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본관 3층, 깊숙한 복도 끝에 위치한 교수 연구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두꺼운 체리목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른 것은 텁텁한 시가 담배 연기와 오래된 가죽 냄새였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백여 권의 법률 서적들과 대법원 판례집들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서 있었다. 그 성벽의 중심, 마호가니 책상 뒤에 앉은 김종식 교수가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시가 끝의 불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문 닫고 앉게.”
김종식의 목소리는 낮고 깔깔했다. 대강당에서의 당혹감을 지워내려는 듯, 일부러 권위를 덧씌운 어투였다.
태혁은 문을 닫았지만, 권유받은 가죽 소파에 앉지 않았다. 그저 책상 서너 걸음 앞에 꼿꼿이 선 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김종식을 내려다보았다. 사형대 위에서 목이 졸려 죽어가던 순간에 비하면, 이 정도 공간이 주는 압박감은 미풍에 불과했다.
“앉으라고 했을 텐데.”
“서서 듣는 게 편합니다. 하실 말씀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태혁의 건조한 대꾸에 김종식의 눈썹이 꿈틀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김종식이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 위에 서류 한 장을 툭 던졌다. 사법연수생 사적 친목 모임인 ‘사총(사법 총우회)’의 가입 신청서였다.
“연수원 안에서 똑똑한 척 날뛰는 놈들은 매년 나온다네. 하지만 그중 법복을 입고 서초동에 입성하는 놈은 극소수지. 실력? 그런 건 기본이고, 진짜 중요한 건 ‘줄’이야. 사총에 이름을 올려라. 그게 자네가 도원회라는 거대한 흐름에 합류할 수 있는 유일한 통행증이니까.”
도원회. 회귀 전 태혁을 사냥개처럼 부려 먹고 끝내 사형수로 만들어 버린 사법 카르텔의 심장부. 김종식은 지금 그 더러운 시궁창의 입구로 들어오라며 유혹하고 있었다. 길들여지지 않는 사냥개는 미리 싹을 자르겠다는 무언의 협박이기도 했다.
태혁은 가입 신청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총이라. 도원회의 말단 끄나풀들이 모여서 선배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노예 계약서 아닙니까? 제가 왜 그런 시궁창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강태혁!”
김종식이 들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거칠게 비벼 껐다. 불씨가 뭉개지며 매캐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네가 대강당에서 몇 자 읊조린 법리로 날 이겼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말게. 내 말 한마디면 자네는 임용은커녕 변호사 등록조차 불가능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 사법연수원 교수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랴?”
태혁은 대꾸 대신 눈을 가늘게 뜨며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장부 개방.’
그 순간, 태혁의 망막 위로 푸른빛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겹쳐 흘렀다. 주변의 사물들이 정지한 듯 느려지고, 오직 김종식의 신체 정보와 그가 소유한 자산, 부채의 흐름이 장부의 형태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 리갈 레저(Legal Ledger) 활성화 ] [ 인과율 오차: 0.0% ] [ 대상: 김종식 (사법연수원 형사법 교수) ] [ 숨겨진 자산: 진안정밀 우회 지분 및 비자금 세탁 계좌 ] [ 증거 위치: 개인 책상 세 번째 서랍, 이중 바닥 하단 비밀 메모 ]
장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화면에 뜬 붉은색 글씨들이 김종식의 목줄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태혁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징계위원회라도 열어 퇴학이라도 시키시겠다는 겁니까? 허위 공문서 작성에 가담하신 분치고는 목소리가 제법 크십니다, 교수님.”
“뭐라 지껄이는 거냐?”
김종식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태혁은 천천히 책상 앞으로 다가와 두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상체를 숙여 김종식의 코앞까지 다가간 태혁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수출입 대금을 가장해 한성그룹의 비자금을 세탁해 주던 유령회사. ‘진안정밀’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방 안의 공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김종식이 들이쉬려던 호흡을 멈췄다.
