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어머나, 성안이 아주 소란스럽다 했더니…… 더러운 쥐새끼 한 마리가 대공가의 고귀한 핏줄을 기만하고 있었군요.”

보랏빛 실크 드레스 아래로 드러난 은색 구두가 대리석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또각, 또각.

규칙적이고 오만한 기품이 서린 발소리가 붉은 융단 위를 짓밟으며 다가왔다. 연분홍빛 장미 덩굴이 그려진 벽지 위로 차가운 에메랄드빛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새벽녘의 연보랏빛 안개를 뚫고 나타난 여인, 클로이 영애였다. 그녀의 입가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반쯤 내리뜬 눈동자만큼은 먹이를 노리는 독사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클로이는 난장판이 된 침실과, 내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에르하르트를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한 가닥 흘러내린 금발을 우아하게 쓸어 넘기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감히 천한 벨몬트의 양녀 주제에 대공가의 소공작 전하께 손을 대다니. 네 손때가 묻어 도련님의 고귀한 털이 더러워지지 않았더냐? 당장 그 더러운 손을 치우지 못할까!”

날카로운 음성이 귓가를 찔렀다.

나는 즉각 반응했다. 머릿속의 계산기가 팽팽 돌아가며 최적의 행동 양식을 도출해 냈다. 지금 여기서는 당당하게 맞서는 것보다, 철저하게 나약하고 상처받은 아기 역할을 연기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상대가 나를 만만하게 볼수록, 나중에 쳐놓은 덫줄에 걸려 넘어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

“히끅…….”

나는 어깨를 잘게 떨며 에르하르트의 등 뒤로 쏙 숨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에르하르트의 은빛 털을 꽉 움켜잡고,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그득히 채워 올렸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닭똥 같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투르르 흘러내렸다.

“레오니는…… 레오니는 그냥 오빠가 아파 보여서…… 흐아앙…….”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내어 울먹였다. 벨몬트 자작가에서 학대받던 시절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처럼, 겁먹은 아기 양의 흉내를 완벽하게 내보였다.

“하! 가증스럽게 울긴 왜 우느냐? 벨몬트 자작이 너를 어떻게 교육했기에 이리도 천박하게 굴어? 대공가에 굴러들어 와 기생충처럼 단물만 빨아먹으려 하는구나.”

클로이가 입술을 비틀며 다가오려 하자, 내 무릎에 누워 있던 에르하르트의 귀가 쫑긋 섰다.

크르릉-.

에르하르트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거친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꼬리를 팽팽하게 세운 그가 파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클로이를 노려보았다.

“비켜, 이 불쾌한 냄새 풍기는 여자야. 내 방에서 당장 꺼져.”

“도련님! 이 미천한 아이의 꾐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대공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틈을 타 이 쥐새끼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모릅니다!”

클로이는 에르하르트의 살기에 짐짓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으며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때,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집사 르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안경테를 척 고쳐 쓰며, 그의 눈동자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빛났다.

“클로이 영애, 선을 넘으시는군요. 이곳은 벨하르트 대공가의 동쪽 탑이자, 대공 전하의 허락하에 마련된 레오니 아가씨의 정식 처소입니다. 아무리 대공가의 귀한 손님이라 할지라도, 아가씨께 무례를 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르네의 음성은 낮고 단호했다. 평소의 기계적인 어조와 달리 명백한 경고의 뜻이 담겨 있었다.

“손님이라니요, 르네! 내가 미래의 이 성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잊었나요? 그리고 이 아이는 벨몬트 자작가에서 도망쳐 온 도망자에 불과합니다. 사교계에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대공가의 명예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클로이는 르네의 반박에 코웃음을 치며 드레스 자락을 펄럭였다. 그녀의 가슴팍이 분노로 가쁘게 들썩였다.

“대공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아이의 버릇을 고쳐 놓아야겠습니다. 마침 성 내부 지열 조절 문제로 온도가 낮아진 지하 저장 세탁실이 비어 있더군요. 대공가의 은혜를 입으려면 그에 걸맞은 노동을 해야지 않겠니? 가문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주제라면,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클로이의 눈 속에 비열한 탐욕과 음모가 번뜩였다.

지하 세탁실. 그곳은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지열 조절 장치의 오작동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얼어붙는 차가운 감옥 같은 장소였다. 나를 그곳에 가두어 얼려 죽이거나, 혹은 지독한 한기를 맛보게 해 제 발로 대공가를 나가게 만들 속셈이 틀림없었다.

