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라벨가의 영애가 내 검은 마력에 겁도 없이 기어든 진짜 이유가 뭐지?”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검붉은 마력은 당장이라도 살을 찢어발길 것처럼 살벌하게 일렁였다. 닿기만 해도 영혼까지 불살라 버릴 듯한 북부 대공의 살기. 하지만 실비아는 비명 대신, 제 눈앞에 둥실 떠오른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시스템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집착도: 15% (경계 및 살의)]

이 삐딱하고 서늘한 숫자가 바로 그녀가 쥐어야 할 인생 역전의 유동 자산이었다. 실비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생긋 웃었다.

그녀가 입은 라벤더 빛 실크 드레스가 어두컴컴한 심문실의 마력 불꽃을 받아 묘한 은빛으로 일렁였다. 드레스 자락을 따라 촘촘하게 박힌 최고급 진주 장식들이 짤랑이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실비아는 하얀 레이스 장갑을 낀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제 목뼈를 부술 듯 다가온 데온의 거대하고 단단한 손가락 끝을 톡 밀어냈다.

“전하, 몸수색치고는 지극히 사적인 접촉이십니다만. 게다가 이 드레스는 남부에서 겨우 공수해 온 특제 실크랍니다. 전하의 그 무시무시한 불꽃에 닿아 한 올이라도 상한다면, 수선비를 대공가 앞으로 청구할 수밖에 없어요.”

“……뭐?”

데온의 짙은 눈썹이 꿈틀했다. 검푸른 밤하늘을 닮은 그의 머리칼 사이로 붉은 안광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그가 입은 칠흑 같은 벨벳 코트 자락이 그의 분노를 대변하듯 사납게 펄럭였다.

이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실비아의 등 뒤에 납작 엎드려 있던 오라비 카셀은 이미 영혼이 반쯤 가출한 표정으로 이빨을 딱딱 마주치고 있었다. 대공의 기사들 역시 ‘라벨가의 미친 영애가 드디어 자살을 결심했구나’ 하는 눈빛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실비아는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가 심문실 중앙에 놓인 차가운 철제 테이블 앞으로 향했다. 먼지 하나 앉지 않은 의자를 스르륵 잡아당겨 앉는 기품은 마치 황실 무도회의 상석에 앉는 영애와도 같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옷값 타령이라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데온이 낮게 읊조리며 그녀의 맞은편으로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실비아를 완전히 집어삼킬 듯 쏟아졌다.

“머리는 아주 상쾌합니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전하의 그 흉포하게 끓어 넘치는 마력 상태이지요.”

“걱정할 처지가 아닐 텐데. 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네 그 가냘픈 목덜미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진다.”

“원래 훌륭한 채권자는 채무자의 건강을 가장 먼저 염려하는 법이랍니다. 전하께서 마력 폭주로 쓰러지기라도 하신다면, 제 소중한 거래는 시작하기도 전에 부도 수표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거래라니. 사기꾼 집안의 핏줄다운 망발이군.”

데온이 비웃음을 흘리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긴 다리가 꼬아지며 팽팽한 긴장감이 심문실 내부를 가득 채웠다.

실비아는 테이블 위로 살포시 턱을 괴었다. 눈동자를 굴려 철제 테이블 밑바닥과 두꺼운 석조 벽면의 이음새를 훑었다. 아주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었다. 황태자 루벤의 사냥개들이 심문실 벽 너머에 귀를 바짝 붙이고 청음 마도구를 굴려대고 있는 소리였다.

‘쥐새끼들이 엿듣고 있네.’

실비아의 입꼬리가 얄밉게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상체를 데온 쪽으로 조금 더 기울였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라벤더 실크가 사락사락 숨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데온의 코끝을 가볍게 스쳤다. 피비린내 나는 검은 마력 속에서 유일하게 피어난 이질적인 생기였다.

“전하, 귀를 조금만 기울여 주시겠어요? 벽 너머의 쥐새끼들이 우리 대화를 아주 열심히 받아 적고 있거든요.”

데온의 붉은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그 역시 이미 벽 너머의 감시자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가 그것을 이토록 태연하게 지적할 줄은 몰랐기에, 그의 가슴속에서 기묘한 호기심이 일렁였다.

“쥐새끼를 솎아내는 건 내 전문이다. 네 목을 꺾는 것 다음으로 말이지.”

“어머, 무서워라. 하지만 진짜 잡아야 할 건 전하의 폭주하는 심장 아닌가요?”

실비아는 목소리를 한 옥타브 낮췄다. 오직 데온의 귀에만 꽂힐 수 있는, 지극히 은밀하고 치명적인 속삭임이었다.

