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라, 로엔그린의 기사들이여.”
요한이 나직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로 숲속의 정적을 갈랐다. 그의 손에 쥐어진 성검이 대리석 바닥에 묵직하게 박히며 웅장한 진동을 울렸다.
“오늘부로 엘리시아 영애의 안식을 방해하는 모든 소음은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대죄로 규정한다. 감히 이 성소에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사악한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다면…… 내 검이 그들의 혀를 침묵의 이름으로 벨 것이다.”
그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기 섞인 맹세의 기운이 온 숲을 엄숙하게 뒤덮었다.
그루터기에 머리를 묻고 있던 엘리시아는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억누르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니, 벨 것까지는 없잖아요……. 그냥 집에 가라니까, 이 미친 기사놈아…….’
그러나 이미 기사단장의 눈에는 광적인 신념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또 하나의 거대한 착각의 괴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엘리시아가 누워 있는 텐트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바람처럼 기사단을 이끌고 사라졌다. 철갑을 두른 기사들이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숲을 빠져나가는 광경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내 사방이 고요해지자, 엘리시아는 텐트 천을 슬그머니 걷어 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하아…….”
깊은 한숨이 땅바닥을 굴렀다.
살기 어린 황태자 카일에 이어, 오만한 마탑의 천재 렌, 그리고 이제는 정의감에 미쳐 날뛰는 성기사단장 요한까지. 이 아카데미의 세 미치광이들이 왜 자꾸 제 멋대로 감화되어 자신을 ‘수호’하겠다고 날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엘리시아는 품속을 뒤적여 카일이 건넸던 은빛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황실 고유 특별 면책용이자 기사단 프리패스권인 이 값비싼 물건을 볼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주는 과정에서 발생할 귀찮음 지수를 생각하면 그냥 품에 묻어두는 편이 나았다.
“일단 잠이나 자자. 잠이 보약이지.”
엘리시아는 그대로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
다음 날 아침, 라피스 제국 아카데미의 중앙 복도는 평소보다 훨씬 소란스러웠다.
“들었어? 어제 성기사단장 요한 경이 황혼의 숲에서 무릎을 꿇었대.” “세상에, 그 엄격하고 고결한 요한 경이? 누구한테?” “말해 뭐 해! 그 ‘침묵의 성녀’ 엘리시아 영애지! 황태자 전하에 이어 마탑의 이단아인 렌 님까지 굴복시키더니, 이제는 성기사단마저 영애의 발아래 엎드린 거야!” “역시 가문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분이었어. 그 고고하고 초연한 태도는 다 깊은 혜안과 성스러움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군!”
지나가는 학생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엘리시아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성녀는 무슨 얼어 죽을 성녀. 그녀는 그저 하루에 열두 시간씩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은 평범한 귀찮음주의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교계와 아카데미 전역에 퍼진 ‘신성한 방조론’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마차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주를 가장 눈꼴 시려 하며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으니.
“엘리시아…… 가증스러운 년.”
복도 모퉁이 그늘진 곳에서 비올레타 데 헤이즈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부채를 꽉 쥐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고급스러운 깃털 부채의 살이 우득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영애, 진정하십시오. 저런 근본 없는 소문은 금방 가라앉을 것입니다.” “닥쳐!”
비올레타가 수하 영애의 말에 사납게 쏘아붙였다.
“황태자 전하도 모자라 마탑의 후계자와 성기사단장까지 홀리다니! 저 속이 시커먼 악녀가 감히 내 자리를 빼앗고 성녀 행세를 해? 이대로 둘 수는 없어. 오늘 반드시 그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겨 대의회에서 추방해 버리겠어.”
비올레타의 눈동자에 독기가 가득 올랐다. 그녀는 품속에서 검은 비단으로 꽁꽁 싸맨 무언가를 꺼내 수하에게 건넸다.