르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곳은 현재 대공성 지하 지열 난방 기구의 일시적 압력 수치 상승으로 인해 통제된 구역입니다. 아가씨를 그곳으로 보내는 것은 위험합…….”

“아니요, 르네 아저씨.”

나는 슬그머니 르네의 소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젖은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다.

“레오니…… 할 수 있어요. 열심히 일해서 쓸모 있는 아이가 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버리지 마세요…….”

가장 비참하고, 가장 버림받기 싫어하는 가냘픈 아이의 목소리. 내 목소리가 방 안에 애처롭게 울려 퍼지자, 에르하르트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르네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좋아, 아주 완벽한 흐름이야.’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클로이가 나를 강제로 유폐시키는 모양새를 만들어야, 나중에 대공 아빠가 돌아왔을 때 그녀를 완벽하게 파멸시킬 핑계가 완성된다. 게다가 나는 이미 냉각실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스윽.

눈앞에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반짝이는 파스텔 핑크빛 시스템 창이 펼쳐졌다.

[시스템: '괴수 교감 장부' 활성화.] [경고: 지하 지열 난방 기구의 일시적 압력 수치 상승(92%) 및 지열 냉각석 표면의 미세한 크랙 발생 감지.]

이것은 일전에 장부를 통해 파악해 두었던 대공성 지하의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었다. 냉각실의 취약한 열순환 구조와 크랙 정보. 클로이는 나를 추운 곳에 가두어 괴롭히려고 하겠지만, 오히려 그곳은 내가 이 성의 지열 흐름을 통제하고 그녀의 목줄을 쥘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요새가 될 터였다.

게다가 내 주머니 속에는 르네가 이전에 건네주었던 성의 고대 지열 조절 우회 관로 도면과 보조 비상 키가 들어 있었다.

‘어디 마음대로 가둬 봐. 멍청한 독사 년이 제 발로 무덤을 파는구나.’

나는 겉으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훌쩍거리며, 에르하르트의 품에서 조심스럽게 떨어졌다. 떨어지는 찰나, 에르하르트의 뜨끈뜨끈한 뺨을 고사리손으로 슬쩍 문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화아악-.

순식간에 에르하르트의 높은 체열이 내 몸안으로 스며들며, 장부 사용으로 인해 떨어졌던 체온이 정상 수치인 36.5℃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온몸을 따스하게 감싸는 열기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이 아이가 스스로 가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기특한 태도군요.”

클로이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가거라, 레오니. 네가 벨하르트 가문에 어울리는 아이인지 그곳에서 증명해 보이려무나.”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내 등 뒤로 에르하르트의 짓이겨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오니! 가지 마! 왜 저 여자 말을 듣는 거야!”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르네 역시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나를 배웅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빛에는 이미 나를 향한 전폭적인 신뢰와, 클로이를 향한 차가운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어둡고 가파른 지하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성의 상층부와는 달리, 이곳은 음습한 한기와 눅눅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박, 사박.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소리가 적막한 지하 통로에 울려 퍼졌다.

머릿속에서 장부가 실시간으로 경고음을 울려댔다.

[경고: 주변 온도가 급격히 하강 중입니다. 현재 온도 4.2℃.] [알림: 지하 냉각 배관로의 실시간 가스 밸브 압력이 위험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조율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고대 지열 조절 우회 관로 도면을 만지작거렸다. 르네가 준 보조 비상 키 역시 차가운 금속성 촉감을 자랑하며 내 손끝에 닿았다.

‘지열 냉각석의 크랙이라…… 클로이가 나를 가둔 뒤에 이 밸브를 조금만 손보면, 냉각실 전체가 순식간에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겠지. 하지만 내가 우회 밸브를 열어 버리면, 도리어 이 성 전체의 뜨거운 지열 수증기가 이 세탁실을 거쳐 클로이의 처소로 역류하게 만들 수 있어.’

적들의 비열한 괴롭힘 시도에도 내 심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분하게 고동쳤다. 오히려 상대방을 낚아채서 단숨에 파멸시키기 위한 완벽한 그물을 묵묵히 펴는 수싸움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설계되고 있었다.

마침내 지하 저장 세탁실의 육중한 철문 앞에 도달했다.

차가운 서리가 하얗게 끼어 있는 철문은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클로이의 사주를 받은 덩치 큰 하녀가 내 등 뒤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아가씨. 대공가의 가문복들이 가득 쌓여 있으니, 오늘 밤 안으로 전부 깨끗하게 정리해 두셔야 할 겁니다.”

