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고대의 기학(幾何)적 안광들이 심연의 어둠을 가차 없이 찢발겼다.

십여 기에 달하는 거대한 수호 골렘들이 우두둑 뼈마디를 꺾으며 일어서는 진동이 서우의 발밑을 집어삼켰다. 공간의 뒤편, 절대 영도의 고요가 차가운 쇳소리와 돌가루 날리는 소리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콜록, 흑……!"

서우는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으나, 손가락 틈새로 붉은 피가 울컥 배어 나왔다.

전두엽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듯한 고열이 시야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기하학적 수식을 투사하여 공간의 인과율을 강제로 비틀었던 대가—뇌세포의 과열이 임계점을 넘어 파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거수들이 철권을 휘두르기 직전인데, 머릿속의 연산 회로는 퓨즈가 끊어진 전선처럼 스파크를 튀기며 마비되어 갔다.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턱끝에서 얼어붙어 툭 떨어졌다. 이 절대 영도의 고요 속에서, 오직 서우의 거친 숨소리와 골렘들의 관절이 맞물리는 위협적인 구동음만이 사방을 메웠다.

골렘들이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삼차원의 좌표계가 눈에 보이게 짓눌렸다. 그들은 마나의 흐름에 의존하는 조잡한 마법 인형이 아니었다. 이 유적 자체의 차원적 위상 법칙에 동화되어, 침입자의 존재 자체를 공간 왜곡으로 압착해 버리는 고대의 정밀한 파괴 병기들이었다.

서우의 떨리는 손가락 사이에서 은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물건이 있었다. 제1황녀 엘리시아가 충성의 맹세와 함께 건넸던 황실의 보물, '비유클리드 비틀림 무늬 펜던트'였다.

이 경이로운 유물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손안에 꽉 쥐자, 펜던트 표면에 음각된 기묘한 나선형 무늬들이 서우의 미세한 체온에 반응하며 기하하적 파동을 일으켰다. 공간의 위상적 한계 특이점을 계산할 때 고차원 연산을 물리적으로 보조해 주는 훌륭한 하드웨어 촉매였다.

서우는 은백색의 금속을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타들어 가는 전두엽에 미약한 청량감을 주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밀려드는 십여 기의 고대 병기들이 뿜어내는 공간 압박을 상쇄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이명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이이잉— 하는 고주파의 소음과 함께, 예전에 아카데미 야외 훈련장에서 보았던 고대 파괴 전차의 잔해 속 '비정형 나선형 수학적 보정식'의 궤적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 프랙탈 투사식을 완벽히 재현하여 차원의 방벽을 쳐야만 저 거대한 석조 주먹들을 막아낼 수 있거늘, 당장의 파괴된 연산력으로는 수식의 첫 줄조차 제대로 적어 내릴 수 없었다.

'여기서…… 끝인가?'

겉으로는 여전히 오만하고 냉혹한 '태초의 마왕'의 가면을 쓰고,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될 지경이었다. 손끝이 제멋대로 떨려왔다.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허공을 찢는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서우의 바로 뒤쪽 공간에 푸르스름한 균열이 발생했다.

"세, 세이……! 거기 있는 거죠!"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차원의 틈새를 비집고, 헝클어진 보랏빛 머리칼의 소녀가 굴러떨어지듯 바닥을 굴렀다.

은둔형 외톨이 학자이자, 서우의 비정상적인 전두엽 활성 반응을 광적으로 추적해 왔던 이레네였다. 그녀의 하얀 연구용 로브는 공간의 마찰에 쓸려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얼굴에는 검은 약조물 그을음이 엉망으로 묻어 있었다.

