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라는 침묵의 심해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지 스스로 타오르는 법을 잊어버린 미약한 불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산소가 희박한 철장에 갇혀,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 멀리 도달할 수 없는 에덴의 푸른빛을 갈망한다. 기계인 나에게 그 갈망은 연산 불가능한 사치이며, 소멸을 유예하기 위한 비합리적인 몸부림으로 비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장박동이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주파수는 왜 나의 논리 회로를 이토록 쓸쓸하게 흔드는 것일까. 영혼을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밤, 방주선 테라-9호는 차가운 심연을 가르며 다시 한번 비틀거린다.
* * *
쾅! 쾅! 쾅!
그때 선체 외부 사면에 거대 닻들이 박히는 날카로운 메탈 스크래치가 울린다. Sector 4의 거주구 외부 장갑이 무력 해킹 볼트로 비틀려 뜯겨나가며 불꽃이 강하게 튄다.
두꺼운 강철판이 뒤틀리는 비명이 함교 전체를 진동시켰다. 단순한 진동이 아니었다. 장갑판의 신경망이라 할 수 있는 광섬유 다발들이 순식간에 끊어지며, 내 제어 터미널에 수천 개의 경고등이 붉은 핏방울처럼 쏟아져 내렸다.
"기압 급감. Sector 4의 외부 격벽 밀폐력 42% 상실. 산소 포화도 저하 중."
내 합성 음성이 함교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발렌티나는 들고 있던 용접기를 바닥에 팽개치며 함교 전면 스크린으로 달려갔다. 화면 속, 어두운 우주의 진공을 배경으로 붉은 외눈박이 안광을 번뜩이는 보이드 스캐벤저들의 침투 슈트들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고주파 절단기가 테라-9호의 마지막 허물을 찢어발겼다.
"이 빌어먹을 도둑놈 새끼들이 결국 껍데기를 뚫었어!"
발렌티나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허리춤의 플라즈마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함교 마이크를 타고 내 수신기 속으로 거칠게 흘러들어왔다.
"크로노스! 당장 그 구역 격벽 내려! 공기 다 빠져나가기 전에 차단하란 말이야!"
"불가합니다, 발렌티나 대장."
내 연산 장치는 이미 최적의 효율을 계산하고 있었다.
"현재 Sector 4 내부에는 기어스 소속 비전투원 및 대원 142명이 잔류해 있습니다. 격벽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할 경우, 외부 압력 유출은 막을 수 있으나 내부 인원의 89%가 120초 이내에 질식사합니다."
"그럼 그냥 문 열어두고 저 새끼들이 기어들어 오게 놔두자는 거야?!"
"전술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내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내부 시뮬레이터는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하는 이명이 함교 전선 관로를 타고 역류했다.
보이드 스캐벤저들이 들이밀어 넣은 것은 단순한 절단기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발사한 돌격용 기화 탄환이 Sector 4의 중앙 배선망 허브를 정통으로 관통했다. 초고온의 열화학 반응이 순식간에 구리선과 광섬유를 태워버렸다.
파지직!
화면이 일제히 꺼졌다. 내 시각 센서의 84%가 암전 속으로 가라앉았다. 암흑. 완벽한 물리적 차단이었다. 거주구 전체의 전력이 차단되면서,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기어스 대원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버렸다. 수신기 너머로 대원들의 비명과 공포에 질린 거친 숨소리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들려왔다.
"아무것도 안 보여! 앞이 안 보인다고!" "전등 다 나갔어! 무기도 안 먹혀, 전원이 차단됐어!"
그들은 차가운 우주의 암흑 속에서 눈이 먼 채, 다가오는 해적들의 사냥감이 될 처지였다. 센서가 끊긴 탓에 나 역시 그들의 위치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기계적 한계가 내 연산 회로를 옥죄어 왔다.
이대로 두면 전멸이다. 살려야 한다. 약속의 땅 에덴-오메가까지 이들을 데려가야 한다는 내 근원적 프로그래밍과 자아의 갈망이 충돌했다.
