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낙하 압력이 고막을 짓눌렀다.
승리의 환호가 채 흩어지기도 전에 발밑을 집어삼킨 공동(空洞)은 자비가 없었다. 베르톨트가 정교하게 설계해 둔 지하 침강 트리거는 서우가 전장에 새겨 넣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잔류 수식과 공명하며 차원의 가장 연약한 틈새를 기어이 뜯어내고야 말았다. 마찰열조차 발생하지 않는 차가운 진공의 아가리가 서우의 전신을 밑바닥 저편의 절대 영도 지하로 전격 납치했다.
위아래의 구분이 사라진 암흑 속에서, 서우는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귓가를 스치는 것은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간 자체가 찢어지며 내는 비정형의 비명이었고, 인간의 정신을 직접 오염시키는 위상 왜곡의 불협화음이었다. 아카데미의 대마법사들조차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뇌신경이 타버려 백치가 된다는 '공간의 뒤편'.
지각할 수 없는 차원의 굴곡이 서우의 망막을 어지럽혔다. 눈을 뜨고 있음에도 시야는 끊임없이 안팎이 뒤집히는 뵵의 띠처럼 꼬여 들어갔다. 구토감이 명치끝에서부터 울컥 치밀었다. 가슴뼈 깊은 곳이 짓눌려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서우는 본능적으로 떨리는 손을 뻗어 품 안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촉감이었다. 제1황녀 엘리시아가 충성의 맹세와 함께 그의 목에 걸어주었던 황실의 비보, '비유클리드 비틀림 무늬 펜던트'였다.
펜던트의 미세한 기하학적 굴곡이 서우의 손안에서 기이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고대 제국의 마법 장인들이 공간의 뒤틀림을 제어하기 위해 계산해 넣은, 극도로 정밀한 물리적 촉매 매개체였다. 펜던트 표면에 새겨진 나선형의 홈들이 주변의 왜곡된 차원 압력을 빨아들이며 미세하게 푸른빛을 발했다.
서우는 펜던트의 곡률을 가이드라인 삼아,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수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리만 기하학의 메트릭 텐서(Metric Tensor)를 대입한다. 현재 공간의 곡률 k는 양수가 아닌 음수. 이 공간은 안장점처럼 휘어져 있어. 삼차원 유클리드 좌표계로는 이 왜곡을 버틸 수 없다.’
뇌세포가 순식간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수평과 수직의 가상 격자망이 그의 시야 너머로 붉게 명멸했다. 서우는 제멋대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공간의 좌표들을 강제로 고정하기 시작했다. 펜던트가 발산하는 미세한 진동이 그의 연산을 공간에 투사하는 안테나가 되어 주었다.
[x² + y² - z² = -1]
쌍곡 공간의 기본 정의를 허공에 그렸다. 보이지 않는 수학적 메스가 요동치던 차원의 파도를 둘러싸고 단단한 입방체의 틀을 짜기 시작했다. 거칠게 요동치던 중력의 벡터가 서우의 발밑을 기점으로 수직축을 찾아 정렬되었다.
쿵-!
서우의 두 발이 단단한 석판 바닥에 닿았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보랏빛의 기괴한 균열들이 그의 반경 3미터 바깥으로 밀려나며 둥근 도넛 모양의 안정 영역을 형성했다. 대마법사들을 미치게 만든다던 위상의 폭풍이, 서우가 그어놓은 명확한 기하학적 경계선 앞에서는 한 가닥 바람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허공에 고정된 격자망 속에서, 서우는 홀로 온전한 물리 법칙의 보호를 받으며 서 있었다. 모두가 죽음의 구역이라 기겁하던 절대 영도역의 한복판에, 오직 그만을 위한 무해한 안전지대가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는 가혹했다.
"쿨럭……!"
숨을 들이쉬는 순간,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역류가 터져 나왔다. 바닥으로 붉은 선혈이 무참하게 흩뿌려졌다.
마나가 전혀 없는 순수한 인간의 육체로 고차원의 위상수학을 실시간으로 연산한 과부하는 고스란히 뇌 신경계로 전달되었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귀 안쪽에서는 날카로운 쇠붙이로 유리를 긁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찢발겼다.
"아악……!"
