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김종식 교수님.”

감사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서류 봉투를 쥔 김종식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서랍에서 막 꺼낸 ‘강태혁 연수생 품위유지 위반 및 강제 퇴학 건의서’가 그의 손아귀 안에서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 이게 무슨…….”

김종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시선이 감사관들의 어깨너머, 복도 저편으로 향했다. 유유히 걸어가던 강태혁이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태혁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가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사냥꾼의 미소였다.

“감사실에서 나올 만큼 한가한 줄 몰랐군.”

김종식이 서류를 책상 밑으로 슬그머니 내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목줄이 조여 오는 짐승이 내지르는 악다구니에 가까웠다.

“허위 제보요! 내가 한성그룹 주식을 왜 우회 보유합니까? 이건 저놈, 저 강태혁이라는 낙제생 놈이 날 음해하려고 조작한 짓거리요!”

수석 감사관인 박 차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철을 펼쳤다.

“제보자는 단순한 구두 진술만 남긴 것이 아닙니다. 김 교수님 명의로 개설된 차명 계좌의 거래 내역, 그리고 한성그룹 비자금 세탁 창구인 ‘진안정밀’과의 자금 왕래 기록이 고스란히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조작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지 않습니까?”

진안정밀.

그 단어가 박 차장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김종식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도원회의 비호를 받으며 완벽하게 세탁했다고 믿었던 자금 줄기였다. 사법연수원의 일개 연수생이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태혁은 복도 벽에 기대어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감상했다.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빛의 장부, ‘리갈 레저(Legal Ledger)’가 조용히 떠올랐다.

[자산: 김종식의 범죄 사실 및 도원회 연결 고리 (확보 완료)] [부채: 인과율 변동성 (미세 상승 중)]

태혁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유유히 연구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감사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박 차장님.”

태혁이 정중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종식 교수의 비위 사실은 엄중히 다뤄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징계 절차를 밟으시면, 김 교수는 ‘절차적 하자’나 ‘표적 감사’를 주장하며 시간을 끌 겁니다. 도원회라는 든든한 뒷배를 믿고 말이죠.”

김종식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네, 네놈이 어떻게 도원회를……!”

“입 조심하셔야죠, 교수님.”

태혁이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그러고는 박 차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침 내일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대규모 형사 모의재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연수생 전원과 언론사 수습기자들까지 참관하는 자리죠. 김 교수가 저를 퇴학시키기 위해 조작한 ‘동료 연수생 폭행 및 품위유지 위반’ 건을 해당 모의재판의 특별 기소 건으로 상정해 공개 검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박 차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모의재판에서 징계 대상자의 혐의를 검증하겠다고? 그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전례는 만들면 그만입니다. 만약 제가 그 자리에서 무죄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징계위의 처분을 군말 없이 수용하겠습니다. 반대로, 김 교수가 제시한 증거들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진다면…….”

태혁이 김종식을 쏘아보았다. 그의 눈빛에 서린 살기에 김종식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김 교수의 직무 정지 및 사법 처리는 연수원의 명예를 지키는 가장 완벽한 명분이 될 겁니다. 연수원 내부의 자정 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할 기회이기도 하죠.”

박 차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 고발로 시끄러워지는 것보다, 공식적인 모의재판 형식을 빌려 잡음을 최소화하는 편이 감사실 입장에서도 유리했다.

“좋다. 강태혁 연수생. 내일 오전 10시, 모의법정에서 자네의 무죄를 입증해 봐라. 만약 실패한다면 그 즉시 출교 처분이다.”

감사관들이 퇴장하자, 연구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김종식은 바닥에 떨어진 조작 서류들을 움켜쥐며 이빨을 갈았다.

“강태혁…… 네놈이 제 발로 무덤을 파는구나. 내일 네놈의 법조인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 주마.”

태혁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문가에 서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민혜령이 그를 따라붙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가빴다.

“미쳤어? 모의재판이라니! 김종식이 매수한 연수생들과 조작된 조서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그걸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투겠다고?”

태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차갑게 읊조렸다.