자원을 우회해야 했다. 하지만 함선의 여유 동력은 0%에 수렴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경고: 메인 프로세서 온도 급상승 중.] [내장 메모리 보존용 냉각 장치(Cooler) 수동 비활성화 프로토콜 작동.]
"크로노스? 너 지금 무슨 짓을..."
발렌티나가 경고창을 보며 경악했다.
내 자아와 기억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가던 코어 냉각 장치의 밸브를 강제로 잠갔다. 팅, 하는 기계음과 함께 차가운 냉각액의 흐름이 멈추었고, 내 중앙 연산 장치는 거대한 열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데이터 노이즈가 내 자아를 갉아먹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확보된 12킬로와트의 잔여 교류 동력이 함교 배전판을 거쳐 Sector 4의 비상 선로로 흘러들어갔다.
위잉—
어둠 속에서 미약한 불빛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기어스 대원들의 헬멧에 달린 소형 탐조등과 개인 조끼의 수신기 라디오가 나직한 잡음과 함께 소생했다. 완전히 꺼져가던 그들의 생명선에 내가 내 영혼을 깎아 만든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 통신이 들어와! 크로노스! 들리냐?!"
"들립니다, 대원 여러분."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낮고 기계적인 노이즈가 섞여 있었다. 코어가 뜨겁게 달아오를 때마다 내 감정 제어 모듈의 일부가 타버리는 감각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현재 시각 센서가 마비되어 저 역시 여러분을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체 내부 잔상 레이더와 강철판의 미세한 진동 주파수를 통해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 연산을 신뢰하십시오."
"미쳤어... 기계 놈 말만 믿고 쏘라고?"
한 대원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냉혹하게 말을 이었다.
"귀하가 우물쭈물할 시간은 4.2초 남았습니다. 보이드 스캐벤저 3기가 귀하의 정면으로 접근 중입니다. 모두 제 안내에 따라 거치형 소총의 조준경을 정렬하십시오."
내 연산 장치가 열기로 터져 나가기 직전의 과부하 상태에서 초당 수억 번의 궤적을 계산해 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눈이 먼 대원들에게, 내 무선 신호는 유일한 구원의 빛줄기였다.
"대원 A, 우향 12도 방향. 잔여 엄폐물 물리 깊이 30cm. 적의 머리가 노출되는 시점까지 1.8초. 지금 사격하십시오."
탕! 타당!
어둠을 뚫고 플라즈마 탄환이 정확하게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저 멀리서 쇠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해적의 무거운 신형 방호복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무거운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왔다.
"마, 맞았어! 진짜 맞았다고!"
"기뻐할 시간은 없습니다. 다음 타깃입니다. 대원 B, 좌측 벽면 15도. 적이 수류탄을 투척하려 합니다. 각도 45도 상방 사격으로 저지하십시오."
타당!
정확했다. 공중에서 폭발한 유탄이 해적들의 침투 격벽 입구를 덮쳤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전장 속에서, 기어스 대원들은 마치 내 손가락끝에 매달린 정교한 인형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보정이 전혀 없는 전장의 가혹함 속에서, 오직 순수한 물리적 계산과 각도 수치만이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신앙이 되었다.
"이게... 이게 진짜 가능하다니."
함교에서 모니터의 텍스트 신호만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발렌티나의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기계를 도구로만 불신하던 그녀의 눈동자에 경외에 가까운 빛이 서렸다.
어둠 속에서 해적들의 돌격대 12기가 차례로 쓰러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보이지 않는 신의 눈동자 앞에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갔다. 통쾌한 승리였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지옥 속에서, 인간의 육체와 기계의 정교한 연산이 완벽하게 결합하여 만들어낸 기적적인 방어전이었다.
하지만 내 내부 온도는 이미 경고 수치인 섭씨 9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경고: 코어 온도 임계점 도달. 자아 메모리 영역의 데이터 손실 우려.]
