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내일 아침 10시라고요?"
민혜령의 손에 들린 법원의 기일지정결정 통지서가 사정없이 떨렸다. 종이 가장자리에 찍힌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붉은 직인이 마치 피로 물든 낙인처럼 번뜩였다.
단 20시간.
백승현은 방금 전 재판정에서 당한 수모를 갚아주겠다는 듯, 법원장과의 은밀한 독대를 통해 소송 절차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강제로 돌려 버렸다. 변론을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을 완전히 거세해 버린, 법의 이름을 빌린 노골적인 폭력이었다.
태혁은 턱을 괸 채 가만히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고요했다. 분노로 날뛰는 대신, 얼음장처럼 차가운 이성이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적들은 룰을 지킬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굳이 이쪽만 링 위에서 신사적인 복싱을 고수할 이유가 없었다.
"백승현이 썩어빠진 법원장 멱살을 잡고 흔들었군. 예상보다 움직임이 빨라."
태혁의 나직한 목소리에 혜령이 마른침을 삼키며 다급하게 받아쳤다.
"이건 명백한 절차적 권리 침해예요! 당장 기일지정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아무리 법원장이라도 최소한의 출석 준비 기간을 보장하지 않는 건—"
"기각당할 겁니다."
태혁이 단호하게 혜령의 말을 잘랐다.
"이의신청서를 써서 법원 행정처를 거치는 동안 내일 아침 10시는 지나갑니다. 저들은 우리가 서류 뭉치에 매달려 밤을 새우다 지친 채 법정에 들어서길 바라고 있어요. 백승현의 판을 깨려면, 그가 준비한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먼저 부숴야 합니다."
태혁은 책상 서랍을 열고 묵직한 쇠붙이 하나를 꺼냈다. 지난번 최창식에게 넘겨받았던, 도원회 전용 지하실 비밀 금고의 열쇠였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 감각이 그의 메마른 계산주의를 더욱 자극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이명이 일었다.
지지직!
시야 한구석에 붉은색 노이즈가 끼며 리갈 레저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강제로 개방되었다.
``` [🚨 인과율 오차 경고: 45% 🚨] - 미래 판결 왜곡도 심화. - 노이즈 발생률 증가로 데이터 가독성 저하. - 대상자 '임종식' 관련 잔여 데이터 출력 중... ```
오차율이 45%까지 치솟으면서 글자들이 붉게 깜빡이며 일그러졌다. 하지만 태혁이 원하는 정보는 여전히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가온의 송무 사무장이 룸살롱에서 매수했던 배심원 후보이자, 내일 재판에서 아진테크의 기술 도용을 증언하기로 예정된 핵심 조작 증인.
임종식.
태혁은 휴대폰을 꺼내 단축 번호 1번을 눌렀다. 신호음이 채 두 번을 가기도 전에 거친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 어, 강 변호사. 대기 중이다.
"최 형사님, 지금 움직여야겠습니다. 사냥감을 확보하세요."
— 그 룸살롱에서 기어 나오던 놈 말이군. 지금 가온 놈들이 역삼동 오피스텔 702호에 숨겨놓고 감시 중이다. 짭새 새끼들도 두 명 붙어 있어. 어떻게 할까?
"법정 구인장 대신 우리가 직접 구인합니다. 내일 아침 10시 전까지 그 자의 입을 열어야 합니다. 수단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단, 흔적은 남기지 마십시오."
— 딱 내 전공이네. 1시간 뒤에 보지.
전화가 뚝 끊겼다.
옆에서 통화를 들은 민혜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태혁의 소매를 붙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 변호사님! 이건 명백한 납치이자 불법 구금이에요! 법을 다루는 변호사가 사설 흥신소 같은 짓을 벌이다가 걸리면, 우리가 구축한 모든 증거의 독수독과이론(Toxic Tree Doctrine)이 적용돼서 법정에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돼요!"
태혁은 자신을 붙잡은 혜령의 손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민 변호사. 당신 아버지가 왜 자살로 위장돼서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있는지 벌써 잊었습니까?"
"그건……!"
"도원회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닙니다. 그들은 법을 지배하고 있어요. 우리가 법전 뒤에 숨어서 정의를 읊조리는 동안, 저들은 내일 아침 법정에서 우리 목을 합법적으로 썰어버릴 겁니다. 살고 싶다면,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배후를 끌어내리고 싶다면 먼저 괴물이 되세요."
태혁의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어조에 혜령은 숨을 멈췄다. 그녀는 입술을 짓이겨 피가 비칠 때까지 깨물었다. 법조인으로서의 양심과 본능적인 복수심이 가슴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가온이나 경찰이 임종식의 실종을 알아채고 수색하기 시작하면 무간도 끝장이에요."
태혁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그 뛰어난 머리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그 자를 이곳으로 데려왔을 때, 법적으로 완벽한 방어막을 쳐줄 서류를 만드세요."
"방어막이라니요?"
