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태혁이 민혜령의 어깨를 낚아채며 콘크리트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형광등이 파르르 떨리며 일제히 터져 나갔다. 팍, 파팍! 사방으로 비산하는 유리파편과 함께 사무실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지하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단순한 지진의 그것이 아니었다. 시속 8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돌진하는 15톤 트럭의 무게감이 지반을 흔들고 있었다. 궤도를 이탈한 폭주기관차가 무간 빌딩의 낡은 철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끝났다……."
민혜령이 태혁의 품에 안긴 채 이가 맞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법조문과 판례의 세계에서만 살아온 그녀에게, 살이 타는 냄새와 쇠붙이가 부딪치는 야만의 물리력은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태혁은 어둠 속에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에 떠 있는 붉은색 인터페이스, '리갈 레저'의 왜곡된 수치들을 쫓았다. 오차율이 폭등하며 붉은 노이즈가 눈앞을 어지럽혔지만, 태혁의 심장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뒤이어 들려온 것은 끔찍한 충돌음이 아니었다.
촤아아아앙-! 쿠구구구구묵!
강철과 강철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이빨을 가는 듯한 기괴한 마찰음이 서초동 뒷골목을 찢어발겼다. 거대한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다 못해 끊어질 듯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컥! 커어억!"
트럭의 풀 악셀 굉음이 단숨에 급감하며 타이어가 타들어 가는 비명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태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옆에서 최창식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뱉으며 이죽거렸다.
"내가 그 새끼들 수법을 모를 줄 알았냐? 덤프트럭 아니면 윙바디지. 대가리 굴리는 꼬락서니들이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최창식이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켰다. 주황색 불빛이 사방을 비췄다.
"어떻게…… 멈춘 겁니까?"
민혜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최창식이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인천 앞바다에서 폐선 처리되는 바지선용 대형 강철 앵커랑 20톤급 인장 와이어다. 그걸 무간 빌딩 진입로 양쪽 콘크리트 옹벽에 쇠말뚝 박고 고정해 놨지. 저놈들이 헤드라이트 끄고 골목길 꺾어 들어오는 순간, 바닥에 누워 있던 강철 와이어가 도르래 장치로 1미터 높이까지 튀어 오르게 설계해 놨거든."
과연 그랬다.
밖으로 나가자, 15톤 대형 윙바디 트럭의 앞범퍼가 무간 빌딩 현관을 단 30센티미터 앞두고 공중에 붕괴하듯 멈춰 서 있었다. 트럭의 앞바퀴 축은 바지선용 고정 와이어에 완벽하게 걸려 통째로 뜯겨 나가 있었고, 엔진룸은 걸레짝처럼 구겨진 채 뜨거운 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최창식이 미리 준비한 바지선 바리케이드가 돌진하는 괴물을 충돌 직전에 격하 고정시킨 것이었다.
"운전석 놈은 기절했군. 에어백 터지면서 목뼈가 나간 모양이야."
최창식이 운전석 문을 열어젖히고 피를 흘리는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태혁은 트럭의 찌그러진 보닛을 바라보며 품 안의 안주머니를 만졌다. 손끝에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걸렸다.
4화에서 부패 경찰의 기습에서 최창식을 구한 뒤 확보했던 물증. 도원회 전용 지하실 비밀 금고의 열쇠였다.
"최 형사님."
"어."
"사냥개들이 꼬리를 밟혔으니, 머리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태혁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이 열쇠가 열 수 있는 곳. 한도준의 진짜 목줄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 * *
새벽 2시 15분. 강남구 청담동의 한 일식집 지하.
겉보기에는 고급 예약제 일식집이었지만, 안쪽의 깊숙한 VIP 대기실 너머에는 도원회의 핵심 멤버들만 출입하는 비밀 락커룸이 존재했다. 한성그룹의 후계자 한도준이 대포 회사들을 관리하고 사설 해결사들에게 자금을 집행하는 실질적인 현행 범죄 청부의 본거지였다.
"여긴 도원회 직계가 아니면 지문 인식조차 안 통하는 곳인데……."
민혜령이 주변의 경비 시스템을 보며 나직하게 경고했다.