“매월 25일, 삼천칠백사십만 원. 특정 형사 사건의 공소장을 변경해 주고 무죄 판결을 유도하는 대가로 도원회 계좌에 꽂히는 수수료죠. 김 교수님 몫은 그중 15%인 오백육십 한 잔. 맞습니까?”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김종식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책상 위의 서류를 구겼다. 태혁은 그 모습을 보며 가차 없이 법률 조항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읊조렸다.
<p style="text-align: center; font-weight: bold; margin: 20px 0;">[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뇌물죄의 가중처벌) ]</p> <p style="text-align: center; margin: 10px 0;">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 font-weight: bold; margin: 20px 0;">[ 형법 제227조 (허위공문서작성등) ]</p> <p style="text-align: center; margin: 10px 0;">공무원이 행사할 목적으로 그 직무에 관하여 문서나 도화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변개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p>
“단순한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아닙니다. 특가법상 뇌물수수, 그리고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죄. 공소시효는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더군요. 지금 당장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에 이 내용을 찌르면, 내일 아침 뉴스 헤드라인이 어떻게 장식될 것 같습니까?”
“이, 이 미친놈이…… 증거도 없는 유언비어로 감히 날 협박해?”
김종식이 책상을 짚고 일어서려 했지만, 무릎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태혁은 시선을 김종식의 책상 오른쪽 세 번째 서랍으로 던졌다.
“증거가 왜 없습니까? 교수님 책상 세 번째 서랍, 그 이중 바닥 밑에 고이 모셔둔 수첩. 거기에 진안정밀 송금 내역과 도원회 핵심 인사들의 차명 계좌 번호가 아주 상세히 적혀 있을 텐데요.”
김종식의 동공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 비밀은 도원회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공유하는 절대적인 대외비였다. 심지어 서랍 비밀 칸의 설계는 김종식이 직접 업자를 불러 시공한 것이었다. 연수생 나부랭이가 그 위치를 정확히 지목하자, 김종식은 마치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뒤로 자빠질 뻔했다.
“너…… 너 정체가 뭐야? 누가 보냈지? 한성에서 보낸 사냥개냐? 아니면 대검에서 날 캐러 온 첩자냐?”
“그건 알 필요 없고.”
태혁은 서랍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김종식의 손등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손아귀 힘에 김종식이 신음을 내뱉었다.
“선택하십시오. 날 징계위에 회부해 같이 죽을지, 아니면 얌전히 입 닫고 내 밑에서 기어 다닐지.”
“내가…… 내가 왜 네놈 따위 밑에서……!”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본데.”
태혁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그것은 법정에서 피고인의 숨통을 끊어놓던 해결사 변호사의 목소리였다.
“이제부터 이 연수원에서 칼자루를 쥔 건 접니다. 교수님은 그저 제가 휘두르는 칼날에 다치지 않게 몸이나 사리고 계시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김종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뺨을 타고 턱밑으로 떨어졌다.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호흡이 거칠게 방 안을 채웠다. 태혁은 손을 떼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 김종식의 오만한 자존심은 이미 가루가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태혁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아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갔다.
* * *
복도는 조용했다.
하지만 태혁이 몇 걸음 걷지도 않아, 모퉁이 창가 옆 섀시 그늘 아래 서 있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민혜령이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빛으로 태혁의 걸음을 가로막았다.
“강태혁.”
태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녀를 지나치려 했다. 민혜령이 빠르게 다가서며 태혁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까 대강당에서 했던 말, 무슨 뜻이야? 도원회가 대체 뭔데?”
태혁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건조하게 응시했다. 과거의 처참한 배신은 태혁에게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앗아갔다. 수석 졸업 후보생이자 정의감에 불타는 민혜령조차, 태혁의 눈에는 그저 이용 가치가 있는 장기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민혜령 연수생. 동기끼리 사적인 질문은 사양하고 싶은데.”
