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삐- 삐- 삐- 삐-!

귀를 찢는 바이탈 모니터의 경고음이 좁고 음습한 임시외상구역 처치실의 공기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환자의 심전도 그래프는 이미 가파른 절벽을 그리며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수술대 주변은 뿜어져 나온 선혈로 아수라장 세트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윽...!"

강혁은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척추를 타고 목덜미까지 단숨에 치솟는 동조 통증이 그의 뇌간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심장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은 감각. 호흡이 턱 막히며 허파가 쪼그라들었다. 장부의 권능을 끌어다 쓴 대가는 이토록 가혹했다.

하지만 그의 왼손 검지는 비장 동맥의 기시부를 짓누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닿는 박동은 가늘고 불규칙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바로 그 순간, 대기실과 처치실을 가로막은 슬라이딩 도어가 거칠게 열렸다.

쾅!

"이 미친 새끼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고함의 주인공은 치프 레지던트 송민우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술복 소매를 걷어붙인 그가 성큼성큼 처치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의 시선이 피바다가 된 수술대와, 그 깊숙한 복강 안으로 손을 밀어 넣고 있는 인턴 백강혁에게 박혔다. 송민우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백강혁! 너 미쳤어? 손 떼! 당장 손 안 떼?!"

인턴이 단독으로 환자의 배를 열고 들어앉아 있는 광경은, 대학병원 7년 차 치프 레지던트 인생에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해괴망측한 사건이었다. 송민우가 강혁의 덜미를 잡아채려 손을 뻗은 그 찰나였다.

"조용히 하고 썩션 잡으십시오."

강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고통으로 이마에 핏대가 솟구치고 식은땀이 눈을 찔러 들어오는 와중에도, 그의 눈빛만큼은 귀신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뭐? 이 새끼가 진짜..."

"지금 놓치면 테이블 데스입니다. 췌장 꼬리 손상 없이 비장 동맥만 결찰해야 합니다. 시야 안 보이니까 소리 지를 시간에 썩션이나 대란 말입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에 송민우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제자리에 굳었다. 인턴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기가 질릴 정도의 압도적인 기세. 그리고 강혁이 가리킨 손가락 끝의 정확한 해부학적 위치가 송민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비장 동맥 기시부...? 저걸 손가락 감각만으로 짚고 있다고?'

송민우의 의학적 대뇌가 경고음을 울렸다. 혈액이 차올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복강 안에서, 오직 손가락 하나로 출혈점을 완벽히 틀어막고 있었다. 그것도 췌장 하부를 스치듯 지나가는 까다로운 주행 경로를 완벽히 파악한 상태로.

강혁의 눈앞에는 이미 '생명 구원 장부'가 그려낸 반투명한 3D 혈관 지도가 붉은 빛을 내뿜으며 박동하고 있었다. 오차율 0%의 가상 경로. 비장 동맥 분지부에서 정확히 0.3mm 떨어진 결찰 포인트가 십자선처럼 조준되어 있었다.

"클램프, 세컨 잡아."

강혁이 낮게 읊조렸다.

송민우는 침을 삼켰다. 분노와 당혹감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충돌했다. 이 미친 인턴을 당장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수술방에서 쫓아내는 것이 규정상 맞았다. 하지만 의사로서의 본능이 속삭였다. 여기서 이 손을 떼게 만드는 순간, 대동맥 압박이 풀리며 환자는 3초 안에 심정지로 사망한다.

"아, 씨발... 진짜 미치겠네."

송민우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매섭게 변했다.

"비켜봐, 이 미친놈아. 세컨 잡을 테니까 니들 홀더 넘겨."

송민우는 곁에 서 있던 간호사의 손에서 타이(Tie, 결찰용 실)와 포셉을 가로챘다. 그의 능청스럽고 헐렁해 보이던 평소 태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독종이라 불리는 가온대병원 외과 치프 레지던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송민우가 썩션 팁을 복강 하부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웅웅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고여 있던 검붉은 피가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가려져 있던 비장 주위의 시야가 마침내 하얗게 드러났다.

"타이 들어간다. 틈 주지 말고 바로 묶어."

강혁의 지시에 송민우의 손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걱정 말고 밀어 넣기나 해, 임마!"

송민우의 어시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강혁이 비장 동맥을 겸자로 물어 올리자, 송민우는 마치 강혁의 뇌동기화라도 된 것처럼 가장 완벽한 각도로 조직을 견인해 주었다. 인턴과 레지던트의 수술이 아니었다. 수차례 호흡을 맞춰온 베테랑 스탭들의 집도 과정처럼 정교하고 매끄러웠다.

두 사람의 손끝이 교차할 때마다, 찢어진 비장 동맥의 틈새가 실크 실로 단단히 조여졌다.

[생존율: 35% -> 58%]

장부의 붉은 숫자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쥐어짜던 동조 통증도 미세하게 경감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은 분당 130회를 상회하며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강혁은 떨리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며 호흡을 골랐다.

바로 그때였다.

송민우가 결찰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상체를 깊숙이 숙이자, 그의 수술복 상의 안쪽 주머니가 벌어지며 묵직한 물건이 툭 밀려 나왔다.

닳고 닳은 은색 테두리가 박힌, 손때 묻은 검은색 가죽 수첩이었다.

수술등 불빛 아래에서 그 수첩의 모서리가 묘하게 번뜩였다. 강혁의 눈동자가 아주 짧은 찰나 동안 그 수첩을 응시했다.