태혁은 대답 대신 품에서 꺼낸 구형 황동 열쇠를 벽면의 수동 제어반 홈에 밀어 넣었다. 아날로그식 열쇠였다. 디지털 보안 수단이 아무리 발달해도, 도원회의 늙은 수장들은 해킹의 위험이 없는 아날로그 열쇠만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철커덕.
지하 락커룸의 거대한 자성 강철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좌우로 갈라졌다.
방 안에는 수십 개의 개인 보관함이 늘어서 있었다. 태혁은 망설임 없이 '한성(韓城)'이라 각인된 7번 보관함 앞으로 걸어갔다. 열쇠를 꽂아 돌리자, 그 안에서 두꺼운 가죽 바인더와 서류 뭉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창식이 서류들을 하나씩 넘기며 숨을 들이켰다.
"이 미친 새끼들…… 진짜 장부를 여기 뒀군."
서류의 맨 첫 장에는 '현행 범죄 청부 계획서'라는 이름의 문건이 있었다. 대상자의 이름, 처리 방식, 집행 금액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자 명단의 맨 위에 강태혁, 최창식, 그리고 민혜령의 이름이 붉은 줄로 그어져 있었다.
"이게…… 도원회의 실체예요?"
민혜령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서류를 넘기던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류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누렇게 바랜 수사 일지 한 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민혜령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이건…… 우리 아버지 수사 일지잖아."
5년 전, 대검찰청에서 도원회의 비밀 자금 흐름을 추적하다가 자택에서 음독 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민혜령의 아버지, 민경식 검사.
수사 일지 곳곳에는 붉은색 펜으로 '삭제', '수정', '기각'이라는 글자가 도원회 수장의 필체로 휘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한도준의 비서실인 김태수가 담당 부패 경찰들에게 수억 원의 뇌물을 건네며 사건을 자살로 종결 짓도록 사주한 수사 무마 청부 원본 녹취록 CD와 영수증이 첨부되어 있었다.
"자살이…… 아니었어."
민혜령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걷히고 가시 돋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들이 죽여놓고…… 법을 지켜야 할 경찰들이, 검찰들이 그걸 덮어줬다고? 우리 아버지를…… 두 번 죽인 거야, 이 개새끼들이!"
민혜령이 서류를 가슴에 움켜쥔 채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손톱이 가죽 바인더를 찢을 듯이 파고들었다. 정의와 법치를 신봉하던 엘리트 사법연수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것은 슬픔이 아닌 완전한 증오의 침전물이었다.
"강 변호사님."
민혜령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이 새끼들을 찢어발길 수만 있다면…… 나보고 공문서를 위조하든, 사기 재판을 하든 상관없어요. 법의 탈을 쓴 악마들은 법으로 죽여야 해요."
태혁은 그녀의 변화를 가만히 응시했다. 메마른 계산주의자인 그의 가슴속에서 묘한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드디어 민혜령이 자신의 '진짜 사냥개'로 각성한 것이다.
그 순간, 태혁의 시야 전체가 붉은색 광풍에 휩싸였다.
지지직! 지지지지직!
``` [🚨 시스템 인과율 오차 임계점 도달 경보 🚨] - 인과율 오차율: 43% ➔ 62% (폭등) - 경고: 미래 판결 나비효과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 중. - 리갈 레저의 미래 예측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변동 및 파괴되고 있습니다. - 사법적 파멸의 대가(100%)까지 남은 여유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안구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붉은 정보의 파편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장부에 기록되어 있던 미래의 판례들이 실시간으로 지워지고, 새로운 잉크가 번지듯 가짜 정보들이 기입되기 시작했다.
태혁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인과율 오차율 62%.
미래의 지식은 이제 더 이상 그의 무결한 치트키가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오직 자신의 손으로, 이 비틀어진 법정 안에서 진짜 칼춤을 춰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가자."
태혁이 차갑게 말했다.
"백승현이 기다리는 법정으로."
* * *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12호 대법정.
재판장석에 앉은 부장판사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피고인석의 백승현 전 대법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20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태혁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 오만함이었다.
"원고 대리인. 최종 변론을 준비하셨습니까?"