“적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무대를 골라줘야, 뼈를 부러뜨릴 때 비명이 가장 크게 울려 퍼지는 법이야.”

“하지만…….”

“민혜령.”

태혁이 우뚝 멈춰 서서 그녀를 응시했다.

“내일 재판에서 내 변호인은 너 하나다.”

민혜령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다음 날 오전 10시, 사법연수원 대강당 모의법정.

방청석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연수생들은 물론이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법조계 관계자들과 몇몇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장내는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피고인 석에 앉은 강태혁은 여유롭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의 옆자리에는 굳은 표정의 민혜령이 변호인 명패 뒤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서류 봉투를 꽉 쥐고 있었다.

“긴장 풀지?”

태혁의 나직한 목소리에 민혜령이 침을 삼켰다.

“내가 긴장하는 게 아니야. 네 무모함에 기가 찰 뿐이지.”

“법은 감정으로 하는 게 아냐. 논리와 숫자로 하는 거지.”

검사 석에는 김종식의 사주를 받은 연수원 우등생, 임 검사 시보가 거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재판장 역할을 맡은 중견 판사 출신의 교수가 의사봉을 두드렸다.

*탕! 탕! 탕!*

“지금부터 강태혁 연수생의 품위유지 위반 및 동료 연수생 폭행 혐의에 대한 모의공판을 개정하겠습니다. 먼저 검사 측, 기소 요지를 진술하십시오.”

임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준비해 온 서류를 흔들며 낭랑한 목소리로 법정을 압도하려 했다.

“피고인 강태혁은 지난 주말, 동료 연수생 이모 군을 연수원 뒤편 공터에서 무차별 폭행하고 협박하여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습니다. 여기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서와 사건 당시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 3인의 서명이 담긴 검찰 조서가 그 증거입니다.”

대형 스크린에 조작된 검찰 조서와 피해자의 상해 진단서가 띄워졌다. 방청석에서 야유와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김종식은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변호인, 인부(認否)하십시오.”

재판장의 말에 민혜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정갈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법정에 울려 퍼졌다.

“공소 사실을 전부 부인합니다. 피해자의 진술 및 목격자들의 조서는 모두 기획된 조작이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임 검사가 코웃음을 쳤다.

“위법 수집이라니요? 해당 조서는 현직 사법경찰관의 참관하에 적법하게 작성된 조서입니다. 변호인은 터무니없는 음해로 재판을 지연시키지 마십시오.”

“과연 그럴까요?”

민혜령이 태혁과 눈빛을 교환했다. 태혁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갈 레저의 페이지가 태혁의 뇌리에서 빠르게 넘어갔다. 사건 당일 수사관과 김종식의 통화 내역, 그리고 조서가 작성된 실제 위치가 붉은 글씨로 드러났다.

민혜령이 서류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검사 측이 제출한 조서의 작성 일자는 10월 14일 오후 8시, 작성 장소는 서초경찰서 조사실로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법적 절차에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임 검사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그럼 기소 단계의 첫 번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민혜령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당시 조서를 작성한 사법경찰관 오 모 경위는 10월 14일 오후 6시부터 당직 근무가 아닌, 서초동 소재의 ‘진안정밀’ 법인 사무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기지국 위치 추적 결과와 해당 건물 주차장 CCTV 기록입니다.”

화면에 오 경위의 차량이 진안정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김종식의 안색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증명입니다.”

민혜령이 쉬지 않고 몰아쳤다.

“오 경위는 진안정밀 대표의 개인 사무실에서 김종식 교수로부터 현금 500만 원을 수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피해자와 목격자들을 불러 모아 미리 작성해 온 진술서에 서명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여기 오 경위가 당일 저녁 8시 15분, 자신의 개인 계좌로 현금을 입금하는 ATM 기기 촬영 사진과 은행 거래 내역서가 있습니다.”

“이, 이건……!”

임 검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청석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세 번째, 보도 및 공표입니다.”

