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카일 로이드의 이식 인터페이스 역해킹 처리를 완전히 봉인하자마자, 가이아 심해 암흑 해구 전구역을 수압 압착식으로 정밀 타격하는 바알제불 본대의 극대 중력파 주파수 스캐너 발진이 감지되었다.

붉은 비상등이 기하학적인 각도로 교차하며 히페리온의 조종석을 피빛으로 물들였다. 콘솔의 침묵을 깨고 쏟아지는 경고음은 가청 영역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수만 미터 위의 해수층 전체가 거대한 질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침하하는 듯한 물리적 압박감이 선체 전반을 타고 흘렀다.

태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뇌의 동기화 단자에서 뻗어 나온 수천 개의 광섬유가 그의 신경계를 자극했다. 뇌의 심부에서 칼슘 이온들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며, 우측 전두엽 부근이 서서히 진흙처럼 무거워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카샤의 역해킹 부하가 만들어내는 불가피한 신경계의 석화 현상이었다. 그러나 태오는 그 차가운 무감각을 의지로 억누르며 전방 가상 투영창을 노려보았다.

“엘레나, 주전력 보조 라인 끝단 전계 변동 추이를 보고해.”

태오의 목소리는 극도로 낮고 평탄했다. 죽음의 압력이 턱밑까지 차오른 순간임에도, 그의 바이탈 사인 패널은 소름 끼칠 정도로 규칙적인 상하 파동을 그리고 있었다.

엘레나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지도 못한 채 콘솔의 기계식 터치패드를 두드렸다.

“보조 라인 끝단에서 미세한 2차 주파수 변조 오류가 계속 잡혀요! 전자기 결선 내부 0.04밀리미터 구리선 틈새에서 비정상적인 유도 전류가 발생하고 있어요. 이건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에요!”

태오의 시선이 구속구에 묶인 카일 로이드에게로 향했다. 카일의 호흡은 가빴고, 그의 뇌파 스펙트럼은 극도의 공포와 함께 미세한 동기화 주파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태오는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히페리온이 심해에 은거해 있는 동안 발생했던 그 미세한 주파수 왜곡의 정체. 그것은 외부의 첩자가 아닌, 과거 카일 로이드가 함선 하수관의 동적 배관을 타고 침입할 때 심어 두었던 물리적 우회 침투로의 잔재였다. 주전력 보조 라인 끝단의 전자기 결선 틈새를 통해, 카일의 이식용 나노 인터페이스가 히페리온의 내부 전력망을 역방향으로 갉아먹으며 성좌의 탐지망에 미세한 좌표 힌트를 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카샤, 해당 노드의 통전 경로를 즉각 물리 차단해라. 회로 패턴을 병렬에서 직렬로 강제 전환.”

= 승인. 보조 라인 E-12 구역의 물리적 솔레노이드 차단기를 작동합니다. =

철컥, 하는 기계적 마찰음과 함께 콘솔 한구석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와 동시에 카일의 머리칼 끝에 흐르던 미세한 정전기적 푸른 빛이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카일은 짧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함선의 주파수 변조 오류가 수치상 완전한 제로(0)로 수렴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류를 잡았다고 해서 이미 시작된 성좌의 정밀 타격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 경고. 바알제불 본대의 극대 중력파 주파수 스캐너 발진 완료. 가이아 해구 상층부의 중력 상수가 정상치 대비 420%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수압 압착 영역이 매초 150미터 속도로 하강 중입니다. 현재 외장 압착 한계값인 1200기압 도달까지 남은 시간, 72초. =

가이아 행성의 1만 미터 심해는 이제 완벽한 죽음의 덫으로 변하고 있었다. 상공에서 내리누르는 기하학적 성좌의 의지는 바다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압 프레스로 만들고 있었다.

“태오! 추진 제트를 최대 출력으로 올려야 해요!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장갑이 찢겨 나갈 거라고요!”

엘레나가 소리쳤다. 제어판의 압력 게이지가 위험 수위인 적색 영역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었다.

“아니.”

태오는 차갑게 거절했다.

“추진 제트를 점화하는 순간, 분사 노즐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열적 시그니처와 캐비테이션 소음이 성좌의 격점 검출기에 실시간 좌표를 제공하게 된다. 우리는 열을 내지 않고 움직인다.”

“미쳤어요? 엔진을 끄고 어떻게 이 압력 속에서 기동을 하겠다는 거예요?”

“추진 제트를 완전히 차단해라. 아카샤, 밸러스트 탱크의 수동 배출 밸브를 개방하고 수직 자유 낙하 벡터를 산출해라.”

= 수동 밸러스트 탱크 1번부터 6번까지 배수 개시. 중력 가속도 및 해수 밀도 구배에 따른 물리 하강 경로를 설정합니다. =

히페리온의 주 추진기가 일제히 꺼졌다. 함내를 채우고 있던 중저음의 엔진 진동이 사라지자,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적막이 찾아왔다. 빛 한 점 없는 심해의 암흑 속에서, 거대한 강철 방주는 오직 중력과 자체 질량의 수직 낙하 힘만으로 수직 가중 낙하를 시작했다.