“장난하지 마! 우리 아버지가…… 민진식 검사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수첩에 그 세 글자가 적혀 있었어. 도원회. 그리고 아버지는 이틀 뒤에 자살로 위장돼 시신으로 발견됐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너도 그 자들과 한패야?”
민혜령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평소의 냉철함을 잃어버린, 날 것 그대로의 분노와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태혁은 그녀의 젖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동정심 따위는 일절 불타지 않았다. 오직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야 자신에게 가장 이로울지 계산기만 두드릴 뿐이었다.
“자살로 위장된 타살.”
태혁의 짤막한 단어에 민혜령의 어깨가 굳었다.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누구였는지 기억하나? 도원회 소속의 백무현 검사였지. 자네 아버지가 조사하던 한성그룹 비자금 파일이 백무현의 손을 거쳐 캐비닛 속으로 사라졌고, 사건은 우울증으로 인한 단순 자살로 종결됐어. 법의 이름을 빌린 완벽한 타살이었지.”
“어떻게…… 그걸 네가 어떻게 다 아는 거야?”
민혜령이 태혁의 깃을 움켜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태혁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쳐내며 서늘하게 대꾸했다.
“알고 싶으면 내 밑으로 들어와.”
“뭐?”
“정의감이나 법의 심판 같은 한가한 소리는 집어치워. 사법부의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싶다면, 그들보다 더 지독한 악마가 되어야 하니까. 날 돕는다면 자네 아버지를 죽인 자들의 목줄을 쥐어주지. 하지만 경고하는데, 내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할 거야.”
민혜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의 강태혁이라는 남자는 동기들 사이에서 보던 평범한 연수생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수많은 법정의 피비린내를 맡아본 사냥꾼의 그것이었다. 불신과 복수심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믿지 마. 계약만 믿으면 돼. 서로 이익이 맞닿아 있는 동안에만 유효한 철저한 비즈니스 계약.”
태혁은 민혜령을 지나쳐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그의 뒤로 민혜령의 거친 숨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때였다.
태혁이 떠난 김종식의 연구실 안에서 쾅 하는 거친 소음이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이성을 잃은 김종식이 책상 위의 집기들을 쓸어버리는 소리였다.
“강태혁……! 감히 네놈이 날 협박해? 내 인생을 망치겠다고?”
김종식은 핏발 선 눈으로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가 꺼낸 것은 태혁이 말한 비자금 수첩이 아니었다. 사법연수원 징계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 미리 작성해 둔 ‘강태혁 연수생 품위유지 위반 및 강제 퇴학 건의서’와 조작된 동료 연수생들의 허위 진술서였다. 도원회의 힘을 빌려 태혁의 목을 먼저 치기 위한 조작 증거들이었다.
“내가 먼저 네놈의 숨통을 끊어놓겠다! 징계위만 열리면 끝이야!”
김종식이 서류를 움켜쥐고 문을 향해 돌진하려던 바로 그 순간.
*쾅!*
연구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김종식의 비서나 조교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인물들은 단정한 정장 차림에 엄숙한 표정을 지은 세 명의 남녀였다. 사법연수원 감찰부 소속의 징계위원들과 본관 감사관들이었다.
“김종식 교수님.”
가장 앞에 선 감사관이 차가운 목소리로 공무원 신분증을 제시했다.
“방금 전, 교수님께서 한성그룹 우회 지분을 통해 비자금을 세탁했다는 구체적인 제보와 녹취록이 감사실로 접수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직무를 정지하며, 긴급 감사 및 징계위원회 조사를 위해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어, 어째서…… 당신들이 어떻게 알고 지금……!”
김종식의 손에 들려 있던 조작 서류들이 바닥으로 힘없이 후드득 떨어졌다.
감사관들의 뒤편, 열린 문틈 사이로 멀어져 가는 강태혁의 뒷모습이 보였다. 태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유히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이미 그의 계산대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