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심문실 내부의 온도가 극도로 급강하하더니, 데온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폭주 기류가 실비아의 감각을 짓누르고 시스템 투명창에 '오버히트 임박' 경고가 적색으로 점멸했다.
쩍, 쩍쩍.
바닥의 대리석 타일 위로 하얀 서리가 순식간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숨결을 내뱉을 때마다 하얀 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실비아가 입고 있던 짙은 남빛의 실크 드레스가 폭풍 같은 풍압에 사정없이 펄럭였다. 은실로 정교하게 수놓인 밤하늘 무늬가 어둠 속에서 어지럽게 일렁였고, 소매 끝에 달린 부드러운 오간자 레이스는 찢겨 나갈 듯 나풀거렸다. 가슴께에 매달린 차가운 사파이어 브로치마저 얼어붙어 가며 파르르 떨렸다.
귓가가 먹먹해질 정도의 이명 속에서, 오직 투명한 시스템 창만이 망막 위에 선명하게 박혔다.
[위험! 외부 마력 간섭으로 인해 시스템 오버히트 게이지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오버히트 게이지: 99.9%!] [돌발 패널티 발생: 10초 이내에 ‘심장박동 완전 동기화(밀착 접촉)’에 실패할 경우, 시스템 강제 포맷 및 두 사람의 영혼이 동반 소멸합니다!] [남은 시간: 2초…… 1초……]
‘미친, 소멸이라고? 내 은퇴 자금 5,000골드는 구경도 못 해보고 이 미친 대공이랑 같이 증발하라고?’
실비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인간의 감정 따위는 신뢰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눈앞에 닥친 실존적 소멸의 위기 앞에서는 뇌 주름 하나하나가 팽팽하게 긴장했다. 가문의 파산을 유도하고 알짜배기 재산을 북부의 유령 회사로 빼돌려 평생 놀고먹겠다는 원대한 은퇴 계획이 시작도 전에 수포로 돌아갈 위기였다.
눈앞의 남자는 제국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북부의 괴물, 데온 폰 하이드리히였다. 가죽 장갑을 낀 그의 단단한 손이 실비아의 허리를 거칠게 가로막고 있었다. 그의 검은 벨벳 제복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와 매캐한 마력의 향취가 코끝을 찔렀다. 이성을 잃어가는 그의 붉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굶주린 맹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살려봐라, 내 구원자님.”
비아냥과 갈망이 기묘하게 뒤섞인 뜨거운 속삭임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시간이 없었다. 실비아는 망설임 없이 허공에 손가락을 휘둘렀다.
‘시스템 상점 오픈! 즉시 가용 자산으로 결제한다!’
[띠링! 보유 중인 ‘호감도 트레이딩’ 포인트 150P를 소모하여 고순도 [디버프 해제권]을 구매합니다.] [즉시 발동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즉시 발동!’
실비아는 제 허리를 옥죄는 그의 가죽 장갑 위로 제 손을 겹쳐 쥐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뻗어 그의 단단한 가슴팍, 검은 벨벳 제복의 심장 부근에 사정없이 밀착시켰다.
두 사람의 몸이 빈틈없이 맞닿았다. 실비아의 얇은 실크 드레스 너머로 데온의 뜨겁고 단단한 흉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쿵, 쿵, 쿵. 폭주하는 마력의 파동을 따라 미친 듯이 요동치는 그의 심장박동이 손바닥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순간, 데온의 단단한 몸이 일시 정지되듯 굳어졌다. 상처 입은 야수가 사냥꾼의 손길을 마주했을 때처럼, 그의 붉은 눈동자가 지독하게 흔들렸다.
“실비아, 겁도 없이 어딜 만지는 거지?”
“고객님의 심장 박동수가 너무 불안정해서요. 특별 AS 기간이라 무료로 점검해 드리는 겁니다.”
“AS라니, 입만 열면 해괴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해괴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서비스입니다. 그러니 얌전히 계시죠.”
실비아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하이드리히 가문의 고대 혈인(血人) 계약에 잠재된 마력의 맥을 짚어내야 했다. 머릿속으로 일전에 해금해 두었던 가문의 비전 정보가 주르륵 흘러갔다. 그의 날뛰는 검은 마력 아래 숨겨진, 지독하게 꼬여 있는 저주의 매듭이 느껴졌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은은한 백은빛의 정화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찌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실비아의 정화 마력이 데온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검고 탁한 독기가 그녀의 깨끗한 마력과 충돌하며 불꽃을 튀겼다.
“으윽……!”
데온의 입새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전신이 발작하듯 떨렸다. 폭주하던 마력이 정화의 빛에 반응하여 오히려 그의 내부를 난폭하게 할퀴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실비아는 그의 고통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집착 수치를 빨아들이기 위해 더 깊이 밀착했다. 솜털솜솜 돋아나는 소름마저 무시한 채, 그녀는 데온의 차가운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차갑다 못해 얼어붙을 것 같은 그의 얼굴을 강제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오직 수치와 계산으로만 가득 찬 제 맑은 눈동자를 그의 붉은 안광에 정면으로 들이밀었다.
