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채를 둘러싼 정원의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무거워졌다. 삼차원의 공간 속에서 당연하게 존재해야 할 대기의 흐름이 마치 굳어버린 젤리처럼 끈적하게 멈추어 섰다. 나뭇잎을 흔들던 밤바람도, 지붕 위를 스치던 푸른 달빛도 정원의 특정 경계선에 걸려 기괴하게 굴절되고 있었다. 마나가 전혀 없는 한서우의 신체로는 느낄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그의 두뇌에 각인된 기하학적 직관은 경고음을 울렸다.
"……기하학적 고립 영역."
서우는 창틀을 짚은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닿은 목재의 차가운 감촉이 현실감을 일깨웠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번져가는 살기는 아카데미의 사법 치안을 담당하는 고위 조율사들의 짓이었다. 그들은 마나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하는 최상급 '수마력 감지 차단 역장 결계'를 전개하며 서우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이 고요한 밤, 태초의 마왕이라 오해받는 이방인의 숨통을 누구도 모르게 끊어버리겠다는 명백한 의도였다.
서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려 셔츠를 적셨지만, 그의 입꼬리는 기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언제나 그랬듯, 극도의 공포와 정체 탄로의 불안감이 극에 달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병적인 방어기제였다. 타인의 눈에는 그것이 필멸자들의 하찮은 발악을 비웃는 마왕의 여유로운 실소로 보였으리라.
그는 주머니 속에서 황녀 엘리시아에게 받은 '비유클리드 비틀림 무늬 펜던트'를 꽉 쥐었다. 은빛으로 꼬여 있는 고대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놀랍게도 펜던트가 지닌 특이한 위상 구조가 서우의 머릿속에 매핑되는 순간, 전두엽을 찌르던 바늘 같은 두통이 한풀 꺾였다. 마치 과열된 연산 장치에 보조 냉각기가 장착된 것처럼, 외부의 공간 좌표들이 한층 명료하게 뇌리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창문을 조금 더 열고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결계의 형태가 보였다. 마법사들의 눈에는 그저 보이지 않는 마나의 장벽이겠지만, 서우의 머릿속에서 그것은 완벽한 수학적 입체형으로 시각화되었다. 안과 밖의 경계가 둥글게 말려 들어가 서로를 가두는 구조.
"토러스(Torus)로군."
도넛 모양의 3차원 다양체. 안쪽의 마나 흐름을 회전시켜 내부의 음향과 물리적 충격을 완벽하게 가두고, 바깥의 감시망을 기만하는 전형적인 위상 기하학적 폐곡면이었다. 결계를 유지하는 조율사들은 도넛의 바깥쪽 둥근 표면을 따라 일정한 주기로 마나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그 순환의 주기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진동이 정원 바닥의 잡초들을 불규칙하게 흔들었다.
마나가 없는 서우에게는 결계를 깨뜨릴 마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 세계의 물리 법칙 자체를 해킹하는 수식이 있었다.
'도넛의 안쪽 구멍과 바깥쪽 경계가 만나는 접점.'
그 접점의 좌표를 비틀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안쪽의 압력과 바깥쪽의 장력이 평형을 이루는 임계점을 단 1밀리미터라도 어긋나게 만든다면, 순환하던 마나는 갈 곳을 잃고 붕괴할 터였다.
서우는 펜던트의 비틀림 무늬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뇌세포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곡률 수식들이 어두운 방 안의 대기 속에 무형의 궤적을 그리며 나열되었다.
$ds^2 = -(1 - \frac{2M}{r})dt^2 + (1 - \frac{2M}{r})^{-1}dr^2 + r^2(d\theta^2 + \sin^2\theta d\phi^2)$
공간의 곡률을 강제로 왜곡하는 슈바르츠실트 계량의 변형 공식이 서우의 시선을 따라 허공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들었다. 머릿속이 붉게 타오르는 듯한 열감이 치밀었다. 코끝에서 쇠 냄새가 섞인 비릿한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렸지만, 서우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연산 오차가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접점의 방정식, 동기화 완료."
서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으며, 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기묘한 무게감을 품고 있었다.
"증명 완료(Q.E.D.)."
수식의 선언과 동시에, 허공에 투사된 보이지 않는 기하학적 선들이 정원의 토러스 결계 중심부를 관통했다.
쿠구구궁!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소리를 가두던 결계 내부에서 오히려 고주파의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도넛 모양으로 순환하던 마나의 벡터 방향이 강제로 뒤틀려 안과 밖이 뒤집히는 클라인의 병 형태로 꼬여버린 것이다. 내외부의 기압 균형이 단번에 파괴되자, 결계를 지탱하던 사법관들의 제어 마나가 순식간에 역방향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커헉!"
