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색 스펙트럼이 함교의 전면 가상 패널을 유기적인 혈류처럼 뒤덮었다.

성좌 아폴리온이 우주 전역에 선포한 실시간 현상수배 코덱. 그 고밀도 데이터 패킷 안에는 강태오, 엘레나, 카일의 유전적 나선 구조와 뇌신경 세포의 고유 고주파 방출 주파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하학적 난수로 변환되어 명멸하고 있었다. 은하의 물리적 지배자들이 그들을 단순한 침입자가 아닌, 우주의 인과율을 교란하는 ‘급진적 반란자’로 규정했음을 알리는 차가운 선언이었다.

“우리 뉴런 주파수가…… 은하 전역에 현상수배로 뿌려지고 있다고?”

카일의 냉소적인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의 유전 정보가 성좌들의 거대한 연산망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은, 이 우주 어디를 가더라도 물질적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발할 수 있다는 공포를 의미했다.

“아카샤, 현 주파수 전파 경로를 역추적해 차단할 수 있나?”

태오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건조했다. 그의 왼손은 이미 손목 너머까지 회백색의 무기질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그는 그 손을 가상 패널 밑바닥의 사각지대에 교묘히 숨겨두고 있었다.

[부정적입니다. 아폴리온의 광대역 통신망은 가이아 성계의 중력 렌즈 효과를 매개체로 삼아 다차원 공간에 위상 편향 방식으로 방출되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전자기 차폐로는 파형의 확산을 차단할 수 없습니다.]

아카샤의 음성이 고요한 함교의 공기를 차갑게 긁었다.

“그럼 우린 꼼짝없이 사냥개들의 먹이가 되겠네? 우주로 나오자마자 사형 선고라니, 아주 훌륭한 계산이네, 함장.”

카일이 신경질적으로 실소를 흘리며 콘솔을 거칠게 두드렸다.

태오는 그런 카일의 바이탈 사인을 띄워둔 서브 모니터를 흘낏 보았다. 심박수 114, 호흡 수축기 혈압 145. 극도의 불안 상태다. 태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카일을 제압하며, 함선의 주 전원 제어 패널로 오른손을 뻗었다.

“아직 완전히 추적당한 것은 아니다. 카일, 네가 남겨두었던 그 조잡한 우회로를 쓸 때가 되었군.”

“뭐?”

“히페리온 주전력 보조 라인 끝단, 전자기 결선 내부의 2차 주파수 변조 오류 흔적. 너는 그것을 ‘K-09-LOYD’라는 백도어로 명명하고 본선에 잠입할 통로로 남겨두었지.”

태오의 지적에 카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이 완벽하게 숨겼다고 믿었던 시스템 침투 경로가 이미 태오의 손바닥 안에서 분석 완료되어 있었던 탓이다.

“그 내부 변조 오류의 주파수 대역을 역이용한다. 아카샤, 해당 보조 라인의 전력 주파수를 히페리온의 주 반응로 열 방출 편향 장치와 동기화해라. 우리 유전 주파수와 결합된 탐지 신호가 유입되는 순간, 그 백도어의 차폐 피드백 루프를 폭주시킨다.”

[명령을 수용합니다. 전자기 결선 내부의 변조 오류 코드를 역위상으로 가공, 엔진 노즐의 열역학 스펙트럼과 동기화합니다. 수배 식별망에 대한 일시적 위장막이 형성됩니다.]

“이걸로 약 40분간의 관측 지연을 확보할 수 있다.”

태오가 가상 패널을 밀어내며 좌표를 입력했다.

“목표는 가이아 행성의 궤도 외곽에 방치된 구인류 우주 정거장 유적, ‘게라이스’ 파편 군락이다. 그곳의 고밀도 잔해 지대로 침강한다.”

히페리온의 주 추진기가 소리 없는 푸른빛을 뿜어내며 기동했다. 함선은 저궤도의 중력 제동을 이겨내고, 거대한 우주의 무덤이라 불리는 고대 정거장 게라이스의 잔해 속으로 은밀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사방을 뒤덮은 부서진 장갑판과 동결된 구인류의 산소 탱크들이 히페리온의 기하학적 윤곽을 기적적으로 가려주었다.

