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전력이 가까스로 안정되는 순간, 내부 심해 열 방출 계통 제어 파이프가 1200K 극초고열 폭주를 개시하며 보일러 폐실 유기 암모니아 가스 폭발 경보가 고막을 뚫었다.

고압의 유독 가스가 좁은 격실 내부를 메우며 시야를 백색의 장막으로 가렸다. 헬멧 내부의 산소 잔량 수치가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다. 분당 1.2리터의 산소 소모율이 급격한 심박수 상승과 함께 2.5리터까지 치솟았다.

“아카샤, 격실 배기 밸브 강제 작동.”

= 불가능합니다. 배기 벨로우즈 파이프가 열팽창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고착되었습니다. 현재 가스 압력 4.2메가파스칼. 한계 압력 도달까지 47초 남았습니다. =

태오의 시야 우측 하단에 붉은색 카운트다운이 명멸했다. 47, 46, 45……. 물리 법칙은 감정을 봐주지 않는다. 1200켈빈의 열기는 열역학 법칙에 따라 히페리온의 장갑을 녹이고 결국 압착된 수압이 이곳을 짓누를 것이다.

태오는 열화상 바이저 너머로 비상 연소 밸브의 위치를 포착했다. 열 변형으로 인해 우그러진 티타늄 합금 자루가 보였다. 손으로 돌려서는 미동조차 하지 않을 터였다.

그는 헬멧의 안면부를 밸브 조절 콘솔의 전자기 포트에 밀착시켰다. 슈트 내부의 전자기 흡착 레일이 기계식 밸브의 외경을 강력한 자성으로 움켜쥐었다.

“아카샤, 흡착압 최대치로 가속. 주파수 동조로 금속 격자를 일시적으로 이완시켜.”

= 전자기 흡착 코일에 과부하가 발생합니다. 제어자의 신경 동기화 왜곡 위험이 12% 증가합니다. =

“실행해.”

좌측 관자놀이 부근에서 찌릿한 고통이 일었다. 뇌 신경 세포의 칼슘 이온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왼손 끝이 일시적으로 감각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느낌이 전해졌다. 아카샤의 동기화 왜곡, 즉 ‘석화’의 전조였다. 하지만 태오는 이를 악물고 흡착 레버를 비틀었다.

자성 유체가 밸브 틈새로 스며들며 고착된 나사산을 강제로 밀어냈다. 끼이익, 하는 금속의 비명이 슈트 골격을 타고 척추로 전달되었다. 마침내 밸브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역방향으로 흐르던 암모니아 가스가 보조 연소실로 역류하며 압력 게이지가 급격히 하강했다.

[경고: 암모니아 가스 농도 0.05% 이하로 하락.] [대기 질 안정화 프로토콜 작동.]

탁한 백색 가스가 천장의 흡입구로 빨려 나가며 마침내 시야가 확보되었다. 태오는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가스 구름이 걷힌 제어 콘솔 뒤편, 한 인물이 차가운 격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두꺼운 내열 작업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여성. 그녀의 손에는 임시 배관 보수용 전자기 드라이버가 흉기처럼 들려 있었다. 금속 끝단에서 푸른색 플라스마 아크가 위협적인 빛을 발했다.

그녀의 가슴팍에 새겨진 표식은 명확했다. 가이아 행성 연합 함대 소속, 보조 엔지니어 엘레나 루카스.

“한 걸음만 더 오면 이 주배전반을 통째로 과부하 시키겠어.”

엘레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사나운 맹수와 같았다. 그녀는 태오를 함선을 약탈하러 온 황폐화된 지상의 부랑자나 성좌의 꼭두각시로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태오는 그녀의 눈을 보지 않았다. 대신 가상 현실 디스플레이를 가득 채운 그녀의 바이탈 데이터를 응시했다.

[대상: 엘레나 루카스] [심박수: 142 bpm] [호흡수: 분당 28회] [전투 의지 스펙트럼: 87.4% (불안정)] [아카샤 예측 배신 확률: 91.2%]

90%를 상회하는 미신뢰 자산. 태오의 내면에 내재된 지독한 인간 불신이 경고음을 울렸다. 과거 가이아 궤도에서 자신을 버려두고 도망쳤던 동료들의 지표가 이와 유사했었다.

