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소리칠 틈도 없이 차장의 긴 집행 팔렁쇠에 꿰어 선로 밖으로 끌려간 강태식의 시체 자리에, 어두운 무쇠 열쇠 통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열차의 깨진 창문 너머로 몰아치는 칼바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부짖었다. 칠흑 같은 심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린내와 썩은 흙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강태식이 사라진 자리, 흩뿌려진 검붉은 피와 점액질의 한가운데서 무언가 이질적인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묵직한 무쇠 열쇠 통이었다.

치이이익……!

열쇠 통의 표면에서 시퍼런 도깨비불 같은 불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열기가 아니었다. 영혼마저 태워버릴 듯한 불길한 안광이 무쇠의 틈새로 흘러나와 주변의 점액질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아…… 흐……."

바닥을 기는 내 몸뚱이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가이드라인의 위조 서명을 가동한 대가로, 뇌에서 뻗어 나온 신경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촉각과 고유수용 감각의 완전한 상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내 손가락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손목이 꺾여 있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는 기괴한 마비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바닥으로 꺾어 내 오른손의 위치를 확인했다. 손가락 끝이 핏물로 젖어 축축한 철판 바닥을 짚고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 열쇠 통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삼십 센티미터, 혹은 사십 센티미터…….

"도진 씨! 손…… 손에 불이……!"

뒤쪽에서 민세희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그녀의 경고는 타당했다. 푸른 불꽃은 열쇠 통을 넘어 이미 그 주변의 철판 바닥까지 붉게 달구고 있었으니까. 보통의 인간이라면 손을 뻗는 것조차 불가능한 지옥의 열기였다. 살가죽이 닿는 즉시 뼈가 녹아내릴 터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감각의 부재가 오히려 무기가 되었다.

스르륵.

눈으로 오른손의 궤적을 쫓으며, 나는 망설임 없이 불타는 무쇠 열쇠 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움켜쥐었다.

치이이이이익—!

살가죽이 타들어 가며 누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단백질이 타는 역한 냄새가 차가운 차내 공기를 가득 채웠다. 손바닥의 피부가 열쇠 통의 쇠붙이에 달라붙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귓가에 박혔다.

그러나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움도, 뜨거움도, 살점이 찢어지는 고통도 없었다. 오직 시각적인 정보만이 내 손이 지금 숯덩이처럼 변해가고 있음을 건조하게 보고할 뿐이었다. 고통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열쇠 통을 쥔 오른손을 바닥의 차가운 핏물 속에 그대로 짓눌렀다.

치익, 치이익……!

검붉은 피와 점액질이 소화제 역할을 하며 시퍼런 불꽃을 잠재웠다. 불길이 꺼진 무쇠 열쇠 통은 이내 검게 그을린 채 내 악력 속에 완전히 갇혔다. 손바닥 전체가 물집과 화상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나는 손가락을 굽혀 열쇠를 꽉 쥐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걸……."

민세희는 턱을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 혹은 미치광이 그 자체였으리라.

"가야 합니다."

목구멍에서 긁히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타버린 오른손을 가슴팍에 붙인 채,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의 균형을 잡는 감각이 사라져 몇 번이나 비틀거렸지만, 벽을 짚고 눈으로 발디딤을 확인하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우리가 서 있는 Carriage 3의 끝, 차장실로 향하는 육중한 철문이 버티고 있었다.

철문은 일반적인 열차의 통로 문과 달랐다. 두꺼운 납으로 주조된 듯한 표면에는 수많은 부적과 기괴한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문 정중앙에는 방금 가동을 멈춘 듯한 둥근 열쇠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을린 무쇠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었다.

철커덕.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문 내부에서 수십 개의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울렸다. 푸스스하며 문틈 사이로 낡은 종이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문이 서서히 열렸다.

차장실 내부의 풍경은 기괴할 정도로 아날로그적이었다. 열차를 제어하는 현대적인 장치 대신,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것은 누렇게 바랜 종이 서류들과 먼지 쌓인 캐비닛들이었다. 사방에서 똑딱이는 초침 소리가 불규칙하게 얽혀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철제 제어 콘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기괴하게 꺾인 파이프들이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차장실……?"

민세희가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콘솔 뒤편, 벽면에 매달린 낡은 가방과 서류 더미에 머물렀다.