"검찰청 내부 양식을 도용하든, 아버님이 남겨두신 옛 인맥의 전산 코드를 쓰든 상관없습니다. 임종식을 '중요 사건의 참고인 신변 보호 수용' 대상자로 지정하는 가짜 집행장을 설계하세요. 딱 20시간만 가온과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합법적인 가짜 서류를."
혜령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것은 공문서 위조이자 사법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태혁의 가라앉은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자신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직감했다.
"……알겠어요."
혜령이 노트북을 열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자판을 맹렬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비공식 문조들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 * *
정확히 50분 뒤.
무간 사무실 뒤편의 어두운 비상계단 문이 벌컥 열렸다.
커다란 등치의 최창식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검은색 대형 이민 가방을 끌고 들어왔다. 가방 안에서는 읍읍거리는 비명과 함께 버둥거리는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온 놈들이 붙여둔 경비 조무사 새끼들은 가볍게 재워두고 왔다. 흔적은 안 남았어."
최창식이 지퍼를 열자,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중년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전 아진테크 특허 담당 과장이자, 현재 가온의 배심원 매수 공작의 핵심 말판인 임종식이었다.
"당신들 누구야! 이거 납치야! 내가 누군지 알아? 가온의 백 변호사님이 가만 안 둘 줄 알아! 당장 경찰에—"
임종식이 소리를 지르려 하자, 최창식이 그의 목덜미를 가볍게 누르며 서늘하게 속삭였다.
"야, 조용히 해라. 네 목소리 1데시벨 올라갈 때마다 손가락 마디 하나씩 부러뜨려 줄 테니까."
형사 시절의 살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최창식의 위협에 임종식은 헙 하고 숨을 들이켜며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때 민혜령이 붉게 인쇄된 서류 한 장을 임종식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임종식 씨. 당신은 현재 대검찰청 특수부의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하여 '긴급 참고인 신변 보호 및 임시 수용' 조치에 의거해 구인된 상태입니다. 서류상의 서명과 서부지검 전산 코드가 등록되어 있으니, 당신이 실종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은 관여할 수 없습니다."
혜령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공문서를 완벽하게 가공해 낸 그녀의 얼굴에는 묘한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임종식은 서류에 찍힌 대검찰청 직인과 복잡한 법률 조항들을 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법에 무지한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가짜라고 의심할 수 없는 완벽한 공문서였다.
"자, 이제 방으로 모시지."
태혁이 턱짓으로 사무실 한구석에 마련된 임시 심문실을 가리켰다. 창문 하나 없이 둔탁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오직 형광등 하나만이 깜빡이는 사각지대였다.
* * *
달칵.
심문실의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태혁과 의자에 묶인 임종식 단 둘만이 남았다.
임종식은 침을 삼키며 태혁의 눈치를 살폈다. 거친 폭력이나 욕설이 비 오듯 쏟아질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태혁은 그저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겨 가만히 앉을 뿐이었다.
태혁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8시 15분.
그리고 태혁은 침묵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고, 서류를 뒤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칠흑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임종식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1분.
2분.
3분.
침묵이 길어질수록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깜빡이는 형광등의 미세한 소음만이 임종식의 고막을 자극했다. 임종식은 태혁의 시선을 피하려 눈동자를 굴렸지만,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태혁의 서늘한 시선뿐이었다.
침묵은 가장 잔혹한 심리적 고문이다. 상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인간의 뇌는 스스로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마련이다.
5분이 지나자 임종식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저…… 저기요. 무슨 말이라도 하세요. 왜 이러는 겁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가온에서 받은 돈 좀 나눠 줄까요?"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주머니에서 도원회 지하실 열쇠를 꺼내 책상 위에 툭 던졌다.
탁-!
무거운 금속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임종식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 그게 뭡니까?"
여전히 침묵. 태혁은 눈앞에 흐릿하게 떠오르는 리갈 레저의 붉은 노이즈 속에서 임종식의 미래 판결 데이터 수치들을 정교하게 읽어 내려갔다.
``` [임종식 - 미래 타임라인 변동 데이터] - 도원회 내부 설계안: 재판 종료 후 임종식의 입을 막기 위한 '기획 폐기' 확정. - 실행 예정 시간: 내일 오후 11시 45분. - 장소: 영등포 로터리 교차로. - 방법: 만취 상태의 25톤 덤프트럭(차량번호 83러 XXXX)의 운전석 측면 충돌. - 결과: 즉사. 음주운전 과실사고로 종결 처리 예정. ```
태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마치 내일의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청 직원처럼 건조했다.
"임종식 씨. 가온에서 얼마를 약속받았습니까? 3억? 아니면 5억?"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정확히는 2억 4천만 원이겠지. 세금 한 푼 안 떼는 현금 가방으로 받았을 테고."
임종식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 그걸 당신이 어떻게……."
"백승현이 당신에게 약속했을 겁니다. 내일 법정에서 아진테크의 설계 도면을 당신이 직접 빼돌려 가온에 넘겼다고 증언하라고. 가온은 피해자일 뿐이고, 아진테크가 기술을 도용해 가온의 특허를 침해한 것처럼 배심원들을 선동하면, 그 돈으로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태혁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임종식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도원회는 증인을 살려두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증인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니까."