“전하, 눈 피하지 마세요. 제 눈 똑바로 보십시오.”
“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군.”
“제정신이라서 이러는 겁니다. 제 전 재산과 목숨이 전하의 그 한심한 폭주에 저당 잡혀 있으니까요.”
그녀의 손가락이 데온의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부드럽게 닦아냈다. 지독한 통증 속에서도, 데온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실비아의 눈동자에 완전히 매료된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광기 어린 살기가 기묘한 열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창의 숫자가 요동쳤다.
[경고: 대상의 집착 수치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데온 폰 하이드리히의 집착도: 18%…… 25%…… 37%……]
실비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력 동조의 강도를 높였다.
“교환합시다, 전하. 북부 하이델그라드의 척박한 땅을 녹일 정화 자원과, 전하의 그 지긋지긋한 통증을요.”
그녀의 목소리는 비즈니스 제안을 하는 상인처럼 냉정했으나, 그녀의 손길은 황홀할 정도로 따뜻했다. 백은빛 마력이 그의 뺨과 목덜미를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려, 온몸의 뒤틀린 마력 회로를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지직뽀짝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던 검은 불꽃들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심문실을 가득 채웠던 살인적인 냉기와 마력 폭풍이 일시에 멈췄다.
멀찍이 떨어져 방어막을 전개하고 있던 사법관들과 황실 기사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제국 최고의 무력아이자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 불리던 하이드리히 대공이, 고작 라벨 가문의 철부지 영애의 손길 한 번에 완전히 진정된 것이다. 그것도 마법 진이나 구속구 없이, 오직 맨손의 접촉만으로.
침묵이 흐르는 심문실 안에서, 실비아의 시야에 화려한 시스템 알림이 폭죽처럼 터졌다.
[퀘스트 성공! 시스템 오버히트 상태가 완전히 해제되었습니다.] [돌발 패널티가 소멸합니다.] [대상의 집착도가 임계점에 도달한 반동으로, 호감도 트레이딩 자산이 대량 충전됩니다!] [획득한 특별 자산: 고순도 마법 결정 500개, 하이델그라드 영지 정화 기술(C레벨)] [데온 폰 하이드리히의 집착도: 50% 돌파! (현재 52%)]
‘대박.’
실비아의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쁨으로 세차게 뛰었다. 집착도 50% 돌파라니. 이 정도 자산 가치라면 북부로 도피한 이후의 영지 정화 사업은 물론이고, 가문 파산 후 횡령한 자금을 세탁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데온은 단순한 남주가 아니라, 걸어 다니는 초고수익 노다지 광산이었다.
실비아는 재빨리 손을 거두려 했다. 볼일이 끝났으니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니까.
하지만 그녀가 몸을 뒤로 빼기도 전에, 데온의 커다란 손이 실비아의 가느다란 손목을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놓으세요, 전하. 계산 끝났습니다.”
“계산? 넌 늘 그런 식으로 내 가치를 매기는군.”
데온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차분해졌지만, 그 안에 담긴 집착의 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져 있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실비아의 얼굴 구석구석을 탐욕스럽게 훑었다.
“황태자가 널 노리고 있지. 라벨 가문의 재산을 압류하고 너를 단두대로 보내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름의 출구 전략을 짜는 중이고요.”
“출구 전략?”
데온이 낮게 실소를 터뜨렸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기가 막힌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는 실비아의 손목을 잡아끌어 제 입술 근처로 가져갔다. 가죽 장갑을 벗어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실비아의 하얀 손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네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북부뿐이다, 실비아.”
“전하의 감시 하에 압송되는 형식이라면, 기꺼이 동행해 드리죠. 황태자의 가압류 영장 피해 과세(?)를 피하기엔 대공 전하의 그늘만큼 안전한 곳이 없으니까요.”
실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거래를 제안했다. 황태자 루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공의 북부 연행이라는 명분을 역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완벽한 도피이자, 합법적인 신변 보호였다.
데온은 그녀의 영악함이 마음에 든다는 듯, 입꼬리를 기괴하게 호선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손길이 실비아의 턱끝을 부드럽게 쥐고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숨결이 다시금 얽혀들었다. 진정된 줄 알았던 그의 붉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소름 끼치도록 거대한 독점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감히 내 저주에 낙인을 찍었으니.”
그가 실비아의 귀밑샘 근처에 입술을 바짝 밀착시키며, 젖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이제 제국 어디를 가도, 넌 내 집착 밑에서 살아야 할 거다.”
그의 입술이 스친 귓가에 찌릿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실비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비틀어 그와의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제 허리를 단단히 감싸 쥔 그의 팔줄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단단한 벨벳 제복의 금빛 자수가 그녀의 남빛 실크 드레스 자락에 얽혀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대공 전하의 집착이라니, 제 장부에 기록될 무형 자산치고는 지나치게 무겁군요.”
“무거우면 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품고 있어라, 실비아. 그게 네가 자처한 구원의 대가다.”
“제 뼈는 꽤 비싼 편이라 쉽게 부러뜨리시면 곤란합니다만.”
“그럼 부러지지 않게 내가 매일 밤 소중히 다뤄 주지.”
