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치이이이익-!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의 마찰음이 낡은 스피커의 틈새로 뿜어져 나왔다.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는 도진의 동공 안으로, 깨진 형광등의 잔해가 매달린 천장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비쳐 들었다. 복구된 시각이 선사한 첫 번째 자극은 청각을 통해 들어온 비명이었다.

- 아아악! 오빠! 오빠 살려줘! 여기가 어디야! 살려줘……!

도진의 등줄기를 타고 얼음장 같은 소름이 쫙 돋아났다.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들이쉬던 숨이 목구멍에 턱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굳어 있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목소리였다. 매일 밤 꿈속에서, 그리고 실종되던 그 마지막 날 통화 너머로 들었던 동생 서진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서…… 서진아?"

옆에 서 있던 민세희가 짧은 신음과 함께 도진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당혹감과 공포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도진은 짓눌린 신음을 삼키며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녹슨 철망 안쪽에서 먼지와 함께 붉은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목소리는 점점 더 애절하게, 그리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귓고막을 파고들었다. 마치 뇌수 안쪽에서 직접 긁어대듯 끔찍한 울림이었다.

- 뜨거워…… 너무 뜨거워, 오빠……. 문을 열어줘…… 제발…….

"도진 씨, 이 목소리…… 진짜 동생 분 아니에요? 저 문 너머에……."

민세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통로 철문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은 어둡고 굳게 닫힌 연결문이었다.

하지만 도진의 떨리던 눈동자는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쿵, 쿵, 쿵.

가슴속에서 날뛰던 충동을 억누르며, 그는 턱관절을 강하게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번졌다.

오염이다.

이것은 동생의 목소리가 아니다. 계선행 심야 전철이라는 기괴한 공간이 승객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이성을 마비시키려는 얄팍한 기만책에 불과했다. 동생이 이 전철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면, 결코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무전기를 잡고 소리칠 리가 없었다. 그것은 철도 공무 괴이단, 혹은 이 열차 자체가 파놓은 정교한 덫이었다.

"귀 막아."

도진이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뱉어냈다.

"네? 하지만……."

"귀 막으라고 했다. 살고 싶으면."

도진은 세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두 귀를 손바닥으로 거칠게 틀어막았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두개골의 진동 속에서도 서진의 비명은 끈질기게 파고들었지만, 그는 눈을 부릅뜬 채 오직 앞만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감정은 사치였다.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살아남아 진짜 동생을 구하려면, 눈앞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철저히 불신해야만 했다.

도진은 세희의 팔뚝을 꽉 움켜쥐고 한 걸음 한 걸음, 다음 칸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철문으로 직진했다.

철커덩…… 철커덩…….

열차가 불규칙하게 요동칠 때마다 바닥의 핏자국이 출렁이며 기괴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철문에 가까워질수록 스피커의 비명은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도진은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철문 옆에 찌그러진 채 붙어 있는 새로운 행정 안내판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비켜! 비키라고, 이 미친 새끼들아!"

어둠으로 물든 객실 구석, 뜯겨 나간 의자 시트 뒤편에서 기괴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강태식이었다.

그는 첫 번째 칸의 아수라장 속에서 어딘가에 숨어 쥐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충혈된 눈동자는 도진의 손끝, 그리고 철문 옆의 안내판을 번갈아 쫓고 있었다.

"너…… 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좌석의 그 괴물이 왜 갑자기 제풀에 지쳐서 사라진 거야?"

강태식이 숨을 헐떡이며 도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는 정체 모를 쇠파이프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도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비켜라. 시간 낭비할 여유 없다."

"개소리 마! 네놈이 안내판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상황이 변했어!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네놈, 이 열차의 규칙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능력이 있는 거지? 어?!"

강태식의 목소리에는 질투와 탐욕,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자의 악에 받친 비열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도진이 숨겨둔 강력한 '패'를 눈치채고, 그것을 강탈하거나 이용하려 들고 있었다.

강태식은 도진의 굳은 표정을 확인하자마자, 비열하게 웃으며 도진의 옆에 서 있던 민세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쓸모없는 기집애를 미끼로 던져주랴? 엉? 좋은 말로 할 때 그 조작하는 방법 내놔!"

강태식이 세희의 어깨를 거칠게 낚아채며 뒤로 밀쳐냈다. 세희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도진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세희가 쓰러지는 모습을 차갑게 방관했다. 타인의 고통이나 위기는 그에게 오직 정보의 가치로만 환산될 뿐이었다.