“응…… 열심히 할게요…….”

나는 주눅 든 꼬마의 목소리로 대답하며, 조용히 차가운 지하 세탁 냉각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닥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사방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 감옥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내가 방 한가운데로 발을 들이며 무거운 가문복 상자 쪽으로 다가간 순간.

철컥-!

등 뒤에서 둔탁하고 묵직한 쇠로 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사방을 무겁게 울렸다.

쿵, 쿵, 쿵!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냉각실 안의 유일한 빛줄기마저 차단되며 완벽한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호호호, 거기서 꽁꽁 얼어붙어서 반성이나 하라고, 쥐새끼 같은 년.”

문 너머로 하녀의 비열한 비웃음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려왔다.

완전한 고립. 그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혹독한 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내 입꼬리는 서서히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스윽.

어둠을 밝히는 파스텔 핑크빛 시스템 장부가 내 눈앞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호호호, 거기서 꽁꽁 얼어붙어서 반성이나 하라고, 쥐새끼 같은 년.”

문 너머로 하녀의 비열한 비웃음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려왔다.

완전한 고립. 그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혹독한 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내 입꼬리는 서서히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스윽.

어둠을 밝히는 파스텔 핑크빛 시스템 장부가 내 눈앞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괴수 교감 장부' 활성화.] [경고: 주변 온도가 급격히 하강 중입니다. 현재 온도 4.2℃.] [알림: 지하 냉각 배관로의 실시간 가스 밸브 압력이 위험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조율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고대 지열 조절 우회 관로 도면을 만지작거렸다. 르네가 준 보조 비상 키 역시 차가운 금속성 촉감을 자랑하며 내 손끝에 닿았다.

‘어디 마음대로 가둬 봐. 멍청한 독사 년이 제 발로 무덤을 파는구나.’

나는 겉으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훌쩍거리며, 에르하르트의 품에서 조심스럽게 떨어졌다. 떨어지는 찰나, 에르하르트의 뜨끈뜨끈한 뺨을 고사리손으로 슬쩍 문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화아악-.

순식간에 에르하르트의 높은 체열이 내 몸안으로 스며들며, 장부 사용으로 인해 떨어졌던 체온이 정상 수치인 36.5℃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온몸을 따스하게 감싸는 열기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이 아이가 스스로 가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기특한 태도군요.”

클로이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가거라, 레오니. 네가 벨하르트 가문에 어울리는 아이인지 그곳에서 증명해 보이려무나.”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내 등 뒤로 에르하르트의 짓이겨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오니! 가지 마! 왜 저 여자 말을 듣는 거야!”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르네 역시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나를 배웅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빛에는 이미 나를 향한 전폭적인 신뢰와, 클로이를 향한 차가운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어둡고 가파른 지하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성의 상층부와는 달리, 이곳은 음습한 한기와 눅눅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박, 사박.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소리가 적막한 지하 통로에 울려 퍼졌다.

머릿속에서 장부가 실시간으로 경고음을 울려댔다.

[경고: 주변 온도가 급격히 하강 중입니다. 현재 온도 4.2℃.] [알림: 지하 냉각 배관로의 실시간 가스 밸브 압력이 위험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조율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고대 지열 조절 우회 관로 도면을 만지작거렸다. 르네가 준 보조 비상 키 역시 차가운 금속성 촉감을 자랑하며 내 손끝에 닿았다.

‘지열 냉각석의 크랙이라…… 클로이가 나를 가둔 뒤에 이 밸브를 조금만 손보면, 냉각실 전체가 순식간에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겠지. 하지만 내가 우회 밸브를 열어 버리면, 도리어 이 성 전체의 뜨거운 지열 수증기가 이 세탁실을 거쳐 클로이의 처소로 역류하게 만들 수 있어.’

적들의 비열한 괴롭힘 시도에도 내 심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분하게 고동쳤다. 오히려 상대방을 낚아채서 단숨에 파멸시키기 위한 완벽한 그물을 묵묵히 펴는 수싸움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설계되고 있었다.

마침내 지하 저장 세탁실의 육중한 철문 앞에 도달했다.

차가운 서리가 하얗게 끼어 있는 철문은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클로이의 사주를 받은 덩치 큰 하녀가 내 등 뒤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아가씨. 대공가의 가문복들이 가득 쌓여 있으니, 오늘 밤 안으로 전부 깨끗하게 정리해 두셔야 할 겁니다.”

