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침대의 낡은 매트리스가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삐걱이며 가라앉았다.
지척이었다.
서주원의 넓은 어깨가 시야를 가로막는 순간, 민혜수는 숨을 쉬는 법조차 잊었다. 젖은 밤색 셔츠 너머로 정직하게 전해지는 그의 단단한 흉판이 가슴을 짓눌렀다. 뺨에 닿는 주원의 숨결은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 뜨거웠지만, 혜수의 목덜미에 뚝뚝 떨어지는 그의 머리카락 끝 물방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극단적인 두 가지 온도가 살갗 위에서 어지럽게 뒤섞였다.
“싫어…… 싫단 말이야!”
혜수는 주원의 가슴을 밀쳐내려 힘을 주었다. 손바닥 아래로 거칠게 날뛰는 그의 심장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밀어내야 했다. 밀어내고 이 서점 밖으로, 그가 없는 곳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가문의 저주가 내리는 이 지독한 공명이 시작될 때마다, 서로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심장을 죄어오는 반동의 고통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주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혜수의 허리를 감싸 안은 그의 팔에 한층 더 강한 힘이 들어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주원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혜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집요하게 사로잡았다. 우화 계약의 공명 주파수가 머릿속을 찌르르 울리며 두 사람의 오감을 강제로 동기화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날의 계약. 서로를 갈망할수록 생명을 깎아내는 가혹한 형벌.
혜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다가올 극심한 통증을 대비했다. 가슴이 찢어지고 숨통막히는 그 끔찍한 압박감이 전신을 유린할 것이라 믿었다. 7년 전, 그를 떠나야만 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이 죽음의 공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슴을 옥죄는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주원의 품 안은 기묘할 정도로 아늑하고 평온했다. 혜수의 폐부로 흘러드는 것은 지독한 비 냄새가 아니라, 오직 주원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쌉싸름한 편백나무 향과 다정한 체온뿐이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저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 안전지대에 들어선 것처럼, 그녀의 심장은 차분하게 박동했다.
‘어째서……?’
혜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공명된 오감의 통로를 타고 낯선 감각이 혜수의 뇌리를 세차게 때렸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고통이 아니었다. 주원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생명력의 붕괴였다.
연결된 주파수를 통해 주원의 상태가 영적인 잔상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주원의 심장 주변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생명력의 흐름이,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쏟아지듯 극단적으로 급락하고 있었다. 그의 체내 기혈은 사정없이 뒤틀려 붉은 핏빛 경고등처럼 요동쳤고, 맥박은 기괴할 정도로 느려지다가 순간적으로 폭발하듯 요동쳤다. 혜수가 그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거나 밀착할 때 가해져야 할 가문의 거부 제약과 수명 단축의 반동이, 지금 오직 주원의 몸 한곳으로만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주원의 눈동자 가장자리에 미세하게 붉은 실핏줄이 터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의 턱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 너 지금 상태가 왜 이래?”
혜수의 목소리가 잘게 갈라졌다. 주원의 가슴을 밀어내던 손끝에 힘이 풀리며, 대신 그의 젖은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왜 나한테는 아무런 통증이 없어? 은가의 저주라면 우리 둘 다 똑같이 죽을 것처럼 아파야 하잖아. 왜 나만 이렇게 멀쩡한 건데!”
주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입술을 꾹 다문 채, 고통을 집어삼키려는 듯 턱관절에 힘을 주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붉게 솟아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주원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무모하고도 처연한 미소가 혜수의 심장을 더 아프게 찔렀다.
“넌 아플 필요 없어, 혜수야.”
주원의 목소리는 고통의 심연 속에서 건져 올린 것치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감미롭고 다정했다.
“그 지독한 걸 왜 너까지 받아. 내가 다 가져가면 그만인 것을.”
“서주원!”
“7년 동안 너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나한테는 진짜 죽음이었어. 매일 밤 네가 없는 서점의 불 꺼진 창가를 멀리서 바라보는 게 어떤 건지 알아?”