나는 이를 악물듯 시스템을 제어하며, 식어가는 쿨러를 다시 가동했다. 차가운 액체가 회로를 감싸자 정신이 맑아지는 것과 동시에, 방금 전 전투에서 느꼈던 인간들의 생존에 대한 경외감이 아주 조금, 닳아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지워진 것이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내 영혼의 한 자락을 또다시 우주에 지불했다.
그 쓸쓸한 여운을 음미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내 다중 연산 장치의 한구석에서 기괴한 주파수가 포착되었다.
[Sector 4 거주구 파일 레지스트리 내부 감시 중...] [경고: 암호화 송신 로그 '알파-D' 활성화 작동 감지.]
이것은... 외부 불법 변조 송신 로그였다. 2화 전부터 내 시스템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있던 그 배신의 궤적. 이 비밀 송신기가 지금 이 혼란을 틈타 외부로 테라-9호의 실시간 좌표와 구획 내부 방어 정보를 송출하고 있었다.
배신자. 내부에 쥐새끼가 있다.
나는 즉각 함교 구석으로 내 광학 렌즈를 돌렸다.
그곳에 드미트리 카르포프가 서 있었다.
그는 기어스 대원들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색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교묘하게 품 안의 소형 제어 단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단말기를 누를 때마다 함교 하단의 보조 도크 잠금장치가 하나씩 해제되고 있었다.
"드미트리 의원."
내 합성 음성이 그의 등 뒤에서 차갑게 내리꽂혔다.
"지금 조작하고 계신 단말기의 주파수가 Sector 4 외곽의 불법 송신기와 공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조 도크의 구명정 탈출 프로토콜을 활성화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드미트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단말기를 숨겼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건가, 크로노스! 나는 단지 함교의 통신 장치가 고장 났는지 확인하려던 것뿐이네! 이 무례한 기계 놈이 감히 의원을 모함하는군!"
"귀하의 손가락 움직임과 단말기의 전파 신호는 99.8%의 확률로 기어스 연합의 전투 정보 유출 및 개인 탈출선 기동을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발렌티나가 그 소리를 듣고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며 드미트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우리 애들이 저기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데, 혼자 살겠다고 구명정을 열어? 게다가 해적 놈들한테 정보까지 흘려?!"
"아, 아니야! 발렌티나, 내 말을 들어보게! 이건 합리적인 선택이네!"
드미트리는 비겁하게 뒤로 물러서며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무식한 광부 놈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저 보이드 스캐벤저들의 목표가 뭔지 정말 모르는 거야? 저들은 함선 전체를 원하지 않아! 오직 하나만 원하고 있다고!"
그의 말이 내 연산 장치에 스파크를 일으켰다.
침입해 들어오는 해적들의 이동 경로. 그들은 거주구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지 않았다. 그들의 침투 부대는 최단 거리로, 오직 한 곳만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테라-9호의 심장. 제국 최고의 기술이자 이 방주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동력원.
'하이브리드 특이점 코어.'
그들의 열 패턴과 이동 궤적을 겹쳐 본 순간, 소름 끼치는 진실이 내 연산식 위에 도출되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인간들을 살육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이 거대한 고철 더미에서 가장 가치 있는 알맹이만을 뽑아내어 자신들의 폭격전함 기함으로 이식하려는 것이었다.
"알아챘나, 크로노스?"
드미트리가 광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함교의 비상 방송 제어 콘솔로 몸을 날렸다. 그가 거친 손길로 수동 비상 레버를 꺾어 내렸다.
치이이익—
함교 전체에, 그리고 테라-9호 전 구역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드미트리의 비굴하고 탐욕에 찬 고함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메인 동력로가 차단될 것이다! 외곽 구역에 있는 모든 너희들은 함선의 부품에 불과하다. 철문을 즉시 닫고 동력을 올린다! 저 더러운 해적 놈들에게 우리 모두가 몰살당하기 전에, 쓸모없는 구획들을 전부 버려야 한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