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황혼의 붉은 낙조가 평안도 영변의 험준한 산세를 피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때, 한성에 대기 중이던 승정원의 밀사가 간신히 당도했다. 전갈을 전해 받은 이연의 눈동자가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의정 류성룡이 연행되었다.

혐의는 영변의 비정상적인 사금 채굴 및 군기시로 흘러 들어갈 숯의 누락을 통한 사리사욕 편취, 그리고 사병 육성. 송익필의 지령을 받은 대간들이 떼를 지어 의금부 앞마당을 메웠고, 이미 독배를 내리라는 격렬한 상소가 편전을 뒤덮기 직전이라는 소식이었다.

"준마(駿馬)를 준비하라."

이연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좌우를 시위하는 군사들의 척추를 얼려버릴 만큼 서늘했다.

"전하, 이 야중에 한양으로 행차하심은 요동의 세작들에게 틈을 보이는 것이옵니다!"

평안도 병사들이 앞을 막아섰으나, 이연은 대답 대신 고삐를 가로챘다.

지금 류성룡이 무너지면 철산의 용광로도, 영변의 화약고도 모두 사림의 주둥이 속으로 들어간다. 현대 무기 체계의 하위 호환 공정을 조선 땅에 이식하기 위해 쌓아 올린 모든 기틀이, 성리학적 명분론이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먹혀버리는 것이다.

이연은 말안장에 오르며 품 안의 단단한 목각 조각을 움켜쥐었다.

가죽 자의 유연함을 믿지 않고, 오직 쇠를 깎는 오차를 통제하기 위해 장인들에게 배포했던 정확히 1치 2푼의 규격이 새겨진 '눈금 전 조각'.

그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문맹의 장인들을 통제하고, 명나라 세작의 사보타주를 적발해 낸 절대적인 규격의 상징이자, 이 조선을 제국으로 바꿀 이연의 의지 그 자체였다.

"달린다."

채찍이 말의 둔부를 후려쳤다. 어둠이 내린 영변의 산길을 뚫고, 조선의 왕은 단 한 명의 호위만을 거느린 채 폭풍처럼 남하하기 시작했다.

***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린 끝에 당도한 한양의 의금부 지하 감옥은 썩은 짚단 냄새와 눅눅한 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횃불의 그을린 연기 사이로, 백색 죄수복을 입은 채 형틀 옆에 꼿꼿이 앉아 있는 류성룡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전하……."

류성룡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입술은 터져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조선의 대제학다운 총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이연은 주위의 옥졸들을 눈빛 하나로 물렸다. 차가운 철창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의 시선이 얽혔다.

"경의 꼴이 말이 아니군."

"어찌 이 비천한 곳까지 납시었습니까. 서인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사옵니다. 송익필의 가신들이 이미 영변의 장부를 확보했다고 기세를 올리고 있사오니, 신을 베어 저들의 입을 막으소서. 그래야…… 군기시의 불꽃을 지킬 수 있옵니다."

류성룡은 스스로를 버림돌로 쓰라 청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아는 유일한 사직의 방도였기에.

이연은 허리를 숙여 철창 사이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흙먼지와 말고삐에 쓸린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리고 그 손바닥 위에, 붉은 칠이 된 '눈금 전 조각' 목각 도구를 올려놓았다.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류성룡이 피로한 눈을 가늘게 뜨며 나무조각을 바라보았다.

"철산의 장인들이 손에 쥐고 조총의 약실을 깎던…… 규격의 조각이옵니다."

"그렇다. 명나라 세작 놈들이 가죽 자를 늘여 조총의 약실을 폭발시키려 했을 때, 이 1치 2푼의 정확한 목각 도구가 놈들의 목을 베는 단초가 되었다. 눈금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사람의 마음은 흔들려도, 이 규격의 쇠와 나무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연의 목소리에 기괴할 정도의 확신이 서렸다.

"내 경에게 명하노니, 절대 입을 열지 마라."

"전하, 하지만 저들은 신이 영변의 숯과 사금을 횡령했다며 온갖 고신(拷訊)을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저들이 경을 고문하지 못한다. 경이 침묵을 지켜야, 저들이 안심하고 가장 깊은 구덩이를 팔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파놓은 명분이라는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목이 부러질 때까지 경은 그저 묵묵히 버텨라."

이연은 철창을 움켜쥐었다. 쇠창살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경이 영변에서 다진 기틀은 이미 철산의 용광로 속에서 단단한 연철로 태어났다. 이제는 내가 저 사대부 놈들의 목을 벨 차례다. 나를 믿어라. 그리고 침묵하라."

류성룡은 왕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는 심연을 보았다. 그것은 성리학의 도덕적 임금이 보여줄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실패하면 나라와 가문이 통째로 멸망한다는 전생의 책임감과, 누구도 완벽히 믿지 못하는 병적인 통제 집착증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괴물의 눈빛이었다.

그러나 류성룡은 그 괴물에게서 조선의 유일한 구원을 보았다.

"신…… 전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단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저들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겠나이다."

류성룡이 흙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엎드렸다. 이연은 그 모습을 차갑게 내려다본 뒤, 곤룡포 자락을 휘날리며 어두운 감옥을 빠져나갔다.

***

이튿날 아침, 근정전 앞마당은 백관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조정을 장악한 서인의 영수 송익필의 가신들과 대간들이 대전 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의 전면에는 송익필이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도덕적 우월감과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함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전하! 우의정 류성룡의 죄상은 이미 명명백백하옵니다!"

송익필의 낭랑한 목소리가 근정전 뜰을 울렸다.