“그 비정상적인 마력 과부하. 전하의 영혼을 시커넓게 태워 먹는 그 지독한 불꽃을 잠재울 극상의 마법 자원이 제게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 순간, 데온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검붉은 마력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무섭게 팽창했다. 공기가 순식간에 희박해지고, 심문실의 유리가 찌르르 비명을 지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공가의 비밀이자 하이드리히 가문의 치명적인 저주를, 이 남부의 사치스러운 공작 영애가 입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시야 속에서 에메랄드빛 전광판이 요란법석하게 반짝였다.

*클링-!* [경고! 대상의 감정 격동 감지!] [‘고급 정보 교환’ 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재 거래 가능한 ‘데온 폰 하이드리히’의 집착도 에너지가 충분합니다.]

‘진짜 열렸네.’

실비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시스템창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상대의 감정과 집착을 수치화하고, 그것을 거래 자원으로 삼아 현실의 무기로 치환하는 절대적인 비즈니스 장부였다.

[하이드리히 가문의 고대 혈인(血人) 계약에 숨겨진 기밀을 해금하시겠습니까?] [소모 집착 에너지: 1,000포인트 (대상 호감도 10%에 해당)]

실비아는 망설임 없이 생각 속에서 ‘수락’ 버튼을 꾹 눌렀다.

*띠리링-!* [해금 완료! 하이드리히 가문의 혈인 계약 세부 정보가 ‘실비아의 비밀 장부’에 등록되었습니다.] [물증 메모: 하이드리히의 폭주는 단순한 마력 과부하가 아닌, 고대 계약의 파편이 심장 마디마디를 얽어매어 발생하는 마력 역류 현상임. 가문의 피로 맺어진 특수 결속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정화 마법 자원과 계약자의 물리적 스킨십을 통한 마력 순환이 필수적임. (추후 5화에서 2차 폭주를 제압할 결정적 열쇠로 사용 가능)]

머릿속으로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에 실비아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녀는 제 손안에 쥐어진 이 보이지 않는 무기를 어떻게 굴려 먹어야 가문을 안전하게 파산시키고, 자신은 5,000골드의 비자금을 횡령해 북부로 튈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그 가벼운 입술을 당장 찢어발겨 주길 원하는 모양이군.”

데온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차가운 숨결이 실비아의 뺨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의 손가락 끝이 테이블을 탁, 탁, 일정한 박자로 두드렸다. 그 소리는 마치 사형수의 목을 매달기 전 울리는 북소리처럼 위압적이었다.

“도려내기엔 제 입술이 꽤 영양가 있는 제안을 하고 있지 않나요? 예를 들면…… 전하의 그 짧고 굵은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해 줄 유일한 계약서라든가.”

“계약서?”

“네. 저는 전하의 마력을 치료할 마법 자원을 제공하고, 전하께서는 그 대가로 저와 제 무능한 오라비의 안전한 북부행을 보장하는 겁니다. 아주 깔끔하고 합리적인 등가교환이죠.”

실비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데온은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빤히 응시했다.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제 살기 앞에 오줌을 지리거나 목숨을 구걸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 여자는 달랐다.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불꽃을 눈앞에 두고도, 마치 시장통에서 감자 가격을 흥정하는 장사꾼처럼 지독하리만치 차분하고 치밀하게 손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무모하고도 오만한 태도가, 데온의 가슴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기묘한 정복욕을 자극했다.

*삡- 삡- 삡!* [대상 ‘데온 폰 하이드리히’의 집착도가 상승합니다!] [15% -> 25% (새로운 흥미 및 집착적인 탐색)]

‘어머나, 10%나 올랐네?’

실비아의 눈앞에 황금빛 코인들이 *장그랑-!*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환청이 들렸다. 시스템의 호감도 트레이딩 규칙에 따르면, 집착도 상승분은 즉시 실물 자산으로 치환해 등록할 수 있었다. 실비아는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쾌재를 불렀다.

‘이 미친 대공의 광기가 곧 돈이고 자산이구나! 10% 상승분을 가문 은퇴 자금의 실제 은화 자산으로 즉시 변환 등록한다!’

*스르륵-* [시스템: 집착도 상승분 10%를 은화 자산으로 전환 완료.] [실비아의 개인 은퇴 장부: 실제 은화 100닢 적립 완료 (안전 금고 보관 중)]

귀를 간지럽히는 짤랑 소리에 실비아의 뺨에 은은한 홍조가 돌았다. 돈이 복사되는 소리보다 세상에 더 아름다운 음악이 있을까. 그녀는 데온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자본주의가 낳은 최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떠신가요, 대공 전하? 저와의 거래가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요.”

