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쏘지 못할 거라면, 그 쇳덩어리는 주머니에 집어넣는 게 좋을 텐데."

이마에 닿은 차가운 총구 앞에서도 강태혁의 눈동자는 미세한 흔들림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비틀린 호선이 그려졌다.

한도준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움켜쥐며 마디마다 하얗게 뼈가 도드라졌다.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의 총구에서 흘러나오는 금속성 냄새가 좁은 사무실 안을 짓눌렀다.

"강태혁 변호사, 상황 파악이 아직 안 되나 본데."

한도준의 목소리가 뱀처럼 낮게 깔렸다.

"여기서 네가 대가리가 깨져 죽어도, 내일 아침 뉴스에는 '누전으로 인한 원인 미상의 화재' 한 줄만 나갈 거야. 서초동 바닥에서 부조리하게 죽어 나간 변호사가 한둘인 줄 알아?"

"글쎄. 그 대단한 '원인 미상 화재' 기획안을 짜기엔, 네 비서실장 김태수가 지금 서초경찰서 유치장에서 아주 불고 있을 텐데 말이지."

태혁이 천천히 손을 들어 제 이마를 겨눈 총구를 옆으로 밀어냈다. 한도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태혁은 거침없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비키지 그래? 숨이 막혀서 말이야."

"이 건방진 새끼가……!"

한도준의 뒤에 서 있던 거구의 사설 경호원이 태혁의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묵직한 가죽 구두가 경호원의 무릎 관절을 정확하게 내리찍었다.

콰득!

"아악!"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거구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최창식이었다. 그는 이미 품에서 삼단봉을 길게 뽑아 쥔 상태였다. 굳은살이 박인 그의 손아귀에서 검은색 강철봉이 위협적인 궤적을 그리며 윙윙 소리를 냈다.

"형사소송법 제211조 및 제212조."

최창식이 삼단봉을 어깨에 가볍게 얹으며 씹어뱉듯 읊조렸다.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그리고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에 의거, 범죄의 예방과 제지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지. 깡패 새끼들이 떼거지로 무기를 들고 법률사무소에 난입했으니, 이건 현행 특수협박 및 공동주거침입이다. 대가리를 깨버려도 정당방위라는 소리야."

"비켜라, 늙은 개새끼야."

한도준이 차갑게 명령하자, 그의 뒤에 대기하던 30여 명의 경호군단이 일제히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살벌한 쇳소리가 좁은 복도 전체를 메웠다.

태혁은 그 험악한 포위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서류 가방을 고쳐 잡았다. 가방 안쪽 깊은 곳에는 최창식이 청담동 지하에서 목숨을 걸고 빼앗아 왔던, 그리고 태혁이 '도원회 전용 지하실 비밀 금고 열쇠'로 직접 열어젖혀 획득한 한도준의 범죄 청부 계획서 원본과 민경식 검사 타살 증거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적들의 숨통을 끊어버릴 가장 완벽한 치명타였다.

"최 형사님, 굳이 여기서 힘 빼실 필요 없습니다."

태혁이 한도준을 비스듬히 지나치며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한성그룹 황태자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셨는데, 귀한 손님들을 좁은 사무실에 가둬두면 예의가 아니죠. 넓은 곳으로 내려가서 이야기합시다."

"강태혁!"

한도준이 이를 갈며 소리쳤지만, 태혁은 멈추지 않았다.

"막아!"

경호원 둘이 복도를 가로막으며 태혁의 덜미를 잡으려 했다.

스윽.

최창식의 신형이 유령처럼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삼단봉이 공기를 가르며 첫 번째 경호원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강타했다. 뼈가 맞부딪치는 둔탁한 파열음이 일었다. 이어지는 유려한 회전과 함께 두 번째 경호원의 명치에 최창식의 단단한 팔꿈치가 꽂혔다.

"커흑!"

복도 벽을 들이받고 쓰러지는 사내들을 뒤로한 채, 최창식이 태혁의 뒤를 든든하게 호위했다.