수직 가속도 각도는 정확히 84.7도.

태오는 아카샤의 양자 연산 패널을 눈으로 좇았다. 전방 가상 디스플레이에는 성좌 바알제불이 방출한 초음파 격점들이 붉은 격자망 형태로 심해를 조밀하게 훑고 내려오는 모습이 표시되고 있었다. 격자망의 틈새는 좁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수평 보조 타면, 서보모터 3%만 우현으로 미세 조정.”

태오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우뇌의 신경 신호만으로 타면을 제어했다.

히페리온은 추진력 없이, 오로지 물의 저항과 자체 낙하 각도만을 이용해 교묘하게 초음파 격점들의 교차 지점을 비껴갔다. 1200기압의 극심한 외장 압착 한계 속에서 함선의 장갑판이 찌그러지며 ‘끄으으윽’ 하는 기분 나쁜 금속성 비명을 질렀다. 미세한 수압의 왜곡이 선체를 흔들 때마다, 엘레나는 숨을 죽인 채 계기판의 변형률 수치를 응시했다.

초능력이나 신비로운 마법은 없었다. 오로지 유체역학과 중력 가속도, 그리고 기계공학적 한계 수치 내에서의 정밀한 낙하 제어만이 성좌의 다차원 감시망을 기만하는 유일한 열쇠였다.

그 순간, 태오의 우뇌 깊은 곳에서 아카샤의 경고 연산 로그가 흐릿하게 반짝였다.

= 분석 보고. 상층 암역에 배치된 성좌의 고정 위성으로부터 유출되는 중력 연산 가동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양자 계산 코어의 연산 흐름에서 0.003초 단위의 미세한 상대론적 중력 지연 잔재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검출됩니다. =

태오는 그 데이터를 주시했다. 0.003초. 일반적인 물리학에서는 오차 범위로 치부될 만한 극미한 시간차였지만, 다차원 공간을 제어하는 성좌들의 인과율 연산 체계에서는 명백한 계산 마찰 흔적이었다.

‘성좌들의 중력 그물망 역시 완벽하게 매끄러운 것은 아니군.’

태오는 그 0.003초의 연산 뒤틀림 연쇄 마찰 데이터를 아카샤의 임시 메모리에 격리하여 저장하도록 지시했다. 이 데이터는 훗날 가이아 행성의 대기권을 돌파할 때, 성좌들이 쳐둔 중력 검위층의 위상 틈새 좌표를 역계산해낼 소중한 단서가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위기가 발등에 떨어져 있었다.

“태오!”

엘레나가 다급하게 콘솔의 홀로그램을 확대했다.

“하강 유역 끝단이 막혀 있어요! 이대로 계속 낙하하면 해구 저면의 열수 분출구 암반 지대에 그대로 충돌해요. 게다가 열역학 노즐 부근의 변형 수치가 임계값을 초과했습니다. 장갑 외벽의 열 응력 피로도가 한계에 도달했어요. 이 상태에서 급속 우주 발진을 결정했다간, 추진기의 점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노즐이 함선 내부로 역폭발할 겁니다!”

그녀는 태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함께 진심 어린 우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뇌… 아카샤와의 동기화율이 벌써 18%를 넘었어요. 이 속도로 연산을 계속 강행하면, 대기권을 벗어나기도 전에 당신의 우뇌 신경망 전체가 회백색 돌덩어리로 변해버릴 거라고요! 제발 멈춰요. 우회로를 찾거나, 일단 해구 바닥에 안착해서 열을 식혀야 해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떼어내었다. 그의 시선은 엘레나의 얼굴이 아닌, 그녀의 등 뒤 허공에 떠 있는 가상 바이탈 패널과 함선 잔여 산소 수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우회로는 없다.”

태오의 목소리는 차가운 금속판이 맞물리는 소리 같았다.

“이 행성의 산소 재순환 장치의 수명은 앞으로 140시간을 넘지 못해. 해구 바닥에 안착하는 순간, 우리는 성좌의 압착 프로토콜이 끝날 때까지 천천히 질식사할 뿐이다.”

“하지만 당신의 목숨은요? 당신이 돌이 되어 죽으면 이 함선은 누가 이끌어요?”

태오는 대답 대신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이아 행성의 궤도상에서 성좌들의 다차원 포격에 증발해 가던 구인류 함대의 마지막 전함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던 동료들의 비명과, 이내 찾아왔던 우주의 영원한 정적. 가이아의 푸른 하늘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심해의 고치 속에서 먼지가 되어버린 대원들의 동결된 시선이 그의 안구 내막에 선명하게 투영되는 듯했다.

인간은 나약하다. 감정에 휘둘리고, 공포에 질려 타협을 갈망한다. 엘레나도, 침입자였던 카일도 결국은 생존이라는 가치 앞에서 흔들리는 유기체에 불과했다. 그들을 구하고 인류의 제국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자신마저 완벽한 기계적 합리성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나의 전두엽 뇌세포 4.2%의 영구 석화와, 히페리온의 대기권 돌파 성공 확률 94.7%.”

