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寧邊)과 철산(鐵山)의 땅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탄가루와 구리의 궤적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주상 전하께서는 사대부 가문들을 기만하시고, 변방에서 사사로이 역당의 대군을 기르고 계신 것이 아니옵니까! 조정의 공론을 모아, 영변 야철지와 군기시 비밀 공정을 사찰할 어사단을 즉각 파견하소서!"
승지 우성전의 목소리가 편전의 높은 천장을 때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름을 먹인 종이창 너머로 겨울의 칼바람이 웅웅거리며 울어댔으나, 편전 내부의 열기는 그보다 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어좌에 앉은 이연은 상소문을 쥔 손가락끝을 지긋이 눌렀다. 종이의 거친 질감이 손가락 끝의 감각을 자극했다.
'송익필, 네놈이 결국 냄새를 맡았구나.'
이연의 내면에서 현대의 무기공학자 한민우의 차가운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평안도 철산의 야철지는 조선의 명운을 바꿀 신형 조총과 화포의 표준화 공정이 진행되는 심장부였다. 그곳이 사림의 사찰단이라는 허울 좋은 간첩들에게 노출되는 순간,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명나라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고, 붕당의 선비들은 '조종조의 법도를 어기고 사사로이 무력을 길렀다'며 국문을 요구할 터였다.
좌우로 갈라선 서인 대신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대사헌 김우옹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두터운 비단 관복 자락이 바닥을 쓸며 서늘한 소리를 냈다.
"전하, 사철과 유황은 군기시의 통제를 받는 군수품이옵니다. 어찌하여 조정의 판서들도 모르는 사이에 평안도 골짜기로 수만 근의 탄가루와 야철이 흘러 들어간 것이옵니까? 이는 명백히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사사로운 무력의 축조이옵니다. 송 참판의 상소대로 즉각 어사단을 파견하여 그 실상을 낱낱이 밝혀야 마땅하옵니다!"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형조 참의 권극례 역시 뒤를 따랐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기를 잡았다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근래 도성 안팎의 약방과 혜민서에서 유황의 수급이 완전히 끊겼나이다. 전하께서 선포하신 근검령의 여파라 여겼으나, 실상은 영변의 비밀 야철소로 빼돌리기 위함이 아니었옵니까? 사림을 속이고 법도를 참칭하여 군사를 기르려 하셨으니, 이는 사직의 법통을 흔드는 대죄이옵니다! 어사단을 파견하시어 군기시 별제 박진국과 그 야철지의 천인들을 압송하여 국문하소서!"
대간들의 탄핵 함성이 편전을 가득 채웠다. 송익필이 쳐놓은 덫은 정교했다. 사사로운 무기 제조는 곧 역모다. 조선의 왕이라 할지라도 성리학적 명분 앞에서는 이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었다.
류성룡은 어좌 아래에서 주먹을 쥔 채 이연의 눈치만 살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왕이 품은 그 가공할 화력의 야망을 아는 유일한 신료로서, 지금의 위기는 곧 자신들의 목줄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위로 호선을 그렸다. 병적인 통제 집착증이 그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덫을 놓아두었다.
"과인이 사사로이 군사를 기른다라..."
이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편전 안의 모든 소음을 단숨에 잠재웠다. 이연은 천천히 어좌에서 일어났다. 곤룡포의 붉은 소맷자락이 허공을 가르며 가벼운 파열음을 냈다.
"대사헌, 그리고 형조 참의."
"예, 전하."
"그대들은 참으로 사직의 안위와 법도를 걱정하는 충신들이로다. 변방의 작은 사철 움직임 하나까지 이토록 기민하게 살피니, 과인이 참으로 든든하구나."
이연이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올 때마다 대신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연은 용상 아래에 멈춰 서서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낡고 때 묻은 한 권의 장부였다.
임오년 초여름, 궁중 근검령을 선포하며 도성 안팎의 혜민서와 사대부 가문의 약방을 샅샅이 뒤져 몰수했던 바로 그 유황 뒷장부였다.
"과인이 사직을 위태롭게 하기 위해 유황을 모았다고 하였느냐?"
이연이 장부를 대사헌 김우옹의 발밑으로 툭 던졌다. 가죽으로 묶인 장부가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주어 읽어라."