"내 허락 없이 이 친구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는 새끼는, 오늘부로 공무집행방해랑 살인미수 공범으로 내가 직접 기소장에 이름 올려주지. 전직 광수대 에이스의 영장 청구 실력이 녹슬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놈들만 덤벼라."

태혁은 거침없이 낡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내려갔다.

쿵. 쿵. 쿵.

한도준과 그의 무장 경호군단이 분노에 가득 찬 발소리를 내며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았다. 무간 빌딩의 1층 로비 유리문 너머로, 서초동의 눅눅한 밤공기가 밀려들고 있었다.

"여기서 끝장을 내주지."

한도준이 계단 끝자락에서 태혁의 등에 대고 권총을 다시 겨누었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었다.

딸깍.

태혁이 건물의 낡은 유리문을 밀어젖혔다.

동시에, 암흑으로 가득했던 서초동 골목길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스포트라이트 수십 개가 일제히 한도준의 얼굴과 그 뒤를 따르던 무장 경호원들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아악! 눈부셔!"

"이게 뭐야?!"

경호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팔로 눈을 가렸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취재진과 어깨에 거대한 카메라를 얹은 방송사 카메라맨들이었다. 그 뒤로는 파란색과 빨간색 경광등을 요란하게 번쩍이는 경찰차 대여섯 대가 골목길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다.

"지금 라이브 들어갔습니다!"

"송출 시작했습니다!"

카메라 렌즈 위에 붙은 빨간색 'ON AIR' 표시등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빛났다.

그 중심에, 단정한 정장 차림의 민혜령이 한 손에는 마이크를, 다른 한 손에는 대검찰청 신인 단속반 협조 공문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아버지를 잃었던 과거의 나약함을 완전히 지워버린 듯, 지독한 복수귀의 그것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SBC 긴급 속보입니다."

민혜령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지금 보고 계신 이곳은 서초동 법률사무소 무간의 앞마당입니다. 한성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한도준 전무가, 사설 무장 경호원 30여 명을 동원하여 현직 변호사의 사무실을 불법으로 습격하고 권총으로 협박하는 현장이 실시간으로 포착되었습니다."

"이, 이게 무슨……!"

한도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그는 다급히 권총을 품 안으로 숨기려 했지만, 이미 초고화질 방송 카메라 줌렌즈가 그의 손에 쥔 소음기 권총을 정밀하게 포착한 뒤였다.

"강태혁! 네놈이 미쳤구나!"

한도준이 소리를 질렀지만, 태혁은 오히려 카메라를 향해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도준 전무님."

태혁이 한도준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는 기자들의 마이크를 타고 골목 전체에 맑게 울려 퍼졌다.

"방금 전 무간 사무실 내부에서 저와 저희 직원들을 향해 가해진 총기 협박, 그리고 불법 사설 무장 세력의 점거 행위는 형법 제284조 특수협박, 제320조 특수주거침입, 그리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공동공갈죄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태혁이 서류 가방을 열어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 [📜 고발장 및 합의 권고안 📜] 피고발인: 한성그룹 전무 한도준 혐의 사실: 1. 형법 제284조 (특수협박) 2. 형법 제320조 (특수주거침입) 3.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공동공갈 및 배임 사주) ```

"특히, 대기업의 임원이 비자금과 사설 보안 업체를 사적으로 유용하여 이 같은 테러 행위를 저지른 것은 자본시장법 및 특경법상 '횡령 및 배임'에 해당합니다. 이는 한성그룹 이사회에서 당신의 임원 자격을 즉각 박탈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결격 사유가 되지요."

한도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턱밑으로 떨어졌다. 주위의 경호원들은 이미 경찰들의 경고에 무기를 버리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이건 조작이다! 저놈들이 함정을 판 거야!"

한도준이 악을 썼지만, 민혜령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 말을 받아쳤다.

"이미 전국의 500만 명 이상의 시청자가 유튜브와 지상파 라이브를 통해 당신의 총기를 확인했습니다. 한성그룹 홍보실에서 아무리 기사를 막으려 해도, 실시간 생중계의 전파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태혁이 한도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선택해, 한도준."

"뭐라고?"

