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릉!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공기의 물리적 밀도가 급격하게 뒤틀렸다. 붕괴하는 공간의 뒤편, 그 비유클리드적 위상 왜곡층의 차가운 바닥을 딛고 선 한서우의 눈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은 고대의 유적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수호 골렘 석권 군단이었다. 철도마저 짚단처럼 구겨버릴 듯한 거대한 철골의 팔뚝들이 가속 궤도를 박차며 서우의 정수리를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꽂혔다.
“세이 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붉은색 마나가 서우의 후방을 장엄하게 메웠다.
화염의 장막이 반구형으로 솟구치며 내리치는 철권을 가로막았다. 황녀 엘리시아 폰 로젠가르트. 그녀의 등 뒤로 흩날리는 진홍빛 머리칼이 마치 전장의 한가운데에 피어난 불꽃의 꽃잎 같았다. 최상급 화염 오의인 ‘레기온 아그니’의 마력 방패가 골렘의 철권과 부딪치며 굉음을 토해냈다.
콰아아앙!
“이 정도 피조물 따위에게…… 기적의 주인을 향한 길을 내어줄 성싶으냐!”
엘리시아의 입술 사이로 밭은 호흡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하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붉은 불꽃의 열기에 증발하며 미세한 안개를 만들어냈다. 골렘들의 무지막지한 질량이 마력 방패를 짓누를 때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종교적 투지가 깃들어 있었다. 서우의 무마나 연산을 신의 권능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에게, 지금 이 순간은 주군을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시련에 불과했다.
서우는 은하수처럼 휘몰아치는 ‘종언의 귀환 방정식 제1 비문 고리’를 눈앞에 둔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엘리시아의 등을 바라보았다.
속으로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내가 만약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들키면 어쩌지?’ 하는 가면 증후군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뇌세포가 연산의 과부하로 타들어 가듯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서우는 차가운 ‘천재의 가면’을 고쳐 썼다. 냉혹하리만큼 고요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엘리시아, 훌륭한 엄호군.”
서우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평온했다. 마치 거대한 괴수들의 습격조차 체스판 위의 사소한 수에 불과하다는 듯한 어조였다.
“그 고결한 투지에 걸맞은 증명을 보여주지.”
서우는 품 안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엘리시아가 과거 충성의 징표로 건넸던 황실의 보물, ‘비유클리드 비틀림 무늬 펜던트’였다. 금속의 표면에 새겨진 기묘한 나선형 무늬들이 공간의 뒤편이 머금은 비틀린 빛을 흡수하며 기괴하게 굴절시키고 있었다.
이 펜던트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한계 특이점을 돌파하기 위한 완벽한 하드웨어 촉매였다.
‘이 공간은 3차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위상학적으로는 이미 찢겨 있어. 그렇다면…….’
서우의 뇌 속에서 수천, 수만 개의 수식이 실시간으로 나열되기 시작했다. 전두엽이 터질 듯한 이명과 함께 시야의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었지만, 그는 펜던트의 비틀림 무늬를 나침반 삼아 골렘 군단의 좌표를 고정했다.
다중 관절을 가진 골렘들의 3차원 운동 축을 인지한다. x, y, z축으로 이루어진 입체적인 질량을, 오직 x와 y의 2차원 평면으로 압착시킨다. 차원을 소거하는 극단적인 기하학적 증명.
“Z축의 변수를 소거(Elimination)한다.”
서우의 손가락 끝이 공중을 나직하게 가르자,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궤적이 골렘들의 관절 마디마디를 관통했다.
“공간의 부피는 정의되지 않는다. 오직 단면만이 존재할 뿐.”
서우의 냉엄한 선언과 함께, 전장을 메우던 입체적인 중압감이 일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이이잉!
기괴한 마찰음이 아카데미의 심층부를 흔들었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수호 골렘들의 거구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프레스기에 눌린 것처럼 순식간에 얄팍한 종이 형태로 납작하게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3차원의 공간 법칙을 강제로 해킹당한 피조물들은 자신들의 질량을 주체하지 못하고 평면의 선 위로 정렬되었다.
그리고.
“Q.E.D. (증명 완료.)”
서우가 펜던트를 가볍게 거두어들이는 순간, 평면으로 압착되어 있던 골렘의 잔해들이 칼날처럼 썰려 나가며 일시에 폭발했다.
콰과과과광!
철도마저 구겨버리던 불사의 군세가 단 한 번의 수식 선언으로 인해 납작한 슬라이스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무식한 차원 격차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종결성이었다. 엘리시아는 타오르는 불꽃의 장벽 뒤편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숨을 들이켜며 무릎을 꿇을 뻔했다.