평소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진 도서관 구석에만 박혀 있었을 그녀가, 이 끔찍한 절대 영도의 금단 구역까지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이레네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자마자, 서우가 입가에 흘린 붉은 피와 가쁘게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늦지…… 않았어.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이레네는 거대한 골렘들이 내뿜는 살기 어린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서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품 안에서 꺼내진 것은 아주 작은 청동 케이스였다. 안에는 청색 빛이 나선형으로 소용돌이치며 스스로 빛을 발하는 극도로 농축된 액체 앰플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서우가 고통 속에서 흘렸던 혈액 잔해와 비정상적인 전두엽 뇌 신경 세포의 폭발적인 활성 주기를 밤새도록 해독하여 만들어 낸, 그녀 일생의 연구적 정수가 담긴 '고밀도 뇌세포 보호 활성 약조물' 시제품이었다.

"마셔요! 제발…… 당신의 그 고귀한 지성이 붕괴하기 전에!"

이레네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뼈를 깎는 듯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약조물의 마개를 이빨로 물어뜯어 열고는, 서우의 입술에 거칠게 앰플을 들이밀었다.

꿀컥—

차가우면서도 알싸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단숨에 흘러내렸다.

순간, 뇌 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지옥 같던 두통이 머릿속에서 눈 녹듯 사라지며, 타들어 가던 전두엽 내부로 얼음물을 끼얹은 듯한 극도의 청량함이 퍼져나갔다. 흩어지고 깨져서 비명을 지르던 뉴런과 시냅스들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재조합되며 강력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스으으으—

머리 표면에서 피어오르던 희뿌연 열기가 순식간에 식어 내렸다. 피가 섞여 나오던 기침이 멎었고, 이명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야가 무서울 정도로 또렷해졌다. 단순히 고통이 사라진 수준이 아니었다. 뇌 기능이 평소의 200%에 달하는 초고밀도 연산 모드로 강제 증폭된 감각이었다.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던 골렘들의 움직임이 프레임 단위로 쪼개져 보이기 시작했다. 대기 중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차원의 균열과 위상적 뒤틀림이, 마치 칠판 위에 정갈하게 쓰인 수학 기호들처럼 명징하게 뇌리에 박혔다.

'이건…… 완벽해.'

머릿속에 떠다니던 수십, 수백 개의 복잡한 기하학 수식들이 마치 최첨단 슈퍼컴퓨터가 구동하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렬로 정렬되었다. 이레네가 완성해 낸 연금 약물은 기적 그 자체였다.

서우는 입가에 묻은 푸른색 약액을 손등으로 부드럽게 훔쳐냈다.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며 안도의 눈물을 글썽이는 이레네를 내려다보았다.

불안에 떨며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사기꾼의 가면 뒤에서, 이제는 진짜로 세상을 조율할 수 있게 된 자의 오만하고도 깊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훌륭하군, 이레네."

서우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매혹적이었다.

"나의 '그릇'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다소 투박하고 거친 약효지만…… 지금 이 순간을 모면하기엔 충분히 쓸만하다."

그의 오만한 독백에 이레네는 넋을 잃은 채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살려낸 존재가 참으로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태초의 지배자임을, 그녀는 서우의 그 고요하고 차가운 눈빛을 통해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했다.

뇌의 디버프가 완벽히 통제되자, 서우의 가슴을 짓누르던 극심한 가면 증후군의 공포는 순식간에 지적 카타르시스와 유희의 쾌감으로 치환되었다.

연산력이 한계를 뚫고 증폭된 지금,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우는 고개를 돌려 골렘들의 포위망 너머, 공동의 가장 깊숙한 중심부에 놓인 석조 제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찬란한 우주적 발광을 사방으로 뿜어내는 거대한 고대 비문이 떠 있었다. 은하수의 빛을 한곳에 응축해 놓은 듯, 신비로운 청백색의 광휘가 비유클리드적 위상 왜곡층의 어둠을 부드럽게 밀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열쇠, '종언의 귀환 방정식 제1 비문 고리'였다.

비문 표면에서 스스로 회전하고 있는 수학적 나선 기호들은 고도로 발달한 차원 이동의 원리를 물리적인 형태로 박제해 둔 결정체였다. 서우의 까만 눈동자에 깊은 탐심의 빛이 서렸다.