"이대로 경찰에 체포되어 특경법상 배임과 살인미수 교사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으며 한성그룹 후계자 자리에서 영원히 내려올 건가. 아니면……."

태혁이 고발장 옆에 첨부된 합의서 한 장을 더 보여주었다. 합의금 액수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정신적 피해보상 및 법률사무소 무간에 대한 손해배상금으로 100억 원의 즉시 합의 도장을 찍을 건가."

"100억?! 미친 소리 하지 마라! 네깟 변호사 새끼한테 내가 왜!"

"싫으면 말고."

태혁이 미련 없이 뒤를 돌아서려 하자, 한도준이 다급하게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두 사람의 모습을 광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한도준이 수갑을 차고 연행되는 장면이 단 1초라도 더 송출된다면, 내일 아침 한성그룹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이사회는 그를 즉각 해임할 터였다.

한도준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오만한 자존심이 갈갈이 찢겨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도장, 찍으면. 이걸로 끝내는 거지?"

"물론이지. 난 법을 사랑하는 변호사니까. 합의서가 작성되면 이 자리에서의 공갈 혐의 고소는 취하해 주지. 단, 돈은 즉시 송금이다."

태혁이 만년필을 건넸다.

한도준은 떨리는 손으로 만년필을 받아 쥐고, 태혁이 제시한 합의서 하단에 자신의 지장을 짓이기듯 찍어 눌렀다. 그리고 그의 개인 비자금 계좌에서 무간의 법인 계좌로 100억 원이 이체되었다는 알림이 태혁의 휴대전화 화면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띡.

[무간 법률사무소: 10,000,000,000원 입금 완료]

"꺼져."

태혁이 합의서를 품에 넣으며 차갑게 말했다.

한도준은 굴욕감에 몸을 떨며,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아 서둘러 대기하던 차량에 올라탔다. 수많은 취재진이 그들의 뒤를 쫓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태혁아, 진짜 해냈구나."

최창식이 삼단봉을 접으며 호쾌하게 웃었다. 민혜령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태혁을 바라보았다.

수십 명의 깡패 조직을 대동했던 대기업의 황태자를, 오직 법의 테두리와 언론의 힘만을 이용해 단 몇 분 만에 무릎 꿇리고 100억을 뜯어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완전한 갑을관계의 역전이었다.

하지만 태혁은 웃지 않았다.

그의 귓가에 기분 나쁜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태혁의 시야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망막 위에 각인된 '리갈 레저'의 화면이 미친 듯이 깜빡이며 붉은색 노이즈를 뿜어냈다.

``` [🚨 인과율 오차율 폭등: 68% 🚨] - 나비효과로 인한 미래 판결 데이터의 극단적 왜곡 발생. - 경고: 확정된 미래 정보의 신뢰도가 실시간으로 붕괴 중.

[⚠️ 긴급 변동 사항 감지 ⚠️] - 대상: 도원회 수장, 백무현 대법관. - 상태: 강태혁 변호사에 대한 '법조계 영구 퇴출 및 가혹 기소' 특별 지시 하달 완료. - 판결 예측: 내일 오전 10시 재판, 피고인 패소 및 변호사 자격 정지 확률 99.8% (오판 점등) ```

어둠 속에서 태혁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인은 발신 번호 제한 표시.

태혁이 침묵 속에 전화를 받아 귀에 가져다댔다. 수화기 너머에서, 점잖고도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원회의 정점이자 차기 대법원장 후보, 백무현이었다.

"강태혁 변호사. 오늘 재롱은 아주 잘 보았네."

백무현의 목소리에는 한도준과 같은 천박한 분노가 없었다. 그것은 거대한 사법 권력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읊조리는 절대적인 확신이었다.

"하지만 법이라는 칼은 자네 같은 잡배가 휘두르기엔 너무 날카롭지. 내일 오전 10시 법정에서, 자네가 가진 그 가짜 무기들이 어떻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네. 기대하게."

뚝.

전화가 끊겼다.

붉게 타오르는 리갈 레저의 경고창 위로, 내일 오전 10시 재판이 '완벽한 패배'로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오판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태혁의 눈앞에 거대한 절벽이 다시 한번 가로막아 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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