“계획대로 해라. 엘리시아의 개인 사물함 틈새로 밀어 넣어 두는 거다. 사물함 점검 시간에 맞춰 선도부와 교수들을 데려올 테니.” “하, 하지만 영애…… 이것은 마탑에서 엄격히 금지한 갈가마귀 학파의 ‘암흑 마도서’가 아닙니까? 잘못 다루었다가는 저희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멍청하긴! 그러니까 들키지 않게 틈새로 찔러 넣으라는 거잖아! 그 책에는 억지로 문을 열거나 해제하려 하면 터지는 강력한 ‘누설 마법 트랩’이 걸려 있어. 엘리시아가 사물함을 여는 순간, 그 추악한 마력이 온 학원에 진동할 테고, 현장에서 금서 소지 죄로 즉각 체포되겠지!”
비올레타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잘난 ‘침묵의 성녀’가 어둠의 마법을 부리는 타락한 마녀로 떨어지는 모습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겠다.”
***
한편, 1교시 수업이 끝나고 개인 정비를 위해 사물함실로 향하던 엘리시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띵-!] [시스템 경보: 돌발 위험 감지!] [대상: 비올레타 데 헤이즈의 음모 - ‘갈가마귀의 암흑 금서 함정’] [현재 귀하의 전용 사물함 내부에 폭발성 마법 트랩이 장착된 금서가 은닉되어 있습니다.]
눈앞에 번쩍이는 반투명한 붉은색 시스템 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아, 또 시작이네.”
엘리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귀찮은 일이 또 발을 걸어온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속으로 ‘행동 비용 매니저 장부’를 호출했다.
[행동 비용 매니저 장부 - 분석 가동]
- **경로 A: 직접 사물함을 열어 금서를 제거하고 은밀히 폐기한다.** * 예상 귀찮음 비용: 480 (마법 해제 시도, 증거 인멸을 위한 야간 이동, 알리바이 작성 등 복잡한 수고 필요) * 위험도: 극상 (해제 실패 시 마법 폭발로 인한 신체 훼손 및 소음 유발) * **주의: 현재 일일 규정 불면 누적 버프 시스템의 누적 수치가 495에 달해 있습니다. 경로 A 선택 시 누적 수치가 500을 초과하여 즉시 ‘강제 무수면 일주일 버프’가 발동됩니다.**
- **경로 B: 사물함 열쇠를 즉각 폐기하고 아예 열지 않는다.** * 예상 귀찮음 비용: 5 (열쇠 분실 사유서 작성 한 장으로 종료) * 위험도: 없음 (방관 및 침묵 유지)
엘리시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잔다고?’
이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하루라도 8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피부가 뒤집어지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그녀에게 일주일간의 강제 불면증은 지옥 그 자체였다. 누적 수치가 495인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 사건에 개입했다가는 그대로 파멸 행 급행열차를 타는 꼴이었다.
‘사물함을 안 열면 그만이지.’
결론은 초 단위로 내려졌다.
엘리시아는 주머니 속에서 사물함 열쇠를 꺼냈다. 정교하게 세공된 놋쇠 열쇠가 손바닥 위에서 짤랑거렸다.
그녀는 사물함실 구석에 위치한 하수구 배수망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물과 흙먼지가 엉겨 붙어 시커먼 물이 고여 있는, 그 누구도 손을 집어넣고 싶지 않을 깊은 구덩이였다.
“에잇.”
엘리시아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발가락 끝으로 가볍게 툭 찼다.
*팅, 또르르르…… 퐁당.*
놋쇠 열쇠는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하수구 구멍 속 거무죽죽한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잘 가라. 내 일주일간의 단잠을 지켜준 고마운 쇳조각아.”
엘리시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사물함 따위 평생 안 열어도 상관없었다. 교과서야 옆자리 애한테 빌려 보면 그만이고, 귀찮은 소지품은 애초에 들고 다니지도 않으니까.
바로 그때, 복도 저편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이쪽입니다, 교수님! 분명히 이 근처에서 불길하고 사악한 마력의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비올레타였다. 그녀의 뒤에는 아카데미 선도부원들과 마법학부의 완고하기로 소문난 델린 교수가 엄숙한 표정으로 따라붙어 있었다. 그들의 기세등등한 걸음걸이는 마치 대단한 범죄자를 현행범으로 잡으러 가는 사냥개들 같았다.