***

게라이스 유적 연구소의 지하 실험 장비 도크는 절대 영도에 가까운 냉기와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은백색의 성에가 서린 격벽들 사이로 히페리온의 탐사 드론들이 푸른색 레이저 스캔 광선을 사방으로 투사했다.

태오는 가벼운 우주복 헬멧 너머로 들어오는 산소 농도 센서를 주시하며 해독 장치를 조작했다. 그의 왼팔은 이제 팔꿈치 바로 밑 부근까지 감각이 없었다. 미세한 칼슘 이온 농도의 비정상적 급상승. 우뇌 동기화율이 28.9%에 도달하며 초래된 물리적 대가였다.

그가 게라이스 유적을 첫 번째 도피처로 선택한 것은 단순히 숨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과거 구인류의 중앙 데이터베이스 파편을 검출했습니다. 데이터 복원을 개시합니다.]

아카샤의 연산 링이 격렬하게 회전하며 흐릿한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웠다. 노이즈 가득한 고대 문자들 사이로 태오가 그토록 찾던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초전도 고유동 액상 젤(Superconducting Hyper-fluidic Gel) 레시피.’

그것은 과거 구인류가 성좌의 인과율을 연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뇌세포의 급격한 유기적 석화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 설계한 특수 나노 냉각 유체였다. 신경세포의 시냅스 사이에 침투하여 양자 중첩 마찰로 생기는 초고열을 절대 냉각으로 제어하고, 석화의 진행을 영구히 정지시키려는 목적으로 개발되던 극비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

태오는 숨을 죽인 채, 그 극비 개발 로그 파일의 원 데이터를 자신의 개인 보안 등급 레벨 0 디렉터리로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가상 화면에 표시되는 다운로드 진행률이 40%, 70%, 100%를 채워갔다.

‘이것만 있다면…… 내 뇌의 석화를 멈출 수 있다.’

그는 데이터를 안주머니의 휴대용 드라이브에 은밀히 백업하며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기계적 금속음이 들렸다.

“그걸 숨긴다고 해서 당신의 왼손이 다시 살아나진 않아, 함장.”

엘레나였다. 그녀는 기계 수리용 렌치를 쥔 채, 태오의 감춰진 왼팔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슬픔과 분노가 기하학적 파형처럼 뒤섞여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엘레나.”

태오가 무표정하게 대응하며 왼손을 우주복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시치미 떼지 마! 벌써 좌측 운동 피질 신호 효율이 30% 이상 떨어졌잖아. 내 엔지니어링 패널에 잡히는 당신의 바이탈 사인 보정 수치가 다 말해주고 있어. 아카샤와의 동기화율을 높일 때마다 당신 몸이 돌로 변해가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엘레나가 태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우주선 내부의 산소 순환기가 뿜어내는 가느다란 바람 소리만이 유일한 생명의 증거였다.

“함장 본관이 고장 나버린 냉동 함선은 우리에게 철창일 뿐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우릴 살리겠다고 혼자 돌덩이가 되는 게 당신이 말하는 ‘인류의 재건’이야? 난 그런 통제된 무덤 속에서 사느니, 그냥 우주 먼지가 되는 게 나아. 우릴 좀 믿어봐, 제발.”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과거 가이아 심해 방주에서 자신을 믿고 죽어갔던 옛 함대원들의 마지막 비명이 노이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간은 불확실한 변수다. 감정은 계산을 흐리고, 신뢰는 배신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이 태오가 지닌 지독한 생존자 증후군의 본질이었다.

하지만 엘레나의 젖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단단히 얼어붙어 있던 불신의 벽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태오가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경고. 초고밀도 공간 왜곡 스펙트럼 검출.]

아카샤의 붉은 경고등이 지하 도크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성좌 아폴리온의 12km급 정십이면체 봉쇄 요새가 게라이스 정거장 상공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인위적인 주 차원 압착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지하 도크의 거대한 강철 벽면들이 삐비빅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안쪽으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소리가 없는 진공의 압착. 물리적 장갑판이 기하학적으로 뒤틀리며 공간 자체가 나선형으로 수축하는 가공할 권능이었다.

“벽이…… 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중력 제어 장치가 역전되고 있어!”

