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목덜미에 밀착한 강철은 지독하게 차가웠다. 살갗을 파고들기 직전인 검날의 서늘함이 척수를 타고 뇌리까지 단숨에 뻗어 나갔다. 베르톨트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는 이성마저 집어삼킬 듯한 광적인 살기와 의구심이 한데 뒤엉켜 이글거리고 있었다.

“연극은 끝이다, 마왕.”

쇠사슬이 바닥을 쓸어내리는 듯한 거친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숨결마저 얼려버릴 듯한 압박감 속에서, 서우는 뇌 깊은 곳에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이명을 들었다. 징징 울리는 진동음이 시야를 흐릿하게 흔들었고, 전두엽이 뜨겁게 달아오른 인두로 지져지는 것 같은 작열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비릿한 피의 맛이 목구멍을 타고 천천히 역류했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싸 쥔 채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마나를 전혀 쓰지 않는 ‘차원 기하학적 증명’의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조금 전의 기적 같은 공간 왜곡을 일으키느라 서우의 뇌세포는 이미 과부하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연산을 시도했다간 정말로 뇌가 타버려 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온몸을 옥죄었다.

하지만 서우는 오히려 나직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늘진 속눈썹 아래로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공포가 영혼을 잠식하려 할수록, 자신이 한낱 무력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본능적으로 작동했다. 차디찬 오만의 가면이 그의 얼굴 위에 견고하고 아름답게 덧씌워졌다.

“정체라.”

서우는 바람결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무심하게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죽음을 앞둔 자의 비장함도 없었다. 오히려 그 고요함에 질려버린 듯 칼날을 쥔 베르톨트의 두꺼운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살얼음판 같은 대치 속에서 서우는 시선을 슬며시 내렸다. 베르톨트의 단단한 군화발이 디디고 있는 대리석 바닥, 그리고 자신의 발끝이 닿아 있는 3차원의 공간 좌표계가 머릿속에서 입체적인 격자눈금으로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보통의 마법사들이라면 대기 중의 마나를 쥐어짜 내어 화염을 일으키거나 얼음 장벽을 세웠을 터였다. 하지만 기하학 수식의 천재인 서우에게 세상은 오직 선과 면, 그리고 숫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수식의 덩어리일 뿐이었다.

‘3차원 유클리드 공간의 중력 벡터. 방향은 연직 하방.’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는 뇌 신경을 채찍질하며, 서우는 머릿속의 수식들을 재정렬했다. 베르톨트가 서 있는 반경 2미터의 국소적 공간을 평평한 평면이 아닌, 곡률이 무한대로 수렴하는 가상의 구면으로 치환한다. 공간의 인과율 자체를 해킹하는 극단적인 좌표 변환이었다.

‘중력 벡터의 오프셋 각도를 y축 방향으로 90도 전도한다.’

머릿속 사슬이 단숨에 끊어지는 듯한 찌릿한 고통과 함께 눈앞이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뇌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한 서우의 코끝에서 가느다란 피 한 줄기가 소리 없이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붉은 혈액이 닿자마자, 연무장 바닥에 박혀 있던 오래된 고대 룬석이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무마나 상태의 이질적인 세포 성분을 머금은 룬석의 표면이 푸른빛을 잃고, 마치 불에 달구어진 철처럼 붉게 물들며 변색되기 시작했다.

연무장 구석의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은둔형 학자, 이레네의 보랏빛 눈동자가 그 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서우가 흘린 피와 붉게 변해가는 고대 룬석의 상호작용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뇌리에 새겨 넣었다.

바로 그 찰나, 베르톨트가 서우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리기 위해 온몸의 마나를 대검으로 폭발시키며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사라져라, 제국의 재앙이여ㅡㅡ!”

묵직한 대검이 공기를 찢으며 치명적인 궤적을 그리려던 순간, 베르톨트의 거구가 허공에서 기괴하게 옆으로 꺾였다.

“ㅡㅡ헉?!”

