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14:56:10]

왼쪽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날카로운 송곳이 뼈를 뚫고 들어오는 듯한 격통이 휘몰아쳤다.

심장의 비정상적인 수축. 관상동맥이 일시적으로 수축하며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맹렬한 부정맥 발작이었다. 이준은 가슴팍의 수술 가운을 움켜쥔 채 비틀거렸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수술 실 고무장갑 속으로 고여 들어갔다. 입술이 하얗게 질려 바르르 떨렸지만, 이준은 턱을 악물며 통증을 억누르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이준!"

기획조정실장 임준필의 앙칼진 목소리가 수술실의 무균 공기를 찢고 들어왔다. 그의 뒤로 늘어선 보안요원들의 육중한 체구가 12수술실의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임준필의 구두 굽소리가 에폭시 바닥에 둔탁하게 부딪혔다.

딸깍, 딸깍.

"네놈이 미쳤구나. 해고 통보를 처받고도 갈 데가 없어서 남의 수술실을 점거해? 그것도 면허도 없는 일개 전공의 새끼가 단독 집도를?"

임준필이 이준의 코앞까지 다가와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의 눈동자는 흥분과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준이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빤히 응시하자, 임준필은 불쾌하다는 듯 이준의 젖은 수술복 어깨를 툭 쳤다.

"귀가 처먹었어? 이 새끼 당장 끌어내! 경찰에 인계하고 무면허 의료 행위로 즉각 형사 고발 조치해!"

보안요원 두 명이 이준의 좌우로 다가와 그의 양팔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거친 손길이 이준의 어깨에 닿기 직전이었다.

"손 대지 마."

이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평정심을 완전히 유지한, 소름 끼치도록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불규칙하게 날뛰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사냥감을 노려보는 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이준은 뻗어오는 보안요원의 손목을 쳐내며 임준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임준필 실장님. 법을 운운하시려면 제대로 알고 짓짖으셔야지, 그렇게 무식하게 소리만 지르면 밑천이 다 드러납니다."

"뭐, 뭐라고?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

이준이 임준필의 말을 가차 없이 자르며 차갑게 읊조렸다.

"‘누구든지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의사 등 응급의료종사자에게 신고하고,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의료행위를 하는 데 필요한 협조를 하여야 한다.’ 또한 동법 제5조의2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가 아닌 자가 한 응급처치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이준의 시선이 수술대 위에 누워 안정을 찾아가는 환자의 모니터로 향했다. EKG 모니터에는 분당 75회의 규칙적인 사인이 그리드 라인을 따라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환자는 완벽하게 바이탈이 잡혔습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은커녕, 완벽한 소생이죠. 여기에 무면허 의료 행위라는 프레임을 씌우시겠다?"

"네놈은 해고된 상태야! 의사 면허가 있든 없든, 이 병원 소속이 아니라고! 명인대 병원에서 수술할 자격이 없는 외부인일 뿐이란 말이다!"

임준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달아올랐다. 이준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 비웃음 섞인 미소에 임준필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바로 그 점이 실장님의 무식을 증명하는 겁니다. 명인대학교 병원 특별 비상 수술 정관 제14조를 잊으셨습니까?"

"……뭐?"

임준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원내 당직 집도의가 부재하거나, 연락이 두절되어 환자의 생명이 각각 수 분 내에 경각에 달했을 경우, 원내에 상주하는 면허 보유자 중 최우선 순위의 전공의 또는 임상강사에게 임시 집도 대리권이 부여된다.’ 오늘 흉부외과 당직 누구였습니까?"

이준이 한 걸음 다가서자, 오히려 기세에 눌린 임준필이 반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강인태 교수였죠. 하지만 그 인간은 지금 강남의 룸싸롱에서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주는 술을 처먹느라 전화를 세 번이나 씹었습니다. 기록이 다 남아 있어요. 그 시각, 대동맥 파열 환자가 들어왔고, 집도할 수 있는 의사는 오직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정관 제14조의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비상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이 자식이……!"

"만약 제가 집도를 거부해서 환자가 사망했다면, 그건 의료법 제15조 ‘진료거부 금지’ 위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저는 법과 병원 정관에 따라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저를 끌어내시겠다고요?"

이준의 매서운 눈빛이 임준필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꿰뚫었다.