"도진 씨,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붉은색 가죽으로 제본된 두꺼운 일지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일지의 표면에는 인간의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듯한 기분 나쁜 촉감의 결이 보였다. 비록 내 손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질감만으로도 불길함이 엄습했다.

나는 타버린 왼손 대신 비교적 멀쩡한 오른팔의 소매를 이용해 일지를 펼쳤다.

바스스하며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내 눈동자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정교한 만년필 글씨로 수많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운행 기록이 아니었다.

[연료 식별 번호: 714-서진] [신장: 162cm] [골격 밀도: 표준 이하 (연소 효율 상)] [영혼 정제율: 89.4%] [현재 가동 상태: Carriage 5 동력로 직결 — 잔여 수명 12%]

"서진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망과 동시에 차가운 분노가 소용돌이쳤다.

일지에는 서진이의 상세한 인체 치수와 영혼의 강도, 그리고 그녀가 이 열차를 움직이기 위해 어떻게 '연료'로 소모되고 있는지가 정교한 통계표처럼 기록되어 있었다. 뒤쪽 페이지에는 수많은 승객의 이름과 그들의 파멸 과정이 행정 문서의 형태로 박제되어 있었다.

이 열차는 단순한 괴담의 공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정교하게 수거하고 분류하여, 영구적인 동력원으로 삼는 거대한 오컬트 사법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이 시스템을 관리하고 수호하는 '철도 공무 괴이단'과 그 최고 집행자인 차장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미친 괴물들이…… 동생을……."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타인을 믿지 않고 오직 계산기 두드리듯 살아온 내 삶에서, 서진이는 유일하게 나를 인간으로 묶어두는 끈이었다. 그 끈을 이 기계 장치의 부속품으로 쓰기 위해 갈기갈기 찢어놓았다는 사실이 내 편집증적인 이성을 뒤흔들었다.

"도진 씨…… 손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요……."

민세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 타들어 간 손을 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낡은 은빛 펜던트를 한번 꼭 쥐더니, 이내 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냈다. 펜던트에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서진이가 평소에 늘 말하던 '연대와 온기'를 상징하는 문양과 닮아 있었다.

"이거…… 감싸 드릴게요. 그냥 두면 뼈까지 상할지도 몰라요."

그녀가 내 화상 입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손수건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감각이 없었기에 그녀의 손길이 촉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눈은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과,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망울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왜…… 나를 돕는 겁니까?"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강태식처럼 나를 배신하고 도망치는 게 당신 생존에 더 유리했을 텐데."

민세희는 손수건의 매듭을 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서진이가 그랬어요.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면, 선로 끝에서도 결국 꽃은 피어날 거라고……. 도진 씨가 서진이를 구하려는 마음을 알아요. 그러니까……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도진 씨를 믿을 테니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나약함 속에 감춰진 묘한 심지가 있었다.

타인을 극도로 불신하며, 모든 인간을 생존을 위한 도구로만 치부해 왔던 내 편집증의 벽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 여자만큼은, 이 지옥 같은 전철 안에서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진짜 '동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미세하게 뇌리를 스쳤다.

나는 손수건으로 감싸진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그녀의 온기가, 얼어붙었던 내 가슴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직하게 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갑니다."

그 순간이었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

열차의 하부에서 찢어지는 듯한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귓고막을 때리는 기적 소리와 함께 열차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차장실의 캐비닛들이 덜컹거렸고, 천장의 백열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갑자기 차장실 전면의 납빛 철문에 붉은색 글씨들이 피로 쓴 것처럼 기괴하게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열차의 시스템이 우리에게 내리는 새로운 '사법 규정'이었다.

[여객 안전 및 특별 검역 수칙 제9조] [본 열차가 종착역인 '계선역'에 진입함에 따라, 모든 승객은 하차 전 신체 검역을 필해야 한다.] [조항 1: 종착역에 내릴 때 모든 승객의 신체와 뼈는 사후 검역(死後 檢疫)에 절대 동의해야 한다. 이를 거부할 시, 열차의 부속물로 즉각 영구 환원된다.]

"사후…… 검역……?"

민세희의 얼굴이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렸다.