재판장의 질문에 태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 강남 비밀 금고에서 확보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최종 변론에 앞서, 원고 대리인은 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극히 중대한 증인 신청 및 기일 변경을 신청합니다."
법정 안의 기자들과 방청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백승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기일 변경이라니? 이미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졌을 텐데."
백승현이 가벼운 코웃음을 치며 태혁을 쏘아보았다. 태혁은 물러서지 않고 서류를 높이 들어 올렸다.
"본 대리인이 법원에 제출하는 증거 제42호증부터 제50호증은 대포 회사를 통한 불법 자금 세탁 및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조직적 로비 정황이 담긴 '도원회 비밀 장부'입니다. 여기에는 차기 법무부장관 후보자인 백승현 피고인을 비롯해, 현직 법원장 및 대법관 3인의 구체적인 뇌물 수수 일시와 계좌 내역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를!"
백승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위선자의 가면 아래로 당혹감과 분노가 날것 그대로 드러났다.
"재판장님! 원고 대리인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위 사실로 사법부의 권위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즉시 발언을 제지해 주십시오!"
태혁은 백승현의 발악을 비웃듯, 법조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빨랐지만, 법정 안의 모든 이들의 귀에 송곳처럼 박혔다.
$$\text{민사소송법 제294조 (조사의 촉탁)}$$ $$\text{법원은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하여 조사를 촉탁하거나,}$$ $$\text{필요한 서류의 송부를 요구할 수 있다.}$$
$$\text{동법 제311조 (증인 소환의 의무)}$$ $$\text{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인은 출석할 의무가 있으며,}$$ $$\text{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할 때에는 과태료 및 감치에 처한다.}$$
"본 대리인은 이 장부에 기재된 한성그룹 로비 명단의 윗선들, 즉 현직 대법관 2인과 법무부 차관을 포함한 총 7인의 고위 법조인들을 본 재판의 증인으로 공식 소환할 것을 신청합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면, 이들이 법정에 서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태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법정은 폭탄을 맞은 듯한 소란에 휩싸였다. 기자들이 미친 듯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려댔고, 방청객들은 웅성거리며 백승현의 얼굴을 살폈다.
재판장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대법관 출신의 백승현을 밀어주려던 재판장의 계획은, 태혁이 폭로한 구체적인 로비 명단 앞에서 완전히 분쇄되었다. 여기서 소환 신청을 기각한다면 재판장 본인 역시 도원회의 뇌물 수수 공범으로 언론에 박제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원고 대리인의 증인 신청을 받아들입니다. 추후 기일은 서면으로 통보하겠습니다."
탕! 탕! 탕!
의사봉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백승현의 얼굴은 흑빛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이 설계한 20시간의 기습 기일이 오히려 자신과 도원회 수뇌부 전체를 법정이라는 단두대로 끌어올리는 올가미가 된 것이다.
* * *
재판이 끝난 직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현관 로비.
로비는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와 마이크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난장판의 중심에서 한도준의 오른팔이자 한성그룹 비서실장인 김태수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히 현관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김태수 실장님! 도원회 로비 장부에 이름이 기재된 것이 사실입니까?"
"한성그룹이 법조계에 조직적인 자금을 살포했다는 의혹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의 질문 쏟아짐에도 김태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대기업의 비서실장으로서 이런 번잡한 일들은 언제나 돈과 권력으로 무마해 왔기 때문이었다.
"전부 사실무근입니다. 법적 대응을 통해 허위 사실 유포에 책임을 묻겠습니—"
"그 책임, 지금 바로 지셔야겠습니다."
기자들 사이를 비집고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강태혁이었다. 그의 뒤로 전직 광수대 에이스 형사 최창식과 현직 경찰관 네 명이 무거운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
김태수의 눈썹이 치켜올려졌다.
"강태혁 변호사.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이런 식의 언론 플레이는—"
"언론 플레이가 아닙니다."
태혁이 품에서 붉은색 직인이 찍힌 체포영장을 꺼내 김태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한성그룹 비서실장 김태수. 당신을 15톤 대형 트럭을 이용한 살인미수 및 현행 범죄 청부 사주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광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영장으로 향했다.
"체포영장?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김태수의 경호원들이 태혁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하지만 최창식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가스총을 빼 들었다.
