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비상구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닫히는 순간까지도, 태혁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김종식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복도 벽면에 부딪쳐 잘게 부서졌다. 한성그룹 후계자 한도준의 그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쓸모없는 사냥개는 보신탕용으로도 쓰지 않는다. 회귀 전, 자신 역시 그 사냥개 중 한 마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태혁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손끝에 닿는 것은 수첩 한 귀퉁이에서 찢어낸 거친 종이 질감이었다. 김종식의 연구실에서 조회했던 장부를 바탕으로 기록해 둔 비자금 핵심 증거, '진안정밀'의 거래 흔적이 담긴 메모였다. 한도준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이 메모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을 터였다.

태혁이 걸음을 옮겼다. 법원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구둣발 소리가 유난히 차갑고 규칙적이었다.

"민혜령."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태혁이 멈춰 섰다. 민혜령이 가죽 가방을 움켜쥔 채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도원회에 대한 가공할 만한 적의와, 눈앞의 남자가 보여준 이질적인 능력에 대한 경외감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김종식은 이제 끝났어. 하지만 한도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방금 비상구에서 무슨 소릴 들은 거지?"

태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나직하게 대꾸했다.

"사냥개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리."

"강태혁!"

"알고 싶으면 더 깊은 시궁창으로 들어올 준비나 해 둬.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다간 숨이 가빠서 먼저 나가떨어질 테니까."

태혁은 그대로 법원 로비를 빠져나왔다. 민혜령의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도준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가 움직이는 길목을 선점하는 것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간 태혁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붉은색 경고창이 일렁이며 시야를 가득 채웠다.

[위기: 판결 나비효과 감지] [인과율 오차율: 15%] [데이터 노이즈 발생 중 - 기지국 정보 동기화 요청]

태혁이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김종식이 한도준의 전화를 받았던 기지국 신호의 궤적이 머릿속 장부 위로 실시간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신호가 수렴하는 곳은 강남구 역삼동의 한적한 유흥가 골목. 겉으로는 평범한 바(Bar)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실상은 도원회의 말단 조직원들이 드나드는 사설 밀실이자 아지트가 있는 곳이었다.

차량이 서초동을 벗어나 강남의 빌딩 숲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젖어든 아스팔트 위로 오색 빛깔의 네온사인이 더럽게 번졌다.

역삼동의 좁고 어두운 골목길. 태혁은 전조등을 끄고 차를 골목 입구에 세웠다.

스산한 바람을 타고 둔탁한 타격음과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 퍽, 팍, 하는 소리가 벽돌 벽에 반사되어 음산하게 울렸다. 태혁은 차에서 내려 발소리를 죽이고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

젖은 시멘트 바닥 위로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피떡이 된 채, 군데군데 찢어진 가죽 재킷을 걸친 사내였다. 그의 주변을 거구의 사내 넷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야구배트와 끝이 뭉툭한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이 새끼가 아직도 눈깔을 살아가지고 뜨네? 야, 최창식. 네가 아직도 광수대 에이스인 줄 알아?"

가죽 잠바를 입은 흉터 많은 사내가 침을 뱉으며 쓰러진 남자의 갈비뼈를 구둣발로 짓밟았다. 최창식. 전직 광수대 에이스 형사였으나, 도원회의 설계에 휘말려 파트너를 잃고 뇌물 수수 누명을 쓴 채 파면당한 남자였다.

"커흑……!"

최창식이 붉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짓밟힌 다리를 붙잡고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에는 짐승 같은 광기와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죽여라, 이 개새끼들아…… 못 죽이면 내가 니들 목가지를 전부 뜯어 놓을 테니까……."

"이게 끝까지 주둥이를 터네. 야, 포대 자루 가져와. 한강 물 차가운데 푹 쉬게 해 주자고."

덩치들이 최창식의 양팔을 붙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던 찰나였다.

또각. 또각.

어둠 속에서 규칙적이고 선명한 구둣발 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조폭들의 시선이 일제히 골목 입구로 향했다. 코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태혁이 서류 가방을 든 채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새끼는 뭐야? 민간인은 꺼져, 뒤지기 싫으면."