“응…… 열심히 할게요…….”

나는 주눅 든 꼬마의 목소리로 대답하며, 조용히 차가운 지하 세탁 냉각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닥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사방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 감옥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내가 방 한가운데로 발을 들이며 무거운 가문복 상자 쪽으로 다가간 순간.

철컥-!

등 뒤에서 둔탁하고 묵직한 쇠로 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사방을 무겁게 울렸다.

쿵, 쿵, 쿵!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냉각실 안의 유일한 빛줄기마저 차단되며 완벽한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호호호, 거기서 꽁꽁 얼어붙어서 반성이나 하라고, 쥐새끼 같은 년.”

문 너머로 하녀의 비열한 비웃음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려왔다.

완전한 고립. 그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혹독한 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내 입꼬리는 서서히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스윽.

어둠을 밝히는 파스텔 핑크빛 시스템 장부가 내 눈앞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후우-, 입김을 불 때마다 하얀 입바람이 솜사탕처럼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내 눈앞에 떠오른 분홍빛 홀로그램 장부 덕분에 주변이 은은한 에메랄드빛 광채로 물들었다.

“추워라…… 에르하르트 오빠 덕분에 체온을 채워두길 잘했네.”

덜덜 떨리는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나는 벽면으로 다가갔다. 장부의 안내선이 가리키는 곳은 세탁실 구석, 거대한 세탁조 뒤편에 숨겨진 낡은 철제 배전반이었다.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배전반 표면 위로 하얀 서리가 가시처럼 돋아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르네가 건네준 고대 지열 조절 우회 관로의 보조 비상 키를 꺼냈다.

키리릭, 칵-.

오래되어 뻑뻑한 열쇠구멍에 비상 키를 밀어 넣고 돌리자,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녹슨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쪽에는 복잡하게 얽힌 구리 파이프들과 푸른빛을 내뿜는 마력 제어 밸브들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었다.

[시스템: '그레이시어 성 지하 지열 난방 기구'의 세부 상태를 분석합니다.] [- 현재 지열 냉각석 표면 크랙 진행도: 14.8%] [- 냉각 배관 압력 수치: 94.2% (위험 단계)] [- 경고: 이대로 방치할 경우, 30분 이내에 배관이 파열되어 영하 40도의 극저온 냉기가 세탁실 내부로 급속히 유출됩니다.]

“영하 40도라니, 완전히 사람을 얼려 죽일 작정이었구나, 클로이.”

차가운 실소가 흘러나왔다. 클로이는 내가 이곳에서 얼어 죽거나, 혹은 저체온증으로 실신해 대공가의 무능한 짐덩어리로 낙인찍히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벨하르트 대공성의 심장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도면을 펼쳐 장부의 실시간 연산 데이터와 대조했다.

“지열 냉각석의 크랙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를 우회 관로로 돌리고…… 이 3번 보조 밸브를 개방하면…….”

내 가냘픈 손가락이 차가운 밸브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끝이 닿자마자 얼음장 같은 냉기가 전해져 와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려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스르륵, 틱.

밸브가 부드럽게 돌아가며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관 내부에서 웅웅거리는 진동과 함께, 푸른빛의 냉기 흐름이 급격히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갑자기 배전반 너머 깊은 어둠 속에서, 기이할 정도로 붉고 선명한 안광 두 개가 번뜩였다.

“……!”

숨이 턱 막혔다. 단순한 기계 장치의 소음이 아니었다. 젖은 가죽이 쓸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짤랑이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스스스스…….

세탁실 가장 깊은 구석, 만년설이 쌓인 통풍구 아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서리 서린 공기 사이로,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시스템 임시 경보!] [돌발 상황: 지열 폭등과 냉각석 크랙의 여파로 휴면 상태에 있던 '지하의 맹수'가 각성했습니다.] [개체명: 심연의 서리 늑대 (빙결 속성 극대화 마수)] [현재 스트레스 지수: 130% (폭주 및 아사 직전 상태)]

으르르르릉-.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사나운 괴수의 이빨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드러났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방금 전의 추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내 몸의 온도가 순식간에 영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턱끝이 사정없이 덜덜 떨렸고, 시야가 흐려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문은 밖에서 굳게 잠겼고, 눈앞에는 이성을 잃은 거대한 마수가 붉은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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