엘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제어 콘솔을 붙잡았다.

정십이면체 요새가 방출하는 차원 압착장은 게라이스 유적 전체를 통째로 짓눌러 원자 단위로 분쇄하려 하고 있었다. 탈출구는 이미 왜곡된 중력의 소용돌이에 갇혀 폐쇄된 상태였다.

“아카샤, 탈출 경로 연산!”

태오가 소리쳤다.

[불가합니다. 출구 영역의 공간 곡률이 무한대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가용 가능한 추력으로는 이 중력 붕괴장을 돌파할 수 없습니다. 탈출 확률 0.001% 미만.]

카일이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끝났어…… 차원 압착이야. 성좌놈들이 우리를 아예 지워버리려는 거라고!”

그 순간, 태오의 우뇌 속에서 번쩍이는 스펙트럼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기억 한구석, 아카샤의 동기화 로그 속에 계속해서 노이즈처럼 기록되어 있던 무의미해 보였던 수치.

‘0.003초 단위 우주 상대론적 중력 지연 잔재 데이터.’

그것은 단순한 연산 오류가 아니었다. 아폴리온이 가이아 성계의 질량을 제어하고 차원을 압착할 때 발생하는, 아주 미세한 물리적 위상 동기화의 지연 오차였다. 완벽해 보이는 기하학적 포식자의 권능에도, 상대성 이론에 따른 광속 지연으로 인한 ‘0.003초의 틈새’가 존재했던 것이다.

“아카샤, 0.003초의 위상 마이너스 변형 오차 틈을 해킹해라!”

태오가 굳어버린 왼손을 억지로 가상 패널 위에 올려놓고, 남은 오른손으로 좌표를 급격히 수정했다.

“그 지연 시간 동안 아폴리온의 압착막은 물리적으로 열려 있다. 그 틈새 좌표를 유적 출구 분사 램프의 자기 인장력 장치와 동기화시켜라!”

[연산을 시작합니다…… 인과율 파형 분석 완료. 아폴리온의 인위적 차원 격자 수축 주기에서 0.003초의 동기화 오차를 감지했습니다. 위상 마이너스 변형 틈새 확보.]

태오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지금이다! 유적 출구 분사 램프, 최대 인장력 작동! 히페리온, 전 역방향 벡터 분사!”

콰아아앙-!

공기가 없는 진공 속이었기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함선 전체가 찢어질 듯한 기하학적 진동이 승무원들의 뼈마디를 뒤흔들었다.

히페리온은 아폴리온의 압착장이 닫히기 직전, 정확히 0.003초 동안 발생한 공간의 미세한 위상 틈새를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마치 단단한 바위 틈새를 뚫고 나가는 액체처럼, 함선은 찌그러져 가는 게라이스 유적의 도크를 초고속으로 탈출해 칠흑 같은 우주 공간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압착장이 완전히 닫히며 고대 유적 게라이스는 흔적도 없이 압축되어 한 점의 빛으로 사라졌다. 그 가혹한 공간 수축 지옥 속에서, 단 하나의 미시적 시간 오차 데이터를 계산해 살아남은 유일한 함선이 우주공간에 기하학적인 궤적을 그리며 솟구쳤다.

“하…… 하하…… 살아남았어.”

카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엘레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태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태오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갑자기 그의 시야가 붉은색 노이즈로 가득 차며 차갑게 얼어붙었다. 왼팔을 타고 올라온 회백색의 석화가 이제 그의 왼쪽 어깨를 넘어 목덜미까지 급격히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삐- 삐- 삐-

[경고. 사령관의 우뇌 동기화율 임계치 초과. 현재 동기화율 38.5%.]

[좌측 운동 피질 완전 마비 및 해마 영역의 칼슘 이온 농도 과포화 상태 진입.]

아카샤의 홀로그램 링이 태오의 머리 위에서 거칠게 회전하며 붉은색 카운트다운을 띄웠다.

[경고. 가용 뇌 변환율 점유 레벨 한계 돌파. 영구적인 해마 마비로 인한 유기적 자아 완전 유실 및 뇌사 상태 진입까지 남은 시간……]

[00:03:14]

태오의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시야에 비친 엘레나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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