“그 드라이버의 출력은 12와트에 불과하다.”

태오의 목소리가 헬멧 스피커를 통해 기계적으로 변조되어 흘러나왔다. 차갑고,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음성이었다.

“그것으로 주배전반의 절연 장갑을 뚫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초. 하지만 네 손가락이 트리거를 완전히 당기기 전에 내 슈트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 너의 경동맥을 향해 고주파 충격파를 발사할 것이다. 소요 시간 0.18초. 생존 확률은 12% 미만이다.”

엘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태오가 띄워 놓은 홀로그램 수치들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그녀가 가동하려던 기계의 기하학적 회로도와 예상 전류 흐름도가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완벽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이 깊은 바다 밑바닥까지 기어 들어와서 뭘 하려는 건데?”

“살아남는 것.”

태오는 손을 뻗어 콘솔의 마스터 권한을 강탈했다. 아카샤의 양자 해킹 코드가 배전반의 제어권을 순식간에 덮어씌웠다. 엘레나가 쥐고 있던 전자기 드라이버의 푸른 광선이 연기처럼 스러졌다. 시스템의 전원이 완벽히 차단된 것이다.

“그리고 이 함선은 이제 내 통제하에 있다. 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엘레나 루카스.”

그녀는 허탈한 표정으로 드라이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금속 바닥에 부딪힌 도구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태오의 거대한 검은색 슈트와 그 너머에서 차갑게 빛나는 아카샤의 연산 스펙트럼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미친 통제광 같으니라고……. 다들 죽었어. 위에서 내려온 그 괴물 같은 기하학 도형들이 도시를 통째로 눌러 터뜨렸다고. 그런데 너는 여기서 기계나 만지작거리며 지배자가 되겠다는 거야?”

“감상적인 한탄은 물리적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열역학적 은폐다.”

태오는 배전반의 파손된 전력 라인을 수리하기 위해 장갑을 뻗었다. 엘레나는 분노를 삭이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직업적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태오의 거친 손놀림을 제지했다.

“비켜 봐. 그렇게 무식하게 연결하면 구리 버스바가 고열로 녹아내려. 전자기 유도 결선은 이렇게 우회해야 해.”

그녀가 투덜거리며 보조 공구를 집어 들었다. 태오는 그녀의 바이탈 사인을 계속 감시하며 작업을 허용했다.

그때, 주배전 라인 끝단의 전자기 결선 내부에서 묘한 주파수 파형이 감지되었다. 아카샤의 분석 창에 미세한 2차 주파수 변조 오류 흔적이 포착된 것이다.

= 경고. 주배전 3번 라인의 말단 종단 저항 부근에서 인위적인 신호 변조가 관찰됩니다. 주파수 대역 4.2기가헤르츠. 히페리온의 기본 프로토콜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역방향 보안 침투 우회로로 판단됩니다. =

태오의 미간이 좁혀졌다. 누군가가 이미 이 함선의 시스템에 물리적인 백도어를 설치해 두었다는 뜻이었다.

“이 결선 구조를 만진 적이 있나?”

태오가 묻자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긴 보안 격벽 내부라 나 같은 하급 엔지니어는 접근도 못 해. 왜 그래?”

“아니다. 작업을 서둘러라.”

태오는 그 의문의 주파수 데이터를 아카샤의 격리 메모리에 저장했다. 지금은 이 수수께끼를 풀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가이아 행성의 두꺼운 대기층과 심해를 투과하는 성좌 바알제불의 감시 그물이 다시 한번 이 해구를 훑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경고. 성좌 ‘바알제불’의 하위 정다면체 탐지선이 해구 상공 50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수중 음파 및 중력파 스캔 개시까지 120초. =

상황은 최악이었다. 보일러의 폭주로 인해 방출된 1200K의 열기는 히페리온 외벽을 따라 적외선 방사 형태로 심해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차가운 섭씨 2도의 심해 속에서, 히페리온은 마치 밤하늘의 초신성처럼 밝게 빛나는 표적이었다.