주원의 손가락이 혜수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손길이 닿는 피부는 불길에 닿은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손길이 혜수의 턱선을 지나 뒷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가 조금 더 몸을 밀착해 오자, 공명된 주원의 생명력은 한 단계 더 가파르게 곤두박질쳤다. 혜수의 머릿속에 주원의 수명이 타들어 가는 붉은 궤적이 실시간으로 그려졌다.
“밀어내지 마.”
주원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그의 입술이 혜수의 귀밑바닥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네가 도망치려 할 때마다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아. 차라리 내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더라도, 지금 이렇게 네 숨소리를 듣고 있는 게 내겐 유일한 구원이야. 나를 미워해도 좋고, 원망해도 좋아. 하지만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만 마.”
“너 바보야? 이러다 네가 먼저 죽는다고! 내 수명이 아니라 네 목숨이 깎여 나가고 있단 말이야!”
혜수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그의 희생을 알아차린 순간, 가슴을 채운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찢어지는 듯한 죄책감과 슬픔이었다. 회피하고 도망치려 했던 자신의 방어기제가 주원의 무조건적인 헌신 앞 무참히 깨져 나가고 있었다.
“죽지 않아.”
주원이 낮게 웃었다. 그의 입술이 혜수의 귓가에 부드럽게 머물렀다.
“너를 다시 내 품에 안을 수만 있다면, 이깟 수명 따위 몇 번이고 바칠 수 있어.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혜수야. 그냥 내 체온만 느껴.”
그의 손가락이 혜수의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며 머리를 단단히 받쳤다. 주원의 뜨거운 숨결이 혜수의 목덜미와 귓가를 집요하게 어루만졌다. 스킨십의 강도가 더해질수록 혜수의 머릿속에 울리는 공명의 경고음은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동시에 주원이 쏟아부어 주는 정서적 충만감은 마약처럼 달콤하게 뇌리를 마비시켰다.
바깥의 비바람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오직 주원의 낮고 다정한 음성과 그의 커다란 품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혜수는 그 달콤함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자신도 모르게 주원의 목을 끌어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바로 그 찰나였다.
*콰르릉!*
청우동 하늘을 완전히 찢어발기는 듯한 기괴한 천둥소리가 서점 전체를 강타했다.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우경서점을 둘러싸고 있던 조용한 빗소리의 리듬이 순식간에 깨어졌다. 서점의 목조 기둥들이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고, 사방의 유리창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지독하게 차가운 빙한(氷寒)의 살기가 서려 들었다.
“……!”
혜수의 몸이 본능적으로 굳어졌다. 이 한기, 이 압도적인 지배력의 주파수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은가의 수장이자 천기의 지배자, 은창현.
그가 마침내 청우동의 방어 영역을 뚫고 인위적인 폭풍우 주술을 살포한 것이다. 서점 밖의 빗방울들은 이제 부드러운 봄비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얼음 칼날처럼 변해 우경서점의 지붕과 벽을 사정없이 두들겨 댔다.
*쨍그랑!*
서점 한편에 있던 오래된 유리창 하나가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며 안으로 비산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바닥을 뒹굴며 서늘한 안개를 뿜어냈다. 은창현이 내린 한빙의 저주가 서점 내부로 침투하고 있었다.
가문에서 내린 신벌의 강도가 극에 달하자, 공명 계약의 반동 역시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윽……!”
주원의 입에서 마침내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온몸의 관절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연결된 감각을 통해 혜수의 뇌리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우화 주술의 수명 감소 반동이 은창현의 폭풍우와 결합하여 주원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려 하고 있었다.
주원의 안색이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갔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혜수의 뺨 위로 떨어졌다.
“주원아! 안 돼, 나를 놓아줘!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너 죽어!”
혜수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주원은 오히려 혜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아 자신의 가슴 아래에 묻었다. 그의 단단한 팔이 혜수의 양 귀를 꽉 막아 바깥의 파괴적인 천둥소리를 차단했다.