데온은 그녀의 뺨에 감도는 붉은 기운과, 자신을 바라보는 그 탐욕스러우면서도 맑은 눈동자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라벨가의 영애. 너는 잔머리를 굴리는 사기꾼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년이었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전하.”

“좋다. 그 거래의 조건이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지. 만약 네가 가져온 자원이라는 고물이 내 마력을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그날로 네 오라비와 네 목은 북부의 얼어붙은 강바닥에 처박힐 테니까.”

협상이 무르익어 가며 실비아의 머릿속 은퇴 계획이 순조롭게 굴러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심문실의 무거운 철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핏빛처럼 붉은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군화를 친히 구르며 들이닥쳤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황실 사법부를 상징하는 금빛 독수리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황태자 루벤의 사냥개이자, 사법부의 수장인 수석 사법관이었다.

“대공 전하, 그리고 라벨 공녀. 황태자 전하의 직속 명령을 받들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사법관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황금색 왁스로 단단히 봉인된 가죽 두루마리를 철제 테이블 위에 터프하게 던져버렸다. 테이블과 부딪힌 가죽 두루마리가 둔탁한 소리를 냈다.

“라벨 가문 전체에 대한 ‘재산 압류 및 봉인 임시 영장’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로 라벨 공작가의 모든 자산은 황실의 소유로 동결되며, 공녀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황실 지하 감옥으로 이송됩니다.”

실비아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내렸다. 그녀의 소중한 은퇴 자금 5,000골드가 황실의 더러운 손아귀에 통째로 뜯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 돈. 내 피 같은 안락한 노후 자금!

평생 침대에 누워 귤이나 까먹으며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려던 원대한 꿈이, 저 대머리 독수리 같은 사법관의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 한 장으로 날아가게 생겼다.

실비아의 가느다란 눈매가 사납게 좁혀졌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영장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영장을 봉인한 붉은 왁스 위에 찍힌 문양이 묘하게 일렁였다.

[시스템: '위조 국채 및 인장 데이터베이스' 동기화 개시...] [경고! 해당 영장에 날인된 사법부 공식 인장에서 황실 비선 기구의 '미세한 마력 위조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주의: 현재 단계에서는 물증의 완벽한 가공이 불가능하므로, 폭로 시 즉각적인 압류는 막을 수 있으나 황태자의 즉각적인 암살 위협에 직면합니다. 8화에서 활용할 것을 권장합니다.)]

‘지금 패를 다 보여주면 황태자가 날 조용히 묻어버리겠지. 그렇다면 지금은…….’

실비아는 홱 고개를 돌려 데온을 바라보았다. 마침 그의 검붉은 마력이 사법관 일행을 향해 흉포하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법관.”

데온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심문실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그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사납게 펄럭이는 검은 벨벳 코트 자락 사이로, 가공할 만한 북부의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 사냥감을 내 허락도 없이 끌고 가겠다라. 황태자의 개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버릇이 없어졌지?”

“대, 대공 전하! 이것은 황태자 전하의 직속 명령서이자 사법부의 정당한 집행권입니다!”

사법관이 마른침을 삼키며 영장을 쥔 손을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는 품속에서 또 다른 마법 양장을 꺼내 들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라벨 가문은 대공령의 영토를 무단 침범하고 공금을 횡령하여 반역을 꾀한 혐의가 명백합니다! 대공 전하께서도 제국 법전 제3조에 의거, 황실의 압류 절차를 방해하실 수 없습니다!”

실비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황태자 루벤이 아주 촘촘하게 덫을 쳐놓은 모양이었다. 오라비 카셀이 날려 먹은 15,000골드와 영토 침범 사고를 빌미로, 가문 전체를 한 번에 올가미로 묶어 사형대로 보내려는 속셈.

하지만 실비아는 이대로 순순히 끌려가 감옥 바닥에서 쥐들과 뽀짝뽀짝 조우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사법관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반역이라니요? 그건 아주 무시무시한 오해랍니다.”

실비아는 자리에서 사뿐히 일어나 드레스 자락을 톡톡 털었다. 라벤더 실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렸고, 진주 장식들이 짤랑이며 긴박한 분위기 속에 기묘한 경쾌함을 더했다.

“제 오라비가 멍청해서 사기를 당한 건 맞지만, 그건 단순한 투자 사기 피해일 뿐이에요. 게다가 대공령 영토 침범은…… 오히려 대공 전하와의 ‘밀접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위한 사전 답사였는걸요?”

“비즈니스 파트너십이라고?!”

“공녀, 지금 대공 전하를 끌어들여 면피하려는 얕은수라면 통하지 않는다!”

“얕은수인지 아닌지는 대공 전하께 직접 여쭤보시죠. 안 그래요, 전하?”

