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삐이이이이—!

대동맥 우회기[1]의 경고음이 수술실의 밀폐된 공기를 날카롭게 찢었다. 붉은색 경고등이 이준의 시야를 피빛으로 물들였다. 환자의 뇌로 흘러가야 할 혈류량이 순식간에 임계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체외 순환량 1.2리터까지 떨어집니다! 이대로 30초 지나면 브레인 데스(Brain Death, 뇌사)입니다!"

체외순환사의 다급한 절규가 고막을 때렸지만, 이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솟았다. 쿵! 쿵! 쿵! 심장이 흉벽을 뚫고 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다. 분당 220회. '의신의 안안(眼)'을 한계 너머로 가동한 대가가 기어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부정맥으로 인한 극심한 허혈성 통증에 호흡이 턱 막혔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메스의 날카로운 끝이 허공을 흔들었다.

"한이준 선생! 페이스 잃지 마!"

어시스트 자리에 선 서재희의 외침이 수중 너머의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천장의 HD 카메라는 이준의 흔들리는 손끝을 집요하게 비추고 있었다. 모니터링 룸에서 이 파멸을 기획한 자들이 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이준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었다. 통증을 분노로 치환하며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었다. 감정에 휘둘릴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이준의 냉철한 뇌세포가 생존과 수술 완수를 위한 최적의 경로를 계산해 냈다.

***

[14:02:15]

"원격 심장 페이서(Pacing) 극판 가져와. 당장."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명령은 단호했다. 순환기 간호사가 당황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예? 환자용 페이서는 이미 세팅되어……."

"내 몸에 쓸 거다. 군말 말고 당장 뜯어!"

이준은 왼손으로 자신의 수술복 상의를 거칠게 젖혔다. 오른쪽 가슴 아래, 갈비뼈 사이의 피부가 드러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소독된 원격 임시 페이싱[2] 극판을 움켜쥐었다. 바늘 끝이 차가운 금속 광택을 뿜어냈다.

"미쳤어요? 마취도 없이 그걸 직접 찌르겠다고요?!"

서재희가 손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이준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푹!

"윽……!"

가늘고 긴 극판 바늘이 늑간을 뚫고 들어가 심벽 근처에 안착했다. 생살을 찢고 들어오는 이물질의 감각에 전신이 비틀렸지만, 이준은 페이싱 장비의 다이얼을 돌렸다. 강제 전기 자극 신호가 그의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치익, 치이익!

인위적인 전류가 동방결절[3]을 강제로 장악했다. 폭주하던 220bpm의 심박수가 전기 신호에 정렬되며 80bpm으로 뚝 떨어졌다. 가슴을 쥐어짜던 부정맥의 통증이 가라앉는 대신, 온몸의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기계적 박동의 불쾌감이 밀려왔다. 이준은 이마에 맺힌 굵은 땀방울을 털어내며 다시 메스를 고쳐 잡았다.

"남은 시간은 2분. 안안(眼) 가동."

망막 위에 푸른빛의 스펙트럼이 다시 펼쳐졌다. 환자의 대동맥 근처, 꼬여버린 미세 혈관들의 혈류 흐름이 3차원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구현되었다. 기계가 멈춘 원인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었다.

'역시나.'

이준의 시선이 대동맥 우회기와 연결된 통합 장비의 메인보드로 향했다. 안안의 초감각 스캔이 기기 내부의 미세한 신호 흐름을 포착했다. 정상적인 시스템 경로를 이탈해 특정 서브 루틴으로 전류를 빼돌리는 비정상적인 로그가 보였다. 민건우가 미리 코딩해 둔 인위적인 전압 탈취 명령이었다.

"서 선생, 내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태블릿 꺼내서 통합 포트에 연결해."

이준은 봉합사를 쥔 채 낮게 읊조렸다.

"지금 수술 중에 그게 무슨 소리야!"

"살리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 포트 백업 폴더 경로를 우회시켜야 기계가 살아나."