이연의 서늘한 명령에 김우옹은 움찔하며 장부를 집어 들었다. 장부의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 김우옹의 주름진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손가락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왜 그러느냐?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 되기라도 한 것이냐? 어서 소리 내어 읽어라!"
이연의 호통이 편전을 뒤흔들었다. 김우옹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만 달싹였고, 형조 참의 권극례가 의아한 표정으로 장부를 빼앗아 보았다. 그리고 권극례 역시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형조 참의, 네놈이 읽어보아라. 그 장부에 무엇이라 적혀 있느냐?"
"전, 전하... 이것은..."
"못 읽겠다면 과인이 친히 읊어주마."
이연은 대신들을 한 명씩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읊조렸다.
"임오년 오월 사일, 혜민서 주부 김식의 주도하에 유황 삼백 근이 도성 밖 약방을 거쳐 의주로 유출됨. 임오년 유월 십일, 대사헌 김우옹의 사가(私家) 노비들이 약재용 유황 오백 근을 왜관의 밀무역상에게 처분하고 은자 이백 량을 수취함. 임오년 칠월, 형조 참의 권극례의 문중에서 평안도 국경지대의 야인들에게 초석과 유황 이백 근을 밀매함... 더 읽어주랴?"
편전 안은 그야말로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너희 사대부들이 약재를 핑계로 비축해 둔 유황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아느냐? 왜구의 화약이 되고, 여진족의 화살촉에 바르는 독이 되었다! 나라의 군권을 쥐고 흔드는 대간이라는 자들이, 뒷구멍으로는 가문의 사리사욕을 위해 적국에 군수물자를 팔아넘기고 있었단 말이다!"
이연의 목소리는 분노를 넘어 잔혹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이 너희가 말한 조종조의 법도이더냐? 가문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적들에게 화약 원료를 바치는 것이 사림의 의리이더냐!"
김우옹과 권극례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들의 이마가 차가운 바닥돌에 찧으며 쿵쿵 소리를 냈다.
"전하! 죽여주시옵소서! 소신들은 참으로 모르는 일이옵니다! 가솔들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옵니다!"
"모르는 일이라?"
이연이 차갑게 비웃었다.
"송익필이 영변의 탄가루와 구리를 빌미로 과인을 역모로 몰아세우려 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자신들의 밀매 루트가 막히고, 영변에서 국경 수비를 강화하자 자신들의 밥줄이 끊길까 두려워 과인의 목을 치려 한 것이 아니더냐!"
이연의 완벽한 기망과 심리 조종이었다. 실제로 철산에서 소모되는 탄가루와 구리는 이연이 신식 화포와 조총을 만들기 위한 원자재였으나, 이연은 이를 사대부들의 밀매 범죄를 덮기 위한 공작으로 완벽하게 프레임을 전환해 버렸다.
대간들은 이제 역모의 고발자가 아니라, 외적과 내통한 밀매죄로 삼족이 멸할 위기에 처한 죄인이었다.
저 멀리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송익필의 안색은 이미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꼿꼿하던 척추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왕이 던진 장부는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었다. 자신을 따르는 서인 중진들의 목숨줄을 쥔 단두대의 칼날이었다.
"송익필."
이연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송익필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왕의 눈빛은 광기 어린 집착과 냉혹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송익필은 깨달았다. 이 왕은 자신들이 알던 유약한 이연이 아니다. 자신들의 도덕적 명분 따위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노리개로 삼는 괴물이었다.
"소신... 전하의 혜안에 탄복할 뿐이옵니다."
송익필의 목소리가 굴욕감으로 갈라졌다.
"그렇다면, 네놈이 상소한 '영변 사찰 어사단'은 어찌해야 하겠느냐?"
이연이 다가와 송익필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왕의 서늘한 숨결이 송익필의 정수리에 닿았다.
"사찰단을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가서 과인이 정말 역모를 꾀하는지, 아니면 너희 사가들의 밀매 주동자들이 영변 골짜기에 숨어 있는지 낱낱이 파헤쳐야지?"
"전하! 촉하하여 주시옵소서!"