베르톨트의 시야에서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그에게는 대지가 갑자기 옆으로 수직 기립하는 듯한 기괴한 감각이었으리라. 그가 굳건히 디디고 서 있던 땅은 더 이상 그를 아래로 당기지 않았다. 왼쪽 공간에서 무시무시한 물리적 인력이 발생해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낚아챘다.

쿠우웅!

연무장이 들썩일 정도의 둔탁한 파열음이 울렸다. 제국의 정예 기사이자 무시무시한 살육의 감시관이었던 베르톨트의 거구가 바닥을 옆으로 처참하게 쓸며 굴렀다.

자랑스럽게 치켜들었던 대검은 손에서 미끄러져 대리석 바닥을 요란하게 긁으며 멀리 나뒹굴었다. 베르톨트는 빙판길에서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린 어린아이처럼 볼품없이 엎어져, 옆구리로 차가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다.

“콜록! 컥, 이, 이게 무슨……!”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하며 어떻게든 일어서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발밑의 중력 좌표가 꼬여 있어, 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중심을 잃고 다시 바닥에 보기 좋게 자멸하듯 주저앉았다. 기사로서의 위풍당당함은 온데간데없고, 허우적거리는 몸짓이 애처로울 정도로 처량했다.

연무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감시관들과 기사들의 숨소리가 일시에 가라앉았다. 얼어붙은 침묵이 공간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기적 그 자체였다. 마나 한 줌 쓰지 않고, 단지 싸늘한 시선과 알 수 없는 공간의 비틀림만으로 제국의 강자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존재의 여유.

서우는 흐릿해지는 시야를 다잡으며 구두 굽을 가볍게 움직였다. 바닥의 룬석을 붉게 물들였던 자신의 혈흔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뭉개어 지우는 그의 행동은 지극히 태연했다.

머릿속을 찌르는 이명은 가실 줄 몰랐지만, 서우는 차가운 실소를 흘리며 주저앉은 베르톨트를 내려다보았다. 잔인할 정도로 오만한 무표정 아래, 소년의 목소리가 연무장의 적막을 깨뜨렸다.

“겨우 이 정도의 인과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군.”

그의 얕은 실소는 기사들의 심장에 날카로운 쐐기처럼 박혔다.

“너희가 자랑하는 기사도와 마법이라는 것이, 고작 대지의 기울기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미숙함이었나? 실망스럽군.”

“이, 이 마왕 놈이……!”

베르톨트가 이를 갈며 대검을 짚고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떨리는 손끝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굴욕감과 공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상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마력의 파동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을 지탱하던 세계의 규칙 자체가 그를 거부하고 밀어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학문적 상식을 비웃는, 저주받은 태초의 마왕이 부리는 공간의 권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기사들은 공포에 질려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대치의 팽팽한 긴장감이 연무장을 집어삼키기 직전, 허공에서 기이한 마찰음이 울렸다.

징ㅡㅡ.

공중에 떠 있던 푸른빛의 마법 통신구가 파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찬란한 황금빛 인장으로 변모했다. 아카데미 원로원의 최고 의결 기구에서 발송된 비상 교신이었다.

[그쯤 해두게, 베르톨트 감시관.]

통신구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늙고 건조했으나, 거역할 수 없는 지고한 권위를 담고 있었다.

[그 자를 즉시 처분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마나를 배제한 채 공간의 상수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존재를 섣불리 자극했다간, 제국 전체의 지맥 붕괴를 초과하는 전 차원의 도태가 시작될 수 있다. 원로원은 그를 아카데미의 정식 ‘특별 청강생’으로 편선하여, 우리 시야 안에서 정밀하게 분석하기로 결정했다.]

“원로원장님! 하지만 이 자는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멸망의 전조입니다! 지금 당장 목을 베어 정체를 밝혀야ㅡㅡ!”

[명령이다, 베르톨트.]

단호한 일갈에 베르톨트의 입이 턱 막혔다. 그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서우를 노려보았지만, 더 이상 검을 쥘 명분도 힘도 없었다.