“어머, 엘리시아 영애? 마침 여기 계셨군요.”
비올레타가 가증스러운 가식을 떨며 엘리시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시죠, 헤이즈 영애?”
엘리시아는 영혼이 반쯤 가출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뚝뚝 묻어났다.
“방금 마도서 보관실에서 갈가마귀 학파의 금지된 암흑 마도서가 도난당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길한 마력 반응이 정확히 이곳, 영애의 사물함이 있는 구역에서 감지되었지요.”
비올레타가 사물함을 가리키며 승리감에 도취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고결하신 ‘침묵의 성녀’께서 그런 사악한 금서를 사물함에 숨겨두셨을 리는 없겠지만…… 학원의 안전을 위해 확인이 필요합니다. 어서 사물함을 열어 주시지요.”
델린 교수가 무거운 목소리로 거들었다.
“라피카 영애, 학원의 규칙에 따라 사물함 내부 검사를 실시하겠네. 열쇠를 건네게.”
주변에 모여든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엘리시아 영애가 금서를?” “음모야! 헤이즈 영애가 질투심에 덫을 놓은 게 분명해!” “하지만 진짜로 마력 반응이 저기서 나온다면 어쩌지?”
수많은 시선이 엘리시아에게 집중되었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사물함실을 가득 채웠다. 일반적인 영애라면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거나, 당황하여 횡설수설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엘리시아는 그저 하품을 작게 삼키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열쇠 없는데요.”
“……예?”
비올레타의 미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방금 무슨 말씀이신지…… 열쇠가 없다니요? 검사를 피하기 위해 얄팍한 거짓말을 하시는 겁니까?”
“방금 하수구에 빠뜨렸어요.”
엘리시아가 귀찮다는 듯 하수구 구멍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바람이 불어서 날아갔나 봐요. 그러니까 검사는 다음에 하죠. 전 졸려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비올레타가 급하게 가로막았다. 그녀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어디를 도망치려는 겁니까! 열쇠를 빠뜨렸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이 중대한 수색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나요? 교수님! 이것은 명백한 증거 인멸 및 수색 거부 행위입니다!”
델린 교수의 얼굴도 굳어졌다.
“라피카 영애, 열쇠가 없다면 마법으로 문을 강제로 개방하는 수밖에 없네. 동의하겠는가?”
엘리시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강제로 부수겠다고? 아주 훌륭한 제안이었다. 어차피 사물함은 자기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 공공기물인데 부서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게다가 자신이 직접 열지 않으니 귀찮음 비용도 0이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엘리시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아주 정중하고 고고한 태도로 양보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이를 본 주변 학생들의 눈빛이 다시금 경외로 물들었다.
“오오…… 저 의연한 태도를 봐!” “떳떳하시니까 저렇게 당당하게 수색에 응하시는 거야!” “헤이즈 영애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갔군.”
비올레타는 주변의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조바심이 났다.
“교수님! 어서 문을 부수고 그 가증스러운 정체를 밝혀 주십시오!”
“음, 알겠네.”
델린 교수가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알로호모라 룹투스(강제 개방)!*”
교수의 지팡이 끝에서 청색의 마력 탄환이 뿜어져 나와 엘리시아의 사물함 잠금장치를 직격했다.
*콰아앙-!*
쇠가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사물함 문이 거칠게 뜯겨 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사물함 내부에 잠들어 있던 금서의 수호 마법—비올레타가 직접 걸어둔 ‘폭발성 누설 마법 트랩’이 강제 파괴의 충격을 감지하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 잠깐만, 이 마력 반응은……!”
비올레타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퍼퍼퍼퍼펑-!!!*
사물함 내부에서 화려한 보라색 연기와 함께,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기는 ‘폭발성 염료 향료’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비올레타가 엘리시아에게 ‘금서 소지자’라는 낙인을 찍고 현장에 마력을 퍼뜨리기 위해 장치해 둔 특수 폭탄이었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이미 저만치 뒤로 물러서서 하품을 하고 있었고.
사물함 바로 앞, 가장 목을 빼고 내부를 들여다보던 비올레타와 그녀의 수하 영애들이 폭발의 직격탄을 맞았다.