"해보시죠. 무단 점거인지, 아니면 정당한 긴급 피난이자 의무 이행인지 법정에서 끝까지 가봅시다. 그 과정에서 당직을 이탈한 강인태 교수와, 비상 연락 체계를 엉망으로 방치한 기조실장님의 관리 소홀 책임까지 전부 세상에 까발려질 텐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14:59:45]

"한이준, 네놈이 감히……!"

임준필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준의 논리정연한 정관 들이밀기에 말문이 막힌 탓이었다. 병원 내부 정관은 임준필 본인이 기조실장 취임 당시 직접 개정안을 결재했던 문서였다. 법망을 피해 가기 위해 촘촘하게 짜 두었던 비상 대리권 조항이, 도리어 한이준이라는 올가미가 되어 자신의 목을 조여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 이준의 등 뒤에서 묵직한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제 면허도 얹으시죠, 임 실장님."

서재희였다.

그녀는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벗어 던지며 임준필의 앞으로 걸어 나왔.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기조실장을 향한 일말의 존경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 교수!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이 해고된 놈의 불법 시술을 방조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놓고 편을 들어?"

임준필이 삿대질을 해대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서재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품에서 수술 차트 패드를 꺼내 들어 임준필의 가슴팍에 툭 던지듯 안겨주었다.

"방조가 아니라 공동 집도 및 지도 감독입니다."

"이게 무슨……."

임준필이 허겁지겁 차트 패드를 받아 들었다. 패드 화면에 띄워진 전자 차트의 ‘집도의 결재’란에는 한이준의 이름 옆에 서재희의 공인인증 서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제가 이 수술의 퍼스트 어시스트[2]로 참여했고, 한이준 전공의의 모든 집도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지도 감독했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 이 수술에 대한 모든 의학적, 법적 책임을 제가 지겠다는 소급 보증[4] 서명을 완료했습니다."

서재희가 임준필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병원 정관 제9조. '전문임상교수가 동석하여 지도 감독한 전공의의 수술 행위는 해당 교수의 책임 하에 정당한 의료 행위로 인정한다.' 임 실장님, 제가 흉부외과 정교수로서 제 면허를 걸고 이 수술을 보증했습니다. 아직도 이게 무면허 불법 시술로 보입니까?"

"서재희……! 네가 감히 나랑 해보겠다는 거냐? 병원장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네 자리도 보전하지 못할 거다!"

임준필의 목소리에 히스테릭한 균열이 일어났다. 평소 콧대 높던 서재희마저 한이준의 편에 서서 자신을 압박하자, 상황이 완전히 통제 범위를 벗어났음을 직감한 것이다.

"병원장님 핑계 대지 마십시오."

서재희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환자를 살린 의사를 징계하겠다면, 저도 같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십시오. 언론에 '명인대 병원, 대동맥 파열 환자 살려낸 천재 의사들과 교수 무더기 징계'라는 타이틀로 대대적으로 보도되게 만들어 드릴 테니까."

"너, 너희들이……!"

임준필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술실 내부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보안요원들은 기조실장의 눈치만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법률적으로도, 명분상으로도 완벽하게 밀린 상황이었다. 여기서 강제로 이준을 끌어냈다가는 내일 아침 아침 뉴스 사회면에 명인대 병원의 치부가 대대적으로 송출될 것이 뻔했다.

[15:05:12]

이준은 가슴의 통증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의 과부하가 줄어들면서 시야를 가득 채웠던 붉은색 경고등과 미세 혈관들의 홀로그램 이미지들이 천천히 사라졌다. 의신의 안안(眼)이 비활성화되자,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이준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더 임준필에게 다가갔다. 그의 시선은 임준필의 눈을 지나, 그의 손목시계, 그리고 수술실 벽면에 설치된 첨단 통합 모니터로 향했다.

'아직 쓸 만한 패가 하나 더 남았지.'

이준의 머릿속에 백강혁의 기억과 지식이 실시간으로 회전했다. 1화에서 안안의 시각 스캔으로 확인했던, 임준필이 수술실 약제 보관함의 마취제 투여 기록을 전산으로 무단 수정한 흔적. 그 타임스탬프의 잔상이 이준의 뇌리에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임 실장님."

이준이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오직 임준필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제가 왜 이 수술실을 고집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공?"

"이곳은 12수술실입니다. 병원에서 가장 최첨단 장비가 밀집된 곳이자, 모든 데이터가 기조실 서버가 아닌 '원내 메인 프레임 백업 폴더'에 실시간으로 다이렉트 저장되는 유일한 곳이죠."