황금빛 인장이 허공에서 서서히 수축하더니, 이윽고 한 장의 두꺼운 양장 종이 카드가 서우의 앞으로 천천히 낙하했다. 아카데미의 정식 입학 권한이자 신분을 보장하는 ‘임시 통관증’이었다.

서우는 속으로 터져 나오려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잠들고 싶을 만큼 육체는 한계에 달해 있었지만, 얼굴에 새겨진 오만한 천재의 가면만큼은 결코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는 우아하게 손을 뻗어 공중에 떠 있는 통관증을 낚아챘다.

바스락.

양장 종이의 서늘한 감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었다.

연무장의 입구 쪽에서부터 차원이 다른 묵직하고 거대한 열기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뜨거운 기류가 피부를 그슬릴 듯 번져 나갔고, 고풍스러운 연무장의 대리석 기둥들이 붉은 불길의 잔상으로 출렁였다.

“모두 길을 비켜라.”

티 없이 맑고도 오만한 목소리가 기사들의 고막을 때렸다.

순백의 마법 화염을 화려하게 두른 체, 은발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한 소녀가 있었다. 제국의 1황녀이자 아카데미의 절대적인 권력가, 엘리시아 폰 로젠가르트였다. 그녀의 강림에 베르톨트를 비롯한 기사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엘리시아의 붉은 눈동자는 오직 한 곳, 서우의 등 뒤만을 매섭게 꿰뚫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종교적인 수준의 경외감과 지적인 희열이 서려 있었다.

서우는 본능적으로 온몸의 긴장 세포를 곤두세우며 몸을 돌렸다. 또 다른 적대자의 등장인가? 머릿속 연산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어 소진된 상태였다. 여기서 그녀가 마법을 펼치며 덤벼든다면 더 이상 방어할 재간이 없었다.

가면 뒤의 서우가 극심한 불안감으로 침을 삼키던 바로 그 순간.

엘리시아가 서우의 코앞까지 걸어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감시관들과 기사들의 상식을 처참하게 부숴버리며,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숙이더니 서우의 발밑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진리를 증명하신 분이시여.”

황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고결한 복종의 언어였다. 연무장의 모두가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채 숨을 멈추었다. 엘리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우의 얼어붙은 눈동자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로젠가르트의 이름으로, 당신의 발끝에 경배를 바치나이다. 저에게 그 위대한 공간의 법칙을 가르쳐 주소서.”

서우의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황녀는 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오해의 톱니바퀴가 그의 머리 위에서 한층 더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은 황녀의 은발 사이로, 저녁놀을 닮은 붉은 잔광이 부서져 내렸다.

제국에서 가장 고결한 혈통이자, 아카데미의 하늘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천재. 그녀가 자신을 우러러보는 시선 속에는 단순한 굴복이 아닌, 미지의 진리를 갈망하는 구도자의 열망이 뜨겁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서우는 순간 호흡을 멈췄다.

등 뒤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셔츠를 축축하게 적셔왔다. 뇌리를 난도질하는 이명은 이제 단순한 소음을 넘어, 두개골 안쪽을 둔기로 내리치는 듯한 둔탁한 통증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이 캄캄하게 암전되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이 미친 인간들이 나를 그대로 해부해 버릴 거야.'

서우는 입술 안쪽을 세게 깨물어 억지로 정신을 붙잡았다. 비릿한 혈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흐려지던 시야가 간신히 초점을 되찾았다. 그는 떨림을 숨기기 위해 양손을 넓은 외투 소매 속으로 깊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황녀를 향해, 지극히 느리고 우아한 동작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진리라."

서우의 목소리는 지독하려치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흥망성쇠를 시드러진 꽃잎 바라보듯 무심히 관조하는 어조였다.

"그대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그 '평평한 세상' 위에, 감히 나의 궤적을 담으려 하는가."

엘리시아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평평한 세상……?"