정원 구석,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검은 예복의 사법관 하나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자신이 방출했던 방대한 마나가 역류하여 역으로 심장과 마나 회로를 사정없이 짓밟아버린 탓이었다.
"이, 이게 무슨……! 끄아아악!"
또 다른 사법관이 비명을 지르며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온몸에서 푸르스름한 마력의 불꽃이 제멋대로 폭발하며 살점을 태워갔다. 공간의 법칙이 비틀린 자리에서 마나를 제어하려 한 대가는 잔혹했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계의 압력이 고스란히 자신들의 육체를 짓누르는 거대한 중력의 망치가 되어 떨어졌다.
바스라지는 뼈 소리와 억눌린 단명이 정원의 정적을 어지럽혔다. 침입자들은 단 한 걸음도 서우의 방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가두려 했던 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스스로 토혈하며 자멸해갔다.
서우는 창틀을 잡은 채 그 참상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가슴속은 공포로 터질 것 같았고, 뇌의 과부하로 인해 시야가 흐릿하게 번졌지만, 그의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어리석군."
그가 흘려보낸 혼잣말은 밤의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필멸자들을 향한, 마왕의 지극히 당연한 탄식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스르륵, 정원 한구석의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더니, 시체들 사이로 작은 형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우의 눈살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침입자가 더 남아 있었나 하는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찰나, 달빛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사법관들의 검은 가면이 아니었다.
부스스한 은발에 촛점 없는 유백색의 눈동자, 그리고 아카데미 연금술학부의 낡은 로브를 걸친 소녀.
이레네였다.
그녀는 사법관들이 토해낸 피와 흩어진 마력의 잔해 속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연금술용 마도 도구와 유리 플라스크가 들려 있었다. 이레네의 시선은 자멸한 사법관들의 시체를 지나, 창가에 고고하게 서 있는 서우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학자로서, 혹은 무언가 금기된 진리에 도달한 자가 느끼는 광적인 희열에 가까운 전율이었다.
이레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쓰러진 자들의 피를 밟고 서우의 창문 아래로 다가왔다.
"……역시 그랬어."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맑게 울렸다.
"마나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 존재. 하지만 세계의 인과를 직접 손질하는 권능. 당신은 마나를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마나 따위는 부릴 가치도 없는 하등한 규칙으로 여기고 계시는군요."
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의 권위를 유지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레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가늠해야 했다.
이레네는 품속에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아주 작은 붉은 룬석 조각을 꺼내 들었다. 그 룬석은 기묘하게도 푸른빛이 아닌, 탁하고 붉은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기억하시나요? 당신이 처음 이 아카데미의 연무장에 내려섰을 때 흘렸던 그 고귀한 피를."
서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화에서 소환 직후, 과부하로 인해 뇌가 타들어 가며 바닥에 흘렸던 혈액.
"저는 그날 밤, 당신이 밟고 있던 연무장 바닥의 룬석을 회수했습니다. 아카데미의 룬석은 순수한 마나에만 반응하여 푸르게 빛나는 법이지요. 하지만…… 당신의 피가 닿은 이 룬석은 완전히 붉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마나 성분이 단 1밀리그램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괴한 세포 성분 때문에요."
이레네의 유백색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 피는 룬석의 근본적인 물리적 성질 자체를 바꾸어놓았습니다. 마나의 법칙을 거부하고,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룬의 배열을 강제로 재정의한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밤…… 당신이 저 불쌍한 사법관들을 치워버린 방식 역시 똑같았습니다. 당신은 공간의 위상을 비틀어 그들을 스스로 파멸하게 만드셨지요."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이 닿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 보았습니다. 당신의 뇌가…… 그 위대한 권능을 행할 때마다 엄청난 손상을 입고 있다는 것을요. 연무장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당신의 전두엽 세포는 스스로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이라는 보잘것없는 그릇이 당신의 영혼을 가두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서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분석은 정확했다. 자신이 기하학적 증명을 사용할 때마다 겪는 뇌 과부하의 약점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 정체가 탄로 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서우의 목을 조였다.
그러나 서우는 오히려 조용히 미소 지었다. 냉혹하고도 자비로운 지배자의 미소였다.
"그래서, 네가 감히 내 육신의 한계를 논하겠다는 건가?"
"아닙니다!"