조폭 두목이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치며 으르렁거렸다. 태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방을 열어 스마트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아주 사무적이고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현재 시각 오후 9시 47분. 피고인들은 피해자 최창식을 야간에 공동으로 폭행하여 중상해를 입혔으며, 차량을 이용해 납치 및 살인을 공모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태혁은 가방에서 붉은색 표지의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법학도들의 바이블이자, 지금 이 순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형법 전서였다. 태혁의 목소리가 골목 안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중앙에 꽂히듯 울려 퍼졌다.

<p align="center"><b>형법 제250조 (살인, 존속살해)</b><br>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p>

<p align="center"><b>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2조 (공동폭행 등)</b><br>② 2인 이상이 공동하여 범한 때에는 각 호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p>

"여기에 형사소송법 제212조를 더하지요."

태혁이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리며 사내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p align="center"><b>형사소송법 제212조 (현행범인의 체포)</b><br>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p>

"지금 당신들은 현행범입니다. 그리고 본 변호인은 형법 제21조 정당방위 및 제22조 긴급피난의 법리에 의거, 제3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권한이 있습니다."

"하! 변호사 새끼였냐? 야, 저 새끼 주둥이부터 깨부숴!"

조폭 두목의 명령에 쇠파이프를 든 덩치 둘이 태혁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했다. 파이프가 공기를 가르며 태혁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히는 일촉즉발의 순간.

태혁은 몸을 반 보 뒤로 물리며 가방 안에서 호신용 고압 가스총을 뽑아 들었다. 망설임 없는 극도의 간결한 동작이었다.

탕! 탕!

굉음과 함께 자욱한 최루가스가 사내들의 얼굴에 직격했다.

"아아악! 내 눈! 눈이!"

사내들이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 태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에 든 두꺼운 형법 전서로 가스를 마시고 비틀거리는 사내의 턱관절을 정확히 가격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사내가 이빨을 흘리며 쓰러졌다.

남은 두 명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태혁은 가스총의 총구를 조폭 두목의 미간에 정확히 겨누었다.

"경찰 신고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강남경찰서 형사과 소속 순찰차가 이 골목 진입로를 차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1분 40초. 당신들이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단순 폭행이 아니라 특수강도상해 및 살인미수 혐의로 최소 7년 이상의 실형을 살게 될 겁니다. 내가 직접 기소장에 도장을 찍어줄 테니까."

태혁의 눈빛에는 광기 어린 조폭들조차 압도당할 만큼의 지독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멀리서 날카로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태혁이 미리 조작해 둔 스마트폰의 가상 사이렌 음향이었지만, 죄를 지은 자들의 귀에는 저승사자의 나팔 소리와 같았다.

"젠장! 철수해! 일단 튀어!"

조폭 두목이 침을 뱉으며 가스를 마신 부하들을 부축해 골목 반대편으로 미친 듯이 달아났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골목길에는 진눈깨비 내리는 소리와 최창식의 거친 숨소리만이 남았다.

태혁은 가스총을 주머니에 넣고 최창식에게 다가갔다. 쓰러진 최창식을 부축해 자신의 차 뒷좌석에 거칠게 밀어 넣었다. 문을 닫고 차가 출발하자마자 시트 위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차량이 강남의 외곽, 인적이 드문 폐건물 부근의 공터에 멈춰 섰다.

최창식이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그는 깨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태혁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뼈가 부러진 왼팔의 통증 때문에 다시 시트 위로 무너졌다.

"너…… 컥, 누구야. 날 왜 구했어."

최창식의 목소리는 갈라진 논바닥처럼 거칠었다. 태혁은 조용히 백미러로 그를 응시했다.

"강태혁입니다. 사법연수생이자, 앞으로 당신의 목줄을 쥘 변호사."

"변호사? 웃기지 마. 변호사 새끼들이 다 그렇지. 돈만 주면 살인범도 무죄로 만들고, 우리 같은 짭새들 누명 씌우는 데 앞장서는 기생충 같은 놈들."

최창식이 이빨 사이로 피를 뱉어내며 조소했다. 그의 눈빛은 세상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파트너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자신에게 씌워진 부패 경찰이라는 오명. 그를 지탱하는 것은 오직 복수라는 이름의 광기뿐이었다.