그 순간, 강태식은 도진의 시선이 철문 옆 안내판에 닿아 있는 것을 포착했다.

"이거구만……! 다음 칸으로 가는 규칙이 여기 적혀 있어!"

강태식이 도진보다 먼저 몸을 날려 철문 옆에 붙은 안내문을 낚아챘다. 그는 도진이 능력을 발휘해 상황을 독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전세를 장악하겠다는 속셈이었다.

도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강태식의 그 탐욕스러운 뒷모습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서늘하게 올라갔다.

직접 매를 벌러 기어 들어가는 쥐새끼만큼 훌륭한 이정표는 없었다.

강태식이 거칠게 뜯어낸 안내문에는 붉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여객 안전 수칙 - 통로 이동 관련 추가 조항 ] 본 열차의 각 객실을 연결하는 통로 문은 안전상의 이유로 상시 폐쇄됩니다. 다음 칸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승객은 반드시 아래의 수칙을 준수해 주십시오.

1. 통로 문 중앙의 붉은 표식 뒤편에 승객 본인의 '신선한 피 세 방울'을 떨어뜨리십시오. 2. 피가 정상적으로 흡수되면 문이 개방되며, 이 조치는 열차 내 흐르는 영적 흐름을 안정시키기 위한 필수 행정 절차입니다. ※ 주의: 피를 바르지 않고 강제로 문을 열려고 시도할 경우, 열차 수호 괴이의 즉각적인 처분 대상이 됩니다.

강태식은 안내문을 읽으며 칙칙한 침을 삼켰다.

"피…… 피 세 방울이라고? 별거 아니잖아!"

그는 주머니에서 녹슨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칼날을 밀어 올리는 드르륵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민세희가 바닥에서 신음하며 펜던트를 꼭 쥔 채 소리쳤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낡은 펜던트는 그녀의 동생이 남긴 유일한 유품이자, 인간으로서의 연대 의지를 상징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안 돼요! 함부로 피를 흘리면 안 돼요! 저 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시끄러, 이 년아! 안 열면 여기서 굶어 죽거나 저 스피커 소리에 미쳐 죽을 텐데, 피 몇 방울이 대수야?!"

강태식은 세희의 경고를 콧방귀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도진은 알고 있었다.

행정 문서의 탈을 쓴 이 안내문은 교묘한 덫이었다. '신선한 피 세 방울'을 요구하는 행위는, 전철의 규칙을 수호하는 괴이에게 '나는 산 제물이며, 스스로 나의 방어 기제를 해제하겠다'고 서약하는 사기 조항이었다. 피를 바르는 순간, 그 피를 매개로 문 너머의 존재가 승객의 육체를 완벽하게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도진은 강태식이 스스로 그 함정 속으로 대가리를 처박는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관조했다.

"도진 씨…… 제발 저 사람 좀 말려봐요……."

세희가 도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지만, 도진은 차갑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말릴 이유가 없지."

도진이 나직하게 소곤거렸다.

"저 인간이 먼저 피를 흘려주면, 이 수칙의 진짜 대가가 무엇인지 아주 확실하게 배울 수 있으니까……."

도진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벽증적이고 편집증적인 그의 이성은 이미 이 상황을 철저한 실험실로 규정하고 있었다.

강태식은 커터칼로 자신의 엄지손가락 끝을 사정없이 그었다.

스윽-!

붉고 걸쭉한 피가 베어 나왔다. 강태식은 얼굴을 찡그리며, 철문 중앙에 파인 기괴한 원형 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뚝. 뚝. 뚝.

정확히 세 방울의 피가 홈 안으로 떨어졌다.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홈 안으로 스며든 피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철문의 녹슨 표면 위로 기괴한 핏줄 모양의 문양을 그려나갔다.

"하하! 봤지? 열린다! 열린다고!"

강태식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도진의 눈은 철문 아래쪽, 그리고 강태식의 등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의 변화를 쫓고 있었다.

스우우우…….

철문 틈새로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가 강태식의 발목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이 열리는 신호가 아니었다. 피를 매개로 승객의 위치를 특정한 괴이가 사냥을 시작하려는 전조였다.

안내문의 '진짜' 함정이 격발하려는 찰나였다.

도진은 지체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자신의 절대적인 권능을 불러냈다.

'가이드라인의 위조 서명…….'

눈앞의 안내문 텍스트가 도진의 시야 속에서 푸른빛을 띠며 떠올랐다. 가짜 규칙을 위조할 기회였다.

도진은 안내문의 1번 조항을 응시했다.