서재희는 이준의 눈빛에서 광기 어린 확신을 읽었다. 그녀는 지체 없이 이준의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내 수술실 메인 콘솔의 USB 포트에 꽂았다. 이준은 왼손 손가락으로 콘솔의 터치스크린을 두드렸다. 안안이 가리키는 시스템의 맹점, 민건우가 숨겨둔 악성 코드의 경로를 역으로 추적했다.

틱, 틱, 타닥!

[SYSTEM PATH RE-ROUTING COMPLETED]

"경로 재설정 완료. 조작 기록은 백업 메모리 루트 폴더로 강제 이전 저장한다."

그 순간, 붉게 점멸하던 대동맥 우회기의 모니터가 정상적인 청색으로 돌아왔다.

위이이이잉—!

[NORMAL FLOW RATE: 4.5L/min]

"어…… 유량 회복됩니다! 관류압 정상 수치로 복구되었습니다!"

체외순환사의 비명 같은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뇌사 임계 시간 종료를 단 15초 남겨둔 시점이었다.

***

[14:05:30]

기계는 돌아왔지만 환자의 심장 상태는 여전히 사선(死線)을 넘나들고 있었다. 승모판 성형술을 진행하던 부위의 미세 혈관들이 급격한 압력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파열되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수술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석션(Suction, 흡인기)을 대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다.

"시야가 안 나와요! 한 선생, 이 상태로는 결찰[4]이 불가능해!"

서재희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준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안안은 붉은 피막 너머, 0.5밀리미터 두께의 찢어진 혈관 벽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메티실린 마취제 수량 전산 기록 열어봐."

이준이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바늘을 움직여 혈관을 꿰매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그건 왜?"

"임준필 기조실장이 내 캐비닛에 던져두었던 마약성 마취제. 그게 이 수술실 약제 보관함에서 불법 유출된 타임스탬프[5]가 이 콘솔 전산망에 남아 있어. 내가 아까 우회 경로를 열면서 그 로그도 같이 긁어왔지."

이준의 손끝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고 정교하게 움직였다. 피가 솟구치는 와중에도 정확히 손상된 혈관의 그루브(Groove, 홈)를 찾아 바늘을 통과시켰다.

"임준필이 내게 누명을 씌우려고 비정상적으로 긴급 가동시켰던 마취제 불법 투여 전산 수정 기록. 날짜는 사흘 전 새벽 2시 14분. 수정자 ID는 임준필 본인의 마스터 키다."

서재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수술실 메인 콘솔 화면 한구석에 이준이 끄집어낸 전산 로그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지워진 줄 알았던 임준필의 범죄 흔적이, 이준이 시스템을 재부팅하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복구되어 화면에 박제된 것이었다.

"이걸로…… 임준필은 끝이군."

서재희가 이마에 흐르는 이준의 땀을 멸균 거즈로 닦아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길은 섬세했고,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서 선생, 지금부터 더블 어시스트 들어간다. 내가 박리할 테니 당신이 봉합해."

"내가? 이 미세 혈관을?"

"내 가이드를 믿어. 핀셋으로 고정하는 위치만 정확히 짚어줄 테니까."

이준의 차가운 신뢰가 서재희의 손끝으로 전해졌다. 이준의 안안이 뿜어내는 푸른 가이드라인이 서재희의 시야와 겹쳐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호흡은 완벽했다. 이준이 혈관을 들어 올리면, 서재희가 0.1초의 오차도 없이 봉합사를 통과시켰다.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속도와 정밀함이었다. 수술실 내의 다른 스태프들은 그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신의 영역에 도달한 두 천재의 협주곡이 수술실을 지배하고 있었다.

***

[14:08:45]

유리창 너머, 2층 모니터링 관제실.