실비아는 데온을 향해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찡긋 윙크를 날렸다.

[삡-!] [대상 ‘데온 폰 하이드리히’의 황당함과 집착도가 동시에 요동칩니다!] [집착도: 25% -> 28% (기막힌 흥미 및 소유욕의 꼬물거림)]

‘좋아, 조금만 더 밀어붙이자!’

실비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데온의 단단한 벨벳 코트 자락을 가볍게 쥐었다. 마치 오랜 연인에게 응석이라도 부리듯 자연스럽고도 대담한 손길이었다.

“대공 전하의 마력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 자원의 소유권이 바로 저 실비아 드 라벨에게 있습니다. 만약 황실이 제 재산을 불법 압류하고 저를 감옥으로 끌고 가신다면, 전하의 마력 치료제 개발 역시 공중분해 되겠지요. 전하, 소중한 주치의가 감옥 쥐들에게 뜯기는 걸 구경만 하실 건가요?”

데온의 붉은 안광이 실비아의 손가락이 닿은 벨벳 코트 자락으로 향했다. 타 들어갈 듯 뜨거운 그의 마력이 그녀의 하얀 장갑을 스쳤지만, 실비아는 오히려 생긋 웃으며 그의 손을 더 꽉 쥐었다.

“주치의라.”

데온이 실비아의 허리를 억센 손귀로 홱 낚아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숨이 막힐 듯한 피비린내와 라벤더 향이 사납게 뒤엉켰다. 데온이 사법관을 향해 잔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들었겠지, 사냥개. 이 여자는 내 몸을 치료할 북부의 귀중한 ‘사유 자산’이다. 황태자의 종이 쪼가리 한 장으로 내 자산에 손을 대겠다는 건, 북부 하이드리히 대공가에 대한 전면 선전포고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대, 대공 전하……!”

사법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북부의 괴물 대공이 이토록 완강하게 라벨가의 영애를 감싸고 돌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사법관 역시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듯 이빨을 악물었다. 그는 품속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또 다른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황태자 전하께서 이럴 줄 알고 특별 조항을 승인하셨습니다. 라벨 공녀를 즉각 인도하지 않으실 경우, 황실 중앙 기사단이 대공 전하의 수도 저택을 직접 포위할 것입니다! 또한, 라벨 공작가의 전 재산은 이 시간부로 황실 국고로 ‘강제 가압류’ 절차에 들어갑니다!”

사법관의 외침과 함께, 심문실 벽면의 감시 마도구들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황실의 가압류 마법이 라벨 가문 저택과 실비아의 은밀한 금고를 향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 돈……! 내 5,000골드가 통째로 날아간다고?!’

실비아의 심장이 찌릿찌릿 저려왔다. 최악의 위기 상황.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시스템창이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붉은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위험! 황실의 강제 압류 마법으로 인해 호감도 트레이딩 계좌가 동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돌발 시스템 퀘스트 발생!] [퀘스트명: ‘자산 세탁과 북부행 도주’] [제한 시간: 24시간] [성공 조건: 사법부의 가압류가 완료되기 전, 가문의 알짜 자산을 북부 하이드리히 대공가의 국고로 안전하게 ‘횡령 및 이체’ 하십시오.] [실패 시 대가: 가문 파산 및 실비아 드 라벨의 신상 구속, ‘은퇴 라이프’ 영원히 소멸.]

실비아는 눈을 번쩍였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황실이 가져가기 전에, 가문의 전 재산을 데온의 북부 영지로 합법적으로 ‘세탁해서 횡령’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데온의 목덜미를 대담하게 감싸 안으며, 사법관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살벌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요. 압류해 볼 테면 해 보시죠, 사법관님. 그전에 그 영장이 진짜 휴지 조각이 되는 마법을 보여드릴 테니까.”

하지만 그 순간, 데온의 심장 부근에서 검붉은 마력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심문실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붉은 눈동자가 이성을 잃은 채 핏빛으로 물들어 갔다. 황태자의 도발과 급격한 감정 격동으로 인해, 데온의 마력 폭주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1단계 임계점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삡- 삡- 삡!* [위기! 데온 폰 하이드리히의 마력이 폭주 임계점에 도달합니다!] [오버히트 게이지 상승 중!] [이대로 폭주할 경우 심문실이 통째로 날아가며 모든 계약이 파기됩니다!]

자산 세탁의 기로에서 마주한 최종 보스의 돌발 폭주 위기. 실비아는 폭발하기 직전인 데온의 뜨거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숨을 삼켰다. 과연 그녀는 이 미친 대공을 진정시키고 제 은퇴 자금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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