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누구냐!"

어둠을 찢는 날카로운 일성이 마포나루의 갈대숲을 흔들었다. 검은 갓을 깊게 눌러쓴 밀사가 검자루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배어나는 진득한 식은땀이 가죽 칼집을 적셨다.

바스락.

다시 한번 마른 갈대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철광의 안광을 띤 그림자들이 솟구쳤다. 송익필의 수하이자 도성 안팎의 은밀한 동태를 살피는 서인의 밀탐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야행용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조정의 허락 없이 평안도 야철지의 쇳덩이를 도성으로 반입하려는 자들이로군. 짚단 속의 물건을 넘기고 순순히 포박을 받거라."

밀탐의 우두머리가 마른 침을 삼키며 나루터의 나룻배를 겨누었다. 짚단에 싸인 푸른 빛의 신형 총열 샘플들이 백사장 위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쉬익-!

공기를 가르는 기괴한 파공음과 함께 갈대숲 뒤편에서 굵직한 쇠사슬이 뱀처럼 날아들었다. 밀탐의 목덜미를 휘감은 쇠사슬이 가차 없이 뒤로 잡아당겨졌다. 둔탁하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커헉!"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서인의 밀탐 둘이 모래바닥에 고꾸라졌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붉은 철릭을 입은 내금위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왕의 밀지를 품은 내금위장 장기선이 서 있었다. 장기선은 피가 묻은 사슬을 거두며 차가운 눈빛으로 나룻배 위의 밀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주상 전하의 명이다. 물건을 확보하고, 쥐새끼들은 흔적도 없이 치워라."

밀사들은 안도하며 고개를 숙였다. 박진국이 영변의 가마터에서 밤낮으로 쇠를 두들겨 완성한 1치 2푼의 표준 규격 총열들이 이내 붉은 비단에 싸여 대궐로 향하는 비밀 통로로 사라졌다. 가을바람만이 피비린내를 씻어내며 강물 위를 쓸고 지나갔다.

***

사흘 뒤, 경복궁 후원 깊숙한 곳에 위치한 춘당대 사격장.

조정의 무관들과 대신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어좌 앞에 도열해 있었다. 쌀쌀한 가을바람에 용포의 소맷자락이 펄럭였다. 이연은 어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탁자 위에 놓인 길쭉한 목함 두 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주상 전하, 갑작스레 이리 무관들과 판서들을 부르신 연유가 무엇이옵니까? 지금 도성 안은 이조전랑의 일로 사림의 상소가 빗발치고 있사옵니다."

예조 판서 김우옹이 앞으로 나서며 읍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불만과 훈계의 조가 섞여 있었다. 사림의 명분을 대변하는 자답게, 쇳가루 날리는 사격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연은 대답 대신 목함의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그 안에는 마포나루에서 압송되어 온,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끄럽게 뻗은 연철제 신식 조총이 누워 있었다. 총열의 표면은 기름을 먹여 검푸른 빛을 내뿜었고, 약실 부근에는 정밀하게 새겨진 '눈금 전 조각'의 1치 2푼 규격 선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시는가, 예판?"

"……왜국에서 건너온 조총이 아니옵니까? 허나 이런 왜래의 기예는 소소한 장난감에 불과할 뿐, 대국의 화포나 우리 조선의 편전에 비하면 사거리와 위력이 턱없이 부족하옵니다. 이런 잡기에 국력을 낭비하는 것은 왕도정치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김우옹이 코방귀를 뀌며 단언했다. 주변의 서인 관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들에게 무기란 그저 성리학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패도의 도구에 불과했다.

이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전생의 국방과학연구소 시절, 해외의 최첨단 소총 강선 기술을 비웃던 구시대적 관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장난감이라. 그래, 그리 보일 수도 있겠지."

이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격장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두꺼운 조선식 두정갑과 명나라에서 수입한 삼중 철판 투구가 겹겹이 씌워진 목인(木人)이 서 있었다. 거리는 무려 백오십 보. 조선의 일반적인 조총으로는 탄환이 도달하기도 전에 땅에 떨어지거나, 맞아도 튕겨 나갈 거리였다.

"훈련대장 신립은 듣거라."

"예, 전하!"

무장한 신립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함께 약간의 불신이 섞여 있었다. 기병을 맹신하는 그에게도 조총은 신뢰할 수 없는 무기였다.

"저 총에 화약을 장전하고 사격하라. 화약의 양은 내가 정해준 쇠숟가락 하나 분량이다."