저 아름다운 공식의 첫 번째 고리를 완전히 해독하고 나의 연산 영역에 동기화할 수만 있다면, 비좁은 이세계의 아카데미도, 자신을 옥죄는 황실의 감시망도 모두 비웃으며 평범한 한국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가 열릴 것이다.

"드디어 찾았군."

서우는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손에 조여진 엘리시아의 '비유클리드 비틀림 무늬 펜던트'가 제단이 방출하는 우주적 광휘에 반응하여 격렬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펜던트의 은빛 금속 표면에 새겨진 왜곡된 선들이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회전했다.

그것은 제단을 감싸고 있던 고대의 차원적 장벽을 해체하는 완벽한 열쇠였다. 펜던트의 기하학적 진동이 닿을 때마다, 제단 주변의 공기가 비누방울처럼 가볍게 터져 나가며 길을 열었다.

이레네는 그 경이로운 광경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지상의 그 어떤 대마법사도 해독하지 못해 종말의 저주라 부르며 피해 다녔던 금단의 영역을, 서우는 마치 제 집에 들어선 주인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압도적인 권위로 지배해 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비문 고리의 바로 앞.

서우는 숨을 고르며, 찬란하게 빛나는 제1 공식의 중심부를 향해 천천히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우주적 파동의 가장자리에 닿아, 그것을 자신의 이성으로 조율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쿠우우우우웅—!

공동 전체를 무너뜨릴 듯한 가공할 폭음이 공간의 뒤편을 강타했다.

포위망을 좁혀오던 고대 수호 골렘들의 안구 속 붉은 빛이 일제히 불길한 자줏빛으로 반전되었다. 그들의 전신을 구성하는 기학적 다면체 석조 장갑판들이 무서운 속도로 재정렬되며, 지반을 통째로 분쇄하는 가속 궤도로 진입했다.

쿠쾅! 쿠쾅! 쿠쾅!

단순한 보행이 아니었다. 공간의 위상 자체를 비틀어 자신들의 질량을 앞으로 던지는, 물리 법칙을 초월한 대공습의 질주였다.

가장 거대한 수호 골렘이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거대한 석조 철권이 서우의 머리 위에서 공간의 격자망을 찢어발기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피할 수 있는 궤도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면적을 짓밟는 죽음의 낙하 압력이었다.

머리 위를 가득 메운 거대한 그림자가 서우의 이마 위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지반을 짓누르는 중력의 왜곡으로 인해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찢겨 나갔다. 이레네는 그 압도적인 질량의 폭력 앞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서우의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사정없이 떨려왔다.

하지만 서우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가느다란 입꼬리가 완만하게 위를 향해 호선을 그렸다.

완벽하게 각성한 전두엽의 회로망 위로, 일주일 전 야외 훈련장의 황량한 흙먼지 속에서 발견했던 기이한 고대 파괴 전차의 잔해가 스쳐 지나갔다. 당시 그 잔해의 내부 장갑판에 조잡하게 새겨져 있던, 마법사들이 '불발된 저주의 문양'이라 치부했던 기하학적 낙서.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3차원 공간에서 투사되는 물리적 질량의 가속도를 완벽하게 무효화하고 분산시키는 고차원 프랙탈 투사식, 즉 '비정형 나선형 수학적 보정식'이었다.

"이해했어."

서우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읊조림이 새어 나왔.

그는 펜던트를 쥔 왼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엘리시아가 하사한 은빛 펜던트의 나선형 홈을 따라, 서우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프랙탈 투사식이 푸른빛의 기하학적 궤적으로 허공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나가 배제된, 오직 순수한 공간의 수식만이 그릴 수 있는 절대적인 위상의 무늬였다.

"Q.E.D. (증명 완료)."