마나를 전혀 쓰지 않는, 세상의 근본을 새로 쓰는 마왕의 권능. 그녀가 품은 지적 구도심은 이제 경외를 넘어 광신에 가까운 형태로 타올랐다.
“이것이…… 차원의 붕괴인가…….”
엘리시아의 거친 호흡 소리가 고요해진 유적의 정적을 깨웠다.
그러나 서우는 방심할 수 없었다. 머릿속을 찌르는 극심한 과부하의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감각에 머리를 감싸 쥐고 싶었지만, 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태연한 척 서 있었다.
그때, 소멸한 골렘들의 가슴팍에서 소리 없이 떠오른 붉은 구체들이 보였다. 그것은 골렘들의 내장 심장이자 고대의 마나 동력핵들이었다.
스으으으…….
동력핵들이 머금고 있던 고밀도의 순수 마나와 고대 수식의 잔재들이, 서우가 전개해 둔 차원 기하학적 수식의 공명 영역으로 소리 없이 빨려 들어왔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서우였지만, 그 수식의 형태는 서우의 뇌가 처리해야 할 복잡한 연산 부하를 대신 짊어지는 ‘수학적 데이터 연산 자원’으로 변환되어 축적되기 시작했다.
[연산 안정성 140% 확보.] [뇌 신경 과부하 강제 완화.]
머릿속을 지배하던 지독한 이명이 기적처럼 가라앉았다. 눈앞을 흐리던 붉은 연무가 걷히고, 시야가 극도로 맑아졌다. 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골렘들을 파괴한 대가가 오히려 자신을 치유하고 더 강력한 연산 장치를 제공한 셈이었다.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세이 님.”
엘리시아가 검을 거두며 서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뺨에 묻은 그을음과 흩어진 머리칼이 서정적인 푸른 유적의 빛과 어우러져 기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사소한 움직임이었을 뿐이다.”
서우는 펜던트를 가볍게 흔들며 그녀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엘리시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제 영혼의 무게와 같습니다. 세이 님의 손에서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발하는군요. 부디 계속 소지해 주십시오.”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도 진지해서, 서우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유적의 먼지가 가라앉으며 사방이 다시 고요해진 듯했다. 서우는 이제 완전히 안정화된 연산력을 바탕으로, 눈앞의 ‘종언의 귀환 방정식 제1 비문 고리’를 완전히 동기화하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머지않았다는 희망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바로 그 순간.
사라진 골렘들의 먼지 그늘 너머, 유적의 짙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서우의 뇌리에 7화에서 보았던 야외 훈련장의 고대 파괴 전차 잔해, 그리고 그곳에 새겨져 있던 ‘비정형 나선형 수학적 보정식’의 기하학적 형태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직관적인 위험 신호였다.
‘이 궤적은…… 저격이다!’
서우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잠복해 있던 감시관 베르톨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제국에서 엄격히 금지된 특수 룬 살해 저격 마포가 들려 있었다. 마포의 총구가 푸른빛을 내뿜으며 서우의 미간을 전면 타겟으로 삼았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밀도의 마탄이, 공간을 찢으며 서우의 이마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마치 한겨울 밤, 지독한 정적 속에서 소리 없이 내려앉는 첫눈처럼 고요하고도 가차 없는 죽음의 궤적이었다.
붉은 마탄의 속도는 인간의 신경계가 반응할 수 있는 범주를 까마득히 초월해 있었다. 굳어버린 시야 속에서, 오직 서우의 깊고 가라앉은 동공만이 날아드는 탄환의 미세한 위상 변화를 포착했다. 피할 수 없다면, 그 궤적 자체를 해킹하는 수밖에 없었다.
‘야외 훈련장…… 그 파괴 전차 잔해에 새겨져 있던 나선식.’
서우의 머릿속에서 7화의 기억이 번개처럼 불꽃을 튀겼다. 고대 마도 제국의 연산 장치가 고속 마나 포탄의 궤도 오차를 수정하기 위해 사용했던 ‘비정형 나선형 수학적 보정식’. 그것은 단순한 기하학적 곡선이 아니었다. 난류와 위상 왜곡 속에서도 타겟을 향해 왜곡률을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고차원 프랙탈 투사식의 정수였다.
‘그 보정식을 역으로 뒤틀어 대입한다.’
서우는 왼손에 쥔 황녀의 비유클리드 펜던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은빛 금속의 나선 무늬가 서우의 살을 파고들 듯 차갑게 반응했다. 방금 전 골렘들을 흡수하며 채워 넣었던 140%의 연산 자원이 순식간에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110%…… 80%…… 50%…….
