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심장이 뜯겨 나가는 고통은 비유가 아니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뜨겁게 달군 쇠창으로 꿰뚫어 사정없이 비트는 감각. 기획조정실장 한태오의 차가운 눈빛과, 사방을 메운 이사회 임원들의 비열한 속삭임이 시야에서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 누명을 쓰고 면허를 빼앗긴 천재 외과의 백강혁의 마지막은 그렇게 가온대학병원 VIP 라운지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였다.

억울함조차 삼키지 못한 채 굳어가던 손가락 끝에, 느닷없이 기묘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붉은 실타래들. 사방으로 비산하는 선혈 같은 붉은 궤적이 눈꺼풀 안쪽을 가득 채우며 고통을 집어삼켰다.

허억!

강혁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짓눌리던 폐포가 한꺼번에 열리며 시큼한 소독약 냄새와 비린내가 섞인 공기가 허파 깊숙이 처박혔다.

"야, 인턴. 잠꼬대는 집에 가서 자빠져 자면서 해라. 눈 비비고 인턴 스테이션 앞으로 튀어 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능글맞은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강혁은 젖어 드는 식은땀을 닦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초점을 흐리는 누런 형광등 불빛 아래, 낡은 차트 진열대와 칠이 벗겨진 철제 침대들이 보였다. 사방에 널린 거즈와 혈흔, 찌그러진 이동식 카트.

이곳은 가온대학병원 본관 뒤편, 가장 낙후되고 버려진 구관 1층의 '임시외상구역(더 레드존)'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강혁이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름 하나 없이 매끄럽고, 고된 집도로 생긴 굳은살조차 아직 옅은 젊은 손가락. 7년 전, 그가 가장 비참하게 구르며 '낙하산 인턴'이라 조롱받던 그 시절의 육체였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어? 인턴 나부랭이가 벌써부터 졸리냐?"

레지던트 4년 차, 치프 송민우가 짝짝 소리가 나게 껌을 씹으며 다가왔다.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앉은 얼굴에 꾀죄죄한 수술복 차림이지만, 강혁에게는 뼈아프게 그리웠던 얼굴이었다.

"송... 민우 선생?"

"이 자식이 미쳤나, 치프한테 선생? 기어오르네? 야, 정신 차려. 오늘 당직 서다 걸리면 진짜 죽는다."

송민우가 강혁의 이마를 두 손가락으로 툭 밀쳐냈다. 아릿한 물리적 통증이 뇌를 흔들었다. 꿈이 아니었다. 회귀. 기적 같은 현실이 그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순간, 구관 입구 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레드존의 고요를 산산조각 냈다.

- 가온 구급입니다! 20대 남성, 오토바이 단독 사고! 바이탈 불안정하고 의식 세미 코마(Semi-coma)입니다!

자동문이 거칠게 열리며 피범벅이 된 이동식 침대가 밀려 들어왔다. 들것 위에는 헬멧이 깨진 채 피를 흘리는 청년이 사지를 비틀며 신음하고 있었다.

"뭐야, 왜 이쪽으로 와! 본원 수술실로 올려!"

레드존 당직을 서던 2년 차 전공의 김 의사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구급대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쳤다.

"본원 수술실 풀(Full)이랍니다! 대기만 세 시간이라 일단 이쪽으로 가라고 지시 내려왔습니다!"

"미쳤어? 여기서 뭘 어쩌라고! 당장 어레스트(심정지) 오게 생겼는데!"

김 의사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환자의 가슴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고, 혈압계에는 빨간불이 깜빡이며 'BP 60/40'이라는 치명적인 수치를 뱉어냈다.

"복부 팽만이 심합니다. 비장 파열 가능성 높고, 두부 외상으로 인한 뇌출혈도 의심됩니다. 여기서 손 쓸 수준이 아닙니다. 심폐소생술 준비나 하죠."

김 의사는 이미 포기한 듯 차트를 챙겨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살리지 못할 환자라면 손을 대어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겠다는 비겁한 계산이 눈빛에 서려 있었다.

그 순간, 강혁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허공에 붉은빛의 거대한 글자들이 스스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생명 구원 장부(Life Ledger)가 활성화됩니다.] [환자명: 이진수 (24세)] [주요 병변: 외상성 비장 파열(Grade V), 급성 경막외출혈(EDH)] [현재 생존율: 4.2%] [보유 포인트: 100]

'생명 구원 장부...!'

회귀와 함께 찾아온 기이한 권능이 눈앞에 선명히 드러났다. 4.2%라는 숫자가 피처럼 붉게 명멸하고 있었다. 가만히 두면 5분 안에 심장이 멈출 목숨이었다.

[포인트 100을 소모하여 '신체 기능 일시 안정화 버프' 및 '초정밀 두개골·복강 가상 시뮬레이션'을 가동하시겠습니까?]

강혁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망설임은 사치였다. 의사로서의 본능과 7년의 한이 혈관을 타고 뜨겁게 요동쳤다.

'가동해.'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린 직후, 가슴 안쪽에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끄윽...!"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무겁게 압박받으며 맥박이 요동쳤고, 왼손 손가락 끝이 제멋대로 파르르 떨리며 안쪽으로 굽어 들어갔다. 환자의 쇼크 상태가 그의 신경계로 실시간 동조되어 전이되는 가혹한 대가였다.

"백강혁? 너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송민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강혁의 어깨를 잡았다. 강혁은 입술을 깨물어 피 맛을 보며 통증을 억누르고 손가락을 강제로 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환자의 침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야, 인턴!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뒤로 빠져!"