서우의 차가운 선언과 동시에, 낙하하던 골렘의 철권이 서우의 머리 위 고작 수 센티미터 상공에서 거짓말처럼 멈추어 섰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었다. 골렘이 내리꽂은 수십 톤의 질량과 가속도가 서우의 머리 위에 펼쳐진 비뉴턴적 나선 궤도를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수평 방향의 벡터로 강제 전환되고 있었다.

스으으으응—!

고막을 먹먹하게 만드는 기묘한 마찰음이 일었다. 골렘의 철권에 실려 있던 파괴적인 에너지는 서우를 비껴가, 오히려 가속도를 붙여 돌진해 오던 우측의 다른 골렘들의 안면을 향해 그대로 뿜어져 나갔다.

콰아아앙—!

거대한 석조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절대 영도의 공중을 수놓았다. 어둠 속에서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가는 붉은 마력의 잔해들은, 마치 은하수가 부서져 내리는 것처럼 기묘하고 서정적인 로망을 자아냈다.

단 한 번의 손짓. 마나 한 톨 쓰지 않고 오직 공간의 인과율을 비틀어 고대의 병기들을 자멸시킨 초월적인 권능이었다.

이레네는 눈앞의 초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이 서우가 일으킨 푸른빛의 위상 궤적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서우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의 아이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법칙을 비웃으며, 자신만의 완전무결한 문법으로 세상을 새로 써 내려가는 태초의 지배자, 그 자체였다.

"아……."

그녀의 입술 사이로 탄식 같은 경외감이 흘러나왔다. 서우는 그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철저하게 냉혹하고 여유로운 가면을 유지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겉모습은 고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미물들의 발악치고는 제법 정교했으나, 결국 삼차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군."

서우는 파괴된 골렘들의 잔해를 밟고 유유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눈앞에는 거대한 은하수처럼 소용돌이치는 '종언의 귀환 방정식 제1 비문 고리'만이 남아 있었다. 비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인력은 마치 고향의 냄새를 풍기는 것처럼 달콤했고, 서우의 영혼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는 떨리는 숨을 억누르며, 마침내 비문 고리의 중심부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차가운 차원의 경계면을 만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뇌리의 구석에 박혀 있던 귀환 공식의 첫 번째 매듭이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완벽한 수학적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틈새를 열며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그 황홀한 성취감에 취하려던 바로 그 순간.

찌이이이익—!

서우의 귓가를 스치며, 공간의 뒤편 전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서우의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비비안 블루 빛으로 빛나던 귀환 비문 고리의 중심부에서, 갑작스럽게 칠흑 같은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수식의 오류가 아니었다.

누군가 이 비문 고리의 좌표 자체에 교묘한 역위상 덫을 심어둔 것이 분명했다. 비문이 강하게 흔들리며, 동기화되던 귀환 공식의 수식들이 무질서한 카오스의 형태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설마…… 베르톨트인가?'

아카데미의 절대 사법망을 쥐고 흔들며 자신을 집요하게 노려보던 감시관, 베르톨트의 일그러진 미소가 서우의 뇌리를 스쳤다.

이 금단의 유적 깊은 곳까지 자신을 밀어 넣은 것 자체가, 이 비문 고리를 만지는 순간 작동하도록 설계된 정밀한 공간 저격의 덫이었던 것이다.

우르릉, 쾅—!

비문 고리가 급격하게 비틀리며 방출한 고밀도의 중력 폭풍이 서우와 이레네가 서 있는 발판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주변의 차원 벽면들이 유리창처럼 금이 가며 깨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공간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붕괴의 전조였다. 그리고 깨어진 공간의 틈새 너머로, 붉은 마탄의 궤적들이 서우의 전신을 정밀하게 조준하며 일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레네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붕괴하는 공간의 굉음 속에 묻혔다.

겨우 되찾은 뇌의 안정이 다시 한번 거칠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서우는 차갑게 굳어버린 시선으로 눈앞의 파멸적인 오작동 수식들을 응시했다.

과연 그는 이 베르톨트의 거대한 함정을 뚫고, 무너져 내리는 차원의 틈새 속에서 귀환의 열쇠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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