대사헌 김우옹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소신들이 눈이 멀어 사직의 역적들을 보지 못하였옵니다! 영변은 변방의 요충지이자 국경을 수호하는 신성한 제철 기지이옵니다! 어찌 감히 그곳을 사찰하여 장인들의 사기를 꺾겠나이까! 오히려 그곳을 더욱 공고히 수호해야 마땅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영변의 야철지는 북방 여진의 침탈을 막을 아국의 보루이옵니다! 소신들이 앞장서서 영변 제철단지의 예산을 증액하고, 사가에서 몰수한 유황을 전량 영변으로 보내 국경 방비를 튼튼히 하도록 상소를 올리겠나이다!"
권극례 역시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왕을 역모로 몰아 제철소를 영구 폐쇄하려던 사림의 수뇌부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영변 군수 기지를 적극 옹호하는 방패막이로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연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완벽하다.'
경국대전의 자구 하나하나를 비틀고, 사대부들의 약점을 쥐고 흔든 가스라이팅 정치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대들의 충심이 참으로 가상하구나."
이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면을 다시 썼다.
"그렇다면 송 판서의 청대로 어사단을 파견하겠다. 다만, 그 어사단의 명칭은 '영변 대군 사찰단'이 아니라, '영변위(寧邊衛) 밀매 단속 및 군수 수호대'가 될 것이다. 사대부 가문에서 빼돌린 밀매 유황을 전량 회수하여 철산의 군기시 공정으로 이송하고, 그곳의 보안을 철저히 감시하는 임무를 맡길 것이다. 어사단의 수장은... 류성룡, 네가 맡아라."
어좌 아래에 엎드려 있던 류성룡이 고개를 들어 이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왕에 대한 경외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신 류성룡, 전하의 뜻을 받들어 일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고 국경의 유황을 회수하겠나이다."
"조정의 공론이 이와 같으니, 이조전랑의 임명권 갈등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던 자들은 즉각 복직하여 국정을 돌보라. 만약 단 하루라도 국정에 지체를 빚는 자가 있다면, 가문의 유황 밀매 장부를 형조가 아닌 의금부로 바로 넘길 것이다."
이연의 쐐기 같은 경고에 편전 안의 대신들은 일제히 엎드려 소리쳤다.
"전하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그날 밤, 강녕전.
이연은 홀로 서서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박진국이 철산에서 보내온 신형 조총의 도면과 '눈금 전 조각' 목각 도구의 사본이 들려 있었다.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
사림의 정치적 압박을 역공으로 분쇄하고, 오히려 그들의 입으로 영변 군수 단지를 합법적인 수호 기지로 공인받게 만들었다. 이제 철산의 야철지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신식 화포와 표준화된 조총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다가올 1583년 봄, 니탕개의 난. 조선을 피로 물들일 여진족의 철기병들이 이 땅을 밟는 순간, 그들이 마주하게 될 것은 구시대의 화살이 아닌, 규격화된 강철과 화약의 지옥일 터였다.
이연은 오랜만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철저한 통제망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때, 편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승지 우성전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사색을 넘어 완전히 핏기가 가셔 있었다.
"전하! 전하! 평안도 철산에서... 철산에서 긴급 장계가 올라왔사옵니다!"
이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심장에 불길한 박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박진국이 보낸 장계더냐?"
우성전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장계를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철산의... 철산의 비밀 야철지 3호 수력 영철로가 의문의 대량 폭발을 일으켰사옵니다! 중심부가 완전히 날아갔으며, 군기시 별제 박진국을 비롯한 장인 수십 명이 현장에서..."
이연의 손에 쥐여 있던 목각 도구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
**《선조실록(宣祖實록)》 임오(壬午)년 겨울 기록 요약**
왕께서 사림의 유황 밀매 장부를 공개하시니, 대사헌 이하 서인 대신들이 사색이 되어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였다. 이로써 영변의 야철지를 사찰하려던 계획은 도리어 그곳을 옹호하는 수호대로 전환되었으니, 왕의 신묘한 책략에 조정의 신료들이 감히 혀를 내두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평안도 철산의 비밀 야철지에서 원인 모를 대폭발이 일어나 수력 야철로의 중심부가 파괴되고 수많은 장인이 다치거나 실종되는 참변이 일어났다. 북방 여진족의 움직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가운데, 아국의 군수 기지가 큰 타격을 입었으니 대궐 안팎에는 다시금 불길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