태오가 잔학하리만치 차분한 어조로 기하 수치를 읊조렸다.

“이것이 내가 산출한 가장 합리적인 교환비다. 엘레나, 네가 해야 할 일은 감상에 젖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노즐의 열역학적 팽창 계수를 보정하는 윤활 압력을 수동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엘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지만, 태오의 눈빛에 서린 강박적인 확신과 차가운 결의를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듯 이내 콘솔로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요. 대신 노즐이 터져서 우주 먼지가 되어도 날 원망하지 말아요.”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가이아의 중력 가속 항을 역계산한 궤도 포물선을 산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심해 1만 미터의 1200기압. 이 압도적인 물리적 압착력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이 초고압의 해수는 히페리온을 우주로 쏘아 올릴 거대한 스프링과 같은 탄성 매개체로 전환될 수 있었다.

“아카샤, 공간 탄성 기동 방정식 전개.”

= 공간 탄성 기동 방정식을 수립합니다. 히페리온 외장 장갑판의 유기적 수축 압력을 운동 에너지 변환 공식 $\Delta E = \int (P_{ext} - P_{int}) dV$ 에 대입. 척력 보강판의 물리적 결속을 해제하여 수압의 복원력을 역방향 추진력으로 치환합니다. =

태오는 굳어가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석화가 진행되어 회백색으로 변해가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단단히 움켜쥔 채, 콘솔 전면에 돌출된 수직 부스터 도화 점화 라인의 물리적 아날로그 스위치를 힘껏 움켜쥐었다.

이 마지막 점화는 디지털 신호가 아닌, 제어자의 물리적인 결속을 필요로 했다. 성좌의 전자기 해킹이 도달할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은 기계식 전선과 인간의 손길뿐이기 때문이었다.

“전원, 충격 대비.”

태오의 선언과 동시에 히페리온이 해구 최저점의 열수 암반 지대 바로 위, 수십 미터 고도까지 내려앉았다.

선체를 내리누르는 수압은 정확히 1220기압. 장갑판은 이미 한계 이상으로 압착되어 활처럼 휘어 있었다.

태오가 거친 호흡과 함께 물리 스위치를 아래로 꺾었다.

쿠우우웅-!

소리 없는 진동이 히페리온의 척추를 관통했다.

점화된 부스터의 초고온 가스가 외벽의 유압 밸러스트 탱크로 역류하며, 순간적으로 기화된 초고압 증기가 선체 외곽을 감쌌다. 그 순간, 압착되어 있던 외장 장갑판이 탄성을 발휘하며 원래의 기하학적 구조로 급격히 복원되었다.

1200기압의 해수가 복원되는 장갑판의 척력에 밀려나며 함선 후방으로 가공할 만한 제트 유동을 형성했다. 마치 심해의 거대한 고래가 꼬리를 치며 도약하듯, 히페리온은 단 한 방의 추진 점화만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수직 상승 벡터를 얻어냈다.

“상승 속도, 마하 1.2… 2.5… 계속 증가 중!”

엘레나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초능력이나 가상의 에너지가 아니었다. 오로지 1200기압이라는 물리적 수압의 흐름과 장갑판의 탄성 저력을 정교하게 변환하여 뿜어낸 정밀 공학의 쾌감이었다. 성좌 바알제불이 보낸 중력파 스캐너는 텅 빈 해구 바닥만을 강타했을 뿐, 광속으로 수직 상승하는 히페리온의 자취를 잡지 못했다.

가이아의 검은 바다가 아래로 빠르게 멀어졌다. 수압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선체의 압박감도 덜해졌고, 이내 히페리온은 해수면을 뚫고 대기권 상층부를 향해 솟구치기 시작했다.

태오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흐려졌다. 우뇌의 석화율 수치가 21.4%를 가리키며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러나 전방의 가상 스크린에 펼쳐진 가이아의 대기권 경계선은 아름답고도 잔혹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해구 탈출 성공! 대기권 돌파 궤도 진입!”

엘레나가 환호하려던 순간, 콘솔의 주 장갑 전면 센서가 일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주파수의 경고음이 조종석을 메웠다.

태오는 흐려지는 초점을 간신히 맞추며 고해상도 측정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은하의 푸른 별빛을 배경으로, 가이아 행성의 궤도 전체를 촘촘하게 감싸 안고 있는 거대한 기하학적 구조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성좌 아폴리온이 배치해 둔 다차원 감시 그물망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들이 행성의 중력장을 왜곡하며 형성한 가혹한 ‘암흑 물질 중력 렌즈 그물’이, 붉은빛을 발산하는 실 모양의 고치처럼 히페리온의 예상 궤도 전면에 빽빽하게 포열되어 있었다. 미세한 질량체 하나조차 통과하는 즉시 중력 붕괴를 일으켜 압살해 버릴 기하학적인 죽음의 장벽이 그들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