"아무리 정교한 지도라 할지라도, 둥근 구체를 찢지 않고서는 완벽한 평면으로 펼쳐낼 수 없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거장들이 증명해 낸 가우스의 '빼어난 정리(Theorema Egregium)'. 3차원의 곡면을 2차원의 평면으로 왜곡 없이 투사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절대적인 진리.

마나의 흐름도, 마법적 영창도 없는 백색의 문장이었으나, 그것이 품은 지적 무게감은 엘리시아의 영혼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켜는 것조차 잊은 채, 서우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는 깊고 어두운 심연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서우의 미소는 너무도 서글프고, 동시에 오만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마법 체계 전체를 단 한 문장으로 부정당한 황홀경이 황녀의 전신을 전율케 했다.

"공간의 왜곡은 마나의 크기로 억누르는 힘이 아니다. 뒤틀린 곡률을 이해하는 자만이 세상을 올바르게 그릴 수 있지."

서우는 소매 안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런 마법적 인과도 없는 단순한 제스처였으나, 이미 그에게 압도당한 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마법 방패를 치켜세웠다.

"아직 그대는 이 차원의 기울기를 감당할 수 없다, 황녀."

엘리시아는 바닥에 닿은 손가락 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수치심이 아닌, 마침내 닿을 수 있는 진짜 '세계의 상수'를 발견했다는 희열이 그녀의 뺨을 붉게 물들였다.

"배우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은발이 대리석 바닥을 쓸어내렸다.

"당신이 보여줄 그 곡률의 세계를 위해서라면, 제국을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그림자가 되겠나이다."

[불변]의 법칙처럼 굳어지는 황녀의 맹세에, 연무장에 모인 감시관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제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황실의 상징이, 정체불명의 괴물 앞에 스스로 고개를 숙인 것이다.

하지만 서우에게는 이 극적인 착각의 순간을 만끽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뇌신경의 임계점이 한계에 달했다는 경고등이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단기 기억이 흐려지는 징후로, 방금 자신이 뱉은 수학적 공식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이기 시작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쓰러지더라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러져야 한다.'

서우는 간신히 몸을 돌려 연무장 출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웅ㅡㅡ!

연무장 바닥 전체를 수놓고 있던 거대한 방어 결계의 룬 문자들이, 돌연 폭발적인 붉은 빛을 뿜어내며 기동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심장부와 연결된 자동 방어 체계, '에이지스 오브 룬(Aegis of Rune)'의 강제 격리 프로토콜이 발동된 것이었다.

"이, 이건 무슨……?!"

주저앉아 있던 베르톨트가 붉게 타오르는 결계의 장벽을 보며 경악했다.

쿠르릉!

서우의 발밑에서부터 거대한 빛의 사슬들이 솟구쳐 올라 그의 사지를 가두려는 듯 허공을 가로질렀다. 아카데미의 거대한 마나 원천이, 서우가 발산한 이질적인 '무마나의 왜곡'을 가장 위험한 침입자로 인식하고 자동 격리 절차를 가동한 터였다.

"세이 님!"

엘리시아가 다급히 손을 뻗어 마법 화염을 일으키려 했으나, 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압력은 황녀마저 뒤로 밀쳐낼 만큼 압도적이었다.

사방이 거대한 빛의 감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서우의 눈앞이 붉은 핏빛과 황금빛 마나의 스펙트럼으로 어지럽게 뒤흔들렸다. 뇌세포의 과부하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고, 다리의 감각은 무감각하게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여기서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한 번 더 '차원 기하학적 증명'을 시도한다면, 그의 뇌는 영구적인 수학적 천재성을 상실하거나 그대로 소멸할 터였다.

하지만 사방에서 조여오는 마나의 사슬을 바라보며, 서우는 피가 흐르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차가운 미소를 유지했다.

탈출할 수 있는 연산의 여력은 제로. 도와줄 이조차 없는, 고립무원의 결계 속.

모두의 시선이 사슬에 묶이기 직전인 서우의 몸짓에 집중된 순간, 서우는 소매 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과연 그는 이 절대적인 마나의 함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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