이연이 가리킨 숟가락은 박진국이 표준 규격으로 제작해 보낸 염초 배합 도구였다. 염초 70, 유황 15, 버드나무 숯 15의 비율로 배합된, 현대적 흑색화약에 극도로 근접한 고성능 화약이었다. 게다가 총열은 탄소 함량이 0.1% 미만으로 극도화된 연철을 수십 번 접어 단조한 것이라, 폭발 압력을 완벽하게 견뎌낼 수 있었다.

군기시의 사수가 긴장한 손길로 탄환을 밀어 넣었다. 꼬챙이로 화약을 다지는 소리가 서늘하게 울렸다.

"조준…… 사격하라!"

이연의 나직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가공할 폭음이 후원을 뒤흔들었다. 자욱한 백색 연기가 사격장을 가득 메웠다. 일반 조총의 허약한 '푝' 소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파열음이었다. 김우옹을 비롯한 문관들은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어, 어찌 이리 소리가……!"

연기가 서서히 걷히자, 신립이 가장 먼저 목인을 향해 달려갔다. 뒤를 이어 문무백관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들이 목격한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삼중으로 겹쳐 놓았던 두꺼운 철판 투구의 정중앙에 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이 깨끗하게 뚫려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탄환은 투구를 관통한 뒤, 뒤에 서 있던 두정갑의 철편마저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목인의 가슴팍 깊숙이 박혀 있었다. 백오십 보 거리에서 철판 석 장을 완전히 걸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신립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관통된 철판의 단면을 만졌다. 열기로 인해 그을린 철의 냄새가 진동했다.

"이것은 왜국의 조총이 아닙니다. 왜놈들의 철포는 이 거리에서 이토록 단단한 철판을 뚫지 못합니다. 대체…… 대체 이 총열을 어찌 만드신 것입니까?"

신립의 다급한 질문에 이연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연철의 탄소 함량을 조절하여 인장 강도를 올리고, 1치 2푼의 규격으로 약실의 기밀성을 완벽히 통제했다. 쇳물이 식을 때의 소리와 불꽃의 색을 매뉴얼화하여 글을 모르는 장인들도 균일한 두께로 총열을 깎아내게 만들었지. 이것이 과연 왜래의 장난감으로 보이느냐, 예판?"

이연의 시선이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김우옹에게 꽂혔다. 김우옹은 가공할 만한 장거리 관통력과 왕의 서늘한 안광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뒷걸음질 쳤다. 조총을 천시하던 사림들의 명분이, 관통된 철판 투구처럼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이었다.

***

그날 밤, 편전.

사방에서 몰려드는 상소 더미를 앞에 두고 이조판서 류성룡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의 안색은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송익필을 필두로 한 서인 세력이 이조전랑 임명권을 독점하겠다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탓에, 조정의 모든 행정과 인사 결재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전하, 서인들의 기세가 도를 넘었사옵니다. 조정의 정무가 마비되면 결국 고통받는 것은 백성들이옵니다. 저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시어 국정을 정상화하심이……."

류성룡이 간곡히 읍했다. 그의 등 뒤에는 사림의 거대한 명분론이라는 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연은 서류 더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차가운 찻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류 판서."

"예, 전하."

"서인들이 이조전랑을 볼모로 나를 압박하는 명분이 무엇인가?"

"조종조의 법도를 지키고, 현량(賢良)을 등용하는 인사의 공정성을 사수하겠다는 명분이옵니다."

"공정성이라."

이연이 피식 웃었다. 그는 소맷자락 속에서 낡은 장부 한 권을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툭 하는 소리가 고요한 편전에 무겁게 울렸다. 류성룡이 의아한 눈빛으로 장부를 펼쳤다. 장부를 넘기던 그의 눈동자가 이내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혜민서와 민간 약방을 통해 흘러나온, 서인 사대부 가문들이 소유한 유황과 염초의 밀매 뒷장부였다. 왜구와 여진족에게까지 흘러 들어간 정황이 붉은 먹글씨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은…… 송익필과 서인의 영수들이 뒤로 유황을 밀매한 내역이 아니옵니까?"

"그렇다. 저들이 도덕을 부르짖으며 내 군기시의 화포 예산을 깎아내릴 때, 뒤로는 왜구의 은자와 여진의 말(馬)을 받고 유황을 팔아넘기고 있었지. 명분이라는 탈을 쓴 도둑놈들이다."