김 의사가 소리를 질렀지만, 강혁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환자의 복강 내부가 반투명한 3D 가상 그래픽으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찢어진 비장 동맥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붉은 혈류의 위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확하게 시야에 박혔다.

"비장 등급 5단계 파열입니다. 복강 내 출혈이 이미 1,500cc를 넘었습니다. 이대로 본원 연락 기다리다가는 테이블 데스(수술 중 사망)입니다."

강혁의 단호한 진단에 송민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초음파도 아직 안 밀어 넣었는데."

"보면 모릅니까? 호흡 양상, 복부 팽만 정도, 그리고 좌측 상복부의 반반사 통증까지. 지금 당장 배 안 열면 이 환자 기도로 피 쏟고 끝납니다."

"미쳤어! 인턴이 어디서 메스를 잡겠다고 개소리야!"

김 의사가 강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

강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 눈빛에 서린 압도적인 기백과 살기에 김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15년 동안 수천 번의 사선을 넘나들며 쌓아 올린 최고봉 외과의의 아우라였다.

"송민우 선생."

강혁이 송민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살리고 싶지 않습니까? 여기 누워 있는 환자, 의사들이 눈치 보는 사이에 죽어 나가는 꼴 똑같이 구경만 하실 겁니까?"

송민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겉으로는 능글맞게 굴며 현실과 타협하는 척했지만, 그의 가슴속에 남은 마지막 의사로서의 불꽃을 강혁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너... 사고 치면 독박 쓰는 건 나다. 감당할 수 있겠냐?"

송민우가 입안의 껌을 뱉어내며 수술용 장갑을 집어 들었다.

"제가 집도합니다. 송 선생은 어시스트 서십시오."

"뭐? 인턴이 집도를 하고 레지던트 치프가 어시를 서라고? 야, 너 진짜 돌아버렸구나."

송민우가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그의 손은 이미 소독약을 쥐고 있었다.

"빨리 준비해! 김 의사 너는 본원에 수혈용 O형 농축적혈구 당장 수급해 오고, 마취과에 연락해!"

레드존 내부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간호사들이 허둥지둥 수술 기구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제대로 된 외상 수술실도 아닌, 임시 처치실의 열악한 조명 아래서 강혁은 메스를 손에 쥐었다.

[가상 시뮬레이션 가이드 라인이 활성화됩니다.] [최적의 절개선 각도: 15도, 깊이 3cm 상복부 정중선 절개.]

눈앞의 가이드 라인을 따라 강혁의 메스가 망설임 없이 환자의 피부를 갈랐다.

스구구국.

차가운 메스가 노란 지방층을 지나 백선을 뚫고 들어갔다. 단 한 치의 떨림도 없는 극도로 정교한 솜씨였다.

"어...?"

옆에서 리트랙터(갈고리 모양의 시야 확보 기구)를 잡으려던 송민우의 입에서 신음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인턴의 칼끝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오차 없는 속도와 정확도였다. 불필요한 출혈을 최소화하며 단숨에 복강을 열어젖히는 솜씨는, 본원의 내로라하는 교수들조차 흉내 내기 힘든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썩션(흡인기)! 빨리!"

강혁이 소리쳤다. 혈액이 뿜어져 나오며 시야를 가렸지만, 그의 뇌리에는 이미 장부가 그려준 혈관 지도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손가락 줘."

강혁은 기구도 쓰지 않은 채, 피바다가 된 복강 안쪽으로 거침없이 왼손을 밀어 넣었다. 비장 동맥의 기시부를 손끝의 감각만으로 찾아내 움켜쥐려는 순간이었다.

쿵!

가슴을 쥐어짜는 쇼크 통증이 다시 한번 강혁의 심장을 강타했다.

"하윽...!"

강혁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고, 그의 이마에서 비 오듯 쏟아진 땀방울이 수술포 위로 툭툭 떨어졌다. 왼손 검지손가락이 마비된 듯 딱딱하게 굳어 가며 미세하게 뒤틀렸다.

'안 돼. 여기서 멈추면 환자는 끝이야.'

강혁은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가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굳어가는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장부가 보여주는 붉은 선의 끝자락, 요동치는 비장 동맥의 박동이 손끝에 닿았다.

척!

"클램프."

강혁이 오른손을 뻗었다. 간호사가 멍하니 서 있자, 송민우가 직접 카트에서 기구를 낚아채 강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여기다! 찝어!"

송민우가 소리쳤다. 강혁은 떨리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단단히 고정하며, 출혈의 근원지인 비장 동맥을 향해 클램프를 밀어 넣었다. 정확하게 동맥을 물어 잠그는 철제 기구의 마찰음이 처치실 안을 울렸다.

딸깍.

동시에 시뻘건 피로 가득 차오르던 복강 내부의 출혈이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잡았다..."

송민우가 넋이 나간 조용히 중얼거렸다. 환자의 생존율은 순식간에 4.2%에서 35%로 치솟았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환자의 머리맡에 연결된 바이탈 모니터가 미친 듯이 경고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어, 어레스트인가? 혈압이 안 잡힙니다!"

간호사가 비명을 질렀다. 심전도 그래프가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임시외상구역의 육중한 이중문이 쾅 소리를 내며 박살 나듯 열렸다.

"이게 무슨 미친 짓거리야!"

차트를 손에 쥔 채 시뻘게진 얼굴로 들어선 사내. 가온대학병원 외과 과장이자 기득권의 상징인 차민혁이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수술대를 쏘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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