“습…… 하아……”
주원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가두기 위해 제 아랫입술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짓이겨진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려 턱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자신의 살을 찢어가면서까지 고통의 신음을 혜수에게 들려주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처절함이었다.
그는 온몸으로 은창현의 살상 주술과 수명 반동을 단독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주원의 등 뒤로 우경서점의 목조 천장이 쩍쩍 갈라지고 차가운 폭풍이 몰아쳤지만, 주원의 넓은 품속에 갇힌 혜수에게는 단 한 조각의 한기도, 단 한 톨의 고통도 닿지 않았다.
바깥은 종말과도 같은 아비규환의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으나, 주원이 만들어낸 단단한 육체의 결계 안쪽은 지독하리만치 따뜻하고 안전했다. 주원의 심장박동 소리만이 귓가를 가득 채우는,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달콤한 낙원.
혜수는 눈물을 흘리며 주원의 젖은 셔츠를 꽉 움켜쥐었다. 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치르고 있는 대가가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껴져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원은 그 순간에도 혜수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제 가슴을 더 깊숙이 밀착해 올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점을 집어삼킬 듯 날뛰던 폭풍우의 기세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유리를 깨부술 듯 내리치던 얼음 칼날 같은 빗소리도 점차 부드러운 빗소리로 돌아왔다. 은창현의 인위적인 주술이 청우동의 본래 결계에 밀려 힘을 잃은 모양이었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깨진 유리창 틈새로 푸르스름하게 스며들었다.
지독했던 밤이 지나가고 평온이 찾아온 서점 내부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창밖의 봄비는 이제 나지막한 속삭임처럼 차분하게 들려왔다.
“주원아……?”
혜수가 조심스럽게 주원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주원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의 단단했던 팔에서 서서히 힘이 풀리며, 그가 혜수의 몸 위로 무겁게 쓰러졌다.
“서주원!”
혜수가 놀라 그의 어깨를 붙잡아 밀어 올렸다.
그 순간, 주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열기가 혜수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마치 뜨겁게 달궈진 용광로를 만지는 듯한 엄청난 초열이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체온이 반동의 폭주로 인해 기괴하게 치솟고 있었다.
주원의 호흡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얇고 가팔랐다.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붉은 열꽃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입술은 피로 물든 채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하아…… 혜수…… 야……”
그가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가슴팍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들썩였다가 이내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심장 부근에서 기괴한 고열과 함께 무언가 타들어 가는 듯한 냄새가 미세하게 풍겼다.
혜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평소의 반동과는 격이 다른, 그의 생명선 자체가 완전히 끊어지려 하는 위험한 신호였다.
“안 돼…… 제발 안 돼……”
혜수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주원의 호흡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그리고 그의 가슴 안쪽에서 느껴지는 비정상적인 열기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주원의 젖은 밤색 셔츠 깃을 움켜쥐었다.
*투두둑!*
급박한 손길에 힘을 이기지 못한 밤색 셔츠의 단추 몇 개가 힘없이 뜯겨 나가며 서점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드러난 주원의 왼쪽 쇄골 아래 가슴팍.
그곳에는 7년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그리고 혜수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괴하고도 잔혹한 무언가가 새벽의 푸른 빛을 받아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요동치는 붉은 나비 문양의 거대한 낙인이었다.
주원의 가슴 피부를 뚫고 나와 마치 썩어 들어가는 상처처럼 붉게 진물러 터진 채, 기괴한 고열을 내뿜으며 고동치고 있는 잔혹한 성흔.
혜수의 두 눈이 공포와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주원이 7년 동안 숨겨온, 그리고 혜수의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지게 만들었던 ‘반동 독식’의 진짜 진실이었다.
봄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깨진 유리창 너머로 흘러든 푸른 새벽빛이 두 사람의 얼어붙은 시간 위를 소리 없이 적셔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