이레네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이 위대한 기적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고, 당신의 그 고귀한 뇌를 지키는 전담 연구자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의 뇌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저는 제 영혼이라도 연금술 가마에 던져 넣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은백색으로 빛나는 작은 액체 병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당신의 피에서 추출한 성분과 아카데미 심층부의 희귀 약초들을 배합해 만든 전두엽 활성 촉매 시제품입니다. 당신의 지능과 연산력을 유지하면서도, 뇌세포의 과열을 일시적으로 식혀줄 수 있는 유일한 약조물입니다. 부디, 이 비천한 공물을 받아주시옵소서."
서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유리병 안에서 일렁이는 은백색의 액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기묘한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살았다.
서우의 마음속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뇌 과부하로 인한 영구적인 수학적 천재성 상실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이 은둔형 외톨이 연금술사가 제 발로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결코 나약함을 보이지 않았다. 서우는 천천히 창가에서 물러나 방 안의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리고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손짓했다.
"가지고 들어와라."
이레네는 구원을 받은 신도처럼 흐느끼듯 숨을 들이쉬며,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별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사흘 뒤.
아카데미의 계절은 한층 더 깊은 가을로 가라앉아 있었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대리석 복도와 정원 바닥을 서글프게 쓸어내렸고, 고풍스러운 도서관의 첨탑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윙윙거리며 지나갔다.
황립 룬 아카데미의 정문 앞 광장은 아침부터 이례적인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신입생 동아리 및 학회 모집 행사 때문이었다.
수많은 천재 마법사들과 명문가의 자제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며 화려한 마법 불꽃을 쏘아 올리거나, 거대한 검기를 뿜어내며 신입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번잡한 축제의 한복판,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나무 테이블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한서우. 가명 '세이'.
그는 엘리시아가 마련해 준 아카데미의 검은 제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 조용히 고대 물리 서적을 읽고 있었다. 그의 주변 반경 5미터 이내에는 그 어떤 학생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사흘 전 밤, 그를 습격하려던 사법관들이 단 한 마디의 영창도 없이 스스로의 마력에 질식해 자멸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이미 아카데미 상층부와 학생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진 탓이었다.
"저기 봐…… 그 '태초의 마왕'이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도, 기압이 다르게 느껴져……."
학생들은 멀찍이 서서 서우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서우는 책장을 넘기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다들 왜 이리 겁을 먹는 거야…….'
하지만 그의 주머니 속에는 이레네가 바친 은백색 약조물 병이 들어 있었고, 목에는 황녀 엘리시아의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종언의 방정식'을 해독하기 전까지는, 이 철저한 위장 신분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쿵-!
광장 건너편에서 대지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한 묵중한 진동이 울렸다. 수다를 떨던 학생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며 좌우로 갈라섰다.
붉은 단풍잎들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길목 너머로,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레이엄 카터.
아카데미 무투파의 거두이자, 제국 최강의 검사 가문인 카터가의 후계자.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살기와 기세는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눌렀다. 그의 허리춤에는 자색 검집에 싸인 대검이 묵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레이엄의 사나운 눈동자는 오직 한 곳,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서우만을 향하고 있었다.
쿵, 쿵, 쿵.
대지진을 연상시키는 묵직한 보폭이 서우의 테이블 앞까지 다가왔다.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듯한 살벌한 침묵이 광장을 지배했다.
서우는 책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네놈이 요즘 아카데미를 시끄럽게 만드는 그 허풍쟁이인가?"
그레이엄의 거칠고 굵직한 목소리가 광장에 내리꽂혔다.
"마나가 없으니 마왕이라니, 온갖 감시관들과 황녀 전하까지 네놈의 그 얄팍한 학문적 말장난에 놀아나고 있더군."
그레이엄이 이빨을 드러내며 거칠게 웃었다. 그의 오른손이 허리춤의 대검 자루를 쥐었다.
"하지만 내 검 앞에서도 그 고고한 척하는 주둥이가 살아서 움직일지 아주 궁금하군."
쾅-!
그레이엄의 무지막지한 발길질이 서우가 앉아 있던 목제 테이블을 강타했다.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단 한 방에 사방으로 분쇄되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서우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파편 하나가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가며 미세한 붉은 핏자국을 남겼다.
서우의 턱밑, 불과 수 밀리미터 앞까지 차가운 대검의 칼날이 들이밀어졌다. 칼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리한 검기가 서우의 목덜미를 베어낼 듯 진동했다.
"일어나라, 사기꾼 꼬맹이."
그레이엄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칼날을 바짝 들이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의 그 건방진 대가리를 잘라, 학문 따위는 살육 앞에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직접 증명해주마."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검기 속에서, 서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레이엄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극도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서우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차갑고 냉혹하게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