임준필의 눈동자가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어제 새벽 2시 14분. 누군가 제 계정으로 접속해서 펜타닐 마취제 불법 투여 전산 기록을 수정한 흔적이 있더군요. 기조실 전산망에서는 지우셨겠지만, 여기 12수술실 통합 포트 백업 폴더에는 그 접속자의 IP와 타임스탬프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준이 임준필의 귀밑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싸늘하게 읊조렸다.

"공문서 위조, 전산 무단 접근, 그리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이거 특검이라도 불어 닥치면 실장님 선에서 꼬리 자르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까?"

임준필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입술을 파르르 떨며 이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이제 분노가 아닌, 본능적인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이준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서클 9'의 그림자를 임준필의 등 뒤에서 명확하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 도사린 거대한 괴물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짓거리의 배후가 누구인지 모를 줄 압니까?"

이준의 차가운 질문에, 임준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가까스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한이준…… 네놈이 아무리 발악해 봐야 소용없어. 네가 상대하려는 분이 누구인지 진짜 모르는 모양인데……."

임준필이 이준의 귓가에 대고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민건우 병원장님이다! 서클 9의 정점에 계신 분이라고! 네놈 같은 미천한 전공의 새끼가 법 조항 몇 개 들고 설친다고 해서 무너질 분이 아니란 말이다! 이 병원의 모든 법과 정관은 그분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움직인다!"

민건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이준의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분노가 아닌, 차가운 복수심의 고동이었다. 백강혁을 배신하고 무참히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장본인. 합리주의자의 탈을 쓴 냉혹한 정치가이자, 불법 임상시험의 총책임자.

"잘 알고 있습니다."

이준이 나직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더 재미있겠네요. 그 잘난 법과 시스템으로, 그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릴지 기대해 주십시오."

[15:10:30]

임준필은 이준의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해 뒤걸음질 쳤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수술실의 에어컨 바람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자신이 저지른 전산 조작의 증거마저 이 자리에서 털릴 판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애써 권위를 가장하려 목소리를 높였다.

"보안요원들, 철수해!"

임준필의 지시에 어리둥절해하던 요원들이 신속하게 수술실 밖으로 물러났다. 임준필은 자동문 앞에 서서 이준을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한이준, 그리고 서재희. 너희들이 오늘 일을 정당한 의료 행위라고 우겨댔지? 좋다. 법대로, 시스템대로 가보자고."

임준필이 이빨을 갈며 최후통첩을 던졌다.

"내일 오전 8시. 병원 본관 대회의실에서 긴급 징계위원회가 개최된다. 민건우 병원장님을 비롯한 온 이사진과 원로 교수들이 전부 배석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도 그 얄팍한 정관 쪼가리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임준필은 이준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사납게 소리쳤다.

"네놈의 모든 조작질과 면허를 공식적으로 박탈해 주마! 내일 아침이 네놈의 의사 인생 마지막 날이 될 줄 알아라!"

쾅-!

수술실의 육중한 자동문이 닫히며 고요함이 찾아왔다.

서재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준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이준아, 내일 징계위는 오늘과는 차원이 다를 거야. 민 병원장이 직접 주재하는 자리라면 가차 없이 쳐낼 텐데…… 정말 준비된 대책이 있는 거야?"

이준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수술실 벽면에 흐릿하게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이준의 육체, 하지만 그 안에 깃든 백강혁의 영혼이 차갑게 웃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서 교수님."

이준이 주머니 속에서 작은 USB 메모리를 만지작거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들이 만든 덫에, 그들이 직접 목을 매게 만들 겁니다."

내일 오전 8시. 모든 권력자들이 모인 그곳이, 바로 임준필과 민건우의 무덤이 될 터였다.

***

[1] 베타블로커 (Beta-blocker): 교감신경의 베타 수용체를 차단하여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고 심장의 부담을 줄여주는 약물. [2] 어시스트 (Assist): 수술 시 집도의를 돕는 보조 의사. [3] 크래시 카트 (Crash Cart): 응급 심폐소생술에 필요한 약물 및 장비가 구비된 이동식 카트. [4] 소급 보증 (Retroactive Guarantee): 사후에 이전의 행위를 정식으로 승인하고 책임지는 법적 절차.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