[ 1. 통로 문 중앙의 붉은 표식 뒤편에 승객 본인의 '신선한 피 세 방울'을 떨어뜨리십시오. ]

도진은 이 교묘한 기만책을 비틀기로 결심했다. 괴이에게 자신들의 지배권을 넘겨주는 '피'라는 매개체를, 오히려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변조해야 했다.

도진은 마음속의 가상의 펜을 들어 '신선한 피'라는 단어를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단어를 써 내려갔다.

[ 1. 통로 문 중앙의 붉은 표식 뒤편에 승객 본인의 '괴이의 무기'를 떨어뜨리십시오. ]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도진의 척추를 타고 극심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머릿속이 핑 돌며, 전신을 지탱하던 감각들이 급격히 마모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치러야 할 영혼의 통행세는…… 촉각과 고유수용 감각이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팔다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바닥을 딛고 있는 발바닥의 단단함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피부를 스치는 서늘한 바람 소리는 들렸지만, 정작 피부 자체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유령이 된 듯한 기괴한 감각 상실이었다.

도진은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눈으로 자신의 다리 위치를 똑똑히 확인하며 벽을 짚었다. 손가락이 철판에 닿았지만, 차가움도, 거친 질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한 마비였다.

하지만 정신만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능력은 성공적으로 발효되었다.

"어……? 어어? 이게 왜 이래?!"

그 순간, 강태식의 비명이 객실을 가득 채웠다.

철문 중앙의 홈에 피를 흘려 넣었던 그의 손가락 끝이 기괴하게 변하고 있었다.

찍-!

강태식이 흘린 피가 철문에 닿는 순간, 규칙의 위조로 인해 '피'는 '괴이의 무기'로 판정되어 소멸해야 했다. 하지만 강태식은 괴이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규칙의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위조된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강태식의 피는 거부당했다.

철문 중앙의 홈에서 기괴한 쇳소리와 함께 바늘 같은 강철 가시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푸학!

"아아아악!"

강태식의 손가락을 관통한 가시들이 그의 손등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강태식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철문은 그 피를 단 한 방울도 흡수하지 않고 튕겨냈다.

만약 도진이 규칙을 위조하지 않았다면, 강태식은 손가락이 아니라 전신이 문 뒤편의 존재에게 끌려 들어가 통째로 으스러졌을 것이다.

강태식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움켜쥔 채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악! 내 손! 내 손이……! 이 개 같은 조항이……!"

그는 극심한 공포와 통증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도진을 바라보았다.

도진은 촉각이 마비되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그저 무표정하게 강태식의 참상을 내려다보았다.

'훌륭한 실험 결과군…….'

피를 바르는 조항은 명백한 함정이었다. 그리고 위조를 통해 '괴이의 무기'로 조건을 변경하자, 이 열차는 승객의 피를 거부하고 물리적인 방어 기제를 작동시켰다.

도진은 품 안에서 지난 칸에서 괴이를 역살하고 획득했던 날카로운 검은 파편을 꺼냈다. 제4조 좌석의 괴이가 쓰던 손가락 낫의 일부였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괴이의 무기'였다.

도진은 감각이 없는 손을 오직 시각적 보정에만 의존하여 정밀하게 움직였다. 파편의 끝부분을 철문 중앙의 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스르륵…….

괴이의 무기가 홈에 닿자, 철문이 마치 거대한 주인을 맞이하듯 부드럽게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강태식을 꿰뚫었던 가시들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회수되었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는 묵직하고도 음산했다.

도진은 상처 하나 없이,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다음 칸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젖힌 것이다.

"사…… 살았다……."

민세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진의 뒤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도진의 시선은 아직 바닥에서 신음하는 강태식에게 머물러 있었다.

"이…… 이 독한 새끼…… 알고 있었으면서 말 안 했지? 일부러 나를……!"

강태식이 이를 갈며 도진을 노려보았다.

도진은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는 감각이 사라진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열린 문 너머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치이이익-!

문이 완전히 열리는 순간, 통로 안쪽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차갑고 짙은 백색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안개가 아니었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와 함께 비릿한 피비린내가 섞인 기괴한 증기였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강태식이 던져버린 피 묻은 안내문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바바박-!

마치 보이지 않는 바람에 날리듯, 피 묻은 안내문들이 사방의 벽면과 천장, 그리고 도진이 서 있는 발밑의 철판에 가시처럼 날카롭게 박히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동시에 열차 전체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괴수의 식도를 통과하는 듯한 불길한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올라왔다.

도진은 흐려지는 촉각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붉은색 눈동자들이 무수히 점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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