"거짓말하지 마! 백 변호사님은 대법관까지 지내신 고결한 분이야! 나한테 이민 비자까지 준비해 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임종식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하지만 태혁은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이민이 아니라 황천길이겠지. 내일 오후 11시 45분. 영등포 로터리 교차로를 지날 때 조심하십시오. 차량번호 83러 XXXX, 신호를 위반한 25톤 덤프트럭이 당신의 그랜저 운전석을 그대로 밀어버릴 테니까."
임종식의 얼굴에서 핏기가 단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싹 가셨다.
"당신……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차 번호는…… 백 변호사 비서가 나한테 보디가드 차량이라고 알려준 번호인데……."
임종식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가온 측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경호 차량이라며 알려주었던 번호였다. 그것이 사실은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준비된 덤프트럭의 번호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임종식의 뇌리는 하얗게 불타버렸다.
태혁은 리갈 레저의 정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격화된 예언처럼 던져 넣었다.
"그들은 당신이 법정에서 증언을 마치자마자 토사구팽할 계획입니다. 당신이 죽으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는 종결되고, 당신 계좌에 들어간 2억 4천만 원은 범죄 수익금으로 국가에 전액 몰수되겠죠. 남겨진 당신 아내와 자식들은 빚더미에 앉아 평생 손가락을 빨아야 합니다."
"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임종식은 머리를 감싸 쥐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태혁이 제시한 구체적인 수치와 시간, 그리고 차량 번호는 가온 내부의 극비 정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태혁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공포감이 그의 멘탈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태혁은 가슴 주머니에서 만년필과 미리 작성해 둔 자백서를 꺼내 임종식의 앞에 내려놓았다.
``` [자 백 서] 본인은 가온 백승현 변호사의 교사 하에 아진테크의 기술 도용 관련 허위 증언을 모의하였으며, 그 대가로 현금 2억 4천만 원을 수령하였음을 자백합니다. 모든 증거 조작의 배후에는 법무법인 가온과 도원회가 있음을 확약합니다.
작성자: 임 종 식 (인) ```
"이것이 당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법적 비상구입니다. 여기에 서명하고 내일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십시오. 그렇게 하면 내가 당신을 특별 사법협조자로 지정해 신변을 보장하고, 형량도 최소한으로 줄여주지."
태혁의 목소리는 지독할 정도로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철저한 계산하에 던져진 구원의 밧줄이었다.
임종식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만년필을 쥐었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정말…… 정말 날 살려주는 겁니까?"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내일 밤 영등포 로터리에서 덤프트럭 밑으로 기어 들어가든가, 아니면 나와 함께 백승현의 목을 치든가."
임종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백서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정자체로 꾹꾹 눌러 쓰기 시작했다. 지장을 찍는 그의 손가락 끝이 붉은 인재로 물들었다.
완벽한 굴복이었다. 백승현이 준비한 가장 치명적인 발판이 역으로 그들의 목을 겨누는 칼날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 *
오후 11시 30분.
자백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임종식의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태혁의 귓가에 둔탁한 경보음이 다시 한번 울렸다.
지지직-!
``` [🚨 인과율 오차 변동 감지 🚨] - 인과율 오차율: 45% ➔ 43% (소폭 하락) - 미래 판결 시나리오의 주도권 확보로 인한 인과율 회복세 진입. ```
태혁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미래의 확정된 정보를 뒤틀어 자신만의 판을 짜는 쾌감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백승현이 설계한 20시간의 기습은 오히려 그들의 숨통을 조이는 덫이 되었다.
"끝났습니다."
태혁이 자백서를 소중하게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가에서 초조하게 대기하던 민혜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대단해요, 강 변호사님. 이걸로 내일 재판은 완전히 우리 페이스로—"
그 순간이었다.
치이이익-!
최창식의 벨트에 채워져 있던 소형 무전기에서 찢어지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간 사무실 외부 감시를 맡겨두었던 최창식의 전직 동료 형사였다.
— 형님! 형님, 들립니까?! 지금 당장 대피해야 합니다!
최창식이 급히 무전기를 낚아채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똑바로 말해!"
— 지금 사무실 뒷골목 진입로 입구에서 15톤 대형 윙바디 트럭 한 대가 헤드라이트도 끄고 이쪽으로 풀 악셀을 밟고 있습니다! 시속 80이 넘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을 기색이 전혀 없어요! 목표는 무간 빌딩입니다!
무전기 너머로 미친 듯이 포효하는 대형 엔진 음과 타이어 타는 냄새가 섞인 비명 소리가 실시간으로 흘러나왔다.
태혁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졌다.
쿠우우우웅-!
지하 콘크리트 벽을 타고 거대한 진동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며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가 비 오듯 쏟아졌다.
도원회가 법적인 수단을 넘어, 자신들의 치부가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물리적인 압살을 시작한 것이었다.
"모두 엎드려!"
태혁이 소리치며 민혜령을 감싸 안고 바닥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머리 위의 형광등이 일제히 파열하며 폭음과 함께 암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