이 미친 대공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실비아의 뺨이 발그랗게 달아올랐으나, 그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냈다. 황황할 정도로 살벌한 텐션이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실처럼 이어졌다.
그때였다. 두 사람의 기묘한 밀착을 지켜보던 사법관이 헛기침을 크게 해대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콜록! 저, 대공 전하…… 라벨 영애는 황태자 전하의 가압류 명령에 따른 주요 피의자입니다. 아무리 전하의 신변 하에 둔다 하더라도, 황실의 절차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데려가시는 것은 반역죄에—”
“반역?”
데온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눈빛은 방금 전 실비아를 바라보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서릿발 같은 살기만이 흉흉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황실의 사법관이 하이드리히의 이름을 걸고 집행하는 정당한 연행을 방해하겠다는 건가? 내 영토를 불법 침범한 라벨 가문의 죄인을 내 방식대로 다스리겠다는데, 그 알량한 가압류 영장 따위가 내 앞을 막아설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그건 아니옵니다만……!”
사법관의 무릎이 사정없이 딱딱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데온의 차가운 위압감에 심문실 내의 공기가 다시금 얼어붙었다.
실비아는 이 틈을 타 데온의 손아귀에서 슬그머니 제 손을 빼냈다. 그의 손가락이 멀어지는 순간, 그녀의 망막 위로 기괴한 시스템 알림이 지직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알림: 대상의 피부 접촉 부위에서 특이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지직. 지지직.
[하이드리히 가문의 고대 혈인(血人) 계약의 약점 트리거와 공명하는 중……]
[해금 조건 미충족: 현재 단계에서는 상세 정보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열람률 15%)]
‘혈인 계약?’
실비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데온의 얇은 셔츠 소매 아래로, 아주 미세하게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가느다란 핏줄 같은 문양이 스치듯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것은 하이드리히 대공가가 대대로 짊어진 잔혹한 저주의 표식이자, 원작에서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파멸의 열쇠였다.
‘이것 봐라? 나중에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약점 하나를 제대로 낚아챈 것 같네.’
실비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눈앞의 괴물이 가진 저주마저 철저히 자신의 안전을 위한 ‘담보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영악한 계산관의 눈빛이었다.
“전하, 사법관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가압류 절차는 밟게 두시지요.”
실비아가 나직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개입했다.
“라벨 공작가의 부실 자산들은 황실이 가져가든 말든 제 알 바 아닙니다. 다만—”
그녀는 일부러 데온의 귓가에 다가가 소곤거렸다.
“제 개인 자산인 5,000골드만큼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어야 합니다. 북부의 유령 회사로 무사히 세탁될 때까지, 전하께서 제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셔야겠어요.”
“하, 정말 지독할 정도로 속물적인 여자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돈이 없는 은퇴 생활은 지옥이니까요.”
데온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뻔뻔한 요구가 싫지 않은 듯 제복 소매를 털어내며 낮게 웃었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대공의 비호 아래 가문을 파산시키고, 자신은 안전하게 은퇴 자금을 챙겨 북부로 먹튀한다. 이보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존재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심문실의 두꺼운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열렸다. 숨을 헐떡이는 전령 기사가 허둥지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보, 보고드립니다! 황태자 루벤 전하의 직속 기사단이 지금 라벨 공작가 저택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실비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기사단이 저택으로? 가압류 집행은 내일 아침이 아니었나?”
“그것이…… 황태자 전하께서 돌연 특별 칙령을 내리시어, 가압류 집행 시간을 오늘 자정으로 앞당기셨습니다! 지금 당장 공작가의 모든 자산을 황실 창고로 압류 동결하라는 명령입니다!”
“뭐라고?”
실비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현재 시간은 밤 11시 40분. 가문을 고의 파산시키고 유령 회사로 세탁하려던 은퇴 자금 5,000골드의 이체 완료 시간까지는 정확히 20분이 남아 있었다.
황실 기사단이 20분 내로 공작가의 금고를 봉인해 버린다면, 그녀의 피 같은 5,000골드는 그대로 황태자 루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묶이게 된다.
[돌발 위기 발생!] [메인 퀘스트: ‘은퇴 자금 횡령 프로젝트’가 실패 위기에 처했습니다!] [제한 시간 내에 가문 자산 이체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당신은 한 푼도 없는 알거지 죄수 신세로 북부에 압송됩니다!]
실비아의 눈빛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황태자 루벤, 그 위선적인 사이코패스가 결국 판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실비아.”
데온이 그녀의 급변한 기색을 알아채고 붉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네 소중한 은퇴 자금이 공중분해 될 위기인 모양이군.”
“……전하.”
실비아가 데온의 제복 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팽팽하게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당장 공작가로 가야겠습니다. 제 돈을 건드리는 놈들은, 황태자 아니라 황제라도 가만 안 둡니다.”
하지만 심문실 밖에서 수십 명의 황실 호위기사들이 철그럭거리는 갑옷 소리를 내며 복도를 완전히 포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태자의 기습적인 포위망이 그들의 발을 묶기 시작한 것이다. 잔혹한 덫이 실비아의 목덜미를 향해 서서히 조여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