*푸화학-!*
“꺅! 이게 뭐야!” “앗, 차가워! 냄새, 이 썩은 내는 대체……!”
사물함실은 순식간에 보라색 연기로 가득 찼고, 비올레타의 화려한 드레스와 백옥 같던 얼굴은 찐득한 보라색 염료와 정체불명의 악취 나는 오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머리카락은 폭발의 열기로 사방으로 뻗쳐올라 마치 벼락 맞은 대머리독수리 같은 꼴이 되었다.
“콜록! 콜록! 이, 이게 어찌 된……!”
비올레타가 쿨럭거리며 얼굴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려 했지만, 특수 염료는 닦으면 닦을수록 얼굴 전체로 번져 그녀를 완벽한 보라색 괴물로 만들 뿐이었다.
델린 교수는 마법 장벽으로 가까스로 폭발을 막아냈지만, 그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사물함 바닥에 떨어진, 비올레타의 가문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진 마력 제어용 마법진 유적을 발견했다.
“이것은…… 헤이즈 가문의 비전 마력 결계식이 아닌가?”
교수의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헤이즈 영애! 자네가 타인의 사물함에 금서를 은닉하고, 강제 개방 시 폭발하도록 사악한 함정 마법을 설치한 것인가!”
“아, 아닙니다! 교수님! 이것은 음모입니다! 저년이, 저 엘리시아가 미리 알고 손을 쓴 것이 분명……!”
비올레타가 악을 쓰며 엘리시아를 가리켰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그저 멍하니 서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맑고 무해한 눈동자는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순진무구함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헤이즈 영애, 추태가 심하군!”
델린 교수가 혀를 찼다.
“라피카 영애는 열쇠를 잃어버려 열지 못한다고 미리 고지했고, 강제 개방에 동의했을 뿐이네.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파고도 남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하다니! 게다가 이 불길한 금서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주변의 학생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와, 진짜 너무하다. 질투에 눈이 멀어서 저런 짓까지 하다니.” “얼굴 보라색 된 것 좀 봐. 완전 광대 같아.” “향료 냄새 진짜 구리다. 저게 성녀를 모함하려던 자의 최후인가 봐.”
비올레타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조소와 멸시의 눈빛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평생 사교계의 중심에서 공주처럼 대접받던 그녀에게 이보다 더한 굴욕은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엘리시아에게 닿았다.
엘리시아는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띵-!] [위기 차단 완료!] [행동 비용 최소화 성공: 귀찮음 비용 5 소모] [일일 규정 불면 누적 버프 시스템 경보가 해제되었습니다.] [현재 누적 수치: 50 -> 0 (초기화 완료!)] [보상: 안락한 낮잠 시간 4시간 추가 확보!]
‘살았다. 오늘 밤은 아주 푹 잘 수 있겠어.’
엘리시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귀찮은 일을 완벽하게 방관하고 방치했을 뿐인데, 악당이 알아서 자폭해 주니 이보다 더 편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비올레타의 눈에는 그 미세한 미소가 자신을 비웃는 ‘승리자의 오만한 비웃음’으로 보였다.
“엘리시아……!”
비올레타가 분에 못 이겨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그녀의 온몸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증오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정신이 완전히 붕괴 직전에 몰린 비올레타는 품속에서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었던 붉은색 마법 양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아카데미 대의회에 직속 고발을 접수할 수 있는, 황실 공인 ‘국가 중범죄 사주 혐의자 사법 심문 고발장’이었다.
“이대로 끝내지 않아……! 네가 아무리 황태자와 기사단장을 홀렸어도, 국가의 법과 이단 심문소의 칼날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비올레타가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내 가문의 모든 명예를 걸고, 너를 제국 대의회 사법 심문대에 세우겠다! 거기서도 그 가증스러운 침묵을 지킬 수 있는지 두고 보자!”
피와 오물로 얼룩진 고발장이 허공에서 붉게 타오르며 대의회 행정실로 날아갔다.
아카데미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사법 심문의 폭풍이 엘리시아를 향해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