서우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무릎을 꿇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며 흉부를 압박했다. 눈앞에 백색 소음 같은 스파크가 튀었고, 방금 연산했던 수식들의 일부가 머릿속에서 강제로 소거되는 듯한 단기 기억 상실의 전조가 엄습했다.
‘안 돼…… 여기서 기억을 잃으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이정표, '종언의 방정식'을 해독해야 하는 그의 천재성이 영구히 훼손당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차가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소매깃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나는…… 마왕이다."
혼자뿐인 차가운 심연 속에서, 서우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것은 타인을 속이기 위한 연기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무력하고 나약한 고등학생 한서우의 자아를 완전히 감추지 않으면, 밀려오는 공포와 고통에 정신이 먼저 무너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지배자의 가면을 얼굴 가죽 위에 덧씌우듯, 그는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그의 눈빛에는 다시금 오만한 광채가 깃들었다.
서우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간의 뒤편은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규칙으로 숨 쉬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아카데미의 대리석 복도와 달리, 이곳의 벽면은 검푸른 빛을 띠는 미지의 금속 잔해들로 뒤덮여 있었다. 천장과 바닥의 경계가 모호한 복도가 기하학적으로 꺾이며 끝없는 미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우는 벽면으로 걸음을 옮겨, 차가운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벽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스스스스.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먼지 아래로, 고대의 기하학적 각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장식 무늬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간의 연결 상태를 변조하고 다차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대 문명의 '다차원 연결 연산 회로판'이었다.
"……이건."
서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벽면에 새겨진 마모된 선들의 흐름, 그리고 특정 구간마다 변색하여 찌그러진 위상적 특이점들. 그것은 분명히 그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종언의 귀환 방정식'의 제1 변색 구역이었다.
지상의 석학들이 귀신이나 악마의 저주라며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이 금단의 유적은, 사실 차원 이동의 공식이 물리적으로 박제된 거대한 도서관이었던 셈이다.
서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완만하게 올라갔다.
지상의 대마법사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종말의 구역이, 그에게는 원래 세계로 가는 열쇠가 가득한 보물창고나 다름없었으니까.
"결국 이곳이었군."
그는 펜던트를 가볍게 쥐고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수평과 수직의 격자망이 그의 발걸음에 맞춰 파문처럼 퍼져나가며 왜곡된 차원을 평평하게 다듬었다. 지옥의 한복판을 마치 자신의 개인 서재처럼 한가롭게 거니는 소년의 모습은, 만약 누군가 보고 있었다면 경악을 넘어 종교적인 경외감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불안과 통증은 여전히 그의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머릿속의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벽면에 새겨진 고대 수식의 나선을 하나씩 해독해 나갈 때마다, 뇌리에 각인된 귀환 공식의 첫 번째 고리가 미세하게 동기화되는 감각이 전해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원래의 세계로 가는 통로를 개척하는 행진이었다.
그러나 고대의 유적이 침입자의 유유자적한 산책을 언제까지나 허용할 리 없었다.
쿠우우웅-!
유독 짙고 어두운 차원의 틈새 아래에서, 묵직한 진동이 지반을 흔들었다.
서우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가리킨 곳은 복도 모퉁이 너머, 거대한 공동이었다. 그곳에는 기이한 기하학적 다면체 모양으로 조각된 고대 봉인 수호 골렘들의 거대한 시신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수백 년 동안 가동을 멈추고 먼지 속에 묻혀 있던 존재들이었다.
스으으으.
기분 나쁜 마찰음과 함께, 가장 거대한 골렘의 가슴팍에서 보랏빛 불꽃이 튀었다.
이내, 굳게 닫혀 있던 골렘들의 안구 부위가 붉은 빛을 발하며 기학적인 눈을 뜨기 시작했다. 우두둑, 하며 뼈마디가 꺾이는 듯한 굉음이 절대 영도의 고요를 찢었다.
하나, 둘, 셋…… 십여 기에 달하는 고대의 파괴 병기들이 먼지를 털어내며 서서히 발돋움했다. 그들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중앙에 선 작은 인간, 서우를 향해 조준되었다.
골렘들이 거대한 금속 팔을 들어 올리며, 서우가 확립해 둔 안전 좌표계의 영토를 포위하듯 좁혀오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살기가 서우의 전신을 차갑게 옭아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