민혜령이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태혁의 메마른 계산주의가 그녀의 원칙주의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국가 공무원법 및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의거,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습니다. 이 조서는 사법경찰관이 사적인 뇌물을 수수하고, 수사 기관 외의 장소에서 피의자의 참여권과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작성한 ‘위법수집증거’입니다. 즉, 독수독과(毒樹毒果) 원칙에 따라 이 조서는 원천 무효입니다!”

민혜령의 속사포 같은 변론에 임 검사는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재판정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방청석의 연수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진짜 조작된 거였어?” “김종식 교수가 경찰을 매수했다고?”

김종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건 모함이다! 저 증거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위법한 폭로에 불과해!”

그때, 피고인 석에 앉아 있던 강태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단상을 짚고 김종식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법정 구석구석까지 명확하게 꽂혔다.

“김종식 교수님. 대법원 판례를 하나 읊어드릴 테니 잘 들으십시오.”

태혁의 입에서 판례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br> <center><b>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b><br>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선언한 적법절차의 원칙은 수사 기관의 위법한 수사를 억제하고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이다. 따라서 위법한 절차에 의해 획득한 증거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삼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한다."</center> <br>

태혁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수사관과 법인 대표의 유착, 그리고 교수의 직접적인 교사 행위가 담긴 녹취록과 자금 흐름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본 공소 사실은 법리적으로 단 1초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십시오.”

대강당을 가득 채운 백여 명의 연수생들이 일제히 태혁과 민혜령을 바라보았다.

재판장을 맡은 교수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의사봉을 쥐었다. 이미 판세는 결정되어 있었다. 조작된 정황 증거들은 태혁이 제시한 명백한 물증과 법리 앞에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탕! 탕! 탕!*

“검사 측이 제출한 증거는 위법수집유죄 불허 원칙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인되므로, 본 피고인 강태혁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아울러, 사건을 조작한 혐의가 짙은 김종식 교수에 대해서는 연수원 감사실 및 검찰에 정식 수사 의뢰를 요청하는 바이다.”

“와아아아!”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김종식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동료 연수생들이 태혁을 향해 감탄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외감마저 서려 있었다.

민혜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정리했다. 그녀의 손끝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끝났네.”

“이제 시작이야.”

태혁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지나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찰나, 민혜령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 단순한 불신을 넘어, 이 괴물 같은 남자가 가진 압도적인 능력에 대한 본능적인 이끌림이었다.

그때, 태혁의 시야에 붉은 경고창이 어른거렸다.

[위기: 판결 나비효과 감지] [인과율 오차율: 15%로 격상] [경고: 미래 판례 데이터베이스의 노이즈가 증가합니다. 향후 조회 정확도가 하락합니다.]

태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오차율이 벌써 15%까지 치솟았다. 김종식이라는 피라미 하나를 치우는 대가치고는 꽤 컸다. 앞으로 도원회의 본체와 한도준을 상대하려면 리갈 레저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철저히 자신의 법리적 칼날을 더 예리하게 갈아야 했다.

재판정이 정리되고 사람들이 빠져나갈 즈음, 태혁은 법정 뒷문으로 향했다.

그의 예리한 감각이 비상구 계단 쪽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를 포착했다. 태혁은 발소리를 죽이고 비상문 틈새로 시선을 던졌다.

어두컴컴한 비상구 계단 참.

김종식이 미친 사람처럼 손을 떨며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울음 섞인 비명에 가까웠다.

“예, 예! 상무님! 한도준 상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그 강태혁이라는 놈이…… 놈이 진안정밀 비자금 내역까지 전부 알고 있습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는 듯했다. 김종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이윽고,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문틈을 통해 태혁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 “김 교수. 쓸모없는 사냥개는 보신탕용으로도 쓰지 않는 법입니다.”

“사, 상무님! 제발……!”

- “강태혁을 직접 만나야겠군요. 서울 시내에서 가장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마련하세요. 쓸모를 다한 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친구에게 직접 보여줄 테니.”

뚝.

전화가 끊겼다. 김종식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았고, 문 뒤에 서 있던 태혁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한도준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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