"죽어야만…… 검역을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내릴 때 몸을 해체하겠다는 소리라고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안내서의 정중한 행정적 단어 뒤에 숨겨진 잔혹한 맹점. 승객을 온전한 상태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종착역에 도달한 인간들을 합법적으로 도살하여 열차의 영구적인 부품으로 만들겠다는 치명적인 덫이었다.

열차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창밖의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보라색 안개가 피어오르며 종착역의 승강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역에 진입해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규칙에 의해 산 채로 해체되어 뼈와 살이 분리될 터였다.

'생각해라, 한도진…….'

나는 미친 듯이 뇌 세포를 굴렸다. 이 가혹한 법의 그물을 찢어발길 유일한 논리적 맹점을 찾아야 했다.

붉게 타오르는 텍스트를 쏘아보았다.

[종착역에 내릴 때 모든 승객의 신체와 뼈는 사후 검역에 절대 동의해야 한다.]

'사후(死後) 검역'이라……. 죽은 뒤에 검역을 하겠다는 이 악랄한 전제를 뒤집을 수 있다면?

내 골든핑거, '가이드라인의 위조 서명'은 가짜 규칙을 단 한 줄 지우거나 수정하여 현실 자체를 임시로 개조하는 권능이다. 하지만 가짜 규칙이 너무 노골적이면 반동이 그만큼 거세다. 이번 위조는 내 존재 자체를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망설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는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에 손가락을 뻗었다. 손바닥의 화상이 다시 욱신거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지만, 나는 오직 눈앞의 텍스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가이드라인의 위조 서명, 기동.'

머릿속에서 퓨즈가 끊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내 손가락 끝에서 보라색의 기이한 안개가 피어오르며, 철문에 새겨진 글자들을 덮쳤다.

나는 철문에 새겨진 단어 중 '사후(死後)'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의 지우개로 지워내듯 강렬하게 부정했다. 글자가 찌르르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단어를 새겨 넣었다.

'사전 생명 보존 상태(事前 生命 保存 狀態)'.

[조항 1: 종착역에 내릴 때 모든 승객의 신체와 뼈는 사전 생명 보존 상태 검역에 절대 동의해야 한다.]

화아아아악—!

단어가 바뀌는 순간, 내 머릿속이 통째로 쪼개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이것은 감각의 소실이 아니라, 영혼의 일부를 사정없이 뜯어내는 가혹한 통행세였다.

"으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측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붉은 피였다.

시선이 급격하게 좁아지기 시작했다. 우측 눈의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검게 타들어가더니, 이내 완벽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우측 시력의 완전한 상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눈뿐이었다.

하지만…… 해냈다.

철문에 새겨진 붉은 글씨가 완벽하게 변조되어 정착했다.

[모든 승객의 신체와 뼈는 사전 생명 보존 상태 검역에 절대 동의해야 한다.]

이 위조로 인해 열차의 사법 시스템은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승객의 신체를 검역하되, 그 전제 조건이 '사전 생명 보존 상태'로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즉, 열차 시스템은 검역을 집행하는 동안 승객의 목숨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승객을 죽이거나 해체하는 모든 행위는 이제 이 개조된 수칙에 위배되는 불법 행위가 된다.

우리가 가진 목숨과 신체의 안전을, 열차 자신의 법으로 완벽하게 저당 잡은 이 정교하고 냉혹한 승리.

쿠구구구궁—!

열차가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급제동을 걸었다. 바닥이 요동치며 차장실 안의 집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진 씨! 괜찮아요? 오른쪽 눈이……!"

민세희가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부축했다. 한쪽 시야를 잃어버린 탓에 초점이 맞지 않아 세상이 어지럽게 회전했다. 나는 피가 흐르는 우측 눈을 손수건으로 훔쳐내며 간신히 서 있었다.

쾅—!

마침내 열차가 완전히 멈춰 섰다.

육중한 철문이 스르륵 열리며, 차장실 너머로 차가운 연기와 함께 종착역의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단 하나의 눈으로 바라본 그곳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기괴한 차원의 틈새였다.

전철역의 형태를 띠고는 있었으나, 승강장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검붉게 변색한 인간의 유골들과, 녹슬고 뒤틀린 수천 개의 기차 바퀴 더미가 기괴한 탑처럼 쌓여 만들어진 경계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뼈들의 무덤 한가운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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