"영변 야철지에 들어간 탄세(炭稅)와 사금은 마땅히 국고로 환수되어 백성들의 구휼에 쓰여야 할 재물이옵니다. 이를 류성룡이 사사로이 숨기고 징수하여 왕실의 변칙적인 탈세를 돕고, 뒤로는 사병을 육성하려 한 것은 역모와 다름없나이다! 군기시라는 해괴망측한 부서를 앞세워 조종조의 법도를 어지럽힌 자를 즉시 처단하시고, 군기시를 폐쇄하여 사직의 법도를 바로 세우소서!"

"처단하소서!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대간들이 일제히 엎드리며 사정없이 바닥을 쳤다.

용상에 앉은 이연은 안색을 흐리며 손가락을 미세하게 떨었다. 겉보기에는 사림의 기세에 압도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유약한 군주의 전형이었다.

"과인은…… 과인은 우의정이 그럴 인물이 아니라 믿었거늘. 영변의 일은 변방 여진족의 방비를 위해 군기시의 화약을 정비하려 한 것이 아니었소?"

이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익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역시 왕은 유약하다. 조금만 명분론으로 압박하면 스스로 신하를 내주고 물러서는 조종조의 성향 그대로다.

"방비를 핑계로 사사로이 무력을 키우고 자금을 융통하는 것 자체가 참람한 짓이옵니다! 전하, 왕실이 어찌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화약을 만들고 포구를 넓히는 데 사치 부리듯 재물을 낭비한단 말입니까! 이는 성리학의 왕도정치에 위배되는 패도(覇道)이옵니다!"

송익필의 일갈은 정곡을 찌르는 듯했다. 사림의 명분론에 비추어 보면, 무기의 대량 양산은 그 자체로 '조종조의 법도를 어기는 사치이자 폭정'이었다.

하지만 이연의 머릿속은 송익필의 계산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흘러 들어오는구나.'

이연은 속으로 냉소를 머금었다. 사림 놈들의 노림수는 명확했다. 류성룡의 목을 베어 왕의 손발을 자르고, 영변과 철산의 군수 복합체를 '국영화'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자신들의 붕당 세력권으로 흡수하려는 것이다. 무기의 제조와 자금의 흐름을 사림이 완벽히 통제하겠다는 이조 관성의 전형적인 수법.

그러나 이연에게는 이미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을 법리적 맹점이 준비되어 있었다.

과거 류성룡에게 넌지시 귀띔했던 《경국대전》의 이례적 법리 해석. '국가 비상시 사대부들이 소유한 영지에서 불법 사치 및 금지 품목의 유통이 적발될 시, 해당 영지와 재산을 조정이 즉시 자동 몰수한다.'

송익필과 서인 세력이 영변의 숯과 사금을 '왕실의 변칙 탈세이자 백성 수탈 범죄'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이 세운 도덕적 기준은 그대로 그들의 목을 겨누는 부메랑이 될 터였다.

왜냐하면, 송익필의 서인 가문들이 사사로이 소유한 전국의 수많은 영지야말로, 근검령을 위반하고 고급 유황을 밀매하며 온갖 사치품을 유통하는 범죄의 온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연은 용상에서 천천히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곤혹스러운 빛이 가득했으나, 눈동자만큼은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가차 없었다.

"송 진사의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우의정의 죄를 가벼이 다룰 수 없겠구려. 허나, 조정의 법도란 엄격해야 하는 법. 일방의 장부만으로 일국의 정승을 처단할 수는 없는 일 아니오?"

송익필은 왕이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 가죽으로 장정된 대장을 꺼내 들어 올렸다.

"전하! 이 송익필이 어찌 물증 없이 대전에서 고하겠습니까! 영변 기지에서 류성룡이 도둑질하여 탈세 수금한 사가 장부 목록과, 조선의 신조 사법을 위반하여 다량 유출한 은 궤짝들이 이미 한성 근교의 비밀 창고에 보관되어 있나이다!"

송익필의 목소리가 한층 더 앙칼지게 솟구쳤다.

"내일 아침, 정명 전조 마당에서 이 실증 예물들을 편전 마당에 직접 드러내어 만천하에 그 음험한 죄상을 밝히겠나이다! 만약 그때도 전하께서 우의정을 감싸신다면, 전하 또한 조종조의 법도를 저버린 군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옵니다!"

대간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실증을 보소서! 사직을 바로잡으소서!"

편전 마당을 가득 채운 사림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왕을 코너에 몰아넣었다는 확신에 찬 송익필의 눈에 광오한 승리감이 넘실거렸다.

그 격렬한 공세의 한가운데서, 이연은 마침내 나약한 임금의 가면을 찢어발기듯 차갑게 미소 지었다.

"좋다. 내일 아침, 그 장부와 은 궤짝을 이 마당에 통째로 올려놓아라. 과인이 친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실체를 판가름해 줄 터이니."

그것은 덫의 입구가 완전히 닫히는 소리였다.

***

**《선조실록(宣祖實록)》 임오(壬午)년 겨울 기록 요약**

서인 송익필이 우의정 류성룡의 영변 횡령 혐의를 탄핵하며 이르기를, 군기시의 무기 양산은 조종조의 법도를 어긴 사치이자 폭정이라 하여 류성룡의 목을 베고 군기시를 폐할 것을 청하더라. 대간들이 떼를 지어 대전 뜰에서 울부짖으니, 그 기세가 조정을 뒤흔들었도다.

그러나 왕께서 노여워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침묵으로 대처하시며, 송익필로 하여금 영변의 장부와 은 궤짝을 내일 아침 전조 마당에 드러내도록 허락하시니, 이는 장차 사림의 위선을 법리의 칼날로 베어내기 위한 신묘한 함정이었으나 조정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승리를 자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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