태혁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기생충 맞습니다. 하지만 그 기생충이 숙주를 뜯어먹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려고 왔습니다. 최 형사님, 당신의 파트너 황 형사를 죽이고 당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최창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도원회. 그리고 한성그룹의 한도준."

"알면서도 왜 이러고 있습니까? 공권력은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고, 당신이 가진 경찰 배지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는데. 혼자서 칼 한 자루 들고 쑤셔봐야 쥐도 새도 모르게 한강 수장 엔딩입니다."

태혁의 말은 뼈를 때리는 송곳 같았다. 최창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그때, 최창식이 몸을 뒤척이는 과정에서 그의 찢어진 가죽 재킷 안주머니로부터 무언가 짤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낡고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은색 열쇠였다.

최창식이 황급히 부러진 팔을 뻗어 그것을 주우려 했지만, 태혁의 구둣발이 먼저 열쇠 위를 가볍게 밟아 고정했다.

"이건 뭡니까?"

"발 치워, 이 새끼야! 내 목숨보다 소중한 거니까 밟지 마라!"

최창식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태혁은 그의 반발을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시야에 리갈 레저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강렬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인과율 오차율: 17%] [물증 분석 완료] [대상: 도원회 전용 지하 비밀 금고 열쇠] [상태: 활성화 가능 (회수 대기)] [설명: 도원회 수뇌부들이 전관예우 뇌물 장부와 비자금 세탁용 기밀 서류를 보관하는 서초동 지하 비밀 금고의 마스터키.]

태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렸다. 회귀 전,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으나 결국 손에 넣지 못했던 도원회의 아킬레스건. 그 금고의 열쇠가 지금 최창식의 손에 쥐여 있었다. 이 열쇠의 용도를 확인한 순간, 태혁의 머릿속 사법 장부에 거대한 자산 가치가 표기되었다.

태혁은 슬며시 발을 치웠다. 최창식이 헐떡이며 열쇠를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그 열쇠, 목숨 걸고 지키십시오. 나중에 도원회의 심장을 찌를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될 테니까."

태혁은 운전석 시트를 뒤로 젖히며 최창식을 돌아보았다.

"거래를 제안하지요, 최창식 씨."

"거래?"

"당신은 이제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냥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얘기가 다르지. 내가 법이라는 가장 강력한 방패를 제공하겠습니다. 당신이 내 손발이 되어 움직여 준다면, 당신 파트너를 죽인 놈들, 그리고 당신을 나락으로 보낸 도원회의 목을 합법적으로 잘라 단두대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최창식은 태혁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인간적인 동정이나 정의감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철저한 계산과 이익, 그리고 상대를 파멸시키겠다는 지독한 집념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미친 새끼……."

최창식이 나직하게 읊조리더니, 순간적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소매 사이에서 번뜩이는 단도가 튀어나왔다.

서늘한 쇠붙이의 감각이 태혁의 목덜미를 강하게 압박했다. 단도의 날카로운 끝이 태혁의 목 피부를 파고들어 붉은 핏방울이 솟아올랐다. 조금만 힘을 주면 경동맥이 끊어질 일촉즉발의 대치였다.

"내가 왜 네놈의 개가 돼야 하지? 지금 여기서 네 목을 따고, 그 새끼들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으면 그만이야."

최창식의 호흡은 거칠었고, 칼을 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진정한 광기였다. 잃을 것이 없는 자가 뿜어내는 통제 불능의 살기.

하지만 태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기괴하리만치 천천히 올라갔다.

그 순간, 태혁의 온 시야가 핏빛으로 붉게 물들며 리갈 레저의 경고창이 비명 지르듯 강제로 켜졌다.

[경고: 인과율 오차율 18% 돌입] [실시간 추적 이벤트 발생] [대상: 최창식의 파트너 황 형사를 살해한 도원회 소속 행동대장 '독사' 외 3명] [현재 위치: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3-4 지하 1층, 최창식의 임시 거처로 이동 개시]

태혁이 목을 겨눈 칼날을 무시한 채,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지금 실시간으로 생겼는데. 당신 파트너를 죽인 진짜 범인들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들어볼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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