류성룡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왕은 이미 적들의 목줄을 쥘 칼날을 품고 있으면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을 위해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연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병적인 통제력과 집요함에 류성룡은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

"저들이 사직서를 무기로 나를 기망하려 든다면, 나 역시 법으로 답해줄 수밖에."

이연은 류성룡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경국대전 형전(刑典)을 보라. 사가(私家)의 귀족들이 국법으로 금한 사치품을 소지하거나 이를 도성 밖으로 유출할 시, 그 죄가 무거우면 가택을 수색하고 가문 소유의 영지를 전량 국고로 몰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류성룡의 머릿속에 번개가 친 듯한 충격이 일었다.

"전하, 그것은…… 법전의 자구를 극단적으로 해석한 것이옵니다. 조종조 이래 사대부의 영지를 사치 죄목으로 몰수한 전례는 없었사옵니다."

"전례가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된다."

이연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근검령은 내가 선포한 국법이다. 저들이 화장품 원료라 속이며 비축해 둔 유황과 초석은 모두 사치품에 해당하지. 이 장부를 들이밀고 경국대전을 들이대면, 서인들은 이조전랑의 인사권을 논하기 전에 자신들의 가문 영지가 통째로 날아갈까 전전긍긍하게 될 것이다. 류 판서, 그대는 그저 내가 던진 이 법리적 그물을 조정에서 펼치기만 하면 된다."

류성룡은 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인자한 군주의 모습 대신, 법전이라는 차가운 구속구를 휘두르며 사림 전체를 사냥하려는 괴물이 서 있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이 방법이야말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인들의 집단 사직을 분쇄할 가장 확실하고 합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신, 전하의 뜻을 받들어 법의 그물을 펼치겠나이다."

류성룡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그때, 편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승정원의 입직 승지가 허둥지둥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손에는 붉은 밀봉이 찍힌 전령 서찰이 들려 있었다.

"전하! 변방 안무사 김여물 대감의 다급한 전령이옵니다!"

이연의 미간이 좁아졌다. 승지가 올린 전령 사본을 낚아채듯 받아 펼쳤다.

[평안도 영변 및 경성 가도 일원에 여진족 야인 정탐꾼들의 움직임이 급증하고 있사옵니다. 저들이 아국의 철산 야철지를 정탐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며, 조만간 국경을 넘어 대규모 침탈을 감행할 징조가 보이니 급히 방비를 더하소서.]

'니탕개의 난이 머지않았구나.'

이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예정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1583년 봄의 대규모 침공. 조선의 북방을 피로 물들였던 그 참화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이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구축한 표준화된 화력 부대의 진정한 첫 시험대가 될 터였다.

그러나 불길한 징조는 국경 밖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전하! 또 다른 상소가 방금 승정원에 당도하였사옵니다!"

상소를 들고 온 승지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이연은 상소문을 펼쳤다. 상소의 발신인은 다름 아닌 서인의 영수, 송익필이었다.

상소문의 내용은 이연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조정의 눈을 피해 평안도 영변과 철산 일대에서 막대한 양의 탄가루와 구리, 사철이 유통되고 있다는 제보를 확보하였사옵니다. 이는 군기시의 정상적인 무기 제조 범위를 아득히 초과하는 양인바, 주상 전하께서 사대부 가문들을 기만하여 변방에서 사사로이 역당의 대군을 기르고 계신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되옵니다. 이에 조정의 공론을 모아, 영변 야철지와 군기시 비밀 공정을 사찰할 '영변 대군 비밀 사찰 어사단'의 즉각적인 파견을 강력히 청하나이다!]

송익필이 마침내 꼬리를 잡은 것이다. 왕이 영변에서 몰래 군대를 기르고 무기를 양산한다는 역모의 혐의를 씌워 왕권을 정면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이연의 눈빛에 광기 어린 살기가 감돌았다.

***

**《선조실록(宣祖實錄)》 임오(壬午)년 겨울 기록 요약**

왕께서 친히 군기시의 신형 철포를 대신들 앞에 보이시니, 백오십 보 거리에서 삼중의 철판 투구를 일격에 관통하였다. 예조 판서 이하 문관들이 그 가공할 위력에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으나, 왕께서는 이를 당연히 여기시며 법도(法度)의 승리라 하셨다.

한편, 서인의 영수 송익필이 평안도 영변의 사철과 탄가루 유통을 구실 삼아 사사로운 역당의 군사를 기른다며 '사찰 어사단'을 파견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오만하게 올렸다. 이로써 대궐 안팎에는 팽팽한 살기가 감돌았으며, 북방 여진족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으니 나라의 안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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