민건우 병원장은 들고 있던 루이 13세 코냑 잔을 입술에 대려던 참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대동맥 우회기가 멈추고 환자가 테이블 데스(Table Death, 수술 중 사망)에 이르는 순간, 한이준을 살인 및 의료 과실로 영원히 매장할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니터의 수치가 급변했다.

띡, 띡, 띡—

완벽한 동성 맥박(Sinus Rhythm)을 그리는 청색 스코프의 신호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환자의 혈압 120/80mmHg, 산소 포화도 99%. 완벽한 소생이었다.

쨍그랑!

민건우의 손에서 미끄러진 크리스탈 잔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붉은 빛깔의 독한 술이 바닥을 적셨지만, 민건우는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기계가 멈췄을 텐데? 어떻게 자력으로 저 혈관들을 찾아낸 거야?!"

비서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보고했다.

"병원장님, 한이준 선생이 수술실 메인 콘솔의 시스템 경로를 강제로 재설정했습니다. 저희가 숨겨둔 전압 제어 로그가…… 전부 백업 폴더로 복사되어 넘어갔습니다."

"뭐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뿐만이 아닙니다. 임준필 실장님이 이전에 조작했던 마취제 전산 기록까지 전부 한이준의 개인 서버로 전송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지금……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민건우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자신이 파놓은 완벽한 함정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줄을 죄는 단두대의 칼날로 돌아와 있었다.

***

"수술 종료합니다. 봉합 마칠게요."

이준이 마지막 타이(Tie, 매듭)를 짓고 메스를 내려놓았다. 가슴에 부착했던 페이서 극판을 뽑아내자, 억눌려 있던 둔중한 통증이 다시금 밀려왔지만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선생."

서재희가 마스크를 벗으며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단순한 경외감을 넘어선 깊은 유대감이 서려 있었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해."

이준은 냉랭하게 대답하며 수술실을 나섰다. 그의 등 뒤로 스태프들의 찬사와 경탄이 쏟아졌지만, 기적을 행한 의사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전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탈의실로 돌아온 이준은 가슴의 상처를 소독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머니에서 차도현이 건넸던 임상 테스트용 특수 신약 베타블로커[6] 약물 샘플을 꺼내 들었다. 투명한 앰플 속 푸른 빛을 띠는 액체가 흔들렸다.

'심장의 대가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어. 이 약의 실체를 알아내야 한다.'

이준은 앰플을 깊숙이 갈무리했다.

그는 중환자실 차트 입력 기기로 향했다. 오늘 수술한 VIP 환자의 포스트 오피(Post-Op, 수술 후) 처방을 입력하기 위해서였다. 단말기에 자신의 의사 면허 카드를 꽂고 화면을 활성화한 순간, 이준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WARNING: UNAUTHORIZED DRUG PRESCRIBED] [환자: 오창석 (VIP) / 처방 약물: 메틸페니데이트 고농축액 50mg (중추신경자극제)] [처방 상태: 승인 완료 / 처방의: 한이준]

"이건……."

이준이 입력하지 않은 미승인 중추신경성 약물 처방 로그가 이미 등록되어 있었다. 그것도 한이준 자신의 명의로.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엄습했다. 서클 9의 진짜 덫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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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동맥 우회기(Cardiopulmonary Bypass, CPB): 심장 수술 중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여 온몸에 혈액을 순환시켜 주는 장치. [2] 임시 심장 페이싱(Temporary Pacing): 카테터나 극판을 통해 심장에 전기 자극을 주어 심박수를 조절하는 시술. [3] 동방결절(Sinoatrial Node): 우심방 우상벽에 위치하며 심장의 자연적인 박동을 조율하는 전기 신호 발생 부위. [4] 결찰(Ligation): 혈관이나 조직을 실로 묶어 혈류를 차단하는 행위. [5] 타임스탬프(Timestamp): 특정 시점에 데이터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컴퓨터 시스템이 기록하는 시간 정보. [6] 베타블로커(Beta-blocker): 심장의 베타 수용체를 차단하여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고 심장의 부하를 줄여주는 약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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