“방법이 없어. 이 정도 열 방출량이면 저 괴물들의 센서에 0.1초 만에 걸려.”

엘레나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태오는 침착하게 아카샤의 인터페이스를 열었다. 이전에 포획해 두었던 바알제불 구형 센서의 광학 역위상 제어값이 가상 공간에 기하학적인 스펙트럼으로 떠올랐다.

“아카샤, 역위상 대칭 연산 개시. 보일러 연소기에서 유출되는 열 에너지를 역위상 주파수로 변조하여 감쇄시킨다.”

= 물리적 열역학 법칙을 거스르는 연산입니다. 탈취한 권능 ‘인과율 왜곡’을 사용해야 합니다. 동기화 왜곡 제어 한계를 설정하십시오. =

“제한선 35%. 연산을 시작해.”

머릿속이 얼어붙는 듯한 냉기가 휘몰아쳤다. 태오는 왼쪽 팔의 감각이 완벽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강탈한 성좌의 개념력을 인간의 뇌로 처리하는 대가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물리적 석화였다. 그의 왼쪽 손목부터 팔꿈치까지의 피부가 회백색의 단단한 광물질로 변해갔다.

하지만 연산은 성공적이었다.

히페리온 외벽의 열 방출 제어 그리드가 기하학적인 파형을 그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외부로 방출되던 1200K의 적외선 스펙트럼이, 아카샤가 계산해 낸 역위상 파형과 충돌하며 상쇄 간섭을 일으켰다.

열역학적 절대 영도에 가까운 가상 영도(Thermodynamic Virtual Zero) 상태.

물리적으로는 뜨거운 열기가 존재하지만, 외부로 방사되는 정보값은 완벽한 ‘무(無)’로 세공된 순간이었다.

심해 해구의 어둠 속으로 정십이면체 모양의 바알제불 드론이 천천히 하강했다. 드론의 중심부에서 회전하는 푸른색 가간섭성 광선이 히페리온의 장갑 위를 쓸고 지나갔다.

엘레나는 숨을 죽인 채 태오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드론은 히페리온이 존재하는 공간을 관측했으나, 어떠한 적외선 신호도, 중력적 이상 징후도 포착하지 못했다. 차가운 기하학적 포식자는 이 거대한 강철 무덤을 단순한 해저 암석으로 판단하고는, 다시 수면 위로 느릿하게 상승했다.

센서의 적색 경보등이 꺼지고, 격실 내부에 침묵이 찾아왔다.

“말도 안 돼…….”

엘레나가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성좌의 눈을 속였다고? 물리 법칙을 왜곡해서?”

“왜곡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측 방정식을 역으로 계산해 오차를 주입했을 뿐이다.”

태오는 석화된 왼팔을 기계 장갑 안으로 숨기며 냉정하게 답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번 연산으로 뇌세포의 1.8%가 추가로 석화되었다. 남은 수명과 연산 자원의 한계가 실시간으로 옥죄어 오고 있었다.

= 상황 종료. 적외선 차단 프로토콜을 해제합니다. 현재 잔여 전력 3.1%. 전력 보존 모드로 전환합니다. =

안도감도 잠시, 함선의 보조 조명들이 일제히 소등되며 비상용 주황색 저전력 등만이 격실을 희미하게 밝혔다. 3%의 전력으로는 산소 발생기조차 온전히 돌리기 버거운 임계 상태였다.

그 순간, 콘솔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전력 부족 경고가 아니었다. 가청 주파수를 넘어선 기분 나쁜 기계음이 기계실 전체를 울렸다.

[위험: 인접 구역인 3구역 미해동 격실 해치에서 비인가 생체 신호 감지.] [경고: 시스템 루트 권한에 대한 강제 복제 시도 포착. 생체 복제 시스템 오입력 탈취 경보 작동.]

태오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3구역은 아직 해동 프로토콜이 승인되지 않은, 완벽히 밀폐되어 있어야 할 구역이었다.

누군가가 내부에서 함선의 핵심 보안 권한을 해킹하여 강제로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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