머릿속이 끓는 기름을 부은 듯 뜨거워졌다. 오른쪽 콧구멍에서 울컥하며 비릿하고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려 입술을 적셨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백색 이명과 함께 흐려졌지만, 서우는 어금니를 악물며 펜던트의 기하학적 중심점을 마탄의 중심 궤도에 강제로 일치시켰다.
삼차원 공간에서의 직선은, 이 비유클리드적 위상 왜곡층에서는 한낱 굽어진 측지선(Geodesic)에 불과했다. 프랙탈 투사식의 매개변수를 극단적으로 비틀어, 날아오는 마탄의 국소 공간 자체를 안과 밖이 뒤집힌 클라인의 병(Klein bottle) 형태로 접어 올린다.
“위상 반전(Phase Inversion).”
서우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공간의 틈새를 메웠다.
지이이이잉—!
서우의 미간 바로 앞, 단 3센티미터의 허공이 기괴하게 굴절되며 물방울 같은 구형의 경계면이 형성되었다. 가공할 속도로 날아들던 붉은 마탄은 그 투명한 경계면에 닿는 순간, 속도를 잃지 않은 채 기하학적 나선을 그리며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우주의 소용돌이가 탄환의 인과율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그리고 찰나의 정적 뒤, 경계면의 중심에서 수식이 역방향으로 폭발했다.
콰아아앙!
“……뭐라?!?”
어둠 속, 마포를 조준하고 있던 베르톨트의 일그러진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자신이 발사한 금지된 룬의 마탄이, 완전히 동일한 가속도를 유지한 채 오히려 자신을 향해 역포탈의 궤적을 그리며 쏘아져 나온 것이다. 차원을 꺾어 되돌아온 붉은 광선은 베르톨트가 들고 있던 특수 저격 마포의 총열을 정확히 관통했다.
쿠구구구궁!
고밀도의 마나가 역류하며 베르톨트의 마포가 불꽃을 뿜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폭발의 충격파에 휩쓸린 베르톨트는 거친 비명과 함께 유적의 돌벽 너머로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그의 로브가 찢겨 나가고, 부서진 룬의 파편들이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제국의 금기된 저격을 역위상으로 반사해 낸 초월적인 기적.
“아…….”
엘리시아는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코끝에서 붉은 피를 흘리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냉혹한 천재의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필멸자들의 투쟁을 비웃는 고독한 지배자 같았다.
하지만 서우의 내면은 붕괴 직전이었다. 연산 안정성이 순식간에 10% 미만으로 곤두박질치며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어서…… 어서 귀환 공식을 동기화하고 이곳을 벗어나야 해.’
서우는 떨리는 손을 뻗어 마침내 푸른 빛을 발하는 ‘종언의 귀환 방정식 제1 비문 고리’를 만졌다. 손가락 끝에 닿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던 귀환 공식의 첫 번째 매듭이 동기화의 마지막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제1 귀환 비문 고리, 동기화율 100%.] [다차원 위상 좌표계 고정 완료.]
성공이었다.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고향의 달콤한 수학적 좌표가 서우의 영혼을 구원하듯 감싸 안았다. 차원의 문이 열리며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느다란 통로가 비로소 그의 지배하에 들어온 듯했다.
그러나 기쁨은 영원하지 않았다.
“하하…… 하하하하!”
피투성이가 된 채 무너진 돌더미 속에서 몸을 일으킨 베르톨트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손에는 부서진 저격포 대신, 기묘하게 타오르는 검은색 역위상 결정체가 들려 있었다.
“과연 마왕이군……. 인간의 한계를 비웃는 그 권능, 실로 경이롭다. 하지만 그 귀환 비문이 아카데미의 심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도 그리 쉽게 만지는가?”
베르톨트가 결정을 바닥에 내리꽂는 순간, 동기화가 완료되었던 제1 비문 고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우웅—!
푸른빛으로 온화하게 빛나던 비문 고리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암흑의 빛깔로 물들며, 주변의 공간을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중력의 특이점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비문 고리 자체가 붕괴하며 차원의 구멍이 뚫린 것이다.
“세이 님!!!”
엘리시아의 비명 소리가 멀어졌다.
서우의 발밑이 무너져 내리며,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흡입력이 그의 전신을 잡아끌었다. 뇌 신경의 과부하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서우는 차가운 차원의 폭풍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연 그는 붕괴하는 다차원의 심연 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며 귀환의 실마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