'저건...'

회귀 전, 병원 내부를 떠돌던 은밀한 소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학벌도 배경도 없는 지방대 출신의 송민우가 어떻게 외과 과장 차민혁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치프 자리를 유지하며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소문.

그 수첩 안에는 가온의료재단 비선 실세들과 정재계 고위 관료들의 개인 연락처, 그리고 그들의 약점이 적혀 있다는 비밀스러운 소문이 있었다.

강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단순한 속물 양아치인 줄 알았더니, 꽤 쓸만한 방패를 품고 있었군.'

송민우가 가진 그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을 이용한다면, 향후 기획조정실장 한태오가 밀어붙일 외상센터 폐쇄 음모를 정면으로 돌파할 카드로 쓸 수 있을 터였다.

"야, 백강혁.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메스 줘. 비장 떼어내야지."

송민우의 핀잔에 강혁은 생각을 떨치고 메스를 고쳐 잡았다.

"갑니다."

강혁의 손끝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손상된 비장을 완전히 절제하고, 횡격막 하부에 배액관(Jackson-Pratt drain)을 고정했다. 마지막 복막 봉합(Peritoneal closure)까지 단 5분 만에 끝이 났다.

띡-. 띡-. 띡-.

미친 듯이 울려 대던 경고음이 멈추고, 바이탈 모니터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심박수와 혈압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생존율: 92%]

장부의 숫자가 마침내 안전을 의미하는 선명한 녹색 활성 상태로 솟구쳤다.

"휴우..."

처치실 안의 간호사들이 동시에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강혁은 메스를 내려놓으며 수술대 옆의 철제 트레이를 짚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극심한 피로감과 함께, 왼손 검지손가락이 제멋대로 떨려 왔다. 장부의 과부하로 인한 신경 동조 경련이었다. 강혁은 차가운 수술포 아래로 왼손을 숨기며 주먹을 쥐었다. 이 통증과 부작용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송민우가 타이용 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지며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렸다. 그의 얼굴은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기묘한 흥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송민우가 느닷없이 손을 뻗어 강혁의 머리통을 툭 쳤다.

"야, 이 미친 인턴 새끼야. 너 진짜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냐?"

말은 거칠었지만, 그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실룩거리고 있었다.

"너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솜씨를 배웠냐? 비장 동맥 묶을 때 췌장 꼬리 피해서 각도 비틀어 들어가는 거, 그거 웬만한 교수들도 긴장해서 손 떠는 구간이야. 그걸 어시스트도 없이 혼자서 쑤셔 넣었다고?"

"책에서 봤습니다."

강혁이 뻔뻔하게 대꾸하자, 송민우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책? 어떤 미친 책에 그런 실전 테크닉이 나와 있냐? 아주 구라를 쳐도 신선하게 쳐라, 임마."

송민우는 수술대 옆에 놓인 차트 판을 낚아채더니 볼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거침없는 필체로 수술 기록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집도의: 레지던트 4년 차 송민우] [제1어시스트: 인턴 백강혁]

"송 선생."

강혁이 눈을 좁히며 차트를 가리켰다.

"이거 무단 도용 아닙니까? 엄연히 제가 집도한 수술입니다만."

송민우가 차트 판으로 강혁의 어깨를 툭 치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임마, 대가리 덜 자란 인턴 새끼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이건 내가 네 공을 가로채는 게 아니라 네 목줄을 살려주는 거야. 인턴이 단독 집도했다고 기록에 남는 순간, 기조실 한태오 실장이랑 외과 차민혁 과장이 냄새 맡고 떼거지로 몰려와서 네 의사 면허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거다. 알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가온대학병원의 썩어빠진 병원 정치 속에서, 규정 위반은 사냥갯감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내가 독박 쓰고 '치프 레지던트의 응급 집도'로 덮어주겠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넌 조용히 찌그러져서 썩션이나 잡았다고 입 맞춰. 오케이?"

송민우는 찡긋 윙크를 해 보였다. 겉으로는 생색을 내며 공을 차지하는 속물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후배의 무모한 행동을 온몸으로 막아주려는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강혁은 그의 능글맞은 얼굴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전생의 고독했던 수술실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뭐, 그렇게 하시든가요."

강혁이 무심하게 대꾸하자, 송민우가 씩 웃으며 차트를 덮었다.

"내 밑구역에서 이런 보물이 썩고 있었을 줄이야. 어이, 백 인턴. 앞으로 나랑 재미 좀 보겠..."

철컥, 쾅!

송민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시외상구역(레드존)의 낡고 무거운 철제 이중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구두 굽이 시멘트 바닥을 거칠게 때리는, 군홧소리 같은 묵직하고 날카로운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송민우! 백강혁!"

살기등등한 사자후가 처치실 내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얀 의사 가운을 휘날리며 들어선 사내. 가온대학병원 외과 과장이자 학벌 기득권의 정점에 서 있는 차민혁이었다. 그의 뒤로는 3, 4년 차 전공의들과 펠로우들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줄줄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차민혁의 얼굴은 분노로 터질 듯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손에는 레드존의 응급 수술 호출 기록지가 꽉 쥐어져 있었다.

"여기서 지금 무슨 해괴망측한 짓거리들을 벌인 거냐!"

차민혁이 군수물자 검열관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수술대 위의 환자와, 피 묻은 가운을 입고 있는 강혁을 번갈아 쏘아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이 다시 한번 레드존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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