경비원 불러!"
차민혁이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얼굴은 광기에 젖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회의실 단상 위에 있던 차민혁의 개인 휴대전화와 한태오 실장의 태블릿 PC가 동시에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동시에 회의실 뒷문이 벌컥 열리며, 비서실 직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과장님!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직원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방금…… 방금 이사장님 친인척이신 김종만 환자분이 자택에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지셨습니다! 의식 소실 상태로 응급 발작을 일으키셨고, 지금 본원 119 구급대로 이송 중입니다! 뇌 대동맥 박리 및 파열 의증입니다!"
순간, 회의실 안의 모든 공기가 굳어버렸다.
차민혁의 지시봉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백강혁이 예언했던 그 시한폭탄이, 정확히 지금 이 순간에 터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