"움직이지 마라. 공무집행방해로 다 같이 처넣기 전에."
최창식의 눈에 서린 진짜 살기에 경호원들이 멈칫했다.
태혁은 김태수의 귓가에 얼굴을 대고, 오직 둘만 들릴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들이 청담동 지하 금고에 고이 모셔둔 범죄 청부 계획서 원본과, 트럭 운전사에게 보낸 입금 내역서. 그리고 민경식 검사 살인 사주 원본 녹취록까지 대검에 방금 접수했어. 내일 아침 뉴스 헤드라인이 아주 볼만할 거야, 김 실장."
김태수의 얼굴에서 여유가 도려내지듯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며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한성그룹의 뒤청소를 도맡아 하던 그가, 도원회의 방패막이가 아닌 진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철컥.
수갑이 김태수의 손목에 채워지는 소리가 법원 로비에 맑게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재벌가의 최고 권력 대리인이 법원 한복판에서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이 희대의 장면은, 태혁이 도원회의 심장을 향해 쏘아 올린 가장 완벽하고 통쾌한 첫 번째 포성이었다.
* * *
오후 8시. 서초동 법률사무소 무간.
트럭 충돌의 여파로 무간 빌딩의 외벽은 찌그러져 있었고, 임시로 전력을 복구한 사무실 내부는 침침한 백열등 하나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태혁은 책상에 앉아 도원회 비밀 금고에서 확보한 서류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걸로 백승현의 목줄은 쥐었습니다. 민 검사님 사건의 배후인 한도준까지 엮어 넣는 건 시간문제예요."
민혜령이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쌓여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복수심으로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방심하기엔 일러."
최창식이 창밖을 내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한도준 그 소시오패스 새끼는 자기 손발이 잘려 나가면, 아예 판을 통째로 엎어버리는 놈이야. 김태수가 잡혀 들어갔으니, 지금쯤 미쳐 날뛰고 있겠지."
최창식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위이이이잉-!
빌딩 아래 골목길에서 기괴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수십 대의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혁이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초동의 허름한 골목길을 가득 메운 것은 경찰차가 아니었다. 일렬로 늘어선 수십 대의 검은색 초대형 세단과 카니발 차량들이었다. 차량의 문들이 일제히 열리며, 검은색 정장을 입고 무전기를 귀에 꽂은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30명이 넘었다. 대기업의 내부 사설 보안 경호군단, 한도준이 부리는 진짜 사도의 군대였다.
그들이 무간 빌딩의 입구를 완벽히 포위 봉쇄하고 있었다.
쿵, 쿵, 쿵.
낡은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수많은 발소리가 지하 콘크리트를 타고 전해졌다. 문가에 서 있던 최창식이 급히 권총을 꺼내 들며 문을 등지고 섰다.
"태혁아, 이 새끼들 진짜 미쳤다. 사설 경호원 수준이 아니야. 무장하고 있어."
스스스스…….
태혁의 눈앞에 다시 한번 붉은색 '리갈 레저'의 왜곡된 텍스트가 광적으로 소용돌이쳤다.
``` [🚨 극단적 인과율 변동 감지 🚨] - 위기 시나리오 강제 활성화. - 한성그룹 후계자 한도준의 직접적인 물리적 배제(살해) 확률: 98% - 경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초법적 무력 충돌 진입. ```
문이 거칠게 열렸다.
검은 정장 무리 사이를 헤치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핏발 선 눈을 한 사내, 한도준이 천천히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피 묻은 가죽 장갑이 쥐어져 있었다.
"강태혁 변호사."
한도준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태혁을 바라보았다.
"법이 참 편하지? 서류 몇 장으로 사람을 가두고 흔들 수 있으니까. 근데 말이야……."
한도준이 품에서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꺼내 천천히 태혁의 이마를 겨누었다.
"내 구역에서는 내가 곧 법이야. 여기서 너희 셋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내일 아침이면 단순 화재 사고로 처리될 뿐이지."
30명의 경호군단이 사무실 안을 가득 메우며 숨통을 조여왔다.
탈출구는 없었다. 완벽한 고립무원의 위기 속에서, 태혁은 자신을 겨눈 총구를 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